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114화 (114/169)

114화 대륙 최강의 오너

#1

283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온 드워프 전사 오펠로 브롬.

평범한 드워프였다면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할 시기이거나, 이미 영면에 들었다 한들 하등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지만.

최상급 엑스퍼트의 극에 이른 그에게는 여전히 최소 70여 년이란 삶의 여분이 남아 있었다.

여기서 만약 마스터의 벽이라도 덜컥 깨버리게 된다면 그 이상의 시간이 추가로 주어지게 될 테고.

하지만 2차 토벌대를 이끌고 북부 다르다넬 산맥의 중심지로 향하는 그는 머릿속에는 더이상 ‘내일’이라는 단어는 남아 있지 않았다.

‘광산을 되찾지 못한다면... 그곳을 내 무덤으로 삼겠다.’

아니, 신의 요람에 다시금 불을 피워올릴 수만 있다면, 살아서 그 광경을 보지 못하게 된다 한들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1차 토벌대의 처참한 실패가 수장인 자신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라고 자책하는 오펠로 브롬이었다.

그 때문에 드워프 왕국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져야 할 인재들이 너무나 일찍, 너무나 많이 사그라들어 버렸다.

자신의 저택에서 회한과 참회를 곱씹으며 삶을 마감하려 했던 그를, 다시금 전장으로 내몰았던 것은 엘프 공주와 함께 찾아온 국왕의 한마디였다.

‘죽어간 이들의 희생을 헛된 것으로 만들지 말라.’

죽은 드워프들이 다음으로 다가올 생을 기다린다는 ‘라드난의 대장간’.

그곳에서 다시 만날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이라며 호통치던 드워프들의 왕이자 제자의 모습.

부끄러움을 느낀 최강의 드워프 전사는 웅크렸던 몸을 일으켰고.

진즉에 수리를 마친 채 오랜 기간 주인을 기다리고 있던 에키드나를 회수했다.

적들의 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만큼, 쉽지 않은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본다면 승산은 희박하기 짝이 없었다.

현 드워프 왕국의 전력만으로는 ‘재앙’은커녕 그를 수호하고 있는 가디언들의 벽을 넘어서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행히 대륙급 강자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들이 토벌대에 합류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꽤 오랜 시간 친분을 다져온 엘프 공주 이파니슬라 르 바라탄과 나이안 왕국의 초신성 칼튼 에거시.

그리고...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내심으론 대륙 10강도 아닌, 고작 대륙급 강자 3인의 합류 정도론 토벌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했었던 오펠로 브롬의 생각을 단숨에 뒤바꿔 버린 사내.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스노우라는 용병 오너의 실력은 그야말로 천외천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기간트가 고작 가이아라는 걸 감안하면... 어쩌면 저자야말로 진정한 대륙 최강의 오너일지도.’

짧은 순간 상념에 젖은 그의 두 눈이.

전장의 한편에서 수많은 몬스터들의 목숨을 거둬들이고 있는 붉은색 기간트에게로 향했다.

#2

현 오르비스 대륙에서 가장 강하다는 대륙 10강 중에서도, 진정 최고로 손꼽히는 건 최상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세 사람이었다.

이펜타르크 제국의 검성 오르핀 크로비스 공작.

크샨트 제국의 강철 대공 율리안 라이오네.

포인츠 왕국 근위기사단 단장 ‘수호검’ 산도르 자르켄.

현 오르비스 대륙 유일의 그랜드마스터는 이펜타르크 제국 최강의 무인인 오르핀 크로비스 공작이었다.

이펜타르크 제국을 제외한 국가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오너로서의 재능이 평균을 조금 상회하는 정도인지라 ‘대륙 10강’이라는 영역에 머물러 있을 뿐.

만약 오너로서의 재능이 일반적인 근위기사 수준만 되었더라도, 대륙의 절반은 이미 이펜타르크 제국의 손아귀에 떨어졌을 것이란 평가를 받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 수준의 재능만으로도, 27년 전 발발했었던 크샨트 제국과의 전쟁에서 무려 49기의 기간트를 홀로 잡아내는 신화를 만들어낸 전적이 있었다.

만약 그가 황제의 자식 중 어느 하나의 손을 들어주었다면, 황위를 둘러싼 현 이펜타르크 제국의 내전은 애초에 성립조차 될 수 없었으리라 일컬어지는 절대적인 무력의 소유자.

하지만 오르핀 크로비스 공작 스스로, 제국의 안위를 위협하는 적이 아닌 이상 검을 뽑을 일은 없으리라 선언했기에.

세 황(태)자들의 치열한 세력 다툼이 몇 년째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오르핀 크로비스 공작과 연륜, 지위, 무력 등 모든 면에서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크샨트 제국의 대공 율리안 라이오네였다.

그는 황실의 방계 출신으로 마스터의 자리에 올라, 종국에는 제국 북부의 일부를 공국으로 하사받아 대공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본신의 실력으로는 그가 다섯이 되어 덤빈다 한들 오르핀 크로비스 공작의 상대가 되지 못할 테지만.

수천만의 인구를 자랑하는 제국에서도 최상위권으로 평가받는 그의 기간트 조종 실력으로 인해, 그 격차를 한없이 ‘0’에 가깝게 수렴시킬 수 있었다.

그는 오르핀 크로비스 공작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제국 전쟁에 참전해 36기의 기간트를 잡아낸 바 있었는데.

라이벌에 비해 그의 킬 수가 확연히 적었던 이유는, 현 대륙 10강의 말석(당시에는 아님)을 차지하고 있는 이펜타르크 제국의 신성 페리슨 베일리쉬의 지독한 견제로 인한 것이었다.

아쉽게도 크샨트 제국에는 페리슨 베일리쉬에 비견될 인재가 없었고.

그로 인해, 전쟁의 결과 역시 이펜타르크 제국에 약간의 우위를 내준 채 정전 협상에 임하는 치욕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대륙 3강’의 마지막 1인은 지난 수백 년간 대륙 최강국인 이펜타르크 제국과 크샨트 제국 사이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왔던 포인츠 왕국의 현 근위기사단장 산도르 자르켄이었다.

이미 100여 년의 삶을 살아온 (공작 101세, 대공 98세) 앞선 두 절대자에 비해, 한참이나 어린 축에 속하는 그의 나이는 올해로 54세.

산도르 자르켄은 제국 전쟁이 발발했었던 27년 전. 촉망받는 상급 기사이자 오너로서 자신의 조국이 두 강대국의 전쟁터가 되어 폐허가 되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피눈물을 흘려야만 했었다.

힘없는 나라와 스스로에게 실망한 그는 미친 듯이 수련에 몰두했고.

최상급과 마스터의 벽을 연이어 돌파하며, 48세의 나이에 포인츠 왕국 역사상 최초의 마스터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누구도, 심지어는 엑스퍼트로서의 역량을 늘리는 걸 우선하느라 자신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산도르 자르켄의 진정한 재능은 오히려 ‘기간트 조종술’쪽이었던 것이다.

그가 마스터에 오르자, 포인츠 왕국은 남은 여력을 모두 쥐어짜 이펜타르크 왕국에 로비를 벌였고.

그 결과 대륙 최강의 기간트 중 하나인 ‘트리스탄(2700rp)’을 구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때부터는 모든 시간을 오로지 오너로서의 역량을 높이는데 집중한 산도르 자르켄.

그리고 불과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이펜타르크 제국의 내전을 틈타, 25년 전의 치욕을 설욕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자 했던 크샨트 제국이 포인츠 왕실에 길을 열라는 통보를 해왔고.

포인츠 왕국이 이를 거부하자 국경으로 대군을 이동시켰다.

그리하여 포인츠 왕국의 국경 요새에서 대치하게 된 두 나라의 군대.

일촉즉발의 상황.

포인츠의 국경 요새 앞 벌판에서 대륙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일기토’가 벌어졌다.

불필요한 소모전을 피하려 했던 크샨트 제국의 총사령관 율리안 라이오네 대공이 일기토를 제안했고.

승부의 결과에 따라 길을 열거나 군을 돌리겠다는 말에 포인츠 왕국이 이를 수락하며 1대1 기간트 대결이 시작되었다.

대공의 상대는 수련에만 집중하느라 크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근위기사단장 산도르 자르켄이었다.

대공의 승리를 눈곱만큼도 의심하지 않는 40만 이펜타르크군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근위기사단장의 전투를 지켜보는 10만 포인츠 왕국 수비군.

결과는 놀랍게도 막상막하.

두 기간트는 무려 1시간이 넘어가는 전투를 벌였으나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휴식을 위해 잠시 멈추었다 다시 싸우길 무려 4차례.

하지만 4차례의 대결 모두 서로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지 못한 채 끝나 버리고 말았다.

‘그대의 나이를 물어도 되겠나?’

‘2년 전에 반백이 되었소.’

‘하, 포인츠에 이런 괴물이 똬리를 틀고 있을 줄은 몰랐군. 고작 그 나이에 이런 실력이라니...’

자신보다 두 세대는 아래인 적 오너.

그 말은 수련에 투자한 시간 역시 그만큼이나 차이가 난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그의 제자의 제자 정도는 되어야 얼추 비슷한 연배를 찾을 수 있으리라.

물끄러미 트리스탄과 그 너머에 존재하는 산도르 자르켄을 바라보던 대공은 한마디를 남긴 채 몸을 돌렸다.

‘어쩌면 앞으로 50년 정도는... 서대륙의 최강자가 누구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

그리고는 40만 대군을 이끌고 크샨트 왕국으로 돌아갔다.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무려 자신과 오르핀 크로비스 공작에 버금가는 강자가 존재하는 포인츠 왕국이 이펜타르크 제국에 붙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이는 재앙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게다가 페리슨 베일리쉬라는 확고한 (제국 제1검으로서의)후계자가 존재하는 공작과는 달리, 대공에게는 이렇다 할 후계자가 없는 상황.

일반적으로 마스터의 육체에 노쇠화가 찾아오는 시기는 120살 전후였다.

아직까지 20여 년가량의 시간이 남아 있긴 했지만, 자신의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시기가 되면 70세를 막 넘어설 산도르 자르켄의 무력은 완벽하게 전성기에 접어들 터.

오히려 포인츠 왕국과의 관계를 공고히 다져, 이펜타르크 제국에 함께 대항할 우군으로 삼는 편이 현명하리란 판단을 내렸다 한들 이상할 것이 없었다.

아무튼 이 일기토로 인해, 산도르 자르켄의 명성은 오르비스 전역을 떨쳐 울리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대륙 최강의 오너를 보유하게 된 그의 조국 포인츠 왕국의 위상 역시 엄청나게 격상될 수밖에 없었다.

양 제국의 대리 전쟁터로 이용되는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던 약소국에서.

대륙 최강국들조차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엄청난 저력을 지닌 국가로.

이렇듯 엄청난 위업과 젊은(?) 나이로 인해.

현시점 오르비스 대륙의 ‘최강자’를 논할 때 많은 이들이 첫 줄에 놓길 주저하지 않는 이가 바로...

포인츠 왕국의 근위기사단장이자 ‘수호검’이란 이명으로 불리는 산도르 자르켄이었다.

#3

자신을 뒤따르는 10인의 드워프 오너와 함께, 몸길이만 120여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뱀 라비린토스의 앞을 막아선 오펠로 브롬.

이미 직접 상대해본 전적이 있는 데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모든 것이 관찰되고 파헤쳐진 몬스터였다.

아무리 최상위급 몬스터라 한들, 10명의 상급 오너들을 대동한 오펠로 브롬이 상대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것도 목숨을 노리는 게 아닌, 붙잡아두기만 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화살로 눈을 집중적으로 노려라! 창을 든 놈들은 하부의 움직임을 최대한 제어해. 내가 녀석의 주의를 끌겠다.]

거대한 검과 방패를 든 채 라비린토스에게 달려들기 직전.

마지막으로 고개를 힐끗 돌린 그의 시선이 향한 전장의 한편에선.

화려한 외형의 붉은색 기간트가 300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온 그로서도 생전 처음 보는 엄청난 위력의 마법들을 끊임없이 퍼부어대고 있었다.

그 쉴 틈 없는 마법 폭격에 수백의 휘하 몬스터들은 물론, 그들을 지배하는 가디언 프리가모스마저 연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마법의 영향력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쓸 뿐이었다.

그리고 때마침 쏟아내기 시작하는 빙결 마법.

‘저, 저런 위력이라니... 하르세리안의 대정령사도 저런 조화를 부리는 건 불가능할 텐데.’

라비린토스의 몸통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와중에도 붉은색 기간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오펠로 브롬.

‘정말로 그 세 괴물들보다 더 강할지도...’

츠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듯한 라비린토스가 토해내는 섬뜩한 소리가 상념에 빠져 있던 그의 정신을 현실 세계로 잡아끌었다.

‘이크... 딴생각을 하며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놈은 아니지.’

마음을 다잡으며 라비린토스 공략에 집중하려던 오펠로 브롬.

하지만 블리자드(?)에 의해 쏟아져 내린 눈들 사이에서 몸을 일으킨, 신장 10여 미터가량의 소환수 20여 개체가 몬스터들을 때려잡기 시작하자.

오펠로 브롬의 시선은 또다시 붉은 기간트의 오너가 일으키는 이적의 현장으로 향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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