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120화 (120/169)

120화 재앙급 몬스터(1)

#1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이 찢기고 터져나갔다.

그리고 그 와중에 살아남은 비슷한 숫자의 몬스터들 역시 혼비백산하여 북부 다르다넬 산맥의 이곳저곳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라플론 광산에 똬리를 튼 ‘재앙급 몬스터’의 가디언이 된 최상급 몬스터 4마리 중 3마리는 목숨을 잃었고.

마지막 남은 한 마리마저 기식이 엄엄한 상태로 내 앞에 너부러져 있는 상황.

무엇보다 북부 다르다넬 산맥의 중심부를 진동시킨 포격음을 듣지 못했을 가능성 따윈 전무함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네?”

끝끝내 재앙급 몬스터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자리를 떠날 수 없는 모종의 이유가 존재하거나, 청각이 극도로 퇴화된 녀석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조차도 아니라면, 가디언 따위야 죽건 말건 아무런 관심이 없을 수도 있었고.

‘에키드나의 접근을 단번에 알아챘다는 걸로 봐선, 아마도 엄청나게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을 테니... 포격으로 발생한 진동을 느끼지 못했을 리 없지.’

그렇다면 청각이 퇴화되었든 아니든,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다.

고로 첫 번째, 아니면 세 번째 이유일 확률이 높았다.

아무튼 토벌대원 대다수가 매우 지쳐버린 상황에서 회복할 시간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었다.

나는 굳어버린 듯 제자리에 멈춰선 대륙급 강자 3인의 기간트를 일별한 뒤, 쓰러진 가디언의 포획을 시도하겠냐는 메시지창의 물음에 대한 답을 내뱉었다.

“포획하겠다.”

화아아아아아앗

신장 8미터에 달하는 가디언, 아나투레스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S-급 몬스터 아나투레스의 포획에 실패하셨습니다.]

[S-급 몬스터 아나투레스를 포획하시겠습니까?]

“응? 뭐야? 이거... 실패도 뜨는 거였어?”

제법 친분이 두터운 테이머 특성 각성자(그것도 세계 유일의 S급)가 있었던 덕에, 테이머 특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해박한 편이라 자신할 수 있었다.

‘테이밍에 실패했다는 말은 못 들어본 것 같은데...’

그러고 보면 ‘포획’이나 ‘각인’이 테이머 특성의 고유스킬로 등록되어있는 것으로 봐선, 성공과 실패의 확률이 존재하는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스킬이란 건 언제나 성공할 수도, 혹은 실패할 수도 있는 거니까.

내 경우엔, 기체와의 ‘동기화’ 자체는 파일럿 특성에서 파생된 고유스킬이 아니었다.

그렇다 보니 실패할 확률 따윈 염두에 둔 적조차 없었고.

‘어쩌면 파트리스 녀석은 S급이라 실패란 걸 경험해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군.’

지금 당장 정확한 사실을 밝혀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높은 확률로 내 추측이 맞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실패라... 마력은 또 뭐 이리 많이 잡아먹는 거야?’

‘포획’ 스킬을 한 번 시전하는데 무려 1000단위의 마력이 뭉텅이로 소모되었다.

지속성 스킬(토템등의 버프 스킬)을 제외한 단발 스킬로 1000단위의 마력을 소모한 건 이번이 처음.

‘이거 계속 시도해도 되는 건가?’

아직까지 16000가량의 마력이 남아있긴 했지만, 재앙급 몬스터와의 전투가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마력을 낭비하는 건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나투레스라는 녀석의 스텟을 포기하는 건 그보다 몇 배는 더 내키지 않는 일.

나는 다시 한번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포획하겠다.”

[S-급 몬스터 아나투레스의 포획에 실패하셨습니다.]

[S-급 몬스터 아나투레스를 포획하시겠습니까?]

“씨발...”

두 번째 시도 역시 실패.

오기가 발동한 나는 또 다시 포획을 시도했고.

[S-급 몬스터 아나투레스의 포획에 실패하셨습니다.]

[S-급 몬스터 아나투레스를 포획하시겠습니까?]

[S-급 몬스터 아나투레스의 포획에 실패하셨습니다.]

[S-급 몬스터 아나투레스를 포획하시겠습니까?]

세 번째, 네 번째 시도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거 가능하긴 한 거야? 애초에 A급 특성으로 S급 몬스터를 포획할 수 있는 건가?”

메시지창이 뜬 이상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였다.

아마도 기간트로 인한 스킬 증폭 효과가 적용된 것일 테지.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시도를 거듭할수록 소모되는 마력의 양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1378, 1311, 1225, 1104.

소모되는 마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건 분명 나쁘지 않은 소식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1000단위의 마력이 소모되고 있었고, 남은 마력양은 어느새 10000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의 상태였다.

‘이거 이러면 나가린데... 어쩔 수 없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시도해보고 안 되면... 그냥 죽인다.’

이만한 놈을 또 구하긴 힘들 테지만,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닐 터.

오르비스 대륙에는 위치가 알려진 재앙급 몬스터만 일곱 마리가 더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마음을 비운 채 다시 한번 고유스킬 ‘포획’을 시도했다.

“포획하겠다.”

너부러져 있던 아나투레스의 몸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어...”

[S-급 몬스터 아나투레스의 포획에 성공하셨습니다.]

[S-급 몬스터 아나투레스의 각인을 시도하시겠습니까?]

포획 성공.

무려 S급(비록 ?가 붙어있긴 하지만 어쨌든) 몬스터의 스텟을 공유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각인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세상은 원하는 바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S-급 몬스터 아나투레스의 각인에 실패하셨습니다.]

[S-급 몬스터 아나투레스의 각인을 시도하시겠습니까?]

“이런 젠장! 나랑 장난해?”

각인 스킬 한 번에 소모된 마력의 양은 무려 1538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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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획> : 제압에 성공한 몬스터를 포획할 수 있다. 포획에 성공한 몬스터를 사육장(아공간)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각인’이 새겨지지 않은 몬스터는 사육장 내에서 상태 이상 ‘위압’의 영향을 받는다.

*<각인> : 포획한 몬스터에게 ‘지배자의 인장’을 새긴다. 각인에 성공한 몬스터는 충성도가 대폭 상승한다. 각인에 성공한 몬스터는 충성도를 확인할 수 있다. 각인에 성공한 몬스터는 사육장 내에서 회복 속도가 300% 증가한다.

#2

잔여 마력이 7000대까지 떨어진 관계로, 더이상 아나투레스에 대한 ‘각인’을 시도할 수는 없었다.

“사육장으로 이동.”

[S-급 몬스터 아나투레스가 사육장으로 이동합니다.]

화아아아아아앗

옅은 빛무리와 함께 아나투레스의 모습이 자취를 감추었다.

S급 파일럿 특성의 고유스킬(A급 이하 파일럿 특성에는 존재하지 않는 고유스킬)인 ‘격납고’와는 달리.

‘사육장’은 등급 불문 모든 테이머 특성 각성자에게 주어지는 아공간 스킬이었는데.

어쩌면 이것은 ‘탑승자’의 능력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니는 파일럿 스킬과, ‘소환사’보다는 ‘소환수’의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한 테이머 스킬의 차이에 의한 것일지도 몰랐다.

아무튼...

고유스킬 ‘포획’에 의해 사로잡힌 몬스터는 언제든 사육장에 가두거나 꺼내어 놓을 수 있을 뿐, 소환수로서 내 명령을 따르게 된 것은 아니었다.

즉, 아나투레스는 여전히 최상급 몬스터이자 가디언으로서의 자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뜻.

그런 이유로 치유 스킬을 사용하지 않은 채 아공간의 일종인 사육장으로 이동시킬 수밖에 없었는데.

괜히 치료해 놓았다가는 소환하는 순간 나를 공격해 올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각인이 새겨지지 않은 탓에 사육장이 지닌 ‘회복 속도 증가’ 버프를 적용받지도 못할 테니, 다시 꺼내 놓았을 때도 여전히 골골거리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좀 아깝긴 하군.’

아나투레스가 보여준 힘과 속도로 보건데, 녀석의 스텟을 공유받는다면 보스몹인 재앙급 몬스터와의 전투에 꽤나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지만.

“스텟 공유.”

[현재 사육장 내에 스텟을 공유할 수 있는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역시나 각인이 새겨지지 않은 몬스터의 스텟을 공유받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설령 아나투레스에게 각인을 새겼다고 한들.

‘파트리스 녀석에게 듣기론, 충성도와 체력이 모두 90% 이상이 되어야만 스텟 공유가 가능하다고 했었지.’

각인을 새겨 충성도가 상승한다한들, S-급 몬스터인 아나투레스의 충성도가 단번에 90%를 넘길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S급 테이머 특성을 각성한 파트리스 오보노조차, 각인 직후의 S급 몬스터가 충성도 70%를 넘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했으니까.

‘A급이면 50% 정도는 되려나?’

아무튼, 충성도는 물론이거니와 체력 역시 빈사 상태인 아나투레스에 대한 기대는 고이 접어두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현재의 전력만으로 재앙급 몬스터를 상대해야만 했다.

‘뭐, 어차피 처음부터 그러려고 했었잖아.’

뜬금없이 ‘테이머(A)’ 특성을 각성한 건 어디까지나 돌발적인 헤프닝일 뿐이었다.

나는 멀뚱히 선 채 나(가이아)와 아나투레스가 사라진 자리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토벌대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갑시다. 그 ‘재앙’이라는 녀석을 잡으러.]

#3

사망자와 전투 불능 기체를 제외하면 토벌대의 남은 전력은 46기.

최상급 몬스터 4마리를 잡아낸 대가가 고작 기간트 8기의 리타이어라면 이는 실로 엄청난 전과라 할 만했다.

물론 이러한 전과를 기록할 수 있었던 데에는, 스노우의 지분이 9할 이상을 차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덕분에 엘가드 왕국의 2차 토벌대는 대륙급 강자 4인을 포함해 80% 이상의 전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칼튼 에거시는 에키드나의 뒤를 따라 묵묵히 걷고 있는 가이아를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이 튀어나온 거야? 엘가드 왕국에서 만나기 전까진 이름 한번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그 미친 몬스터를 일격에 잡아버리다니...”

칼튼 에거시는 알지 못하는 아나투레스라는 이름의 최상급 몬스터가 가이아의 주먹질과 발길질에 유린당한 횟수는 30차례가 넘었지만.

누가 보더라도 승부는, 최초의 일격 때 이미 갈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신과 뒤늦게 합류한 이파니를 포함해 40여 명의 오너들이 생채기조차 만들어내지 못했던 몬스터였다.

실력에 비해 경험이 많지 않은 칼튼 에거시였지만, 무슨 영문인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그 몬스터가 일반적인 수준의 최상급 몬스터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이미 확인한 바 있는 라비린토스와 보스페로스, 프리가모스 정도라면... 조금 고생은 할지언정, 스노우를 제외한 대륙급 3인의 합공만으로 충분히 잡아낼 수 있는 수준의 몬스터들이었으니까(물론 프리가모스가 부렸던 몬스터 군단을 배제한다는 가정하에).

‘하지만 그 괴물을 상대론 힘들어...’

온전한 상태의 자신과 이파니, 오펠로 브롬이 달려든다 한들. 마지막 가디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 확률은 3할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규격 외의 괴물을, 저 스노우란 작자는 너무나 손쉽게 잡아버린 것이다.

‘그건 그렇고, 사체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너무나도 궁금했지만, 사라져버린 몬스터보다 더한 괴물과의 전투를 앞둔 상황에서 그딴 걸 물어볼 여유는 없었다.

[도착했다.]

일행의 선두에서 길을 이끌던 에키드나의 외부 통신 마법진에서 오펠로 브롬의 거친 음성이 흘러나왔다.

어느새 그들은 광산 앞 분지에 도착해 있었다.

드워프 1만명은 족히 들어갈 듯한 꽤 넓은 분지와 그 끝에 존재하는 높이 5미터, 폭 4미터가량의 광산 입구가 보였다.

그리고 그 분지의 중앙에...

마치 사람인 양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곤충의 그것을 닮은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녹색 생명체의 모습이 보였다.

북부 다르다넬 산맥에 출현한.

재앙급 몬스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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