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141화 (141/169)

141화 파사이산의 몬스터(5)

#1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구에 있을 적부터 동물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었다.

번거로운 것을 싫어했을뿐더러, 깔끔한 환경을 선호했던지라 털과 배변 관리에 신경 써야 하는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 역시 단 한 번도 없었다.

꽤 나이 차이가 나는 쌍둥이 동생들이 울며불며 난리를 치지 않았더라면 고양이인 ‘토리’를 키우는 경험 같은 걸 해볼 일도 없었을 테고.

물론 지금 내 앞에서 식빵 자세를 취한 채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반짝거리고 있는 녀석은 고양이가 아니었다.

먼치킨 고양이인 토리와 한없이 비슷한 생김새이긴 했지만. 2.5미터가 넘어가는 신장과 4미터에 달하는 몸길이를 지닌 이 녀석은, 엄연히 이 세계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인 최상급 몬스터 ‘자크라토스’였다.

[충성도 69/100(84/100)]

호감도를 개방한 이후 포획과 각인에 성공한 녀석이라 그런지, 단숨에 아나투레스와 비슷한 수준의 충성도를 기록한 자크라토스.

심지어 본신(本身)의 충성도의 경우, 아나투레스보다 무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고작 30대에 불과한 충성도로 인해 데면데면하게 구는 것이 고작이었던 아나투레스와는 달리, 이쪽은 기간트에서 내린 뒤에도 제법 친밀하게 굴며 내가 내린 명령을 곧잘 따랐다.

“손.”

심령으로 연결된 명령이 전달되자마자, 내 것이 비해 몇 배는 거대한 앞발을 손 위에 사뿐하게 올려놓는 자크라토스.

아니, 테이머인 나로 인해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된...

“좋아, 잘했어. 토리.”

묘오오오오오오오오오

최상급 몬스터 토리(전 자크라토스)가 나직한 울음을 토해내며 그 커다란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사실 토리라는 이름을 붙인 건 다섯 글자가 너무 길게 느껴진 탓도 있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이름이라는 이유도 한몫했다.

‘뭐, 비슷하게 생긴 만큼... 제법 잘 어울리니 상관없겠지.’

최상급 몬스터의 이름 치곤 너무 약해 보이는 것 아니냐는 칼튼 에거시의 의견 따위는 가볍게 무시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아나투레스에게도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겠군.’

누차 얘기하지만, 소환수에게 다섯 글자인 이름은 너무 길었다.

#2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레이븐 용병 파티의 유일한 마법사인 에블린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며 두 눈을 비비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불과 10여 분 전까지 자신들의 목숨에 심대한 위협을 초래했었던 최상급 몬스터와, 그 몬스터를 마치 애완동물 다루듯 하는 정체불명의 브롱코스 오너.

최상급 몬스터와 한참 동안 추격전(?)을 이어가던 브롱코스가 사라진 뒤, 그 자리에 등장한 건 2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다소 서늘한 인상의 동대륙인이었다.

‘저렇게 젊다니... 하긴, 좀 전에 보여준 실력이라면 겉으로 보이는 나이 따윈 의미가 없겠지.’

5서클에 이르는 고위마법사인 만큼, 고등급 기간트와 그 오너들을 적지 않게 보아온 에블린이었다.

그런 그녀가 판단하기에, 조금 전 브롱코스가 보여준 것은 어지간한 고등급 기간트와 그 오너로서는 흉내조차 내기 힘든 고절한 수준의 기동이었다.

‘실력을 가늠할 수 없어. 제국의 근위기사라면 그런 움직임이 가능할까? 아니, 고작 브롱코스 따위로는 절대로 불가능해. 세브릭 후작이나 발터 여백작 정도라면 혹시 모를까...’

제국 남부의 패자인 세브릭 후작가의 현 가주 프레스턴 세브릭(53세, 최상급 엑스퍼트, 2800rp급 유니크 기간트 ‘그레이브’의 주인).

제국의 명망 높은 귀족 가문인 발터 후작가의 여식으로 태어나 최상급 엑스퍼트의 극에 이른 천재 검사 에슐리 발터(47세, 최상급 엑스퍼트, 2700rp급 기간트 ‘네메시스’의 주인).

제국이 보유한 천여 명의 (정식)오너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두 사람의 이름을 떠올렸을 정도로, 브롱코스를 타고 보여준 동대륙인 오너의 퍼포먼스는 강렬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예에에? 정말로 그 유명한 나이만 왕국의 신성, 칼튼 에거시경이란 말입니까?”

“하하하하하! 이거 참 민망하군. 신성이라고 불린 건 10년도 더 지난 일인데 말이지.”

“아, 죄송합니다. 현 나이만 왕국의 제1검...”

“하하하하하하하!”

조금 경박하게 보이긴 했지만, 또 다른 브롱코스 오너가 밝힌 정체 역시 레이븐 파티원들을 놀라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향후 대륙 10강을 노려볼만한 천재 중의 천재로 명성이 자자한 나이만 왕국 최강의 오너 칼튼 에거시라니.

‘대체 저런 자가 왜 파사이산에... 그것도 저런 정체 모를 괴물과 함께 있는 거지?’

그 사실이 마법사의 호기심을 미칠 듯이 자극했지만, 대놓고 그것을 물어볼 만한 용기는 없었다.

어쨌든 생각지도 못한 최상급 몬스터와의 조우로 인해 목숨을 잃을 뻔한 레이븐 파티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천운이 따랐다는 것 이외엔 달리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파사이산의 정상에서 의도치 않게 만난 상대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강자가 아니었더라면, 그들이 멀쩡하게 산을 내려갈 수 있었을 확률은 한없이 ‘0’에 가까웠을 테니까.

그런데,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인 오너의 정체 이상으로... 마법사인 에블린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있었다.

‘대체 어떻게... 무슨 수로 최상급 몬스터를 길들인 거야?’

그것은 마치 애완동물이라도 되는 양, 동대륙인의 손짓에 따라 이리 뒹굴 저리 뒹굴거리고 있는 전직(?) 최상급 몬스터를 길들인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적어도 그녀가 알기로, 현 대륙에서 최상급 몬스터를 길들이는 데 성공한 마법사는 단둘뿐이었고.

그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무려 1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오직 몬스터를 길들이는 것에 관한 마법을 연구해온 6서클 마법사라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저자는 기간트 오너잖아.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실력을 지닌...’

어떠한 분야든 간에, 정점에 오르기 위해서는 거의 모든 시간을 오직 단 하나의 분야에 투자해야만 했다.

적어도 그것이 이 세계의 진리이자 상식이었다.

‘분명 그런데... 직접 눈으로 목격했으니 이걸 부정할 수도 없잖아!’

사실 에블린은 유서 깊은 마탑의 여덟 장로 중 하나의 수제자로, 마탑 내에서도 꽤나 많은 기대를 받았었던 인재였다.

비록 골방에 틀어박혀 마법을 연구하는 것이 성미에 맞지 않아 마탑을 뛰쳐나오긴 했지만. 언제든 돌아가기만 하면 두 팔 벌려 환영해줄 그녀의 스승은 여전히 마탑의 장로직을 유지하고 있는 권력의 중추였다.

그리고 그런 스승의 주력으로 연구한 분야가 다름 아닌 몬스터 테이밍.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냉기 계열 몬스터들을 길들이는 것이었고.

이 분야에 있어, 대륙 전체에서도 독보적인 실력을 지닌 마법사가 바로 그녀의 스승이었다.

‘그런 스승님도 상급 아이스 골렘과 아르키나를 길들이는 게 한계였는데...’

얼음의 대지에서 간혹 탄생하는 아이스 골램 중 가장 강력한 개체인 상급 아이스 골램은 15미터에 이르는 신장과 엄청난 괴력을 지닌 몬스터였고.

마찬가지로 혹한의 기후를 지닌 장소에서만 서식하는 아르키나의 경우, 전신이 눈과 같은 새하얀 털로 뒤덮인 4족 보행 몬스터였다.

이 두 몬스터의 공통점은 상급 몬스터 중에서도 제법 강력한 힘을 지닌 개체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힘을 지녔다 한들 고작(?) 상급 몬스터일 뿐이었다.

즉, 현재 의문의 동대륙인 앞에서 샛노란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재롱을 떨고 있는 저 최상급 몬스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뜻이었다.

‘서른여덟 평생에 최상급 몬스터를 목격한 것도 처음인데, 그런 걸 길들인 인간을 만나게 되다니... 응?’

한참을 최상급 몬스터와 놀아주던 동대륙인이 별안간 몸을 돌려 이쪽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에블린을 비롯한 레이븐 파티는 순식간에 몸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걸음을 옮기는 동대륙인의 뒤를 따라.

거대한 덩치의 최상급 몬스터가...

길다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사뿐사뿐 따라붙고 있었으니까.

#3

“네? 아... 저, 저희는 드락샤르 마탑의 의뢰로 크라노의 사체를 구하기 위해......”

칼튼 에거시의 소개로 인해 동대륙인의 이름이 스노우라는 사실을 알게 된 용병 파티 레이븐.

서로 간의 간단한 소개 이후, 이곳을 찾은 이유를 묻는 스노우의 질문에 답한 것은 파티장인 크라임 듀란이었다.

드락샤르 마탑의 의뢰를 맡는 것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크라노의 서식지를 찾았지만 녀석들은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던 상황을 지나,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최상급 몬스터를 만나 죽을 뻔한 위기를 겪는 장면으로 이어졌고, 결국 스노우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결말로 마무리되었다.

물론 말하는 내내, 스노우와 그 등 뒤에서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최상급 몬스터의 눈치를 보며 식은땀을 흘려야 했었던 크라임 듀란이었다.

그의 말을 끝까지 들은 스노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본래 남의 일에 참견하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예상치 못한 수확에 매우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사실 토리(전 자크라토스)를 테이밍할 수 있었던 데에는, 레이븐 파티의 미끼 역할(의도한 것은 아니지만)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들이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면, 토리와 스노우는 일평생 마주치지 못했을 확률이 매우 높았으니까.

그런 이유로 아주 작은 변덕을 부리게 된 스노우였고.

이는 레이븐 파티에겐 어마어마한 행운으로 작용했다.

스노우는 잠시 아득한 눈길로 천천히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 모습을 본 장내의 인물 대부분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스노우가 대단한 마법사임을 알고 있는 칼튼 에거시는 달랐다.

“형님께서 마법을 사용하시는 것 같소.”

“마, 마법?”

“역시 마법사였어!”

“아...”

“과연, 그래서 저런 괴물을 길들... 헙!”

마지막에 말을 내뱉던 파티원은 토리의 샛노란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이성적으로는 반신반의하고 있었지만, 본능의 외침으로 인해 그가 대단한 실력을 지닌 마법사임을 직감하고 있었던 에블린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스노우를 바라보았다.

‘최소 최상급 엑스퍼트, 어쩌면 마스터일지도 모를 실력을 지닌 오너인데다... 최상급 몬스터를 길들일 수 있는 마법사이기도 하다니. 이런 마검사가... 오르비스 대륙의 역사에 존재했었던가?’

잠시 뒤.

좌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스노우의 입이 열렸다.

“크라노라는 몬스터... 거미의 하체에 곤충의 상체를 가지고 있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팔이 네 개고, 그중 아래쪽 두 개가 커다란 낫처럼 생겼군.”

“네, 네! 맞습니다!”

자신이 알려주지 않은 팔의 모습까지 정확하게 알아맞히자 알 수 없는 기대감이 샘솟기 시작한 크라임 듀란이었다.

그리고 스노우는 그런 크라임 듀란의 기대에 부응해 주었다.

“아무래도 이 녀석(토리) 때문에 영역을 옮긴 것 같다.”

뒤쪽을 흘깃 바라본 스노우는 오른손 검지를 들어 자신이 서 있는 방향 기준 서쪽을 가리켰다.

“저쪽이다. 한참이나 아래쪽에 자리를 잡았군.”

“아, 감사...”

“세 마리가 필요하다고 했나? 따라와라.”

“네? 아니 그게...”

타앗

크라임 듀란이 말을 마칠 새도 없이 훌쩍 뛰어올라 토리의 등 위에 올라탄 스노우.

파바바바바바......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신의 주인이 가리킨 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하는 최상급 몬스터.

“빠, 빨라...”

“아까 못 봤어? 저 정도면 천천히 달리는 거라고!”

“이, 일단 따라가자!”

아쉬울 게 없는 칼튼 에거시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은 어느새 저만치 달려 나간 토리의 뒤를 따라 달렸고.

잠시 뒤 그들이 목격한 것은...

마치 양 떼 속에 뛰어든 늑대라도 되는 것 마냥.

혼비백산한 크라노들 사이를 헤집으며 하나하나 때려눕히고 있는.

신난 얼굴의 최상급 몬스터와, 녀석의 등 위에서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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