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129화 (129/169)

129화 스펙 업(1)

#1

드르르르르르르르륵

드르르르르르르르르

드르르르르르르르르......

엘가드 왕국의 외성문 안으로 끝도 없이 밀려드는 짐수레의 행렬.

일반적인 짐수레에 비해 족히 10배는 커 보이는 그것들을 끌고 있는 것은 무려 드워프제 500rp급 기간트 ‘브롱코스’였고, 수레의 손잡이를 붙잡은 채 힘을 쓰고 있는 기간트의 뒤편에는 그야말로 산더미 같은 몬스터들의 사체가 실려있었다.

어느새 평소의 말끔한 모습을 회복한 칼튼 에거시가 그 장대한 모습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기간트로 수레를 끌게 하다니. 과연 드워프라고 해야 하나? 그렇지 않습니까, 형님?”

그가 말을 건 것은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냉막한 표정의 인간 남자였지만, 정작 그의 질문에 답한 것은 그 남자의 옆(칼튼 에거시의 반대쪽)에 앉아 있던 뾰족한 귀의 엘프 여성이었다.

“저 수레의 크기를 좀 봐요. 기간트가 아니면 무슨 수로 저런 걸 끌 수 있겠어요.”

“뭐, 그건 그렇죠. 그나저나 500rp급 기간트를 100기 넘게 가지고 있다니... 역시 드워프라고 해야 하나?”

칼튼 에거시의 조국인 나이만 왕국의 경우, 보유하고 있는 기간트가 고작 80여 기에 불과했는데.

그 중 500rp급 기간트라고는 예비 오너들의 수련을 위해 마련해 놓은 왕립 아카데미 소유의 3기가 전부였으니.

고작 수레를 끄는 따위의 잡일(?)에 동원하기 위해, 100기가 넘는 저등급 기간트를 동원하는 모습에 기가 질리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사실 어지간한 강대국이라 한들, 저등급 기간트 100여 기(그것도 똑같은 기종을)를 한꺼번에 동원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우선 전쟁에는 동원할 수조차 없는 저등급 기간트를 그렇게나 많이 보유할 이유가 없는 데다. 설령 그만한 수량이 있다고 한들, 전국 각지의 영지에 분포되어 있을 것이었기에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오직 대륙 최고의 기간트 제작 능력을 보유한데다, 1왕국 1영지 체제인 엘가드 왕국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스노우를 비롯한 4인의 대륙급 강자는 천장이 뻥 뚫린 화려한 마차에 탑승한 채 짐수레 행렬의 뒤를 따라 천천히 이동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뒤를, 드워프들의 이동 수단인 ‘나크(체고가 낮고 다리가 굵은 거대 도마뱀, 동물)’에 올라탄 50여 명의 토벌대원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외성문을 통과하기까지 남은 짐수레는 대략 50여 대 정도였고, 이미 그 이상이 성문을 통과해 엘가드 왕국 내부로 진입한 상황이었다.

마차의 앞자리에 앉아 있던 오펠로 브롬이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나와 계시는군.”

짐수레와 수많은 인파가 드나드는 왕성의 거대한 성문 옆에는 화려한 복색을 갖춘 일단의 무리들이 모여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복을 차려입은 수백의 드워프 기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치켜든 채 주 둘로 도열해 있는 상태였고.

양쪽으로 도열한 그들이 만들어낸 길의 끝에 거대한 체구의 드워프 국왕이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채 토벌대의 용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크하하하하하하하! 어서 오게 왕국의 영웅들이여!”

라플론 광산의 위기를 해결한 토벌대가.

엘가드 왕국으로 복귀했다.

#2

“하하하하하하! 과연 대단하십니다. 저 비헬롭 가문의 쿠란차, 스노우님의 용맹함에 다시 한번 탄복했습니다.”

“크하하하하하! 우리 형님이 대단하긴 했죠. 그런데 저도 이번 토벌에서 꽤 활약을......”

“그럼요. 칼튼 에거시님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가디언을 상대로 혈전을 펼쳤단 이야기는......”

죽이 맞아 수다를 떨어대는 드워프 귀족과 칼튼 에거시를 보고 있자니 절로 미간이 찌푸려지려 했다.

‘정신 사납군...’

엘가드 성으로 복귀한 지 5일째.

나는 왕성에서도 가장 크고 화려한 방을 배정받았고, 엘가드 왕국을 위기에서 구해낸 1등 공신으로서 이보다 더할 수 없는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매끼 식탁에는 대륙 북부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진귀한 음식들과 천하의 명주들이 올라왔고, 밤이면 토벌대의 승전을 축하하는 성대한 축하연에 초대를 받았다.

그리고 나와 인연을 맺고자 하는 드워프 귀족과 기사, 엔지니어들의 방문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기본적으로 아웃사이더 기질이 강한 나로서는 매우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워프들의 방문을 거절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오, 이게 그 유명한 오리하르콘으로 만든 검이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저희 비헬롭 가문은 대대로 최고의 검장(劍匠)을 배출해낸 명문이지요. 이것은 당대의 가주께서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신 검으로, 오리하르콘 함유 비율이 무려 30%에 달하는 데다 5써클 마법 ‘번플레어’가 인첸트 된 아티펙트입니다.”

“오오오, 그 비싼 오리하르콘이 30%? 과연 대단하군요! 부럽습니다, 형님! 그런데 혹시 저는 뭐 없습니까?”

“아, 아하하... 칼튼님께서 이곳에 계실 줄은 몰랐던 지라...”

“......”

찾아오는 드워프마다 양손 가득 무언가를 싸들고 오니 어찌 이들의 방문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사실 목표로 삼았던 무력 수준(기간트 탑승 시 목숨을 위협할 존재 X)에 도달한 현재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기간트의 급을 높이기 위해 아등바등할 필요는 없었다.

고로 돈이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주겠다는 것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드워프 왕과 밤새 술잔을 기울인 첫날을 제외하고도, 이튿날부터 내 거처를 방문한 드워프들이 두고 간 선물을 골드로 환산하면 무려 40만 골드가 넘어갔다.

그리고 40만 골드라면 루페른제 1800rp급 기간트 글라우디스를 구매하고도 남는 금액이었다.

물건의 가치를 골드로 환산해준 건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내방에서 죽치고 있던 칼튼 에거시였다.

가난한 나라의 귀족 출신이라서 그런 것인지, 물건의 가치를 판단하는 눈이 제법 날카로운 녀석이었다.

‘비슷한 기능의 아티펙트라도 드워프제라고 하면 일단 프리미엄이 붙죠. 허어, 이건 트리뷰샛(휴대용 마나포)이로군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선물로 가져온 거지? 아무튼 드워프제 트리뷰샛이라면 못해도 3만 골드는......’

사실 아무리 명품이나 기물이라 한들, 내게는 그다지 쓸모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엘가드 왕국은 대륙에서 부유하기로 유명한 국가인데다, 드워프라면 판족과 함께 가장 뛰어난 아티펙트 제작 기술을 보유한 종족이기도 했기에.

간혹 나조차도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물건들이 등장하곤 했는데...

“이게 뭐라고?”

“네, 이것은 저희 브람스 가문이 사활을 걸고 개발한 소환형 전신 갑옷 ‘델토르(고대 드어프어 강철)’입니다.”

“델토르...”

인간의 국가로 따지면 후작에 해당하는 고위 귀족 가문의 드워프가 선물이랍시고 들고 온 것은 외견상 매우 평범해 보이는 은반지였다.

하지만... 그것의 진면목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반지는 일종의 ‘네스트’였다.

그러니까 기간트를 보관하는 아공간이자 소환의 매개체인 그 네스트.

일견 아무런 문양도 없는 투박한 생김새의 은반지로 보였지만, 마력을 눈에 집중해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지의 표면에 빼곡하게 새겨진 미세한 문양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말로만 들어선 잘 모르겠군. 한 번 착용해 봐도 되겠나?”

“아, 네. 스노우님께 드리는 것이니 얼마든지 입어보셔도 됩니다. 다만, 한 번 계약자가 정해지면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만 알아주십시오.”

“그런가? 기간트와는 다르군.”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이건 델토르의 프로토 타입인지라...”

“그렇다면 계약자가 사망할 경우는?”

“새로운 계약자를 찾는 게 가능합니다.”

“그래도 완전히 1회용은 아니로군.”

물론 단순히 소환과 해제만 가능한 갑옷이었다면, 저 정도 되는 귀족이 명품이랍시고 자신감 있게 들이밀었을 리가 없었다.

‘가이아가 썼던 대검과 똑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갑옷이라...’

비록 재앙급 몬스터와의 전투 도중 부러져 버리기는 했지만, 특별한 루트로 제작되었던 가이아의 기간트용 대검은 그 단단함은 물론이거니와 마력전도율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물이었었다.

그리고 타르판 브람스라는 이름의 귀족 가문 후계자가 가지고 온 은반지에 내장된 전신 갑옷 역시 대검을 만든 것과 똑같은 합금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라고 했다.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던 반지를 오른손 검지에 끼자...

스르르륵

반지는 내 손에 꼭 맞는 사이즈로 줄어들었고.

곧바로 마력을 불어넣자.

화아아아아아앗

강렬한 빛이 발산되며 전신에서 가벼운 압박감이 느껴졌다.

“오오오오오오! 멋집니다, 형님!”

칼튼 에거시가 격렬한 탄성을 토해냈고, 작게 미소 지은 타르판 브람스가 방안 한구석에 놓여있던 전신 거울을 내 앞으로 끌고 왔다.

“오...”

이곳 오르비스 대륙에 불시착한 이후. 타인의 앞에선 내내 무게감 있는 모습을 연출하려 애썼던 나로서도, 터져 나오는 감탄을 감출 수 없을 정도로 멋진 전신 갑옷이었다.

‘아니, 이건 전신 갑옷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구가 던전의 시대에 접어들기 전 유행했었던, 히어로 무비 주인공의 붉은색 슈트와 매우 흡사한 모양새의 갑옷이었다.

은빛으로 빛나던 대검의 검날과는 다르게, 빛을 완전히 흡수해버리기라도 하는 것인지 밝은 조명 아래에서도 광택이 완전히 죽어버린 검붉은 색깔의 통짜 갑옷이었다.

“색이 특이하군.”

“빛을 흡수하는 성질을 지닌 ‘롬’을 첨가했더니 그런 색깔이 나왔습니다. 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아니, 괜찮다.”

개인적으로는 번쩍거리는 은빛보다는 이쪽이 훨씬 더 취향에 가까웠다.

게다가 착용감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가벼운 가죽 갑옷을 입은 정도의 느낌이라 움직임에 어떠한 제약도 없다는 점 역시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갑옷의 진정한 강점은...

“칼튼, 네 도움이 필요하다.”

“뭐든 맡겨만 주세요, 형님!”

최상급 몬스터와 수백 마리 중상급 몬스터들의 사체를 넘겨준 이후, 지나칠 정도로 나의 추종자가 되어버린 칼튼 에거시가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답했다.

나는 녀석과 브람스 가문의 후계자를 대동한 채 내게 배정된 왕가의 수련장 중 한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왕실 시종장에게 부탁해 500rp급 기간트 브롱코스 한 기의 사용 허가를 받아냈다.

나는 시종장이 가져온 브롱코스의 네스트를 칼튼 에거시에게 건네며 말했다.

“지금부터 그걸 타고 나를 공격하도록. 시작은 전력의 50%다.”

“네에에에?”

붉은색과 흰색이 절반씩 섞인 팔찌를 받아든 칼튼 에거시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형님의 실력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마스터도 아닌데 기간트랑 맨몸으로 맞붙겠다는 건 좀...”

칼튼 에거시의 걱정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지만, 나는 녀석에게 일일이 설명을 늘어놓을 생각이 없었다.

“뭐야? 설마 그걸 타고서도 내게 질 것 같아서 빼는 건가?”

“하, 좋습니다. 얻어터지고 원망이나 하지 마쇼.”

어쩌다 보니 동생을 자처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투쟁심이 남다른 녀석이다 보니 굳이 설득하느라 힘을 뺄 필요는 없었다.

잠시 뒤.

나와 5미터가량의 신장을 지닌 드워프제 기간트 브롱코스가 훈련장의 중앙에 마주섰다.

정식 대련이 아닌 만큼 녀석이나 나나 무기를 뽑아 들지는 않았다.

[진짜로 쳐요. 칩니다?]

“50%다. 조절 잘해.”

[하, 저 칼튼 에거시입니다. 대나이만 왕국 제1검이 고작 그 정도 힘 조절도...]

“시끄럽고, 들어와.”

[쳇, 어디 혼좀 나봐라!]

부우우우웅우우웅웅

비록 500rp급 저등급 기간트라고는 하지만, 인간의 그것에 비해 수십 배는 거대한 크기와 위력을 지닌 주먹이 나를 향해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나는 녀석이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델토르가 지닌 수용력의 한계까지 마력을 불어넣었다.

‘2980? 이건... 정말 엄청나군.’

일반적으로 명품이라 불리는 검의 마력 수용 한계가 500~600에 불과하다는 걸 감안한다면, 무려 3000에 가까운 마력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전신 갑옷 델토르의 마력 수용력은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었다.

게다가 뛰어난 마력전도율로 인해 그만큼의 마력을 빨아들이는 시간 역시 무척이나 빨랐다.

나는 두 팔을 엑스자로 교차한 채 브롱코스의 주먹 공격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큭...”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두 발이 대지로부터 떠올랐고.

쿠당탕탕탕...

그대로 30여 미터를 날아 훈련장의 바닥에 처박혔다.

마력으로 인한 강화 효과로 방어력이 극단적으로 상승했을 뿐.

갑옷의 무게가 늘어나거나 저지력이 증가한 것은 아니었기에, 브롱크스의 주먹에 얻어맞은 뒤 바닥에 처박히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했다.

[형님!]

“스노우님!”

칼튼 에거시와 브람스가의 후계자가 기겁하며 내가 쓰러져있는 곳을 향해 달려왔다.

하지만 요란한 소리와 볼품없이 처박힌 모습에 비해, 실제로 전해진 충격은 그리 크지 않았다.

타앗

나는 두 발을 하늘 위로 힘차게 뻗으며 허리의 반동을 이용해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는 시선을 내려 갑옷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이거... 진짜 끝내주는군.”

무려 500rp급 기간트의 공격을(비록 50%의 힘이기는 했지만) 맨몸으로 받아내었건만...

검붉은 갑옷엔 대지에 처박히며 묻은 흙먼지 이외에는.

그 어떤 상처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