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134화 (134/169)

134화 스펙 업(6)

#1

정확한 이유는 밝혀진 바 없었지만, 테이머는 마법 계열이 아닌 육체 계열의 특성이다.

메시지창에 따로 계열이 명시되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이유는, 특성을 각성하는 순간 획득하는 스텟의 차이가 너무나 확연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각성자(헌터)들의 메시지창에 수치화되는 스텟이라고는 ‘마력’ 한 가지뿐이었지만, 사실상 마력양 하나만으로도 계열을 판별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메시지창이 아니더라도, 현대의 과학 기술은 각성자의 ‘힘’이나 ‘민첩’, ‘체력’을 어렵지 않게 수치로 환산해낼 수 있었다.

S급 테이머 특성을 각성한 아프리카 대륙 최강의 헌터 파트리스 오보노의 경우, 최초 각성 시 메시지창에 기록된 마력 수치는 4700이었다.

그리고 국제 헌터 협회 아프리카 지부에서 실시한 테스트에 따르면 최초 힘 스텟은 ‘77’, 민첩 스텟은 ‘79’, 체력 스텟은 ‘82’였다.

디테일한 부분에서의 차이는 존재했지만, 대부분 육체 계열 각성자들의 스텟은 파트리스 오보노의 그것과 대동소이했다.

하지만 마법 계열 S급 특성 각성자들의 최초 각성 시 마력 양은 최소 8000을 넘어갔기에, 육체 계열 각성자들과는 여기에서부터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참고로 대표적인 육체 계열 특성인 ‘C급 육체 강화’를 각성했을 당시의 내 스텟은 이랬고.

마력 : 800

힘 : 31

민첩 : 33

체력 : 35

육체 계열 특성인 ‘강신(S)’를 각성한 한국의 또 다른 S급 헌터의 초기 스텟 수치는 이랬다.

마력 : 4300

힘 : 81

민첩 : 78

체력 : 84

그런데 이상한 점은...

“왜 추가적인 스텟 상승이 없는 거지?”

체감만 할 수 있을 뿐 수치화할 수 없는(메시지창에서는) 나머지 스텟들과는 달리, 마력만큼은 메시지창에 표기되는 숫자로 인해 그 상승 폭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테이머 특성을 각성한 이후로도 메시지창에 표시된 마력 수치는 ‘27399’에서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는 상태.

게다가 A급 육체 계열 특성이라면 다른 스텟들 역시 그 상승폭이 확연하게 느껴져야 하건만...

“알다가도 모르겠군.”

뭐,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 외 특성의 고유스킬들은 제대로 발동되고 있었으니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이랬건 저랬건, 테이머 특성을 각성한 헌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뛰어난 몬스터를 테이밍 하느냐’였으니까.

게다가 다중 각성으로 인해 추가되는 스텟의 양은 최초 각성 시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테이머 특성의 알파이자 오메가 고유스킬인 ‘스텟 공유’로 인해 획득할 수 있는 스텟의 양에 비하면 어차피 조족지혈(鳥足之血)에 불과했을 터.

딱히 미련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테이밍을 하려는 몬스터는 S급이 확실시되는 아나투레스였으니, ‘스텟 공유’로 인한 스텟의 상승이 어마어마할 것임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었다.

조금 전.

알브레하트의 지팡이를 손에 든 안티가에게 한참 동안 매타작을 당한 뒤, 대지 위에 너부러져 꿈틀거리던 아나투레스에게서 돌연 엄청난 빛이 터져 나왔었다.

지난 10일간 내내 그래왔던 것처럼, 습관적으로 ‘각인’ 스킬을 사용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별안간 거대한 빛무리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으니, 어지간한 나조차 놀라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S-급 몬스터 아나투레스의 각인에 성공하셨습니다.]

[이제부터 S-급 몬스터 아나투레스의 충성도가 표시됩니다.]

“성... 공? 진짜로?”

다소 얼떨떨한 기분을 느끼며 시선을 아나투레스, 정확하게는 녀석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메시지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정말로 아나투레스의 충성도 수치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응? 저건 또 왜 저래?”

메시지창의 내용이 뭔가 좀... 이상했다.

[충성도 82/100(33/100)]

“82? 33? 충성도가 둘?”

하지만 당혹스러운 감정도 잠시, 나는 직감적으로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거 설마...”

나는 탑승해 있던 안티가를 격납고로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해 네스트에 마력을 불어넣어 가이아를 소환했다.

화아아아아앗

파아아아아앗

안티가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진 자리에는 위풍당당한 붉은색 기간트가 모습을 드러냈고.

나는 천천히 가이아의 두 다리 사이를 지나 여전히 대지 위에 너부러져 있는 아나투레스에게로 다가갔다.

재밌는 사실은...

안티가에 탑승하고 있을 적에는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던(물론 이때는 각인이 성공하기 전이었다) 녀석이, 기간트를 타지 않은 지금은 미약한 반항심이 깃든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역시... 기간트에 탔을 때와 아닐 때, 충성도가 다르게 적용되는 거야.”

지난 10일간 어찌나 혹독하게 두들겨 맞았는지, 토벌전이 끝난 직후에는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덜덜 떨었었던 가이아의 존재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아나투레스를 향해 그리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다가갔고.

녀석의 거대한 얼굴 앞에 이르러서야 걸음을 멈춘 다음.

천천히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움찔

아나투레스는 한 차례 몸을 떨긴 했으나 그것 이상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들어 올린 손으로 내 첫 번째 소환수의 이마에 새겨진 각인을 쓰다듬었다.

그르르르르르르...

아나투레스가 낮은 울음소리를 토해냈고.

“재생.”

화아아아아아아앗

‘테이머(A)’ 특성의 고유스킬인 ‘재생(A)’을 시전하자, 내 손끝에서 터져 나온 빛이 아나투레스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이윽고 알브레하트의 지팡이에 의해 생긴 무수한 상처들이 하나둘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그륵?

상처가 사라짐과 동시에 고통까지 사라져버린 것인지 미약한 반항기가 서려있던 아나투레스의 눈동자가 휘둥그레 커졌다.

그리고...

[충성도 34/100(82/100)]

자리가 뒤바뀐 충성도의 뒷자리가 3에서 4로 증가했다.

아마도 기간트에 탑승하지 않은 본신에 대한 충성도가 상승한 것이리라.

“쳇, 상승분도 따로 적용되는 건가?”

이건 좀 아쉬운 부분이긴 하지만, 어쨌든 충성도가 상승한 것이니 이득은 이득이었다.

사실 30대 초중반의 충성도라면, 몬스터에게 ‘주인’이라기보다는 ‘만만한 집사’ 혹은 ‘불편한 동료’ 정도로 인식된다고 보는 편이 합당할 터였다.

‘뭐, 무작정 덤벼들지 않는 게 어디야.’

이전처럼 살기를 줄기줄기 흘려대지 않는 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라 할 만했다.

물론 이런 처참한 수준의 충성도로는, 테이머가 내린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길 바랄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이젠, 소환된 아나투레스가 나를 공격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아마도 완전히 길들여지지 않은 탓에 몬스터의 습성이 남아 있는 녀석은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공격하려 들 테지.

그리고 그 말인즉.

‘더이상 마스터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이전까지는 기간트에 탑승하지 않은 본신의 상태가 내 가장 큰 약점이었었지만, 아나투레스의 각인에 성공한 지금부터는 오히려 기간트전 이상의 강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이 녀석을 상대하려면, 과연 마스터가 몇이나 필요할까?”

확실한 것은 어지간한 마스터 서넛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란 사실이었다.

나는 아나투레스의 이마에 새겨진 각인에서 손을 뗐다.

녀석은 여전히 불퉁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긴, 33이나 34나 거기서 거기지.’

반면 기간트에 탑승한 상태로 적용되는 충성도는 무려 82.

S급 몬스터의 초기 충성도가 80을 넘긴다는 건, 지구 최강의 테이머 파트리스 오보노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뭐, 충성도가 높아서 나쁠 이유야 없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82’는 매우 어중간한 숫자였다.

왜냐하면 충성도 90을 달성하지 못한 소환수는 ‘스텟 공유’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지. 충성도를 높이는 방법을 알아내는 수밖에...’

어쨌든 무려 S급 몬스터의 각인에 성공함으로 인해.

내 전투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것만큼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2

엘가드 왕국의 국왕과 대소신료들은 무려 보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심각한 회의를 거듭하는 중이었는데.

호방한 드워프 종족의 특성으로 인해. 낮에는 격렬하게 의견을 대립하며 싸워대다가도, 밤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하하호호 웃으며 술잔을 부딪히는 진풍경이 내내 지속되고 있었다.

“어차피 결론은 하나요. 플렉시온급 마정석의 소유자가 누구이지 모르지는 않겠지? 지분 100%를 왕국의 은인인 스노우경이 소유하고 있소! 그 말인즉! 우리 엘가드 왕국이 아니더라도, 그에게 기간트를 제작해 줄 곳은 얼마든지 있을 거란 뜻이오!”

늙수그레한 얼굴을 한 엘가드 왕국 최고 엔지니어의 격렬한 주장에, 대다수의 드워프들이 이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모든 드워프가 그런 건 아니었다. 날카로운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왜소한 덩치의 드워프, 엘가드 왕국의 내무부 수장 도리안 니하람이 입을 열었다.

“그걸 누가 모른답니까? 하지만 우리 왕국은 물론이고, 대륙의 역사를 돌아봐도 하이엔드급(출력 3000rp 이상) 기간트를 외부로 유출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그 누가 국가의 기술력이 총망라된 하이엔드급 기체를 나라 밖으로 내돌린단 말입니까?”

이에 또다시 대다수 드워프들의 고개가 아래위로 움직였다.

물론 이에 대한 반박 역시 뒤를 이었다.

“그거야, 최초의 하이엔드급 기간트가 제작된 지 고작 20여 년밖에 지나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니오? 그리고 대륙에 존재하는 하이엔드급 기간트라고 해봐야 고작 10기도 안 되는데, 밖으로 돌리고 말고 할 게 어디 있었겠소!”

“고작 10기도 안 되는 고귀한 기간트이니 하는 말 아닙니까!”

“일부러 만들지 않은 게 아니지 않나! 플렉시온급 마정석을 구할 방법이 없으니 만들 수 없었던 것뿐이지! 그리고... 앞으로 또 언제 플렉시온급 마정석을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소? 이참에 하이엔드급 기간트의 제작 경험이라도 늘리는 것이 이득이란 걸 정년 모른단 말이오!”

“핀트님의 말씀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왕국의 은인이라고 한들 스노우경은 명백히 외부 인사로......”

“언제까지 그런 답답한 소리를......”

무려 보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반복된 이야기였기에,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둘의 격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드워프는 없었다.

이 모든 것은 재앙급 몬스터 토벌에 막대한 공을 세운 스노우란 용병 오너의 제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3000rp급 기간트의 제작을 의뢰하고 싶습니다. 아, 토벌 성공에 대한 보상이라고 말 할 수도 있겠군요.’

무려 3000rp급 기간트를 만들어 달라는 터무니없는 제안.

하지만 토벌의 결과로 그가 소유하게 된 ‘플렉시온급 마정석’으로 인해, 이는 그저 터무니없는 제안으로 치부해 버릴 수 없는 문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드워프 엔지니어들의 감정에 따르면.

재앙급 몬스터의 핵인 ‘플렉시온급 마정석’의 경우, 비록 내포된 마력의 양은 드워프 국왕의 전용기인 ‘트리스탄’에 못 미치지만.

마력의 순도만큼은 트리스탄에 사용된 플렉시온급 마정석을 한참이나 능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곧, 3000rp급 기간트의 마력엔진을 제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재료라는 것을 의미했고.

3000rp급 기간트의 제작비 중 70%가량을 차지하는 것이 마력 엔진인 만큼, 마력 엔진의 전부라 할 수 있는 플렉시온급 마정석이 존재하는 이상 기간트를 제작하는 데 문제가 될 사항은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토벌 성공 보상으로 약속했었던 2000rp급 기간트는 물론, 두 가디언 보스페로스와 라비린토스의 부산물에 관한 지분도 모두 포기하겠다고 했으니.

사실상 ‘기술 유출’에 대한 걱정을 제외한다면.

엘가드 왕국과 드워프족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이 없는 제안이었다.

“흐음...”

높은 곳에 마련된 용상에서 조용히 대신들의 회의를 바라보던.

거대한 덩치의 드워프 국왕.

파이톤 그레이엄의 입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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