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123화 (123/169)

123화 재앙급 몬스터(4)

#1

스노우의 지시를 받은 3인의 오너가 기간트와의 동화율을 끌어올리며 전장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들의 발걸음이 향하는 방향은 모두 같았지만, 각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은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에키드나의 상태가 좋지 않아. 과연 저 괴물의 공격을 몇 번이나 받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군... 뭐, 상관없나? 신의 요람에 다시금 불을 지필 수만 있다면, 이 한목숨 오늘 이 자리에서 사라진다 한들 전혀 아까울 게 없다.’

‘놀라워, 혼자서 재앙급 몬스터를 상대로 이만큼 해낼 수 있다니. 게다가 그는 아직까지 여력을 남겨두고 있다고. 어쩌면, 어쩌면 정말로...’

‘빌어먹을, 대나이만 왕국 제1검(정확히 따지자면 no.1 오너)의 체면이 말이 아니군. 쪽팔려서라도 한쪽 팔 정도는 잘라내고야 말겠어. 스노우의 검에 쉽사리 잘려 나간 걸로 봐선... 어쩌면 갑각의 방어력은 그리 뛰어나지 않을 수도 있어.’

스노우가 여전히 흐릿한 잔상만을 남기는 수준의 초고속 기동과 연계된 재앙급 몬스터의 파상공세를 방어해 내는 사이, 오펠로 브롬을 비롯한 대륙급 강자들은 세 방향으로 흩어져 포위망을 형성했다.

파티 사냥에서 가장 중요한 건 누가 뭐라 해도 탱커의 ‘어그로 유지력’이었고, 그런 점에서 스노우가 보여주고 있는 퍼포먼스는 가장 이상적인 탱커의 모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두 개로 늘어난 재앙급 몬스터의 갑각검을 대검과 스킬을 이용해 철통같이 방어해 내는 와중에도, 틈이 생길 때마다 공격을 시도해 어그로가 풀릴 틈을 주지 않고 있었다.

그 결과, 만만치 않은 기세와 마력을 지닌 고등급 기간트 3기가 접근하고 있음에도 재앙급 몬스터의 시선이 가이아에게서 떨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몬스터의 오른쪽 팔뚝에서 돋아난 갑각검의 흑색 마력과 기간트 대검의 적색 마력이 충돌하며 마력의 파편을 이리저리 흩날렸고.

터어어어어어어어어엉

연이어 날아드는 왼팔의 갑각검 역시 가이아의 오른쪽 옆구리 앞에 생성된 얼음 방패와 방패의 표면에 코팅된 실드 스킬의 조합에 의해 저지되었다.

그리고...

드르르르르르르륵

드르르르르르르륵

드르르르르르르륵......

양팔의 공격이 모두 막히는 순간, 북부 다르다넬 산맥의 대지 아래에서 솟아난 거대한 바위 송곳들이 재앙급 몬스터의 전신을 압박해 들어갔다.

스킬을 시전한 스노우가 그와 동시에 폭발적으로 증가시킨 마력을 대검에 불어넣었고.

대검과 맞닿은 갑각검을 통해 흘러드는 엄청난 마력에 대응하느라 몸을 빼낼 타이밍을 놓쳐 버린 재앙급 몬스터.

[공격해!]

아군 전용 통신 채널을 통해 스노우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그와 동시에 가이아가 서 있는 전면을 제외한 양 측면과 후방에서 솟아오른 바위 송곳들이 재앙급 몬스터의 몸을 강타했고.

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이미 에스페로의 시위를 당긴 채 대기하고 있던 이파니의 공격이 가장 먼저 날아들었으며.

쉬이이이이이이이이익

전력을 다해 접근한 첼시(칼튼 에거시)의 검집에서 뽑혀 나온 롱스드의 검격이 그 뒤를 이었다.

“기가 라이트닝!”

그리고 여전히 재앙급 몬스터와 검을 맞대고 있던 스노우 역시 최강의 공격 스킬 중 하나를 시전하는 동시에.

“중력 조절, 가속, 점프!”

황급히 3개의 스킬을 사용하며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카아아아아아아아앙

찰나의 순간 두 번의 폭음이 발생했고.

아주 짧은 간극을 두고 섬뜩한 금속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막혔다!]

[피해요, 칼튼!]

[으아아아아아아아!]

스노우와 이파니, 오펠로 브롬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있던 칼튼 에거시 역시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젠장! 이건 또 뭐야?]

결과부터 말하자면, 아군 기간트들의 공격은 재앙급 몬스터에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대지로부터 솟아난 바위 송곳들이 녀석의 갑각을 뚫지 못할 것이라는 건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단지 아주 잠깐이라도 녀석의 움직임을 방해해주길 기대하며 시전했을 뿐이었으니까.

갑각의 방어력에 가로막힌 바위송곳들이 박살났고.

기가 라이트닝 스킬로 인해 생성된 번개와 에스페로의 시위를 떠난 마력 화살이 재앙급 몬스터의 신체에 직격하기 직전.

마치 매미의 날개처럼 퍼덕이기 시작한 수백의 갑각들이 몸으로부터 일제히 떨어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단단히 뭉쳐 두 개의 원판 형태로 변했다.

두 개의 녹색 원판은 각각 몬스터의 머리 위와 오른쪽 측면으로 향했고.

머리 위로 떨어지는 번개와 오른쪽 측면에서 날아든 마력 화살의 공격을 막아내 버렸다.

어지간한 위력의 공격에 직격했음에도, 두 개의 녹색 원판은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이었다.

갑각이 모두 떨어져 나가 순백의 나신(마치 서번트들을 연상시킬 정도로 새하얀 몸뚱어리였다)을 드러낸 재앙급 몬스터의 양손에는 각각 하나의 갑각검이 들려있었고.

녀석은 그중 하나를 이용해 칼튼 에거시가 자랑하는 발검술을 매우 손쉽게 받아냈다.

고작 첼시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덩치와 기간트 롱소드에 비하면 과일 깎는 칼과 비교해도 이상하지 않을 갑각검으로 만들어낸 결과는, 녀석의 변화한 모습과 더해져 기괴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스으윽

재앙급 몬스터의 시선이 검을 맞대고 있는 거대한 기간트의 헤드 쪽으로 향했다.

[#$#% @$&@......!]

이후 일어날 일을 직감한 칼튼 에거시가 반사적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때.

한발 늦게 현장에 도달한 오펠로 브롬의 에키드나가 전신에서 은은한 푸른빛을 발산하며 대지를 박찼고.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첼시의 허리부위에 강력한 태클을 시도했다.

그리고 간발의 차이로...

츠팟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휘둘러진 검이 첼시의 목이 위치했던 자리를 훑고 지나쳤다.

쿠당탕탕탕탕

쿠우우우우우웅

뒤엉킨 첼시와 에키드나는 대지 위를 몇 바퀴나 굴러야 했고.

덕분에 목이 잘리는 것을 면한 첼시의 오너 칼튼 에거시는 아직까지 가시지 않은 섬뜩한 느낌에 무의식적으로 목 언저리를 매만졌다.

끼이이이이익

먼저 몸을 일으킨 것은 오펠로 브롬의 기간트 에키드나였다.

[이봐! 괜찮나, 칼튼?]

통신 채널을 통해 흘러나온 오펠로 브롬의 음성에 퍼뜩 정신을 차린 칼튼 에거시가 답했다.

[괘, 괜찮습니다. 목숨을... 빚졌군요. 감사합니다.]

그때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멍청하기는, 기간트의 목이 잘린다고 오너가 죽지는 않아요.]

[누가 그걸 모른답니까! 목이 잘린다고 바로 죽지는 않겠지만, 어차피 그다음 공격이나 그 다음다음 공격에 죽을 테니, 그게 그거지!]

이파니의 말도, 칼튼 에거시의 말도 모두 맞는 말이었다.

기간트와의 전투 경험이 거의 없는 재앙급 몬스터로서는 본능적으로 적을 가장 확실히 사살할 수 있는 목을 노린 것일 테지만.

목이 잘린 기간트는 전투 능력을 상실할 뿐 오너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동화율에 따라 목이 잘린 육체적, 정신적 충격만큼은 고스란히 전해지는 데다. 시야 상실을 비롯한 감각 기관의 이상으로 인해 이후의 공격에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조금 전의 칼튼 에거시와 같이 동료의 도움이 없는 이상, 죽음의 순간이 아주 조금 늦추어질 뿐 어차피 결과는 똑같이 ‘죽음’으로 귀결될 뿐이었다.

스노우와 이파니의 재빠른 견제 덕분에, 쓰러졌던 두 기간트는 무사히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격렬한 태클과 땅바닥을 나뒹군 충격으로 인해 더욱 상태가 나빠진 두 기간트였지만.

한 대가 완전히 리타이어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고무적인 결과였다.

두 개의 녹색 원반은 재앙급 몬스터의 주위를 선회하며 주인을 보호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리고 갑각이 벗겨져 몸집이 조금 작아진 재앙급 몬스터의 신체는, 곤충을 닮은 커다란 눈을 제외하면 인간이나 엘프의 그것과 거의 흡사해진 상태였는데. 녀석의 새하얀 피부 표면에서는 은은한 흑색 광채가 발산되고 있었다.

에스페로를 이용해 재앙급 몬스터를 견제하던 이파니가 입을 열었다.

[저 녹색 방패가 녀석의 이능인 것 같아요. 그런데 다른 재앙급 몬스터들의 그것과 비교하면... 그리 특별한 것 같지는 않군요.]

[방심하지 마십시오, 공주님. 놈의 이능이 저것 하나뿐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재앙급 몬스터라면 이능을 두세 개씩 지니고 있다 한들 이상할 게 없으니까요.]

최상급 몬스터인 가디언들조차 각자 한두 가지의 특수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상위 개체인 재앙급 몬스터에게 아무런 능력이 없을 리 만무.

오르비스 대륙에서 이름이 알려진 재앙급 몬스터 중에는 무려 4가지 특수 능력을 지닌 녀석도 존재했는데.

여담이지만, 드래곤이 사라진 이 대륙 최강의 생명체는 대륙 서부에 위치한 5대 마경 ‘무한의 대미궁’에 똬리를 튼 바로 그 재앙급 몬스터라고 한다.

츠팟

검을 든 양손을 늘어뜨린 채 정면으로 마주 선 가이아를 바라보던 재앙급 몬스터의 모습이 일순간 자취를 감추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순간이동이라도 하듯 엄청난 속도로 움직여 화살 견제를 이어가던 아르테미스를 향해 쇄도했다.

[아앗...]

타아아앗

그 엄청난 속도에 화들짝 놀란 이파니는 반사적으로 탄성을 토해내며 몸을 날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조금 전까지 아르테미스가 서 있던 자리에 나타난 재앙급 몬스터.

토벌대 중 스노우를 제외한 최고 실력자인 그녀이니만큼, 어렵사리 재앙급 몬스터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아, 이건 빨라도 너무 빠르잖아...]

물론 그것이 몇 번이고 계속해서 피해낼 수 있으리란 뜻은 아니었다.

몸을 바로 세운 녀석의 시선은 이번에도 붉은색 기간트 가이아를 향했다.

아무래도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힌 유일한 존재이기에 경계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공격 목표는 또다시 아르테미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아악, 잘렸어! 대체 왜 나만! 보고 있지만 말고 좀 도와줘요!]

2번째 공격 역시 반응하는데 성공한 이파니였지만.

이번에는 간발의 차이로 어깨의 외부장갑 일부가 잘려나가고 말았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그녀의 다급한 외침에도 움직이지 않는 가이야.

전체적인 능력이 부족한 칼튼 에거시는 말할 것도 없었고.

속도보다는 힘과 맷집에 치우친 전사인 오펠로 브롬 역시 라플론 광산의 재앙급 몬스터와는 상성이 좋지 못했다.

속도가 빠른 대신 공격력이라도 다소 떨어지는 상대였다면 그의 방어력이 빛을 발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두 가지 모두 극한에 다다른 녀석에게 오펠로 브롬의 에키드나는 그저 커다란 샌드백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재 재앙급 몬스터에게 노려지고 있는 이파니라면 아슬아슬하게나마 녀석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게 가능했다.

스노우는 이파니가 벌어주는 그 잠깐의 시간을 이용해 저 괴물을 상대하기 위한 방법을 떠올리고 있었다.

‘패턴이 달라졌다. 전투를 지속하면서 조금씩 진화하고 있어. 아직까지는 단순한 면이 남아있긴 하지만... 시간을 끌면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리고 또 다른 이능이라도 튀어나오면 골치 아파.’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이 전투를 끝내야만 했다.

짧은 고민을 마친 스노우가 동화율을 극한까지 끌어올리자.

가이아의 몸이 은은한 붉은빛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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