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85화 (85/169)

85화 용병왕(1)

#1

모안다 외성의 성문 안에서 네 기의 기간트가 추가로 등장했다.

이로써 영지 밖으로 나온 기간트는 모두 15기.

애초에 목표로 삼았던 것이 최소 기간트 15기의 어그로를 끄는 것이었던 만큼, 작전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남은 것은 내가 시간을 끄는 동안 저스틴 크로비스가 이끄는 원정대원들이 해내야 할 몫이었다.

‘그것조차 해내지 못할 멍청이는 아니지.’

더군다나 새로 나타난 기간트들에 선두에는, 정찰 시 확인한 바 있었던 카이샨의 근위기간트 트리온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이렇게 되면 변수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나는 하늘을 향해 정령 샐러맨더의 힘으로 강화한 파이어 블래스트 스킬을 쏘아 올렸다.

퍼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하늘 높이 솟아오른 불덩어리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화려한 불꽃을 그려냈고.

기간트의 마력엔진으로 인한 마법 증폭 때문인지 불꽃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적들마저 한순간 동작을 멈춘 채 시선을 하늘로 향했을 정도.

‘저 정도면 눈이 멀지 않은 이상, 못 볼 수는 없겠네.’

찰나의 순간이 지나자, 적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뒤늦게 등장한 4기의 기간트 역시 모래바람을 흩날리며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출력이 2200rp나 되는 데다, 크로스보우에 비해 머리 하나는 더 큰 트리온은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1대1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아무리 나라고 한들, 10기가 넘는 강철 거인들의 틈바구니에 갇힌 채 저런 고등급 기간트의 공격을 받게 된다면 무사하리라 장담할 수 없을 테니.

그리고 지금 중요한 건 원정대원들이 임무를 완료할 때까지 저들의 어그로를 끄는 것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 적 기간트를 잡아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테고.

카이샨의 기간트 중 가장 등급이 낮은 바이샨 네 기를 이미 잡아낸 상황이었기에, 11기의 적기 중 남은 바이샨은 고작 한 기.

그 말인즉슨, 남은 적들의 수준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었다.

‘크로노스 하나, 바엘로그 둘, 아트론 둘, 그리고 저건 네 기로 늘었군. 바엘로그랑 아트론의 중간 정도 될 것 같은데...’

1차 증원군 9기 중 유일하게 이름을 알지 못했던 기간트.

붉은색과 검은색이 절반씩 도색 된 그 기체가 네 기로 늘어났다.

화려한 외관으로 보아 드워프들이 만들어낸 기간트인 듯했고, 그 크기로 보아 출력은 1500rp 정도일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존재하긴 했지만.

이 세계의 기간트들 중 95% 이상은 출력과 크기가 비례했기에 출력을 예측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내겐 시전 가능한 모든 버프(버서커나 한계돌파 같은 특수 스킬 제외) 스킬들이 적용되고 있는 상태였기에, 상급 엑스퍼트급의 움직임을 기간트를 통해 재현해 낼 수 있는 상태.

하지만 트리온 포함 세 기간트가 합류하는 시점에서 여태까지의 전투 방식을 유지하는 건 위험부담이 컸기에.

나는 곧바로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최고의 효과를 발휘하는 ‘서리바람(B)’ 특성의 고유스킬들을 펼쳐내기 시작했다.

“운디네, 프랙탈 필드.”

수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막과는 상성이 극도로 나쁜 서리바람 특성이었지만, 내게는 이를 보완 해줄 물의 정령이 존재했다.

‘물론 기간트로 정령의 능력을 증폭시킬 수 없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을 테지만.’

거대 운디네의 투명한 몸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엄청난 양의 물이 메마른 사막의 모래 속으로 스며들었고.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트리온이 시퍼런 청광에 휩싸인 곡도를 휘두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속도가 제법인데?”

적어도 지난번에 봤던 근위기사보다는 실력이 좋은 녀석임이 분명했다.

카아아아아앙

나는 상대와 마찬가지로 적광에 휩싸인 플레일을 이용해 곡도를 걷어낸 뒤, 가속 스킬까지 사용해 사방에서 조여오는 포위망을 벗어났다.

그리고 그 직후, 하나의 스킬을 시전했다.

“프랙탈 필드.”

츠르르르르르르르르르......

해가 떠 있을 적에 비해 기온이 한없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사막 한가운데 펼쳐지는 얼음의 대지는 실로 충격적인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사막에서 나고 자란 카이샨 왕국의 오너들 역시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한순간 발을 멈추고 말았을 정도.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프리징 레인.”

스킬명을 뱉어내자마자 새카만 밤하늘에 생성되기 시작하는 수천, 수만 개의 얼음 알갱이들.

점점 몸집을 불려가던 그것들이 어느 순간 지면을 향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시야를 완전히 가릴 정도가 되어버렸다.

적 기간트들의 움직임은 스킬의 영향으로 인해 조금 굼떠졌고.

반대로 크로스보우에 탑승한 난 행동력 보정이라는 버프를 받아 조금 더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카아아아아아앙

퍼어어어엉

콰아아아아앙

나는 빙판 위를 평지처럼 내달리며 적 기간트들에게 일방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적들 역시 카이샨 왕국의 정예.

조금만 지체해도 포위망을 형성해 나를 가두려 했기에, 빠르게 치고 빠지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 탓에 한 번의 공격으로 결정적인 타격을 입힐 수는 없었지만.

피해가 누적되자 결국 진형 유지에 실패한 아트론 한 기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다.

1107, 1119, 1127...... 1146.

나는 순간적으로 오버클럭을 일으켜 빛살 같은 속도로 홀로 떨어진 아트론에게 접근했고.

콰드드득

잔뜩 강화한 플레일로 녀석의 몸통을 꿰뚫어 버렸다.

이로써 남은 적 기간트는 10기.

나는 모안다 영지의 높다란 외성을 흘깃 바라보았다.

‘슬슬 시작할 때가 됐을 것 같은데...’

이곳을 찾은 진짜 목적인, 보급품 창고에 대한 테러가.

#2

군량 창고 앞을 지키는 카이샨의 기간트는 크로노스와 아트론 그리고 바이샨이었다.

적기 중 대장격인 크로노스와 저스틴 크로비스의 카트린은 동일한 등급의 기간트였고.

케일 마틴과 애덤 가필드의 록산느는 아트론과는 동급, 바이샨보다는 한 등급 위의 기간트였다.

즉, 기간트 전력에서는 미세하게나마 원정대 쪽이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카트린의 오너인 저스틴 크로비스는 동급 기간트를 타는 오너 중 자신이 최고라 자신하는 인물이었다.

‘어디까지나 동급에서는 말이지...’

한 등급 위의 기간트를 소유한 헬레나 오도넬이나 카일 어네스트, 거기에 세 등급은 아래인 크로스보우를 타고도 인간 같지 않은 실력을 뽐내는 임시기사단장 스노우 같은 강자들이 존재했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그들은 동급 기간트의 소유자는 아니었으니까.

“젠장, 뭔가 좀 비참한 생각인 것 같은데...”

그는 마라몬트 용병 부대에 속한 괴물 같은 오너들을 떠올린 탓에 치솟은 울분을, 적 기간트 크로노스를 향해 풀어내기로 마음먹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카아아아아아앙

크로노스와 카트린이 충돌했고.

곧이어 록산느와 아트론, 바이샨이 검과 방패를 맞대었다.

그리고 그 틈을 이용해...

서걱

푸와아아악

서걱

“끄으윽...”

“끄어어억...”

원정대의 일원인 상급 엑스퍼트 요한슨이 적의 경비 병력들을 차례차례 제거하며 창고 안으로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창고쪽 인원들의 대장인 듯한 상급 엑스퍼트를 처리하는 데 조금 애를 먹기는 했지만.

검술 실력 하나만큼은 마라몬트와 계약한 용병들 중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요한슨이었기에, 20여 합 만에 상대의 목을 쳐낼 수 있었다.

창고 안으로 들어온 요한슨은 마라몬트 군부로부터 지급받은 아공간 주머니를 열었다.

그리고는 그 안에 들어있던 수십 장의 스크롤을 꺼낸 뒤.

군량을 비롯한 보급품 더미에 일정 간격으로 부착한 후 마력을 불어넣었다.

화아아아아앗

잠시 옅은 빛을 내뿐은 스크롤이 잠잠해졌지만, 이미 마법은 발동한 상태.

이 스크롤에 내장된 건 일정 이상의 충격이 가해지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마법이었다.

모든 스크롤을 소진한 요한슨이 거대한 창고의 모습을 눈에 담은 뒤 빠르게 그곳을 빠져나왔고.

그와 동시에...

콰아아아아아아앙

콰드드드득.

케일 마틴이 탑승한 록산느의 검이 바이샨의 몸통을 꿰뚫으며.

기간트 간의 전투에서도 승부의 향방이 갈렸다.

#3

콰지직

이름을 알지 못하는 기간트 중 하나의 어깨를 베어내자, 다른 기간트들에 비해 최소 머리 반 개 이상(크로스보우나 바이샨에 비해서는 머리 한 개 이상)은 큰 신장을 지닌 트리온이 방패로 나를 후려치며 후속 공격을 방해했다.

타아아앗

나는 훌쩍 뛰어 적들의 포위망을 벗어난 뒤, 얼음 알갱이들이 수북하게 쌓인 빙판 위에 착지했다.

그러자 방패를 거둔 트리온으로부터 하이톤의 카이샨어가 들려왔다.

[대체 네놈은 뭐냐? 어떻게 고작 크로스보우 따위로...]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건 이 세계에 떨어져 기간트라는 존재를 알게 된 이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기도 했으니까.

[너야말로 뭐지, 그 목소리는? 남자냐, 여자냐?]

목소리의 주인공이 남자라는 걸 모르지는 않았다.

‘그런데, 보통 저런 목소리룰 가진 사내놈들은 이런 거에 쉽게 발끈하곤 하니까.’

아니나 다를까...

[이 개자식! 반드시 죽여... 잠깐, 그 유창한 우리말은 뭐지? 혹시 왕국의 변절자인가?]

카이샨어라면 알마탄 요새에 처음 방문했을 때 이미 비어있는 언어 스킬 슬롯에 등록해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외국어라는 것이... 제아무리 유창하다 한들, 어지간하면 원어민과는 차이를 보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스킬’에 의해 습득된 언어에 그런 약점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저렇게 생각한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나는 녀석의 속을 조금 더 긁어보기로 했다.

시간을 끌수록 유리한 건 이쪽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뭐? 정말 왕국의 배신자란 말이냐? 그 정도 실력이라면 어느 부족이든 최고의 대우를 해줬을 텐데... 대체 왜?]

[족장 자리를 내놓으라고 했더니 거부하더군.]

[뭐? 이런 정신 나간 놈을... 하, 이 새끼가 감히 나를 능멸해? @#%$% #$%@# #$%@%%^......]

대체 어떤 부분에서 눈치를 챈 건지 알 수 없지만, 흥분한 트리온의 오너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내뱉으며 달려들었다.

‘걸렸다.’

하지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였고.

트리온의 뒤를 따라 남은 적 기간트들이 몸을 날렸지만, 약간의 간극으로 인해 녀석과의 1대1 상황이 만들어졌다.

순식간에 출력 1140rp를 넘어서는 마력 엔진.

거기에 더해 가능한 최대치의 마력을 쏟아부은 플레일.

마지막으로 얼음 알갱이들 사이에서 솟아오르며 트리온의 몸을 잡아채는 하얗고 거대한 손.

[뭐, 뭐냐 이건!?]

당황한 트리온의 오너가 경악성을 터뜨리며 붙잡힌 몸을 뒤흔들었고.

시각적인 효과에 비해 물러터진(?) 거대한 손은 그대로 터져나가며 다시금 얼음 알갱이로 화했다.

하지만 붙잡히고 빠져나오는 데 소모된 찰나의 순간은, 내겐 더할 나위 없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나는 터질 듯 진동하는 플레일에 ‘메가 라이트닝’과 ‘블레스트’ 마법을 동시에 인첸트했고.

서번트를 이용해 만들어낸 손이 터져나감과 동시에 트리온의 상체를 향해 강하게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뛰어난 실력자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 짧은 순간 방패에 마력을 집중시킨 트리온의 오너가 플레일을 막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끄아아아악!]

플레일에 실린 엄청난 물리력과 마력의 콜라보로 인해 새처럼 수십 미터를 날아 빙판 위에 처박히고 말았다.

‘25포인트!’

무려 킬 포인트 25의 트리온을 마무리하기 위해 발밑에 마력을 집중시키려던 찰나...

지이이이이잉

이 세계에 떨어진 이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서늘한 감각이 전신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사실 꽤 익숙한 감각이었다.

이곳이 아닌 지구에서 몇 번이고 느껴봤던...

“강자... 그것도 엄청난 강자다.”

항거 불가의 S급 전투계열 헌터들에게서나 느낄 수 있었던 지독한 아우라.

하지만 그 S급 헌터들이라 한들, 크로스보우에 탑승한 내게 이런 감각을 느끼게 하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불길한 아우라가 느껴지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쿠과과과과과......

마라몬트와의 국경 방향에서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한 기의 기간트가 시야에 잡혔다.

트리온보다 조금 더 큰 신장을 지닌 날렵한 체형의 적색 기간트.

그리고 불길한 아우라의 주인공을 정면으로 마주한 나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저건... 못 이겨. 싸우면 죽는다.”

나는 빠르게 하늘을 향해 두 번째 불꽃을 쏘아 올린 뒤.

온갖 민첩 관련 스킬들을 중첩한 다음.

정체불명의 기간트가 달려오는 방향의 반대 쪽으로...

타아아아아앗

전력을 다해 도망쳤다.

[마, 막아아아아아아아아!]

트리온의 오너가 내지른.

하이톤의 외침을 뒤로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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