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124화 (124/169)

124화 재앙급 몬스터(5)

#1

순간적으로 가이아의 마력 엔진을 오버클럭 시키며 달려드는 스노우와, 그를 보조하려는 듯 빠르게 이동하며 화살을 날려대는 아르테미스의 주인 이파니.

당장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는 오펠로 브롬 역시 에키드나의 거대한 방패로 전면을 가린 채, 혹시라도 발생할 (아르테미스의) 위기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고.

에키드나의 뒤편에 마치 보호받듯 자리한 첼시의 오너 칼튼 에거시의 경우, 제대로 따라가는 것조차 벅찬 괴물들의 움직임을 쫓느라 두 눈의 실핏줄이 모조리 터져버린 채 이를 꽉 깨문 상태였다.

‘제길, 나보다 강하리란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줄이야.’

아예 인간 같지도 않은 스노우의 경우는 논외로 두더라도.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재앙급 몬스터의 공격을 회피하며 간간이 화살까지 날려대는 엘프 공주 이파니슬라 르 바라탄의 실력 역시, 지금의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지는 수준이었다.

적어도 ‘속도’에 있어서만큼은 여태껏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해 왔던 그의 자존심이 산산이 부서지는 전투 양상이었다.

‘제대로 보이기라도 해야 칼을 휘두르든 말든 할 거 아냐!’

카아아아아아아아앙

스르르르륵

카아아아아아아앙

틈틈이 흐릿한 잔상만을 드러낼 뿐, 말도 안 되는 초고속 이동을 연거푸 펼치며 서로의 검과 방패(실드, 갑각)를 맞대는 재앙급 몬스터와 가이아의 모습은... 전설로 내려오는 ‘신마 전쟁’의 천신과 악신 간 전투의 재현이라 한들 전혀 과함이 없을 것 같았다.

뾰족한 귀가 인상적인 아름다운 여성형 기간트 아르테미스의 활약 역시, 그러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었고.

거대한 두 괴물과 작은 괴물 하나가 펼치는 너무나 압도적인 퍼포먼스들의 향연 앞에서 자꾸만 작아지려는 자신을 스스로 채찍질하는 칼튼 에거시.

하지만 그 역시 수십 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천재임은 틀림없었고.

스스로 인지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가디언들과의 전투를 시작으로 재앙급 몬스터와 그에 필적하는 스노우의 대결을 눈으로나마 따라가려 기를 쓰는 지금 이 순간까지.

매 순간 엄청난 경지의 상승을 이루어 내는 중이었다.

다만...

‘빌어먹을... 고작 구경꾼 역할로 만족할 셈이냐, 칼튼 에거시! 대나이만 왕국의 제1검으로서 이 무슨 참담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괴물들의 압도적인 퍼포먼스에 비하자면.

실시간으로 경지의 상승을 이룩한다 한들, 아직까지는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수준에 불과했기에.

칼튼 에거시 스스로 그러한 사실을 눈치채는 건 아마 꽤나 시간이 지난 이후의 일일 것이다.

#2

분지로 입장하기 전, 스노우의 상상 속 재앙급 몬스터의 모습은 압도적인 흉포함과 위압감을 뿌리는 괴물이었다.

하지만 전투를 지속하며 지켜본 녀석에게선 그러한 분위기라고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강자의 아우라만큼은 엄청나긴 했지만.’

스스로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 오로지 힘과 속도에 치중한 단조로운 공격 패턴과 움직임, 거기에 어지간한 돌발 상황마다 일일이 당황하는 듯한 모습까지.

‘마치... 천지개벽의 힘을 지닌 신의 무기를 손에 쥔 어린아이 같다고나 할까?’

스르르륵

카아아아아아아앙

가이아의 오른쪽 측면에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재앙급 몬스터가 목을 노리고 휘두른 왼손의 갑각검이 위로 올려 친 기간트 대검에 의해 튕겨져나갔다.

츠릇

콰직

터어어어어어엉

곧바로 허깨비처럼 신형을 흐트러뜨린 재앙급 몬스터는 이내 가이아의 뒤편으로 이동해 갑각검을 찔러넣었으나, 녀석의 등장과 동시에 발동된 3겹의 실드 중 2번째 실드에 가로막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교전 초기 1,2분은 쭉 이런 형태로 흘러갔었다.

모든 버프를 몸에 두르더라도 따라가기 버거운 움직임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위협적인 무기였지만.

‘초고속으로 이동해 사각을 차지한 뒤 급소를 노린다’라는 일정한 패턴의 반복을 빠르게 파악해 낸 덕분에 별다른 피해 없이 방어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마치 학습이라도 하듯, 교전 시간이 늘어날수록 새로운 패턴을 추가시키는 재앙급 몬스터.

게다가 마치 살아있는 듯 움직이며 주인을 향한 공격을 차단하는 두 개의 원반을 만들어낸 이후로는, 제대로 된 유효타는커녕 녀석에게 접근하는 것조차 애를 먹고 있었다.

스르르르륵

서걱

[꺄아아아아아아악!]

게다가 자신의 공격을 수 차례 무마시킨 가이아나 두터운 방패 뒤에 몸을 숨긴 에키드나, 첼시가 아닌... 비교적 연약(?)해 보이는 데다 홀로 떨어져 있는 아르테미스를 집요하게 노리는 것 또한 녀석에게 나타난 변화 중 하나였다.

[또, 또 잘렸어. 어떻게 좀 해보라고, 이 멍청이들아!]

[공주님!]

[젠장, 그러게 왜 혼자 날뛰어서는. 이쪽으로 좀 오라고!]

[이런 무례한... 아악]

방패 뒤에 몸을 가린 채 재앙급 몬스터의 공격을 대비하고 있던 오펠로 브롬과 칼튼 에거시가 위기에 처한 이파니를 구원하기 위해 전력으로 내달렸다.

단 세 번의 공격 만에 어깨 일부분이 잘려 나가고, 오른쪽 가슴에서부터 왼쪽 아랫배에 이르는 긴 상처를 입은 아르테미스가 자신을 구원하러온 두 기간트와 합류했다.

적이 하나와 셋으로 나뉜 상황.

두 기간트가 아르테미스와 합류하기 전, 이미 멀찌감치 거리를 벌린 재앙급 몬스터가 일순간 타겟을 설정하지 못한 채 머뭇거렸지만.

곧 자신의 걱정이 쓸데없는 짓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전투 개시 직후 자신에게 생애 첫 상처와 고통을 안겨주었던 적.

자신의 둥지에 침입한 적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붉은색 기간트가, 전신에서 은은한 붉은빛을 발산하며 자신을 향해 쇄도해 들어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가까워지는 속도가 너무나도 빨랐다.

가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 재앙급 몬스터의 입에서.

낮디낮은 울음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3

[지금부터 지원은 이파니의 화살 공격만으로 족하다. 오펠로와 칼튼은 그녀를 보호하는 데 주력하도록.]

재앙급 몬스터를 향해 쇄도하며 동료들을 향해 지시를 내리는 스노우와 그의 기간트 가이아.

화르르르르르륵

화르르르르르륵

스르르르르르륵......

그런 가이아의 머리 위로 불과 얼음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창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드는 붉은색 기간트.

그리고 그와 함께 들이닥치는 십수 개의 스킬(마법) 공격.

몬스터의 전면을 막아선 두 개의 녹색 원반에 서린 흑광이 조금 더 짙어졌고.

자신이 만들어 낸 마력의 창들보다 오히려 먼저 도착한 스노우가 가이아의 몸체를 바짝 수그리며 두 개의 원반 사이를 통과했고.

뒤를 이어 적색과 백색의 창들이 녹색의 방패와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아앙

.

.

.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인첸트 파이어 블레스터, 인첸트 라이트닝 블레스터, 중력 조절, 증폭......”

그리고 한층 더 짙어진 붉은 기운을 몸에 두른 가이아가 자신의 반절 정도에 불과한 재앙급 몬스터를 향해 무시무시한 불길과 적광, 황금빛 전류를 피워올리는 대검을 휘둘렀다.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자신에 육박하는 속도에 순간적으로 당황한 재앙급 몬스터가 뒤늦게 양손의 검을 교차하며 가이아의 대검을 막았다.

재앙급 몬스터의 두 검과 전신에서 심연과도 같은 흑광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고.

곧이어 세 개의 검이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도무지 검과 검의 부딪침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폭발과 굉음이 발생했고, 주위의 땅거죽이 뒤집히며 어마어마한 양의 먼지구름이 사위를 뒤덮었으며, 파괴된 대지의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게다가 느껴지는 기운만으로도 3인의 대륙급 강자들은 물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토벌대의 드워프 오너들까지 기겁하게 만들었던 어마어마한 두 마력의 충돌.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한 마력의 폭풍이 분지 내에 휘몰아치며 모든 것을 박살 내기 시작했다.

[마, 마력으로 몸을 보호해라!]

[드래곤...]

[뭔 헛소리야! 정신 차리라고 공주님!]

쿠우우우우웅

하단부를 대지에 박아넣은 방패에 주입한 마력을 마치 검기와도 같이 최대한 넓게 퍼뜨린 에키드나가 자세를 낮추며 오른쪽 어깨로 방패를 지탱했다.

그런 에키드나의 허리를 아르테미스가 붙잡았고, 다시 그 허리를 첼시가 두 팔로 끌어안았다.

[이, 이런 무례한! 지금 어딜 만지는...]

[지금 그런 소릴 할 때...]

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두 사람의 말소리는 곧이어 불어닥친 충격파에 의해 파묻혀버리고 말았다.

세 기를 합쳐 30톤이 넘어가는 거대한 금속덩어리들조차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을 만큼 어마어마한 위력의 마력 폭풍.

잠시 뒤.

충돌로 인해 발생한 마력 폭풍과 먼지구름이 모두 사라진 분지의 중앙에 서 있는 재앙급 몬스터와 붉은색 기간트 가이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괴물 간의 거리는 60여 미터.

둘 역시 충돌로 인해 발생한 마력 폭풍에 휘말려 정신없이 떠밀려 간 듯했다.

오른쪽 팔이 날아가 버린 채 신체 곳곳에서 녹색 피를 흘리고 있는 재앙급 몬스터의 주위로 군데군데 파괴의 흔적이 보이는 녹색 원반들이 선회하고 있었다.

가이아 역시 무사하지는 못했다.

비록 사지는 멀쩡히 달려있었으나 외부 장갑의 파손이 심각한 수준이었고, 무엇보다 드워프 최고의 장인이 손수 제작한 대검이 두 동강 나버린 상태였다.

터어엉

잠시 손잡이와 검날의 하단부만 남은 대검을 바라보던 스노우가 미련 없이 그것을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멍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세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칼튼, 네 검을 빌려야겠다.]

첼시의 롱소드는 무려 15만 골드를 들여 제작한 명품 중의 명품으로, 단단함과 날카로움만 따지자면 가이아가 사용하던 대검에 비해서도 한 수 위의 무기였다.

당연하게도 칼튼 에거시는 이 검을 목숨처럼 아꼈다.

하지만 조금 전 목격한 그 엄청난 격돌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그는...

스르릉

무심결에 검집에 들어있던 검을 꺼내 가이아를 향해 던졌다.

휘이이이이이이익

[어...]

그리고 검을 손에서 놓아버리고 난 직후에야 제정신을 차린 그가 절규하듯 외쳤다.

[아, 안돼! 이봐, 그 검은 부러뜨리면 안 돼! 절대 안 된다고오오오오오오!]

[진정하게, 칼튼.]

[하, 지금 그깟 검이 문제예요?]

[그, 그깟 검이라니! 아르테미스의 에스페로가 부러져도 그렇게 말할 겁니까?]

[감히 저딴 평범한 검과 에스페로를 비교하다니!]

[펴, 평범? 저 칼이 어떤 칼인데! 하긴... 멀찍이서 활이나 쏴대는 엘프가 검을 보는 눈이 있을 리가...]

[뭐? 이런 무례한...]

[그쪽이 먼저...]

[하아...]

뒤쪽에서 들려오는 한심한 대화에 짧은 한숨을 내쉰 오펠로 브롬은 그들을 향한 관심을 끊어버린 뒤, 전면의 두 존재를 향해 신경을 집중시켰다.

휘이이이이익

휘이이이이익

츠팟

몇 차례 검을 휘둘러본 뒤 만족스럽게(왠지 그렇게 느껴지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는 가이아와.

그르르르르르르르르르......

이미 완벽하게 재생된 한쪽 팔을 천천히 아래위로 움직이며 한층 더 낮고 섬뜩한 울음을 토해내는 재앙급 몬스터.

오펠로 브롬은 그제야 완벽하게 수긍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이 전투에...

다른 이들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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