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139화 (139/169)

139화 파사이산의 몬스터(3)

#1

“아니, 형님. 그걸 먼저 말해 줬어야죠.”

첫 만남 이후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하며, 스노우라는 인간의 성향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을 끝낸 칼튼 에거시.

그리고 그가 파악하기로, 자신이 형님으로 모시길 자처한 스노우라는 인간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간.’

기본적으로 지독할 정도로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더 없이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아주 가끔은 일곱 살 어린아이에 비견될 만한 유치한 행동도 서슴없이 저지르곤 했다.

그리고 그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건 간에, 매번 난처한 상황에 빠지거나 골탕을 먹곤 했던 칼튼 에거시였다.

‘이런 특별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낀 칼튼 에거시는 재빨리 허리춤에 매달린 아공간주머니를 더듬었다.

“최상급 몬스터를 상대하려면 일단 기간트부터 첼시로 교체를...”

아공간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첼시의 테네시를 꺼내, 현재 차고 있는 브롱코스의 그것과 교체를 하려는 심산.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것을 두고 볼 스노우가 아니었다.

기간트를 교체하려던 칼튼 에거시의 시도는 스노우의 입에서 나온 몇 마디 말에 의해 미수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번거롭게 교체는. 전투는 그대로 브롱코스로 치른다.”

고작 500rp급 기간트를 타고 최상급 몬스터를 상대하라는 미친 소리에 발끈하는 칼튼 에거시.

“아니, 브롱코스를 타고 최상급 몬스터를 상대하라고요? 그게 말이 됩니까? 혹시 이거, 신종 암살 방법인가?”

하지만 정작 스노우는 뭐가 문제냐는 듯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너 하나 죽이는데 그런 귀찮은 방법을 쓸 것 같아? 그리고 네 녀석이 첼시를 타면? 최상급 몬스터를 잡을 수는 있고?”

“그, 그건 아니지만...”

“이것도 수련의 일종이다. 잔말 말고 탑승해. 저들을 죄다 죽일 생각이 아니라면.”

“하, 젠장...”

씨알도 먹힐 것 같지 않을 것임을 직감한 칼튼 에거시가 인상을 찡그리며 오른손 손목의 팔찌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이랬든 저랬든, 현재 자신은 스노우라는 절대 강자에게 수련을 받는 처지였고.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칼튼 에거시 스스로가 자처한 일이었다.

“아오, 내가 괜한 소리를 지껄였지! 괜한 소리를! 테리마!”

타아아아앗

투덜거리는 입과는 다르게, 은은한 빛무리와 함께 등장한 기간트에 탑승하자마자 민첩하게 몸을 날리는 칼튼 에거시.

엄청난 속도로 파사이산의 거대한 나무들 사이를 빠져나간 그가 외부 통신 채널을 개방하며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젠장! 뭘 멀뚱히 서 있어! 걸리적거리니 다들 꺼지라고!]

대지 위에 죽은 듯 너부러져 있는 기간트 제페토와 휘둥그레 뜬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여섯 명의 인간.

‘몬스터 사냥꾼들인가?’

애초에 높고 험하기로 유명한데다, 몬스터들의 밀도가 대륙 최고 수준인 파사이산을 찾는 인간군상의 99%는 몬스터 사냥을 업으로 삼는 용병들이었다.

게다가 기간트까지 보유한 걸 보면 꽤 이름있는 파티일 확률이 높았다.

‘이자들도 나만큼이나 재수가 없었군.’

파사이산의 몬스터 밀도가 높은 이유는 이렇다 할 지배자가 존재하지 않는 까닭이었다. 그런데 여태껏 알려지지 않은 최상급 몬스터가 등장했고, 이 재수 없는 파티와 마주친 것이다.

그리고 고작 500rp 기간트인 브롱코스를 타고 최상급 몬스터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칼튼 에거시 역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처지였다.

다만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아직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든든한 형님의 존재로 인해 적어도 목숨의 위협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 정도.

‘...죽기 전엔 구해주겠지? 설마 나 몰라라 하진 않을 거야.’

다만 그 ‘형님’이라는 작자의 성격이 워낙에 괴팍한지라, 마음 한구석에서 치밀어 오르는 불안감까지 어찌할 수는 없었다.

파바바바바바밧

그나마 제정신이 아닌 그의 형님도 최상급 몬스터를 앞에 두고 그 빌어먹을 ‘중력 마법’을 사용할 생각까지는 없었는지, 대지를 박차는 브롱코스의 발길은 경쾌하기 그지없었다.

‘가볍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절실하게 체감하고 있는 건 브롱코스의 오너인 칼튼 에거시였다.

지난 며칠간 최소 2배(약 8.8톤)에서 최대 3배(약 13.2톤)에 달하는 무게를 짊어진 채 최상급 몬스터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괴물과의 대련(을 빙자한 구타)을 이어온 그에게 있어, 고작 4.4톤의 기본 중량은 말 그대로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있다. 지금이라면 상대가 무엇이든 두렵지 않아.’

칼튼 에거시의 시선에 최상급으로 추정되는 몬스터의 모습이 선명하게 담겼다.

겉모습만 보자면 긴장감을 유지하는 게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귀여운 외모와 나른한 분위기를 풍기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최상급 엑스퍼트이자 천재 오너인 칼튼 에거시의 감각에는 상대가 지닌 마력과 폭발할 듯한 존재감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중력 지옥’에서 벗어난 데다, 한 달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실력이 상승한 칼튼 에거시는 엄청난 고양감에 휩싸인 상태였다.

그는 최상급 몬스터가 내뿜는 아우라에 위축되기는커녕, 오히려 브롱코스의 허접한 마력엔진을 오버클럭시키며 더욱 속도를 높였다.

지이이이이이이잉

브롱코스의 전신에서 은은한 붉은빛이 발산되기 시작했고.

최상급 몬스터의 지척에 도달하는 순간.

쉬이이이이이이이익

검집을 빠져나온 검이 빛살처럼 상대의 미간을 노리고 쏘아졌다.

하지만 브롱코스의 롱소드가 꿰뚫은 것은 최상급 몬스터의 잔상이었고.

이내 기간트의 측면에 모습을 드러낸 녀석을 향해 제2, 제3의 검격을 쏟아냈지만, 여전히 흐릿한 잔상만을 가를 뿐 단 한 번의 공격도 적중시키지 못하는 칼튼 에거시였다.

“미친!”

“오오오오오오!”

“색이 좀 다르긴 하지만 분명 브롱코스잖아? 저건 600rp급 아니었나?”

“500rp야, 필립!”

“500짜리 기간트로 저런 움직임이 가능하다니!”

500rp급 기간트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움직임과 폭발적으로 쏟아내는 고급 검술을 목격한 좌중의 인원들이 연달아 탄성을 토해냈다.

하지만 그들 중 최고의 실력을 지닌 길레온 화이트만은 일견 화려해 보이는 브롱코스의 공격이 최상급 몬스터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음을 간파했다.

‘아니 뭐, 그건 당연한 건가? 아무리 대단한 오너라도 고작 500rp급 기간트로 최상급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사실 500rp 기간트로 이런 생각이 들게끔 한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었다.

최상급 몬스터를 상대하려면 적어도 2500rp 이상의 기간트를 소유한 대륙급 강자 정도는 되어야 했다.

그마저도 버티는 것이 고작일 뿐이었을 테고.

‘저런 걸 혼자서 잡으려면... 적어도 대륙 10강 정도는 되어야 하겠지.’

어쨌든 의문의 브롱코스가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쓰러진 제페토의 오너이자 파티의 리더를 살필 시간을 벌 수 있게 되었다.

길레온 화이트가 기간트에게 신경을 빼앗긴 최상급 몬스터와, 녀석을 향해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고 있는 브롱코스의 눈치를 살피며 제페토 쪽으로 이동하려는 순간.

[만만한 놈이 아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상대하도록.]

기괴하리만치 담담하고 서늘한 어조의 음성이 그의 귓가를 파고들었고.

쿵쿵쿵쿵쿵......

조금 전 은색 브롱코스가 튀어나왔던 나무들 사이에서 쌍둥이처럼 똑같은 외형의 또 다른 기간트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일이 이쯤 되자, 길레온 화이트의 머릿속은 온통 물음표로 가득 차고 말았다.

‘대체 뭐지? 브롱코스가... 두 기? 색은 대체 왜 저 모양이고? 미친놈들인가? 그렇다기엔 지나치게 잘 싸우는데? 저 정도면 우리 대장 정도는 상대도 안 되겠지? 그런데 저런 실력으로 왜 고작 브롱코스를? 그보다 저런 자들이 왜 이런 곳에...’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순간.

여태껏 브롱코스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해내던 최상급 몬스터의 기세가 사납게 돌변했다.

아르르르르르르르르르......

아무래도 재빠르게 움직이며 제법 위협적인 공격을 퍼부어 대는 적과 똑같은 생김새의 적이 등장한 것이 녀석의 신경에 거슬린 듯했다.

나지막한 울음소리를 흘린 최상급 몬스터가 전신의 털을 빳빳하게 세우며 몸집을 부풀렸고, 세로로 쭉 찢어진 동공을 담은 채 노랗게 빛나던 녀석의 눈이 점차 붉게 물들었다.

불현듯 강렬한 위기감을 느낀 칼튼 에거시가 악에 받친 고함을 내질렀다.

[젠장! 그걸 알면 첼시로 바꿔 타게 해주던가아아아아!]

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갑작스레 터져 나온 커다란 소리에 기분이 상한 듯, 완전히 털을 곧추세운 최상급 몬스터의 신형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사라진 녀석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브롱코스(칼튼 에거시)의 등 뒤였다.

파칭

등장함과 동시에 휘둘러진 녀석의 앞발에서 날카로운 손톱이 튀어나왔고.

놀라운 감각과 반사신경으로 반응하기는 했지만, 완벽하게 공격을 피하는 데에는 실패.

콰아아아아아아앙

[크악!]

단 한방에 브롱코스의 전신을 둘러싸고 있던 마력장이 증발해 버리며, 오른쪽 어깨에 기다란 세 가닥 상처가 새겨졌다.

[빌어먹을 브롱코스!]

애꿎은 기간트를 욕하며 벌떡 몸을 일으킨 칼튼 에거시.

[꼴사납군. 기간트는 죄가 없다. 다 네 실력이 모자란 탓이지.]

[그게 뭔 헛소리요! 첼시였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고!]

[비겁한 변명이다.]

[이런 씨부... 으아아아악!]

스노우를 향한 욕설을 끝맺기도 전에 또다시 등 뒤를 노려오는 최상급 몬스터.

덕분에 황급히 몸을 날린 칼튼 에거시는 볼품없이 대지 위를 굴러야만했고.

이후 조금의 쉴 틈도 허락하지 않는 몬스터의 공격을 피해 필사적으로 몸을 날려야만 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휘이이이이이익

콰지직

하지만 브롱코스의 성능으로는 최상급 몬스터의 공격에 제대로 반응할 수 없었고. 설상가상 마력엔진의 출력 한계로 인해, 전력으로 전개한 마력장 역시 번번이 종잇장처럼 찢어져 버리기 일수였다.

어느새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칼튼 에거시의 브롱코스를, 마치 잡아먹기 직전의 먹잇감을 가지고 놀 듯 농락하는 최상급 몬스터.

정신없이 얻어터지며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칼튼 에거시가 다시 한번 악에 받친 고함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악! 젠장! 구경하지만 말고 좀 도와달라고!]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여상스럽기 그지없었는데.

[쯧,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 무작정 달려드니 그런 꼴을 당하는 거다.]

[이런 미친 새ㄲ... 형님! 형님이라고 뭐 다를 줄 아쇼? 고작 브롱코스로 저런 괴물을 상대하는 게 가능할 것 같냐고!]

칼튼 에거시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괴물 같은 스노우라할지라도, 고작 500rp급 기간트로 눈앞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지만 또다시 들려온 스노우의 음성은 여전히 담담할 뿐이었다.

[뭐, 못 할 것도 없지.]

그리고 그 담담함은 칼튼 에거시의 분노를 폭발시키기에 충분했다.

쿠당탕탕탕탕...

한계까지 예민해진 감각으로 최상급 몬스터의 공격을 피해낸 칼튼 에거시가 외부 통신 마법진을 통해 울분을 토해냈다.

[지랄! 어디 한번 해보쇼! 만약 정말로 해내면, 내 평생 형님의 노예로 살 테니!]

그 순간...

잠잠하던 스노우의 브롱코스에게서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발산되기 시작했다.

이에 좌중의 인간들과 대지 위에 나뒹굴던 몸을 일으키던 칼튼 에거시는 물론이고.

심지어 이번에야말로 적을 끝장내기 위해 최후의 공격을 준비하던 최상급 몬스터의 시선까지.

일제히 스노우를 향해 집중되었다.

이윽고...

파아앗

자신의 신장과 비슷한 길이의 플레일을 소환한 브롱코스에게서 예의 담담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네 말에 책임져야 할 것이다, 칼튼 에거시.]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칼튼 에거시는 치밀어 오르는 불안함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아씨, 이거 진짜로 코 꿰이는 거 아냐? 저 인간은 진짜로 해 버릴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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