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91화 (91/169)

91화 알타몬트 대회전(1)

#1

고작 직경 1.2미터에 불과한 자그마한(?) 방패를 가격하는 카트린의 롱소드.

터어어어어엉

[크윽... 뭔 반발력이 이따위야!]

하지만 방패에 깃든 마력에 의해, 기간트의 검은 내리쳐질 때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튕겨져 나왔고.

카트린의 오너 저스틴 크로비스는 얼얼한 손과 팔의 통증을 억누르며 황급히 뒤쪽으로 물러나려 했으나.

공격을 막아낸 방패의 주인은 그에게 그런 여유를 줄 생각 따윈 없다는 듯.

자신의 목을 노리고 날아든 아란델의 날카로운 검격을 상체를 숙이는 것만으로 가볍게 피해내더니.

비틀거리는 카트린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쇄도해 들어왔다.

[어, 어어...]

당황한 카트린의 오너 저스틴 크로비스가 방패를 내밀며 어떻게든 상대의 접근을 저지하려 했지만.

터엉

놀랍게도 앞으로 내민 5미터짜리 방패를 밟고 공중으로 도약한 상대는 그대로 몸을 뒤집으며.

콰아아아아아아앙

[크어어억!]

카트린의 머리를 걷어차 버렸다.

짧은 순간 시야가 암전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은 저스틴 크로비스.

그리고 암전된 시야가 돌아온 후에야.

쿠우우우우웅

카트린 거체가 훈련장의 바닥을 나뒹굴었다.

[괜찮냐, 저스틴? 하, 제라스 같은 무거운 기간트로... 대체 어떻게하면 저렇게 움직일 수 있는 거지?]

통신 채널을 통해 흘러나온 맷 스팅리의 음성에는 놀라움과 경외심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첫 번째 기간트 대전을 비롯해 서부 전선에서 벌어진 몇 번의 전투로 인해, 에이스 용병 오너 4인방(헬레나 오도넬, 카일 어네스트, 맷 스팅리, 저스틴 크로비스)의 위상은 끝도 없이 올라가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3번의 전투에서 모두 전설적인 업적을 기록하며, 그들의 머리 위에 올라앉은 작자도 존재했지만.

그들의 활약상 역시 서부군의 연전연승에 막대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그들이 현 마라몬트군의 전진 기지이자 사령부 격인 알마탄 요새의 훈련장에서, 무려 4대1의 대련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꽤나 놀라운 일이었고.

그들이 ‘1’이 아닌 ‘4’ 중 하나란 사실은 더욱 더 놀라운 일이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열세에 처해있다는 진실은 그야말로 경악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1대4의 대결을 지켜보는 이들의 표정은 감탄의 기색이 역력할지언정, 의문이나 경악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야말로 비정상적인 여상스러움.

이것은 에이스 용병 오너 네 사람을 상대하고 있는 기간트 오너의 정체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첫 번째 기간트 대전과 두 번째 사막 전투에서 무려 근위기사급 오너가 포함된(사막에서 만난 건 실제 카이샨의 근위기사) 18(9x2)명의 오너를 살해하고.

적국 카이샨의 영토에서 맞닥뜨린 용병왕 블레이크 벨로부터 멀쩡히 살아 돌아온 남자.

그리고 그 모든 업적을 고작 출력 1100rp의 기간트 크로스 보우로 이루어낸 천재 오너.

‘용병기사단장 스노우’가 현재 그들이 상대하고 있는 ‘제라스’의 오너였기 때문이다.

카아아아아아아앙

터어어어엉

[꺄아아아악! 멍청한 저스틴! 언제까지 자빠져 있을 거야? 빨리 합류하지 못해!]

카트린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전력을 다해 공세를 퍼붓던 헬레나 오도넬의 비에리가 제라스의 방패에 머리를 강타당하며 비틀거렸고.

화가 난 그녀는 저스틴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꽤나 거칠고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저스틴 크로비스는 그녀의 앙칼진 외침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젠장, 누군 자빠져 있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아? 그나저나... 방금 그 소리는 꽤 귀여웠어, 헬레나.]

[진짜 죽고 싶은가 보군.]

[하하하, 참아. 지금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건 괴물이라고. 이렇게 내분... 뒤! 뒤를 봐!]

[뭐... 아악! 꺄아아아아아악!]

극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저스틴 크로비스에게 신경을 분산시킨 대가는 참혹했다.

저스틴의 외침에 뒤쪽으로 황급히 고개를 돌린 헬레나 오도넬이 목격한 것은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눈앞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제라스의 육중한 거체였고.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자그마한 방패로 왼쪽 옆구리를 강타당한 그녀의 기간트 비에리의 균형이 왼쪽으로 기울자.

망설임 없이 위로 솟은 오른쪽 어깨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제라스였다.

붉은빛이 충만한 롱소드가 일격에 비에리의 팔을 어깨에서 분리시켜 버렸고.

그 광경을 목격한 아란델(2000rp, 엘프제)의 오너 카일 어네스트와 바클리(1800rp, 크샨트제)의 오너 맷 스팅리는 저도 모르게 발을 멈춰버리고 말았다.

[...훈련인데도 가차 없군요.]

[이제 알았냐?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인간이라고.]

[그런데 확실히... 달라지긴 했습니다.]

[그래, 크로스보우를 탔을 때보다...]

훈련장 한가운데 홀로 우뚝 선 청색 기간트를 바라본 맷 스팅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적어도 두 배는 강해진 것 같다.]

#2

전쟁 시작 후 4주가 지났다.

서전의 대승 이후 연전연승을 거두며 카이샨의 영지 일곱 개를 점령한 마라몬트군은 왕도로 이어지는 두 번째 관문(첫 번째는 국경 요새 알마타)인 ‘아난타 요새’에서 적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진군을 멈춰야만 했다.

전력을 기울인다면 뚫어내지 못할 것도 없었지만.

정말로 왕도까지 밀고 들어갈 생각이 아니라면, 더 이상 전선을 올리는 것은 무의미했다.

“동부 전선이 그 꼬라지만 나지 않았어도, 정말로 왕도까지 밀고 들어갔을지도 모르죠.”

여전히 내 수행원을 자처하고 있는 란셀 티그리스의 말이었다.

그의 말처럼 두 왕국의 전쟁은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기이한 전선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마라몬트 왕국 서부군이 카이샨 왕국 서부의 1/3을, 카이샨 왕국 동부군이 마라몬트 왕국 동부의 1/3을 점령한 상황이라... 두 왕국을 합한 영토에 대각선으로 빗금을 쳐놓은 듯한 형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용병왕을 막느라 동부군의 실력자들이 죽을 맛인 모양이더군요. 사령부의 통신 마법구에 불이 꺼질 날이 없답니다. 하도 지원 요청을 해대는 통에 말이죠.”

“동부군에 용병왕과 상대할 만한 자가 있었나?”

“설마요. 근위기사 대여섯이 합심해 간신히 막아내는 정도랍니다. 그 과정에서 알머슨 경과 플럼버 경이 전사하셨죠.”

용병왕이 복귀한 이후 대략 2주가 흘렀고.

그를 막기 위해 나섰던 근위기사 두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용병왕의 실력을 몸소 겪어본 입장에서... 고작 그 정도 희생으로 무려 2주를 버텨냈다면, 꽤나 선방한 것이라 평가하고 싶었다.

반면 이쪽은 2주 동안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채 제라스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쪽 세계에서 새로 계약한 기간트와 적응기를 가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기에, 그 누구도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원하는 전장에서 용병왕을 마크해주겠다는 내 호언장담에, 우려와 의문의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존재했을 정도.

그리고 똑같이 왕도를 위협받고 있는 두 왕국의 수뇌부들에 의해.

마침내 그 전장이 결정되었다.

왕국 전쟁의 최종 무대가 될 그곳은 바로...

현재 카이샨군이 점령중인 마라몬트 왕국 북동부.

알타몬트 대평원이었다.

#3

마라몬트 왕국 서부군 총사령관인 윌리엄 다이슨 후작은 이번 전쟁에서 이미 엄청난 군공을 세웠다.

만약 전쟁이 마라몬트 왕국의 승리로 마무리될 시, 그의 입지는 왕국에 단둘밖에 없는 공작들을 넘어설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었다.

두 공작 중 동부군 총사령관을 맡은 헤이우드 공작이 연전연패하며 왕도마저 위협당할 지경에 놓인 것과 대비되어 그의 전공은 더욱 빛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윌리엄 다이슨은 왕국에 대한 충성심이 뼛속까지 새겨진 진짜 군인이었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 이후에 있을 달콤한 보상을 꿈꾸기보다는, 전쟁의 승리를 위한 계책을 고민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최후의 대회전이 결정된 이후 최전선에서 알마탄 요새로 복귀한 윌리엄 다이슨 사령관.

그는 로버트 서튼 기간트 부대 대장과 노만 리오넬 부사령관을 비롯한 군의 수뇌부들과 함께 군사 회의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마지막 대회전을 치르기 전 처리해야 할 안건은 셀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았다.

애초에 양국 모두 왕도를 위협받는 기이한 전황이 아니었더라면, 철천지원수 관계인 두 나라 수뇌부가 이토록 쉽게 협상을 타결시킬 수 있었을 리 없었다.

승전 시 차지할 이권과 패전 시 내어줄 보상에 대한 고민이야 왕도의 책상물림들이 알아서 처리할 일이었지만.

결국 그 승패를 결정지을 전투를 수행해야 하는 건 군인의 몫이었다.

더군다나 동부군이 형편없이 밀려버린 탓에, 대회전의 지휘는 서부군 총사령관인 윌리엄 다이슨이 맡게 되었다.

그러니까 공작인 동부군 사령관을 제치고, 후작인 그가 마라몬트군의 통수권(統帥權)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그의 측근들은 이를 매우 기꺼워하며 축하를 건네왔지만, 윌리엄 다이슨에게 있어 이번 승진(?)은 그저 더욱 무거운 책임과 부담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내리누르는 부담감의 대부분은...

카이샨군에 존재하는 한 인물로 인한 것이었다.

“그가... 정말로 용병왕을 상대할 수 있을까?”

윌리엄 다이슨의 물음에 답한 것은 이번 전쟁에서 가장 많은 적 기간트를 잡아낸(스노우 제외) 로버트 서튼 기간트부대 대장이었다.

“그간 보아온 바로는... 되지도 않을 허세를 부릴 인간은 아닌 것 같더군요.”

좌중의 인물 중 가장 먼저 스노우를 만났고, 그를 영입하는 공을 세운 바 있었던 노만 리오넬 부사령관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고작 크로스보우를 타고도 3번의 전투에서 압도적인 전과를 올린 자가 아닙니까. 게다가 용병왕과 마주치고도 멀쩡하게 살아 돌아왔죠. 기대를 걸어 봐도 좋을 겁니다.”

윌리엄 다이슨 역시 스노우라는 용병 오너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 이상이 없을 정도로 매우 높게.

‘어쩌면... 정말로 용병왕을 능가하는 실력자일지도 모르지.’

물론 소드마스터인 용병왕과 본신의 실력을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었지만, 적어도 기간트 전투에서만큼은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전쟁에서 필요한 건 본신의 능력이 아닌, 기간트 오너로서의 역량이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그는 새로운 기간트와 계약한 지 2주밖에 지나지 않았어.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 한들, 고작 그 정도 시간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는 건 불가능해.”

윌리엄 다이슨 사령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것이 이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스노우라는 인간은 그 ‘상식’이 통하지 않는 존재였다.

“저기...”

사령관실 내부의 인물 중, 유일하게 알마탄 요새에 남아 보급을 담당하고 있던 참모장이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말하게, 마틴.”

윌리엄 다이슨 사령관의 허락을 득한 그가 상관들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그게... 믿기지 않으실 테지만, 스노우 단장은 이미 새로운 기체에 대한 적응을 끝낸 상태입니다.”

사령관을 비롯해, 그 누구도 참모장의 말을 단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참모장의 입에서 이어진 말로 인해 그 의문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것도, 일주일 전에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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