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기간트 '브롱코스'(2)
#1
엘가드 왕국의 국왕, 파이톤 그레이엄.
그는 하나의 종족을 이끄는 훌륭한 리더이자, 본신의 무력 수준으로만 따지자면 왕국 최강의 오너 오펠로 브롬에 필적할 만한 힘을 지닌 위대한 전사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타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뭐, 그래도 이제는 꽤...’
나와 드워프 국왕의 무기는 쌍둥이처럼 닮은 길이 1.8미터가량의 대검이었다.
이것은 엘가드 왕국 최고의 검장(劍匠)이 제작한 무기로 똑같은 재질, 똑같은 길이, 똑같은 무게를 지닌 세상에 단 두 자루밖에 존재하지 않는 명검이었다.
나는 파이톤 그레이엄 국왕으로부터 선물 받은 대검으로, 그와 어울려 격렬한 대련을 벌이는 중이었다.
대검과 대검이 부딪칠 때마다 굉음과 함께 엄청난 마력의 폭풍이 휘몰아쳤고, 단단한 재질로 만들어진 국왕 전용 연무장의 바닥과 벽이 파괴되었다.
파이톤 그레이엄 국왕은 내가 직접 무기를 맞대본 이들 중 가장 강한 축에 속하는 상대였다.
물론 재앙급 몬스터나 아나투레스 같은 녀석들의 경우엔 본신(本身)인 상태로는 아예 대적 자체가 불가능한 괴물들이니 제외.
그러니까 대상을 유사 인류로 한정한다면. 마스터의 벽과 마주하고 있는 브라이드 영지의 알버트 자작 혹은 엘가드 왕국 오너들의 수장인 오펠로 브롬 정도나 비교가 가능한 수준의 강자라는 뜻이었다.
‘최상급 엑스퍼트 중에서도 최상위권 강자... 어쩌다 보니, 나 역시 이들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와 버렸군.’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소환형 전신 갑옷 ‘델토르’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는 여전히 그 정도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었지만.
뛰어난 마력전도율 덕분에 엄청난 방어력을 획득할 수 있는 델토르를 착용한 이후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게다가 기간트에 탑승한 채 전투를 치를수록 점점 더 위력을 더해가는 수십 종류의 스킬들까지.
그 결과, 이전이라면 10여 합을 겨루는 것조차 힘들었을 파이톤 그레이엄 국왕 수준의 강자와 대등한 승부를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크윽...”
“큭...”
또 한 번의 격렬한 검격의 교환을 끝으로 30여 분이나 지속되었던 대련이 마무리되었다.
터엉
투구를 벗어 던진 파이톤 그레이엄 국왕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찡그리며 내 전신을 훑었다.
“그걸 만든 게 브람스 녀석들이라고 했나? 빌어먹을 자식들, 이런 걸 만들었으면 나한테 먼저 가지고 올 것이지...”
“큭, 폐하의 육체는 이 갑옷보다 더 단단하지 않습니까.”
“내 몸이 제법 단단한 건 사실이지만, 자네의 마력으로 강화된 그 갑옷만은 못하지. 대체 마력을 얼마나 퍼부었길래... 마력장이 단 한 번도 깨지질 않는 건가?”
“그것마저 없었다면, 폐하와 이런 식의 대련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원래라면 최상급 엑스퍼트, 그중에서도 극에 달해있는 강자의 검을 30여 분 동안이나 받아내는 걸 육체가 견딜 수 없었을 테니까.
실제로 엘가드 성으로 복귀한 이후, 하루에 한 번씩 꼬박꼬박 파이톤 그레이업 국왕과 대련을 벌이고 있었지만.
델토르를 선물 받기 이전의 대련 양상은 온갖 버프와 스킬을 사용하며 국왕의 검과 맞부딪치는 횟수를 최대한 줄이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는데.
제아무리 버프로 신체를 강화한다 한들, 일반적인 갑옷으로는 파이톤 그레이엄 국왕급 강자가 구사하는 검격의 반동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델토르를 얻은 이후로는 훨씬 더 과감한 전투가 가능했고.
엘가드 성에서의 마지막 날인 오늘에 이르러서는 완벽하게 ‘동수’를 이루는 데 성공하고야만 것이다.
이것은 지구 기준, 본신의 힘만으로도 S급을 제외한 헌터들 중 최정상에 도달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뭐, 기간트라는 꼼수가 개입하긴 했어도... 아나투레스라는 괴물을 테이밍한 순간, 그 어떤 S급이라 해도 내 상대가 되지는 못할 테지만.’
그러고 보면, 무척이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엘가드 왕국에서의 일정이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가장 큰 소득은... 6개월 뒤에 얻게 될 하이엔드급 기간트지.’
나는 파이톤 그레이엄 국왕과의 마지막 대련을 마친 뒤.
엘가드 왕국의 왕립병기창으로 이동해, 다크서클이 역력한 그곳의 수장 핀트 발레트로부터 특별하게 개조된 브롱코스 3기의 네스트를 넘겨받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일정이 좀 빠듯하긴 하더군요.”
“이곳에 너무 오래 머물렀던 터라... 그런데 제가 부탁드렸던 건?”
“...말씀하신 대로 장갑 외부를 ‘엘타니움’으로 코팅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브롱코스의 네스트는 소환 이외의 기능은 제거된 상태입니다.”
주로 훈련이나 용역에 투입되는 500rp급 이하의 기간트는 네스트를 만들지 않는 경우도 흔했지만.
부(富)와 기술을 모두 지닌 엘가드 왕국의 경우, 저등급 기간트들 역시 단 한 기도 빠짐없이 네스트를 지니고 있었고.
마력사용자라면 누구나 탑승이 가능하도록, 계약과 관련된 마법진은 모두 제거된 상태였다.
일반적인 브롱코스의 그것과는 다르게 은빛으로 빛나는 네스트.
이는 브롱코스의 장갑을 마력전도율을 증가시키는 금속 ‘엘타니움’으로 코팅해 버렸기에 일어난 변화였다.
6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하이엔드급 기간트를 제외한 모든 것을 챙긴 나는, 파이톤 그레이엄 국왕을 비롯한 드워프들의 환송을 받으며 엘가드 성의 성문을 넘었다.
그리고 내 곁에는...
제국까지의 여정을 함께할 칼튼 에거시가 말머리를 나란히 한 채, 배웅을 나온 드워프들을 향해 연신 손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2
엘가드 왕국의 거대한 외성벽 아래에서 떠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던 내무대신 도리안 니하람이 입을 열었다.
“정말로 떠났군요.”
시선을 정면으로 고정한 채, 밤송이의 그것처럼 뻣뻣한 수염을 긁적거리던 파이톤 그레이엄 국왕이 답했다.
“그는 드워프가 아닌 인간이니, 언제까지고 이곳에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건 그렇지만, 너무 갑작스러운지라... 이쪽의 사정 같은 건 전혀 봐주지 않더군요.”
하기사, 고작 떠나기 이틀 전에 통보를 해왔으니.
그날에서야 겨우 회의의 결론을 내린(그것조차 전날 스노우와 독대했던 국왕의 결단으로 인해 가능) 왕국의 관료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만 했다.
스노우의 부탁으로 인해 개조된 브롱코스를 준비해야했던 왕립병기창의 엔지니어들은 물론이고, 하이엔드급 기간트와 관련된 서류와 계약서를 준비해야만 했던 수많은 부서의 관료들 역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었다.
“어쩌겠나? 어느 모로 보나 아쉬운 건 이쪽이니, 최대한 그의 비위를 맞춰주는 수밖에.”
“뭐, 저만한 강자라면 그럴만한 가치는 충분할 테지요. 그런데... 대체 왜 페랄 산맥으로 방향을 잡은 걸까요?”
이펜타르크 제국과의 교류는 대부분 왕국의 유일한 항구인 에링스를 통해 이루어진다.
엘가드 성에서 에링스 성까지 가는 길은 지나칠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어 고작 3일이면 도착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이펜타르크 제국의 항구까지는 불과 이틀이면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그런데 스노우 일행이 선택한 길은 대륙 북서부의 엘가드 왕국과 이펜타르크 제국 사이에서 시작해, 대륙 중부의 샌포드 왕국과 바이런 왕국까지 이어진 페랄 산맥을 넘어가는 육상 루트였다.
물론 아주 가끔 이 루트를 이용하는 드워프나 인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페랄 산맥에서도 험하기로 유명한 높디높은 두 개의 산과 그 산과 산 사이에 존재하는 엄청난 규모의 호수까지 경유해야 하는 이 루트를 이용할 경우, 에링스 항구를 통하는 루트에 비해 곱절에 가까운 시간을 허비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페랄 산맥으로 향한 이유는...
“에거시경이 배를 타지 못한다고 하더군.”
“...네?”
정확하게는 멀미가 병적으로 심해 배를 타는 것을 꺼리는 것이었다.
멀미라는 게 마력사용자를 가려가며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다만 의외였던 점은...
도리안 니하람이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스노우경이... 그런 사정을 봐줄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파이톤 그레이엄 국왕과 왕립병기창의 수장 핀트 발레트를 비롯해.
도리안 니하람의 중얼거림을 들은 대다수의 드워프가.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격하게 아래위로 흔들었다.
#3
드워프들에게는 그다지 쓸모없는 동물이었지만, 왕국을 방문하는 인간이나 엘프를 위해 준비된 말들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중 잘 관리된 티가 역력한 말 두 마리를 선물 받았고, 말 머리를 나란히 한 채 대륙의 중부까지 이어진 페랄 산맥으로 진입했다.
몬스터가 아닌 평범한 동물 역시 ‘테이밍(A)’ 특성의 적용 대상(유사 인류에게는 적용 불가)이었기에, 나는 꽤 쓸만해 보이는 말에게 특성의 고유스킬을 사용했다.
예상대로 고유스킬 ‘포획(A)’과 ‘각인(A)’은 단 한 번의 실패조차 없이 곧바로 성공했고.
[충성도 97/100]
발키리(암놈)라는 이름을 부여한 녀석의 충성도는 각인이 이루어지는 순간 무려 97을 기록했다.
각인에 성공한 녀석을 사육장으로 이동시키자 칼튼 에거시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그 안의 상황을 알 수 없는 나는 혹시나 아나투레스가 발키리를 잡아먹어 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같은 주인의 소환수라는 동질감 때문인지, 그런 불행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대체 말을 어디로... 그런 마법도 있습니까?’
나는 놀라는 칼튼 에거시의 말 역시 테이밍 해버린 다음 사육장으로 이동시켰고.
그로 인해 말의 통행이 불가능한 지형으로 접어든 여정 3일 차에 방목해야만 했을 말들을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와... 마법이란 정말 편리한 것이로군요.’
사실 일반적인 아공간에는 생명체를 집어넣을 수 없었지만, 녀석에겐 그저 대단한 마법으로 보였을 테니 굳이 설명을 추가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동 중에도 틈틈이 칼튼 에거시의 수련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아직까지 훈련병으로 지정되어있는 녀석의 성장 속도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물론 성장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만큼 혹독하게 굴려지는 것 역시 녀석의 성장을 부채질하는 요인 중 하나였을 테지만.
사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에 대한 재능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가르침이라곤.
오직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것 이외엔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가르침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준비한 것이 바로...
“중력 조절.”
[크윽... 젠장, 어제보다 더 무거워졌잖아!]
전신이 은빛 금속으로 코팅된 500rp급 기간트 브롱코스였다.
순식간에 칼튼 에거시가 탑승한 브롱코스의 무게가 2.5배로 껑충 뛰었다.
‘중력 조절(C)’ 스킬의 조절 한계는 본래 무게의 50~200%였지만, 다른 스킬들과 마찬가지로 효과가 극적으로 상승한 현재는 대략 25~400%까지 조절이 가능해진 상태였다.
그런데 이는 내 몸에 직접 시전할 경우에만 온전히 적용되는 수치였고, 몸에서 멀어질수록 스킬의 효율이 점차 감소했다.
그러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생각해낸 것이 바로, 기간트 대검이나 전신 갑옷 델토르를 제작하는데 사용된 ‘엘타니움’을 이용해 최대한 스킬의 효율을 상승시키는 것이었는데.
순정 상태에서 고작 1.5배가량 증가하는 것에 그치던 ‘중력 조절’ 스킬의 효과가, 마력전도율과 마력반응력이 뛰어난 ‘엘타니움’ 코팅에 의해 무려 최대 3배까지 증가했다.
그리고 기간트 브롱코스의 무게가 무거워지는 만큼...
쿠우웅쿠우웅쿠웅......
[젠장, 통짜 쇠로 된 갑옷을 입고 물속을 걷는 기분이로군.]
훈련병의 성장 역시 가속화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