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황립 아카데미의 신임 교수(2)
#1
“히야아아아... 황실에 있는 별궁이나 다름없다더니, 정말 끝내주는군요. 그런데, 그분에 대한 소문들은... 전부 사실일까요?”
점점 더 가까워지는 히아신스관의 전경에 탄성을 터뜨린 것도 잠시, 곧바로 표정을 굳힌 ‘황립 아카데미 기간트 학부 <실전> 파트 소속 부교수’ 타본 레바인의 말이었다.
그의 직속상관인 ‘정교수’ 브루노 힐의 안색 역시 그리 좋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그 소문들이라면 나도 들었지. 어느 것 하나... 믿기 힘든 이야기들 뿐이기는 했지만 말이야.”
현재 황립 아카데미는 물론, 아카데미가 자리하고 있는 황실 직할령 ‘오베이트시’의 제국민들 사이에서도 화제의 중심이라 할 만한 사건은... 단연코 아카데미에 새로 부임한 신임 수석교수에 관한 것이었다.
무려 아카데미 최초로 오르핀 발렌타인 공작의 직인이 찍힌 추천서를 학장에게 내밀었다는 소문.
최상급 엑스퍼트이자 6서클 마법사인 전무후무한 마검사라는 소문.
마라몬트 왕국과 카이샨 왕국의 전쟁에서 홀로 50여기의 기간트를 쓸어버렸다는 소문.
용병왕과 3시간이 넘는 사투 끝에 동수를 이뤘다는 소문.
용병왕과의 전투 당시, 그의 기간트가 고작 출력 1500rp에 불과한 제라스였다는 황당한 소문.
엘가드 왕국의 의뢰로 북부 다르다넬 산맥에 나타난 재앙급 몬스터를 소리소문없이 해치워 버렸다는 더욱더 황당한 소문.
마지막으로 그가 상급 몬스터를 길들여 데리고 다닌다는 소문.
“그런데... 그 상급 몬스터에 관한 소문이라면, 조금 특이한 고양이를 데리고 다니는 게 와전된 거라고 하던데요?”
“차라리 그 소문만 사실이었으면 좋겠군.”
상급 몬스터를 길들일 수 있는 마법사가 흔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공작의 직인이 찍힌 추천서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 이외의 소문들의 경우, 만약 그중 하나만 사실이라 하더라도 역대 아카데미에 재직했었던 교수 중 최고의 스펙이라 할 만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발렌타인 공작님 정도는 아니더라도... 베일리쉬 후작님이나 프로이센 후작님이 아카데미의 교수로 온 셈이라 할 수 있지.’
페리슨 베일리쉬 후작과 그리엄 프로이센 후작이라면 현역으로 활동 중인 제국 오너 서열 2위와 3위의 초강자들로, 대체 불가 자원인 그들이 아카데미의 교수로 올 확률은 제국이 하루아침에 망할 확률만큼이나 낮았다.
‘소문이 모두 사실은 아닐지라도... 공작가, 그것도 공작님이 직접 보증한 이상 절대로 평범한 인물은 아닐 테지.’
사실 ‘동대륙인 신임 수석교수’에 대한 소문의 90% 이상은 헬레나 발렌타인과 그녀가 소속된 정보 길드 ‘아헨달의 그림자’가 의도적으로 퍼뜨린 것이었는데.
이는 동대륙인이라는 생소함과 명성이 대륙 일부에 한정(제국에서의 인지도는 ‘0’에 수렴한다)되어있다는 약점을 보안하기 위한 헬레나 발렌타인 나름의 배려였고.
그런 길드 소속 그림자들의 활약 덕분에, 적어도 하이데른시와 황립 아카데미 내부의 제국인들 사이에서 ‘스노우’라는 이름값은 나날이 무게를 더해가는 중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그에 관한 엄청난 소문 중 어느 것 하나 과장되거나 거짓된 내용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소문 하나하나가 너무나 상식을 가뿐히 뛰어넘는 것들 뿐이었던지라, 이 모든 소문을 사실이라 받아들이는 이는 없었다.
이런저런 상념들을 이어가던 끝에 히아신스관에 도착한 브루노 힐과 타본 레바인.
히아신스과 입구에 설치된 통신 마법진을 통해 그들의 방문이 내부로 전달되었고.
잠시 뒤.
“스노우 수석교수님께서 방문을 허락하셨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두 사람은 무려 중급 엑스퍼트인 경비병의 뒤를 따라 히아신스관의 내부로 발을 들였다.
#2
황립 아카데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기간트 학부’는 ‘이론’과 ‘실전’의 두 가지 파트로 나뉜다.
당연하게도 둘 중 훨씬 더 중요시되는 것은 실제로 기간트에 탑승해 조종술을 갈고닦는 실전 파트였는데.
이론 파트에 비해 훨씬 더 엄격하게 임용기준을 적용하는 만큼, 그 대우 역시 이론 파트 교수들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성적 반영분 역시 이론 2 실전 8의 비율로, 사실상 이론이 제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실전 파트의 성적이 저조하다면 ‘졸업’은 꿈조차 꿀 수 없었다.
그런 기간트 학부의 실전 파트는 지난 7년 동안 수석교수의 자리가 비어있는 상태였다.
실전 파트의 마지막 수석교수는 7년 전 아카데미를 떠나 남부 국경수비군 오너 기사단(푸른매 기사단)의 부단장으로 자리를 옮긴 리아딘 펠리스 백작이었는데.
최상급 엑스퍼트이자 2700rp급 기간트 프록시아의 오너인 그는, 현재 황위를 쟁취하기 위한 내전을 치르고 있는 3황자군의 서열 2위 오너로 활약 중이었다.
그 정도 수준의 인재만이 거쳐갈 수 있는 기간트 학부 실전 파트의 수석교수 자리였기에, 아카데미 소속의 사용인들과 교수들(학생들은 방학 기간)의 궁금증이 폭발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심지어 화제의 주인공인 미지의(?) 수석교수가 아카데미 입성 이후 단 한 번도 외부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탓에 그 궁금증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다른 이들의 입장에서야 그저 궁금함을 느끼는 것으로 끝일 수 있겠으나, 몇 년 만에 ‘절대적인 상전’을 맞이하게 된 기간트 학부 실전 파트 교수(부교수, 조교수 포함)들의 입장은 그게 아니라는 데 있었다.
‘개강까지는 이제 고작 3일... 그런데 회의에 참석하기는커녕 강의 지침조차 내려주지 않다니. 젠장, 대체 뭘 어쩌자는 건지...’
사실 정교수 중에서도 고참급에 속하는 브루노 힐의 입장에서는 뜬금없이 등장한 상관의 존재가 탐탁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새로운 수석교수를 둘러싼 무시무시한 소문이 고작(?) 상급 엑스퍼트인데다 전장 경험이라고는 동부 국경수비군 소속으로 몬스터 소탕 작전에 2회 투입된 것이 전부인 그를 한없이 위축시킨 탓이었고.
정교수 중에서도 베테랑 대접을 받기 시작한 3년 전부터 대체로 자신이 원하는 데로 짤 수 있었던 강의 스케줄을 일일이 검토받아야 한다는 것 역시 스트레스였다.
황립 아카데미의 ‘수석교수’라는 존재에게는 자신이 속한 파트의 강의 스케줄을 임의로 조절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 권한을 이용해 원하는 강의만 골라 할 수도 있었고, 자신의 판단으로 특정 강의에 특정 교수를 배치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 직접 강의를 하지 않고 다른 교수들의 수업에 참관해 감놔라 배놔라 지적질만 한다 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이는 아카데미의 책임자인 학장조차 관여할 수 없는 절대적인 규약으로, 아카데미 내에서의 수석교수의 권력은 가히 무소불위(無所不爲)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불문율이라고는 하지만, 수석교수의 자격 요건이 대륙급 강자나 최소 그 언저리 정도는 되는 실력자여야 하는 만큼... 그러한 대우가 결코 과하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신임 수석교수를 둘러싼 소문 중 사실로 확인된 것은 발렌타인 공작의 직인이 찍힌 추천서뿐이었지만.
공작가의 다른 누군가도 아닌, 현 가주인 공작 본인의 직인이 찍힌 추천서가 날아온 것은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이었기에 그 파괴력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었다.
차기 황위의 주인이 결정되지 않은 현재, 자타가 공인하는 이펜타르크 제국 최고의 권력자가 바로 오르핀 발렌타인 공작이었으니까.
자신의 의중이 향하는 것만으로도 차기 황제를 결정할 수 있는 그는, 단순한 ‘보증’만으로도 황립 아카데미의 최중요 학부인 기간트 학부, 그중에서도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실전 파트’의 수석교수를 임명할 수 있는 절대자였다.
아무튼, 기간트 학부 실전 파트 소속 정교수 4인과 5인의 부교수, 그리고 조교수 8인의 궁금증과 염원을 어깨에 짊어진 브루노 힐과 타본 레바인은 하이신스관 내의 어느 거대한 문 앞에 도착했다.
“우와...”
“체통을 지키게, 타본.”
“아! 죄, 죄송합니다, 교수님.”
자신의 수하를 타박하기는 했지만, 히아신스관 입장이 처음이 브루노 힐 역시 내심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무슨 벽이랑 문이...’
히아신스관은 모든 건물이 내부 통로로 이어져 있었는데(그렇기에 어찌 보면 하나의 건물), 각 건물의 크기는 제각각 큰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경비병으로부터 인계된 사용인을 따라 그들이 도착한 곳은 아마 그중에서도 가장 큰 건물(방)인 듯했는데.
통로를 벗어나자마자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높이가 40여 미터는 될듯한 웅장한 벽과 10여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문이었다.
이곳이 무엇을 하는 장소인지 알아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
문 옆에 버젓이 ‘수련실’이라는 표찰이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허억! 이, 이 정도 크기라면... 설마 실내에 기간트 훈련장을...”
타본 레바인의 바보같은 혼잣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브루노 힐.
‘뭐, 역대 이곳의 주인들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생각해 보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실내 기간트 수련실이라니, 참 쓸데없이 호화스럽게도 지어놨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브루노 힐이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자신으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대우를 받는 인간에 대한 본능적인 질투심이 치밀어 올랐다.
“브루노 힐 교수와 타본 레바인 부교수가 도착했습니다, 수석교수님.”
귀족임이 분명한 여사용인이 거대한 문 옆에 설치되어 있는 통신 마법장치를 통해 두 사람의 도착 사실을 알렸다.
잠시 뒤.
스르르륵
아무런 답조차 없이 거대한 문의 한쪽에 만들어진 일반적인 크기의 문이 열렸다.
“들어가시지요.”
“아, 고맙소.”
“감사합니다.”
살짝 고개를 숙이는 여사용인(아마도 귀족가 출신 하녀장인 듯 한)을 지나쳐 입장한 거대한 홀.
“헉!”
“오오오오오오오!”
타본 레바인이 반경 300여 미터는 가뿐히 넘을 듯한 거대한 크기에 저도 모르게 탄성을 토해낸 것과는 달리.
훨씬 더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던 상급 엑스퍼트 브루노 힐은 열린 문 뒤에 서 있는 희미한 기척을 감지했고.
열렸던 문이 닫히며 드러난 기척의 주인을 확인하고는 짧은 경호성을 토해냈다.
“이, 이건 대체...”
그것은 작달막한 신장의 생전 처음 보는 종족이었는데, 비록 성인 남성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키를 지니긴 했지만 인간과 매우 유사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고.
상의는 벌거벗은 채 기간트 엔지니어들이나 입을 법한 검은색 멜빵바지를 입은 괴이한 차림새였다.
“요, 요정?”
뒤늦게 그 존재를 발견한 타본 레바인이 얼빵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틀어막았고.
그와 눈을 마주친 요정(?)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서서히 희미해지더니, 끝내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보, 보셨어요? 방금 여기 요정이...”
“조용히 하게, 타본.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아, 죄, 죄송합니다, 교수님.”
사실 브루노 힐 역시 조금 전 목격한 그 생명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또 갑자기 사라져버린 이유는 무엇인지 매우 궁금하긴 했지만.
그런 생각은 순식간에 그의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거대한 수련장의 중앙.
회색털을 지닌, 아마도 몬스터로 추정되는 생명체에게 등을 기대고 앉은 채 무심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한 인간의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인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