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137화 (137/169)

137화 파사이산의 몬스터(1)

#1

타아아아앗

콰아아아아아아앙

쿠당탕탕탕......

똑같은 생김새의 은빛 기간트 두 기가 순간적으로 교차했다 떨어졌고.

그중 발차기에 적중당한 한 기가 잡풀이 빼곡한 대지 위를 볼썽사납게 나뒹굴었다.

[아오, 젠장! 아니, 형님... 진짜로 형님의 기간트가 더 무거운 거 맞아요?]

이곳은 페랄 산맥 최북단에 위치한 파사이산의 중턱이었다.

해발 2700가 넘어가는 이 산의 중간 지점에서, 약간(?)의 개조를 거친 브롱코스에 탑승한 두 남자는 무려 30분이 넘어가도록 대련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덕분에 그들의 주위로 반경 300미터가량은 온통 박살 난 바위와 대지, 나무의 파편들로 가득했다.

지구의 환경운동가들이 목격했다면 그야말로 입에 거품을 물었을 만한 광경이었지만. 자연환경이 보존되다 못해 넘쳐흐를 지경인 이곳 오르비스 대륙에서, 그런 사소한(?) 것 따위에 신경을 쓰는 이는 아무도 없을 터였다.

게다가 이곳은 몬스터를 제외한 지성체의 발길이 뜸하디뜸한 페랄 산맥.

어쩌면 파괴된 자연이 원상태를 회복하는 먼 훗날까지도, 오늘의 참사를 알아채는 존재는 등장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대지 위에 너부러진 브롱코스의 맞은편.

유려한 발차기로 상대를 날려버린 또다른 브롱코스의 외부 통신 마법진을 통해 무뚝뚝한 사내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래. 대체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할 셈이냐? 허약한 네 녀석의 기간트보다, 50% 정도는 더 무거울 테니 어서 일어나기나 해.]

[젠장, 그런데 대체 어떻게 그런 움직임을... 물론 형님 실력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브롱코스로 해낼 수 있는 기동에는 한계가 있을 텐데...]

[믿건 말건 알아서 하고, 아직 교육 시간이 절반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엄살 부리지 말고 일어나도록. 이걸 하겠다고 떼를 쓴 장본인이 네 녀석이라는 걸 잊지는 않았겠지?]

[누가 뭐래요? 쳇, 그전에 딱 한 번만 들어봅시다. 정말로 나보다 무거운... 으아아아악!]

비척비척 일어나며 투덜거리는 칼튼 에거시의 말이 채 끝을 맺기도 전에 또 다른 브롱코스의 공격이 재개되었고, 기겁한 그는 비명을 토해내며 황급히 몸을 날렸다.

[비겁하다! 말하고 있는 사람을 공격하다니!]

[언젠가 네 놈은 그 입 때문에 호된 꼴을 당하게 될 거다.]

[아니, 뭔 그런 악담을... 아아아악! 아, 진짜! 말하는데 공격하지 말라고!]

[문답무용!]

[그건 또 뭔데!]

쿠웅쿠웅쿵쿵쿵...

콰아아아앙

또다시 대련을 이어가기 시작하는 두 기의 브롱코스.

그런데 두 기간트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펴보면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작 4.4톤에 불과한 브롱코스의 기동음치고는 그 소리가 말도 안 되게 요란한데다, 그들이 내딛는 곳마다 푹푹 파여나가는 대지의 흔적들 역시 저등급 기간트의 그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파괴적이었다.

이는 스노우의 ‘중력 조절(C)’ 스킬에 의해 두 기간트의 무게가 극단적으로 증가한 탓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스킬의 효과를 증폭시키기 위해 개조(코팅)까지 감행한 브롱코스들의 현재 무게는 각각 11.2톤과 17.4톤.

2.5배가량 증가한 칼튼 에거시의 브롱코스에 비해, 스킬의 최대 효과(대략 4배)가 적용된 스노우가 탑승한 브롱코스의 중량이 훨씬 더 무거웠는데.

오히려 움직임 면에서는, 무려 6톤가량 무거운 스노우의 브롱코스가 2배 이상 날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빌어먹을 괴물 같으니라고!]

[역시 입이 문제로군.]

[크아아아악!]

브롱코스의 (최대)출력은 500rp.

출력이 500rp라는 건, 오너의 움직임을 재현할 수 있는 비율이 현격하게 떨어진다는 걸 의미했다.

이론상으로는 마력엔진의 출력이 기준 출력인 1000rp에 도달할 경우 오너의 움직임을 100% 재현해 낼 수 있어야 했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기간트라는 병기의 크기가 인간의 수십 배에 달한다는 데 있었다.

때문에 1000rp급 기간트의 경우, 실제로는 오너 개인의 편차를 감안했을 때 30~40% 정도의 움직임을 재현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

오너의 움직임을 100%에 가깝게 재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200rp급 이상의 고등급 기간트를 필요로 했는데.

사실 단순히 출력만으로 비교하기 힘든 이유는 2200rp급 기간트의 경우, 1000rp급 기간트에 비해 월등한 실력의 오너(근위기사급)가 탑승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1000rp급 기간트로 30~40%의 재현율을 보이는 오너가 2200rp급 기간트에 탑승한다면 제대로 달리는 것조차 힘들어질 게 분명했고.

반대로 2200rp급 기간트의 오너인 근위기사가 1000rp급 기간트에 탑승한다고 한들, 기간트 성능의 한계로 인해 50% 이상의 재현율을 달성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2200rp급 이상의 고등급 기간트에 탑승한다고 해도, 정말로 100%에 가까운 재현율을 선보일 수 있는 오너는 오르비스 대륙을 통틀어 채 50명도 되지 않을 터였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고작 출력 500rp에 4.4톤에 불과하던 브롱코스의 무게가 무려 11.2톤으로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30% 이상의 재현율을 선보이고 있는 칼튼 에거시는 가히 천재 중의 천재라 할만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를 상대로 가르침(?)을 내려주고 있는 이가 천재라는 표현조차 턱없이 부족한 괴물 중의 괴물이라는 데 있었다.

‘발소리나 대지가 파괴되는 모양새로 보면 나보다 무겁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대체 저 움직임은 어떻게 설명할 거냐고!’

17톤이 넘어간다는 스노우의 말이 100% 사실이라면,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비호처럼 움직이고 있는 저 조그마한 기간트는...

지금 이순간 오르비스 대륙에 존재하고 있는 기간트 중, 가장 무거운 기체일 것임이 틀림없었다.

‘드워프 왕의 전용기 ‘트리스탄(중갑형, 3000rp)’이 15톤가량에 불과하다고 하니 확실하겠지.’

그런 주제에, 훨씬 더 가벼운 기체를 탄 자신보다 2배 이상 빠른 속도와 유연한 움직임을 선보이는 스노우의 브롱코스.

그 미증유의 존재를 바라보는 칼튼 에거시의 눈에는 더 이상 눈곱만큼의 질투심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질투 같은 건 같은 인간에게나 하는 거지. 저런 괴물에게 그런 감정을 품는 건 병신 짓일 뿐이야.’

조금 성질이 다르긴 하지만, 내심 상대의 실력과 재능에 감탄하고 있는 건 스노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S급 재능이라 그런가... 확실히 달라. 성장하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질 정도다.’

당연한 말이지만 메시지창에 나타나는 수치상의 변화는 전무했다.

제아무리 천재적인 재능에 더해 ‘호랑이 교관(S)’ 스킬의 효과까지 적용받고 있다 한들, 90을 넘어선 능력치를 상승시키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야만 할 테니까.

그것도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는 가정하에.

하지만 수치상의 변화가 없다고 해서, 명백하게 상승하고 있는 실력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가 바로, 당사자인 칼튼 에거시였다.

‘더럽게 아프긴 하지만... 이건 인생에 두 번 다시 없을지도 모를 기회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셨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만약 기연이라고 판단되는 상황에 직면한다면, 바짓가랑이에 매달려서라도 붙잡고 늘어지라고. 대륙 최강자(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확신했다)와의 대련이 기연이 아니면 뭐가 기연이겠어!’

스르르르륵

콰아아아아아앙

쿠당탕탕탕탕...

[끄아아아악! 젠장! 진짜 빠르긴 더럽게 빠르......]

사각으로 파고든 스노우의 브롱코스에게 또 다시 일격을 허용하며 나뒹구는 칼튼 에거시.

하지만 투덜거리는 그의 입과는 다르게.

오뚜기처럼 벌떡 몸을 일으키는 그의 움직임에는 여전히 힘이 넘치고 있었다.

#2

엘가드 왕국에서 육로로 이동해 이펜타르크 제국에 이르기 위해서는 해발 2700여 미터의 파사이산과 2500여 미터의 렘노스산, 그리고 두 산 사이에 자리 잡은 ‘레게’라는 이름의 거대한 호수를 지나는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만 했다.

물론 페랄 산맥의 중간 지점까지 내려가 샌포드 왕국의 국경지대 근처를 지나는 루트를 이용한다면, 비교적 낮고 평탄한 지대를 훨씬 더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을 테지만.

이 루트를 이용할 경우, 파사이-레게-렘노스를 거치는 것에 비해 2배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는 것을 각오해야만 했다.

딱히 지형에 따라 이동에 제약을 받거나 몬스터의 위협 따위를 경계할 이유가 없는 스노우와 칼튼 에거시가 선택한 루트는 당연히 파사이산과 레게 호수, 렘노스산을 통과하는 최단 루트였다.

“뭐, 그래봤자 바닷길을 이용하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아니, 아직도 그 소립니까? 거긴 뭐 맹숭맹숭하니 볼 것도 없어요. 대륙 북부를 방문했다면, 적어도 그 유명한 요정의 호수(레게 호수) 정도는 구경하고 가야죠.”

“내가 듣기론 그곳에 사는 요정들은 인간들이 접근하는 족족 잡아 죽이는 걸로 유명한 녀석들이라고 하던데?”

“아, 아니에요! 요정이 무슨 몬스터도 아니고. 물론 성질이 좀 사나운 건 사실이지만... 녀석들이 공격하는 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요정들의 성소에 접근하는 놈들에 한해서라고요.”

“요정의 성소?”

“네, 저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한때 신이었었던 요정들의 선조가 잠들어 있는 곳이라고 하더군요.”

“그래? 흐음, 신의 힘이 잠들어 있는 장소라...”

“설마... 엉뚱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요?”

“왜? 네가 겁먹을 정도로 강력한가? 그 요정이란 녀석들이?”

“아니, 그건 아닌데. 대륙 북부에는 레게 호수의 요정을 괴롭히면 저주를 받는다는 전설이...”

“이상한 부분에서 허술한 놈이로군. 그런 전설이라면 내가 들어본 것만 해도 수십 개는 될 거다.”

“아니, 요정의 저주는 헛소문 따위가 아니라......”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며 어느새 파사이산의 정상 부근에 다다랐다.

그런데 그때...

...아아아아아앙

.......어져! ....지라고!

...어어어어엉

...오오오오오오오!

희미하게 들려오는 폭음과 진동, 무언가의 하울링이 두 사람의 예민한 감각을 자극했다.

시선을 돌려 소란의 진원지를 바라보는 칼튼 에거시의 눈동자에 호기심이 깃들었다.

“호오... 뭔긴 모르겠지만 한판 붙고 있는 것 같은데요?”

잠시 멍한 표정으로 허공의 어딘가를 응시하던 스노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여럿이 하나를 상대하고 있군.”

“네? 여기서 그런 게 보인다고요? 아, 마법인가? 그나저나 여럿이 하나를 공격하고 있다면... 몬스터 사냥꾼들인가?”

스노우의 고개가 다시 한번 아래위로 움직였다.

“그런 것 같군. 아, 방금 하나가 사라졌다.”

“네? 사라지다니, 그게 무슨...?”

“여럿 중 하나가 죽었다는 뜻이지.”

“아하... 이런, 빨리 가서 도와야겠군요.”

다급하게 말하는 칼튼 에거시와는 달리, 스노우의 반응은 시큰둥하기 그지없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어깨를 작게 으쓱인 그가 말을 이었다.

“뭐, 그거야 네 마음이니까. 그런데 이건 알고 가는 게 좋을걸?”

“뭘요?”

당장이라도 몸을 날리려던 칼튼 에거시가 고개를 돌려 스노우를 바라보였다.

스노우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의 내용은 담담함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가 오른손 검지로 소란이 일고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저곳에 있는 ‘하나’... 아마도 최상급 몬스터인 것 같다. 품고 있는 마력의 수준으로 봤을 때, 최소한 보스페로스나 프리가모스 정도는 되는 것 같군.”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칼튼 에거시는 한껏 끌어올렸던 마력을 도로 내리눌렀다.

“아니, 형님. 그걸 먼저 말해 줬어야죠.”

짧은 시간 동안 장족의 발전을 이룬 칼튼 에거시였지만.

여전히 최상급 몬스터를 홀로 사냥할 만한 실력에는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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