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112화 (112/169)

112화 가디언(1)

#1

타닥.. 타다닥.. 타닥......

화톳불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식사 중인 4인의 오너.

그들은 북부 다르다넬 산맥의 중심부에 위치한 라플론 광산에 드리운 암운을 해결하기 위해 결성된 2차 토벌대의 핵심 인물들이었다.

1차 토벌대의 처참한 실패에서 교훈을 얻은 엘가드 왕국의 수뇌부는, 2차 토벌대를 구성함에 있어 오너를 제외한 병력은 단 한 명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상급 이상의 엑스퍼트나 5서클 이상의 마법사라면 가디언을 제외한 마수들을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할 테지만, 그 가디언의 몸부림 한 번에 수십 단위로 죽어 나갈 수도 있다는 사실이 지난 토벌전에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2차 토벌대에는 일정 등급 이하 마수들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마법 기간트의 오너가 합류한 상황이었기에, 굳이 생때같은 왕국의 인재들을 희생시킬 필요는 없었다.

“대체 뭘 먹고 살았길래 마력이 그모양이 거요?”

식사하는 내내 삐죽 튀어나온 주둥이로 툴툴거리던 칼튼 에거시의 말.

이에 장대한 덩치의 드워프와 갸날픈 몸매를 지닌 엘프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사회적 위치와 체면상 입에 담지는 않고 있었으나, 그들 역시 스노우가 선보인 끊임없는 마력의 연원이 궁금한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뭐, 이것저것... 좋은 걸 제법 많이 먹었지.”

실제로는 한 종류의 스킬석(마력강화(C))을 한계까지 복용(?)한 것에 불과했지만, 스노우가 사실을 말한다 한들 이들이 알아들을 리 없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도 복용자의 마력을 증가시키는 물질은 얼마든지 존재했기에, 세 사람은 그가 무한에 가까운 마력을 얻게 된 경위를 각자 상상하기 시작했다.

‘젠장, 동대륙의 왕족이나 대귀족이라도 되나? 대체 좋은 걸 얼마나 처먹은 거야?’

이건 약소국의 기대주였던 탓에 최상급 영약이라곤 구경조차 해보지 못한(그나마 최고의 재능이었기에 상급 영약 몇 개를 먹긴 했다) 질투의 화신 칼튼 에거시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고.

‘아무리 좋은 영약을 먹었다 한들, 저런 실력을 갖추려면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의 고련을 거듭했을 테지.’

이것은 스노우가 지닌 강력한 힘에 매료된 타고난 전사이자 드워프족 NO.1 오너의 상상이었으며.

‘역시 드래곤...’

마지막으로 이건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엘프 공주님의 착각이었다.

6써클 마법사조차 고작 1명에 불과한 나이만 왕국 출신 칼튼 에거시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7써클 마법사를 직접 목격한 바 있었던 드워프와 엘프 공주는 알고 있었다.

‘7써클 마법사조차 아득히 넘어설 정도의 마나량.’

기간트의 기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순간 엄청난 마력이 소모되었고.

그건 격한 움직임을 보일수록 더욱 가속화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저 스노우라는 작자는 무려 1시간 동안 끊임없이 고속 이동(그것도 대륙급 강자 3인의 합공을 유유히 피해내는 수준의)을 펼치며 동시에 어마어마한 위력의 마법 수백 개를 쏟아낸 것이다.

이건 고작(?) 7써클 마법사가 아닌, 대륙 역사상 단 2명밖에 존재하지 않았다던 8써클 마법사가 살아 돌아와야만 가능성을 따져 볼 수 있을 만한 일이었다.

‘그것도 그들이 기간트 운용에 탁월한 재능을 겸비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역시 드래곤...’

자신에 대한 주제가 화제의 중심이 되는 것이 탐탁지 않았는지, 식사를 끝낸 스노우가 화제를 돌렸다.

애초에 이들이 식사를 핑계로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내일이면 시작된 토벌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가장 먼저 나오는 녀석이 라비린토스라고 했습니까?”

1차 토벌대의 책임자였던 오펠로 브롬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가 처음으로 만난 녀석이 바로 그 거대한 뱀이었지.”

이는 수백의 중상급 몬스터를 거느리는 프리가모스나 비행형 최상급 몬스터 보스페로스 그리고 대륙의 몬스터 도감에 등재되지 않아 정보가 전무한 2족 보행 몬스터에 비해.

드워프들이 그 특징을 비교적 상세히 알고 있는 라비린토스를 상대하는 게 가장 수월하다는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라비린토스는 본래 카이샨 왕국의 사막지대에서 엘가드 왕국으로 향하는 최단(비밀) 루트의 주변 영역을 지배하던 최상급 몬스터였으니까.

라비린토스의 외형은 몸길이가 100미터를 훌쩍 넘어서고 몸통의 둘레 역시 10여 미터에 달하는 녹색 비늘로 뒤덮인 거대한 뱀이었다.

지난 토벌전에서 온몸이 휘감긴 1800rp급 기간트 베너젤을 단 20여 초 만에 산산조각 내버렸을 만큼 옥죄는 힘이 어마어마하며.

무엇보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점은, 전신에서 기간트의 외부장갑을 부식시킬 만큼 지독한 산성액을 뿜어낸다는 것이었다.

마력으로 외부 장갑을 강화해 어느 정도 버티는 것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전투가 길어지자 마력이 달리는 하급 오너들의 피해가 극심했다고 한다.

기간트의 피해가 그 정도였으니 일반 병력들은 어떠했겠는가?

“아마 1차 토벌대의 병력 절반은... 그놈의 산성독에 목숨을 잃었을 거다.”

이번 원정에서 오너 이외의 병력을 제외하게 만든 주범이 바로 라비린토스였던 셈이다.

“다른 가디언들의 주의를 끌지 않겠답시고 사냥을 천천히 진행한 것이 실수였지. 최대한 빨리 그놈을 잡고 이동해야 했어.”

당시에는 적의 전력이나 위치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되지 않은 상태였다.

토벌대의 대장으로서 오펠로 브롬이 내린 판단은 최대한 전력을 보존하며 가디언을 하나하나 각개 격파한 뒤.

재앙급 몬스터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라플론 광산으로 향하는 길을 여는 것이었다.

운이 좋으면 광산의 사방을 경계하고 있는 가디언 중 하나만 제거하고도, 재앙급 몬스터에 닿을 수 있으리란 기대도 있었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최악의 판단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10분 정도 걸렸을 걸세. 라비린토스의 힘을 거의 다 빼놓은 상황이었지. 당시 전력으로도 가디언 하나 정도는 아무런 피해 없이 잡아낼 수 있었으니까. 물론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했다면 그보다 훨씬 더 빠르게 잡아낼 수 있었을 테지만... 어쨌든 내 판단은 그랬네. 덕분에 왕국의 수많은 인재들이 다르다넬 산맥에 뼈를 묻고 말았지.”

라비린토스와의 전투가 대략 10분을 넘긴 순간.

100여 마리의 중상급 몬스터 무리와 함께 신장 4미터, 몸길이 7미터가량의 검은 늑대가 전장으로 난입했다.

강력한 텔레파시 능력으로 마수들을 지배하는 또 다른 최상급 몬스터이자 가디언 프리가모스였다.

분명 최대한 소음을 자제하며 은밀하게 진행된 전투였다.

덕분에 무려 10분이라는 시간이 소모되어 버린 것이었고.

그들이 라비린토스를 첫 사냥감으로 선택한 데에는 뱀의 특성을 가진 몬스터답게 하울링을 하지 않은 다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차라리 대륙급 강자인 오펠로 브롬과 오너들이 전력으로 합공에 순식간에 잡아내는 편이 100배는 나았을 것이다.

힘이 빠졌을 뿐,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 않은 라비린토스까지 합세한 수백의 몬스터 군대와 맞붙은 드워프 왕국군.

여기까지는 그래도 할 만한 싸움이었다.

대륙급 강자라 불리는 이들 중에서도 상위권인 오펠로 브롬, 그는 홀로 최상급 몬스터를 붙잡아 두는 게 가능한(엄청난 운이 따르지 않는한 이길 수는 없다) 실력자였으니까.

오펠로 브롬이 프리가모스를 마크하고 일반 병력들과 일부 오너들이 수백의 몬스터와 격전을 벌이는 사이, 남은 대부분의 오너가 힘이 빠진 라비린토스를 처리하면 승리는 드워프 왕국의 것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라비린토스의 목숨이 끊기기 직전.

하늘에서 날아온 거대한 비행형 몬스터와 울창한 나무들 틈에서 뛰쳐나온 2족 보행 몬스터로 인해 승부의 향방은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양의 얼굴에 사자의 몸통, 독수리의 날개와 발톱을 지닌 몸길이 7미터의 비행형 몬스터 보스페로스.

그리고 중급 몬스터 안티가를 10배쯤 키워놓은 듯한 외형에 화려한 금빛털을 가진 신장 8미터의 2족 보행 미확인 몬스터.

두 가디언의 합류로 전세는 순식간에 기울어버렸고.

무슨 조화인지 힘을 어느 정도 회복한 라비린토스.

녀석은 기간트들의 이목이 새로 난입한 두 가디언에게 쏠린 틈을 타 포위망을 벗어났고.

드워프 엑스퍼트들과 마법사들이 몰려 있는 전장으로 난입해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미 전세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었지. 하지만 ‘재앙’의 실체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돌아올 수는 없었네. 그래서 무리하게 가디언들의 방해를 뚫고 라플론 광산까지 도달했지만...”

뒤는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광산을 지키고 있던 인간형(신장 4미터) 몬스터에게 죽을 뻔한 것을 드워프 오너 십 수명의 희생으로 겨우 살아 돌아왔다는 스토리.

이후 상급 사제와 영약들을 미친 듯이 쏟아부어 목숨을 건진 그는 한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자책의 나날들을 보냈지만.

드워프 국왕과 엘프 공주의 설득으로 분연히 일어나 2차 토벌대의 수장을 맡은 것이었다.

물론 토벌대의 책임자가 오펠로 브롬이라 한들.

54인의 오너로 이루어진 이 군대의 핵심이 누구인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오펠로 브롬이 굳건한 눈으로 스노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왕국의 재앙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나는 결코 살아서 돌아가지 않을 걸세. 그러니 스노우경...”

“말씀하십시오.”

“이 늙은 목숨 따위 얼마든지 이용해도 좋으니, 우리 왕국을 구해주시게.”

드워프족에게 있어 라드난의 요람은 ‘왕국 그 자체’나 다름없었고.

요람에 불을 피워올릴 수 있는 라플론 또한 다르지 않았다.

30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오직 드워프라는 종족과 왕국을 위해 헌신한 늙은 드워프 전사의 말은 아마도 진심일 것이다.

이에 스노우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채.

그저 천천히 고개를 아래위로 움직였고.

이를 바라보던 한 인간과 한 엘프 역시 입술을 앙다물며 굳은 의지를 불태웠다.

#2

[제에에에에에에엔장!]

[입 닥쳐, 칼튼!]

[아니, 공주님은 왜 저한테만!]

[닥치라고!]

지난밤, 오늘의 전투에 대한 의지를 다지며 헤어질 당시의 분위기는 사뭇 진지하고 멋졌다.

천성이 가벼운 칼튼 에거시조차 그에 동화되어 고요한 전의를 불태웠을 정도.

하지만 막상 접어든 전투의 양상은 생각했던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보쇼, 영감님! 이거 어제 했던 얘기랑 너무 다르잖아!]

[닥치게, 칼튼. 지금 그런 소리나 지껄일 땐가?]

[아니, 엘프나 드워프나! 왜 나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고!]

사실 칼튼 에거시의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대륙급 강자라는 엘프와 드워프의 음성에서 묻어나오는 당혹스러움만 보더라도.

지금이 얼마나 좋지 않은 상황인지 짐작이 가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으아아아아악! 아니, 이것들 사방을 경계한다며! 한 놈씩 잡을 거라며! 근데 왜 한꺼번에 다 튀어나온 거냐고!]

그랬다.

각자의 위치를 지키고 있을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촤르르르르르르륵

아우우우우우우우

꺄아아아아아아악

쿠워어어어어어어......

무려 네 마리의 가디언이 한자리에 모여.

프리가모스의 정신 지배를 받는 수백의 몬스터 군단와 함께.

토벌대를 급습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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