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변형(2)
#1
“흐음...”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 청색 중갑형 기간트 제라스.
이펜타르크 제국산답게 좋게 말하면 견고하고 수수한 외형이지만, 좀 더 솔직해지자면 그냥 밋밋한 생김새의 뚱보 기간트였다.
“아무래도 가이아랑 비교 될 수밖에 없으니...”
성능만큼이나 외형에 공을 들인다는 드워프제 기간트.
그리고 그 드워프제 기간트에 비견 될 정도로 아름답고 화려한 외형을 자랑하는 기간트가 바로 샌포드 왕국의 역작 가이아였다.
물론 극악의 가성비로 인해 생산을 시작한 지 얼마지나지 않아 단종되어 버리긴 했지만.
가격을 제외하고 평가한다면, 외형이나 성능 모두 동급 기간트 중 한 손에 꼽힐 만한 명품이 바로 가이아였다.
네스트에 마력을 주입해 가이아를 소환했다.
파아아아아아앗
옅은 빛무리와 함께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는 붉은색 기간트.
그리고 처음으로 나란히 서게 된 두 기의 기체.
“흐음, 이건 좀...”
붉은색과 푸른색이라는 강렬한 색상의 대비까지 더해져 버리니, 제라스의 드럼통 같은 몸매가 유독 두드러져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서 끝이다.’
지금부터 이제껏 대륙에 없었던 새로운 기간트로 다시 태어날 예정인 제라스였으니까.
[변형 한계 : 44%]
최초 각성 시 고작 20% 후반에 불과했던 고유스킬 ‘변형(S)’의 변형 한계는 어느새 40%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는데.
이는 지난 40여 일간의 왕국 전쟁 기간에만 10%가량 상승한 수치였다.
‘이 정도면... 적어도 외부 장갑만큼은 완벽하게 압축시킬 수 있겠지?’
애초에 진공 장갑(외부 장갑)을 압축 장갑으로 변형시키기 위해, 가장 두꺼운 장갑을 보유한 제라스를 선택한 것이었다.
압축 장갑의 효율은 안티가의 경우에서 이미 확인한 상태.
그렇지 않아도 강력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기간트의 외부 장갑을 말 그대로 ‘마법’처럼 ‘압축’시켜 버리는 것이었으므로, 그 견고함은 압축 전과 비교해 최소 150% 이상이었다.
고작 800rp의 안티가가 그랬을 진데, 1500rp의 출력을 지닌데다 그 어느 기간트보다 두꺼운 외부 장갑을 보유한 제라스라면?
나는 기대감 어린 눈으로 제라스를 바라보며 스킬을 스전했다.
“변형.”
안티가를 변형시킬 때와는 다르게, 눈을 감고 심상 속 제라스의 모습에 내가 원하는 바를 투영하기 시작했다.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아. 무조건 몸통의 두께를 한계까지 줄인다.’
정신을 집중해 제라스의 상체 외부 장갑에 압력을 가하는 상상을 했다.
단순히 기간트의 몸집을 줄이려는 게 아니다.
내부 장갑이나 프레임에 영향을 주지 않은 채 외부 장갑만을 축소시켜야 함으로 고도의 집중이 필요했다.
수북하게 쌓인 눈을 꾹꾹 눌러 다지듯, 제라스의 외부 장갑에 압력을 가했고.
츠아아아아아아아......
시간이 흐를수록, 드럼통 같았던 제라스의 상체는 점차 날렵하게 변해갔다.
‘더워.’
정령 실피드가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도.
과도한 집중 탓인지, 전신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울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제라스의 외부 장갑을 압축 장갑으로 변형하는 데에는 대략 2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해당 부위는 더 이상 변형이 불가능합니다. 현재 변형율 : 32.1%]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특성과 스킬의 경험치가 늘어나며 더욱 효율적인 변형(같은 변형율 소모로 더 많이 변형시킬 수 있게 됨)이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체 외부 장갑을 한계까지 압축시키는 데에만 무려 30%가 넘는 변형율이 소모되었고.
그 결과...
내 눈앞에는 카일 어네스트의 엘프제 기간트 아란델보다도 조금 더 날씬한 몸통을 가진 파란색 기간트가 서 있었다.
“흐음...”
일단 몰라보게 날렵해진 상체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육중한 상체를 받치기 위해 제작된 제라스의 하체 역시 여타 기간트들에 비해 매우 두꺼운 편이었고.
결과적으로 날씬한 상체에 비해 과하게 두꺼운 하체를 지닌 요상한 생김새의 기간트가 되어버렸다.
결국 남은 변형율 중 7.2%를 투자해 두 다리를, 3%를 투자해 두 팔을 적정 수준으로 압축시킬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상체 외부 장갑에 비해 그리 많은 변형율을 필요로 하지는 않았고.
남은 2%가량의 변형율을 이용해 헤드의 형태를 조금 바꾸는 것을 끝으로 제라스의 변형 작업을 마무리했다.
그리하여 완성된 (뉴)제라스는...
서대륙의 기간트와 언젠가 그림으로 본 적 있는 동대륙 기간트의 특징이 혼합된 듯한 독특한 형태의 기체가 되어있었다.
그 말인즉슨, 여타 서대륙 기간트들에 비해 훨씬 더 인간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다는 뜻이었다.
“제라스란 이름을 계속 쓸 수는 없으니... 뭐가 좋을까?”
[기체의 이름을 ‘뭐가 좋을까’로 변경하시겠습니까?]
장난하나...
나는 메시지창의 헛소리를 무시하며 다시 한번 변형을 끝낸 제라스를 바라보았다.
바다를 닮은 외부 장갑의 색상과 ‘남신(男神)’이라 칭해도 부끄럽지 않은 훌륭한 육체.
뭐, 이에 어울릴 만한 이름이라면 딱 하나밖에 없지.
“포세이돈.”
[기체의 이름을 ‘포세이돈’으로 변경하시겠습니까?]
“변경해.”
[기체의 이름이 ‘포세이돈’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런데 포세이돈이면... 무기는 삼지창이 어울리려나?’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던 내 눈앞에.
[완성된 압축 장갑과 기동 효율 증가로 인해 포세이돈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기체 등급 : A- -> A]
기간트의 등급 상승을 알리는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2
팟팟팟팟팟팟팟팟팟팟팟......
7미터가 훌쩍 넘어가는 거체가 엄청난 속도로 사막의 모래 위를 내달리고 있었다.
맨들맨들한 두상을 지닌 날렵한 몸매의 청색 기간트.
제라스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오너인 스노우에 의해 새로운 몸과 이름을 부여받은 포세이돈이었다.
너무 두꺼웠던 탓에 팔의 움직임마저 제약을 받았었던 몸통의 두께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음에도.
단지 ‘압축’되었을 뿐인 외부 장갑의 무게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던 덕에, 파워면에서는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었고.
오히려 전체적인 전투력이 상승하며 등급 자체가 올라버린 행운의 기간트였다.
물론 일반적인 경우, 무게가 무거운 만큼 ‘속도’ 면에서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을 테지만.
포세이돈의 오너는 ‘파일럿(S)’ 특성의 소유자인 스노우였다.
게다가 몸을 가볍게 만들거나 속도를 증가시킬 수 있는 각종 스킬들까지 보유하고 있었기에, 고작 1,2톤 정도의 무게 차 정도는 그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츠르르르르르르르르르......
타아아앗
순식간에 생성된 얼음의 대지를 밟고 엄청난 높이로 도약하는 포세이돈.
휘리리리리릭
휘리리리릭
무려 50여 미터 높이까지 상승한 청색 기간트가 공중에서 몸을 몇 번씩이나 뒤집는 묘기를 선보이며 사막의 모래 위로 내려섰다.
츠팟
아무리 모래 위라고는 하지만, 엄청난 높이에서 떨어진 10톤짜리 금속덩어리가 발생한 것이라기엔 너무나 미약한 소리였다.
마치 점검이라도 하듯, 몸 이곳저곳을 살핀 포세이돈이 이내 몸을 꼿꼿하게 세웠다.
잠시 뒤.
파아아아아아앗
옅은 빛무리와 함께 포세이돈에 비해 머리 하나는 작은 신장을 지닌 기간트 안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원숭이를 빼다 박은 얼굴을 지닌 기간트의 외형 역시, 왕국 전쟁 발발 이전에 비해 상당 부분 변화한 상태였다.
외부 장갑이 한계까지 압축되며 더욱더 날렵한 몸매를 가지게 된 것은 물론.
무릎에 닿을 듯 말 듯 하던 팔은 확실히 무릎 아래까지 내려올 정도로 더욱 길어졌으며.
무엇보다 손과 발의 모양이 정말로 살아있는 원숭이의 그것인 것마냥 변형되어 있었는데.
길쭉하고 유연한 금속 발가락으로 시그니처 무기인 알브레하트의 지팡이를 쥐고 휘두를 수 있을 정도였다.
겉으로는 아무런 티도 나지 않았지만, 어느새 안티가의 콕피트로 옮겨 탄 스노우는 순식간에 기간트와의 일체화를 끝마친 뒤 동화율을 100%까지 끌어올린 상태였다.
‘손과 발의 모양을 바꾸는 데만, 변형율을 10%나 잡아먹어 버리다니...’
안티가의 경우, 압축 장갑으로의 전환이 거의 끝나있던 상태라 다른 부위를 이것저것 손댈 수 있었고.
반쯤 장난스러운 마음으로 원숭이의 손과 발을 장착시킨 것이었는데, 거기서 10%에 가까운 변형율이 깎여버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스노우였다.
하지만 본격적인 전투보다는 은밀한 활동에 주로 이용할 수밖에 없는 안티가였기에, 기동력과 민첩함을 극도로 높인 현재의 모습도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스노우가 안티가를 소환한 이유는 포세이돈의 압축 장갑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였는데.
무려 기간트의 등급 상승까지 불러올 정도의 변화였으니, 기대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네스트 상태로 잠들어있는 가이아를 소환할 수도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출력이 더 높은 가이아로 때리는 건 좀 불안하니까.”
동화율을 100%까지 끌어올린 스노우는 출력을 790~800rp 사이로 유지하며 안티가의 전신으로 마력을 전달했다.
처음은 70%.
후우우우우우우웅
완벽한 자세로 시전한 라이트 훅이 포세이돈의 가슴으로 날아들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원격 조정 중에는 내가 탑승했을 시의 40%가량의 힘밖에 쓸 수 없었기에, 마력에 의한 강화 역시 그 정도 수준에서 그칠 수밖에 없었다.
퍽퍽퍽퍽퍽퍽퍽퍽퍽......
가슴을 강타당한 포세이돈은 비틀거리며 십여 걸음 이상 뒷걸음질 쳤지만, 기어이 균형을 잡는 데 성공하며 모래 위로 나뒹구는 신세는 면할 수 있었다.
“오, 역시...”
포세이돈의 흉부 장갑을 확인한 스노우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안티가의 주먹에 적중당한 흉갑은 도색이 조금 벗겨졌을 뿐, 그 외에는 얻어맞기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이번엔 100%로 간다.”
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종전보다 더욱 많은 양의 마력이 투사된 주먹이, 훨씬 더 호쾌한 궤적을 그리며 포세이돈의 가슴을 강타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퍽퍽퍽퍽퍽퍽퍽... 털퍼덕
주먹에 직격당하는 순간, 엄청난 속도로 밀려난 포세이돈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채 모래 위로 주저앉고 말았다.
“이야... 이것도 버티네?”
하지만 어떠한 회피나 충격완화 기술도 사용하지 않아 버티지 못하고 넘어진 것일 뿐, 포세이돈의 외부 장갑은 여전히 약간의 도색이 지워진 걸 제외하면 어떠한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아무리 저등급 기간트인 안티가의 주먹질이라곤 하지만, 거기에 타고 있는 오너가 스노우인 이상 일반적인 오너들의 공격과는 그 파괴력이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진짜 더럽게 단단하군.”
괜히 기간트의 등급이 상승한 게 아니었다.
만약 압축 장갑이 아닌 이전 진공 장갑 그대로였다면, 최소한 지금처럼 완벽하게 멀쩡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각종 버프 스킬들을 사용한다면 압축 장갑에도 제대로 된 타격을 입힐 수 있을 테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굳이 장갑을 망가트릴 이유는 없지.”
수복 스킬을 사용하면 아무런 자원을 사용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복구가 가능할 테지만(수복 한계를 벗어날 정도로 파괴되지만 않는다면).
테스트는 이 정도로도 충분했으니까.
장갑 테스트를 끝낸 스노우는 안티가를 격납고로 돌려보낸 뒤.
다시 한번 네스트에 마력을 불어 넣어 가이아를 소환했다.
그리고는 광활한 사막을 내달리며 자신의 최대 전력인 두 기의 기간트를 한꺼번에 조종하기 시작했다.
가이아와 포세이돈의 콕피트를 오가며 두 기간트의 효용성을 극대화시키는 새로운 운용법.
츠츠츠츠츠츠츠츠츠...
팟팟팟팟팟팟팟팟팟...
원격조종으로 기동하는 기체는 어쩔 수 없이 움직임이 거칠어 질 수밖에 없었지만.
기준 출력을 훌쩍 뛰어넘는 두 기체의 움직임은.
‘파일럿(S)’ 특성의 보유자인 스노우가 이 운용법에 적응되어 갈수록.
스스스스스스스스스스...
츠츠츠츠츠츠츠츠츠츠...
점차 완벽에 가깝게 진화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