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128화 (128/169)

128화 토벌 성공의 대가

#1

쿠우우우우웅

목을 잃은 재앙급 몬스터가 축축하게 젖은(얼음의 대지가 녹아버린 탓에) 라플론 광산의 분지 위로 쓰러졌다.

군데군데 부서지고 그을리긴 했지만, 갑각들이 제자리를 찾은 녹색 몸뚱어리는 처음 마주쳤을 당시와 그리 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데구르르...

커다란 눈 안에 맴돌던 기이한 어둠이 자취를 감춘 재앙급 몬스터의 머리는 세 갈래로 갈라진 녀석의 두 발과 5미터가량 떨어진 곳까지 굴러간 다음에야 멈추었다.

잠시 재앙급 몬스터의 몸통에서 떨어져 나간 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그로부터 시선을 거둔 뒤 시야 한 편에 존재하는 메시지창 하나를 확인했다.

“하아... 진짜로 아슬아슬했군.”

[마력 987/27399]

[마력 988/27399]

[마력 989/27399]

.

.

.

[마력 1001/27399]

전투가 마무리된 직후의 잔여 마력은 926.

무려 1000단위 아래까지 떨어졌었던 마력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었다.

최후의 순간 내 한 몸이라도 빼내기 위해 700~800 정도의 마력은 항시 남겨둬야 하는 걸 감안한다면, 그야말로 바닥의 바닥까지 여력을 끌어다 쓴 전투였다.

“뭐, 쏟아부은 마력양에 비하면... 사실 그렇게까지 어려운 전투는 아니었지만.”

전투의 난이도로만 따지자면 사막과 알타몬트 대평원에서 마주했던 용병왕 쪽이 최소 두 배는 더 어려웠었다.

아무리 뛰어난 피지컬과 최상급 이능을 지니고 있다 한들, 전투 경험이 전무하다시피한 재앙급 몬스터의 단조로운 전투 패턴을 읽어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바로 그 어마어마한 피지컬과 이능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낀 섬뜩한 순간이 존재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분지의 한 편으로 시선을 돌리자 이쪽을 바라보는 3기의 기간트(에키드나, 아르테미스, 첼시)의 모습이 보였다.

어지간히 놀란 탓인지, 멀뚱멀뚱 서 있는 모양새에서 그 안에 있을 오너들의 표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스르륵

나는 천천히 허리를 숙여 재앙급 몬스터의 몸통에 박혀 있던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는 약하게 힘을 중어 천천히 그것을 뽑아냈다.

쑤우우우욱

생명력이 사라진 재앙급 몬스터의 사체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저항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명검 중의 명검이라 자랑하던 칼튼 에거시의 롱소드.

과연 그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검날이 상하기는커녕 이물질 하나 묻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재앙급 몬스터에게서 뽑아낸 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검이 북부 다르다넬 산맥의 하늘을 향해 직각으로 곧추선 순간.

3인의 대륙급 강자들을 포함한 50여 명의 토벌대 소속 오너들은...

기간트의 외부 통신용 마법진을 통해.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일제히 거대한 승리의 함성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2

재앙급 몬스터의 죽음으로 전투는 끝이 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토벌대의 임무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드워프들이 무수한 희생을 감수하며 수색대와 토벌대를 조직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라플론 광산을 무사히 되찾기 위함이었으니까.

토벌대에 포함된 오너들 중에는 오너인 동시에 기간트 엔지니어나 장인인 이들도 존재했는데, 이들 몇몇이 기간트에서 내려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라플론 광산으로 진입했다.

남은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도망친 녀석들을 제외함 수백 마리 몬스터들로부터 전리품을 수거하는 것.

그중에서도 가디언이었던 최상급 몬스터들과 재앙급 몬스터의 사체는 어설프게 측정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꾸우우울꺽...

침 넘어가는 소리를 낸 것은 약소국인 자국의 기대를 한 몸에 짊어지고 있는 나이만 왕국의 초신성 칼튼 에거시였다

“저, 저것들 중 하나만 갖다 팔면 대체 기간트를 몇 대나...”

그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토벌대 기간트들에 의해 한곳으로 옮겨지고 있는 최상급 몬스터들의 사체였다.

가이아의 대검에 의해 머리가 두쪽으로 나뉜 검은 늑대 프리가모스.

가이아의 활 안트레가 쏘아낸 화살에 직격 후 추락, 이후 드워프 오너들에 의해 살해당한 비행형 가디언 보스페로스.

가이아의 마력포에 직격 당해 머리와 이어진 상체 일부와 꼬리부터 시작되는 하체의 일부만 남은 라비린토스.

라비린토스의 경우 중앙 부분이 통째로 사라져버리긴 했지만, 덩치 자체가 워낙에 어마어마했던 터라 남은 부분만으로도 다른 가디언들의 크기를 압도했다.

마정석을 제외한 최상급 몬스터의 가죽이나 혈액 역시 수십만 골드에 거래될 만큼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칼튼 에거시는 억울했다.

“아니, 대체 내가 상대했던 녀석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거야!”

용병인 스노우와 이파니, 칼튼 에거시의 계약서에는 몬스터를 잡는데 기여한 비중만큼 사체에 대한 권리를 지닌다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었고. 이는 엘가드 왕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오펠로 브롬을 포함한 드워프 오너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바였다.

이에 따르면 라비린토스를 상대로 시간을 끌며 버틴 오펠로 브롬과 보스페로스를 견제해 지상으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만든 이파니는 그 사체에 대해 일정부분 권리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이족 보행 몬스터 아나투레스(스노우 이외에는 이름을 알지 못했지만)를 상대로 혈전을 치른 칼튼 에거시의 경우, 그 사체(?)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리는 바람에 손가락만 빨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야 만 것이다.

‘분명해, 스노우 저 인간이 무슨 수작을 부린 거야.’

문제는 그 수작이 무엇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을뿐더러...

‘젠장, 저 괴물 같은 인간에게 뭐라 따져 물을 수도 없고.’

정확하게는 그에게 따지고 질문을 던질 용기가 나질 않았다.

무려 단신으로 ‘재앙’급이 확실했었던 몬스터의 멱을 따버린 괴물이 아니던가.

자신의 눈으로는 확인조차 할 수 없었던, 오로지 그 파괴적인 위압감과 존재감만을 느낄 수 있었던 대결의 여운이 가시지도 않은 상태였다.

칼튼 에거시 혼자는 말할 것도 없이, 이 자리에 있는 50여 기의 기간트가 한꺼번에 덤벼도 상대조차 되지 않을 것이 확실한 괴물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저것 중 하나의 마정석만 얻을 수 있다면, 2500rp급 기간트 세 기 정도는 제작할 수 있을 텐데.’

기간트 제작에 관한 것은 엘가드 왕국과 체결한 계약서에 명시된 부분이니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역시나 제작에 필요한 자원, 다시 말해 ‘돈’이었다.

하지만 마력 엔진을 제작하기 위해 필요한 최상급 마정석을 제외한다면, 나머지 50% 정도의 금액은 가난한 나이만 왕국의 입장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마련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었다.

‘왕실은 물론 스승님의 곳간까지 쥐어짜야 할 테지만... 하, 어차피 내게 돌아올 몫은 없을 테니 모두 부질없는 생각이지.’

대나이만 왕국 제1검 칼튼 에거시가 한곳에 모아놓은 최상급 몬스터들의 사체를 바라보며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던 그때.

“칼튼.”

등 뒤에서 그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반사적으로 몸을 돌린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엘가드 왕국을 나설 때에 비해 조금도 달라진 게 없는 가이아의 오너 스노우였다.

‘이 자식은 지치지도 않나? 어째 얼굴이 더 좋아진 것 같은데. 젠장, 하긴... 수백만 골드를 번 셈이니 낯빛이 나쁠 이유가 없지.’

스노우가 죽여 버린 중상급 몬스터들만 수백 마리였다.

지금 이순간에도, 토벌대의 오너들이 사체의 훼손 정도에 따라 그것들을 분류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거기에 최상급 몬스터 세 마리의 사체에 대해 매우 높은 지분까지 가지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재앙급 몬스터... 그것도 목이 잘리긴 했지만,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재앙급 몬스터의 사체잖아. 저건 대체 얼마나 할까?’

편차가 존재하긴 하지만 최상급 몬스터 사체의 가치는 대충 100만 골드 수준.

그렇다면 거의 그대로 보존된 재앙급 몬스터의 사체 가격은?

‘모르긴 몰라도... 최상급 몬스터의 몇 배는 되겠지.’

재앙급 몬스터의 사체나 마정석이 거래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적어도 알려지기로는), 그 정도로 엄청난 가치를 지닌 것만큼은 분명했다.

질투심에 눈이 멀어버린 칼튼 에거시의 말투가 저도 모르게 쌀쌀 맞게 변했다.

“뭐야? 내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물론 그렇게 내뱉어버리고 나서는, 내심 질겁하며 후회를 곱씹는 칼튼 에거시였다.

‘젠장, 내가 무슨 소리를! 서, 설마 화가 난 건 아니겠지? 화가 났더라도 다짜고짜 날 공격하지는 않을 거야. 아마도...’

남자의 자존심으로 인해 두 눈을 부릅뜬 채 시선을 피하지 않고 있기는 했지만.

목이 잘린 채 쓰러지던 재앙급 몬스터와, 대지 위를 데구르르 구르던 녀석의 잘린 목을 떠올린 칼튼 에거시의 등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하지만 스노우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아나투... 네가 상대하던 가디언에 대한 권리는 내가 가지겠다. 대신, 프리가모스와 녀석이 거느리던 몬스터들의 사체를 모두 넘겨주지.”

스노우의 말이 끝나고도 한동안 부리부리한 눈빛을 거두지 않던 칼튼 에거시.

“......?”

자신을 향한 의문스러운 눈길에 퍼뜩 정신을 차린 그의 입에서 쩌렁쩌헝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가난한 왕국의 대들보 칼튼 에거시.

그에게 나이 어린 형님이 생긴 날이었다.

#3

몬스터 부산물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기간트 마력 엔진의 핵심 재료라 할 수 있는 마정석이었다.

고등급 기간트일수록, 제작비에서 마력 엔진이 차지하는 비율이 커진다.

예를 들자면 1100rp급 기간트 크로스보우의 제작비에서 마력엔진이 차지하는 비율이 28% 정도라면. 1500rp급 기간트 제라스의 경우 대략 32%, 2000rp급 기간트 베르가의 경우는 35%가량이었다.

2000rp급을 넘어서게 되면 이 현상은 더욱 심각해지는데, 2300rp급 첼시는 43%, 2500rp급 트라칸은 50%, 2700rp급 에키드나는 58%를 넘어간다.

그리고 전 세계에 몇 대 없는 3000rp급 기간트 ‘트리스탄(드워프 국왕 전용기)’의 경우, 기체의 제작비에서 마력엔진이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70%에 육박했다.

이는 고등급 기간트로 갈수록, 제대로 된 효율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마정석의 양보다는 질이 중요했기 때문인데(2000rp급 미만의 기간트는 양으로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하다).

특히나 오펠로 브롬의 에키드나와 이파니의 아르테미스 같은 2500rp 이상의 초고등급 기간트의 경우, 최상급 몬스터에게서 나오는 마정석이 소량이나마 일정 비율 이상 투입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3000rp의 출력을 자랑하는 하이엔드급 기간트 트리스탄.

이것의 제작에는 일명 ‘플렉시온급’이라 불리는 마정석이 고스란히 사용되었는데.

플렉시온급 마정석이란, 다름 아닌 재앙급 몬스터로부터 추출 해낸 심장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 플렉시온급 마정석 중에서도 최상품으로 치는 것이 바로 대륙 최강의 존재라 불리었던 드래곤의 심장... 즉, ‘드래곤 하트’였다.

이 플렉시온급 마정석은 오르비스 대륙 전체를 뒤져봐도 채 열 개가 넘지 않았기에, 대륙에 존재하는 하이엔드급(출력 3000rp 이상) 기간트 역시 고작 일곱 기에 불과했다.

그리고 아직은 대륙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여덟 번째로 등장한 재앙급 몬스터가 사냥당함으로써.

“오오... 이것이 바로!”

“이걸 또다시 보게 되는 날이 올줄이야...”

“아름답군...”

“플렉시온...”

또 하나의 플렉시온급 마정석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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