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153화 (153/169)

153화 신임 수석교수의 실력(1)

#1

“정원과 현관쪽 청결에 특별히 신경을 쓰도록 하세요. 다른 날은 몰라도 오늘만큼은... 수석교수님께서도 바깥출입을 하실 수밖에 없으실 테니.”

황립 아카데미 내에서도 특별 취급을 받는 히아신스관의 관리를 맡게 되었을 때. 관내 모든 사용인의 관리를 총괄하고 있는 유리엘 백작 부인을 제외한 가장 높은 서열의 귀족 부인인 마틸다 프레스턴은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의 남편인 프레스턴 자작(51)은 제국의 행정관으로서 이런저런 공을 인정받아 꽤 순탄한 승진과 승작을 거듭한 인물이기는 했지만. ‘백작가 서자 출신’이라는 한계로 인해, 영지를 하사받지 못한 단승 자작을 끝으로 더 이상의 출세를 바라보기 힘든 입장이었다.

그 이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황실이 되었든 고위 귀족이 되었든 확실한 ‘연줄’이 필요했지만. 자신의 남편은 업무적인 면에서는 매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지언정, 정치적인 역량이 필요한 사교 활동이나 인맥 확보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그나마 준남작에서 남작을 거쳐 자작위(비록 단승 작위이기는 했지만)를 거머쥐기까지는 자작 부인인 마틸다 프레스턴의 눈물겨운 내조가 큰 힘을 발휘했음을 그녀 자신도, 그녀의 남편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마틸다 프레스턴은 가슴 속에 야망을 품은 여인이었다.

그녀와 남편이 평생의 노력을 통해 온전한 제국 귀족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데 성공했으니.

현재 황립 아카데미 4학년으로 졸업까지 단 1학기만을 남겨 둔 그녀의 아들 루델 프레스턴의 대에서는, 버젓한 ‘영지’를 얻어 명실상부한 귀족 가문 ‘프레스턴가’로 거듭나는 것이었다.

루델 프레스턴은 아카데미의 핵심 중 핵심인 기간트(오너) 학부에서 1,2,3학년 동안은 물론, 4학년 2학기까지도 내내 20% 이내의 성적을 유지하며 그녀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 기특한 아들이었다.

이대로 졸업에 성공한다면, 최소 국경 수비군 소속 기사단이나 고위 귀족가의 기사단에 스카웃되어 ‘정식 오너’로서의 첫출발을 순탄하게 시작할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높은 수준의 기사단에 스카웃 되기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귀족 사회에서의 ‘인맥’이었다.

물론 졸업 인원 중 한 손에 꼽힐 정도의 실력자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런 수준의 인재라면 황실은 물론 고위 귀족가에서도 서로 데려가기 위해 안달일 테니.

하지만 루델 프레스턴의 경우, 제법 뛰어난 자질을 지니고 있긴 했지만 그런 천재들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남편인 프레스턴 자작의 인맥으로 가능한 곳은 그나마 출신 가문인 백작가가 위치한 남부 국경 수비군의 오너 기사단 정도였는데.

현 제국의 정세상 3황자의 사병집단이나 다름없는 남부 국경 수비군에 합류했다가는, 그대로 황위 쟁탈전이라는 거대한 태풍에 휩쓸릴 확률이 너무나도 높았다.

물론 3황자가 황위를 차지할 수만 있다면야 그만큼 나이스한 선택지도 없을 테지만, 영민한 마틸다 프레스턴이 보기에 그런 일이 벌어질 확률은 기껏해야 3할 정도.

절반 이상의 확률로 황제의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황태자가 존재하는 이상 아들의 안위를 놓고 그런 도박을 벌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출셋길과 완전히 멀어지는 서부 국경 같은 곳으로 보내고 싶지도 않았기에 나날이 수심이 늘어가던 차.

어느날 갑자기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가 바로 새로운 수석교수의 아카데미 내 보금자리인 ‘히아신스관’의 총괄이었다.

그리고 가진바 역량을 총동원해 정보를 끌어모은 그녀의 판단에 의하면, 이것은 하늘에서 황금 동아줄이 내려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수석교수, 그것도 기간트 학부 실전 파트의 수석교수라면 최소 황실 근위기사단 부단장급 인사야. 그런데 신임 수석교수님은 무려 그 발렌타인 공작님의 직인이 찍힌 추천서를 들고 오셨단 말이지.’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발렌타인 공작님이 엄청나게 신경 쓰고 계시는 인재라는 뜻이야.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없어. 발렌타인 공작님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평범한 수석교수 수준의 인사라고 볼 수는 없으니까.’

수석교수의 ‘실력’을 확인할 수만 있다면 더욱 확실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터였지만. 아쉽게도 실력 확인은커녕... 그의 모습을 본 것조차 이곳에 도착한 첫날, 짧았던 첫 만남의 순간이 전부였다.

아무튼, 수석교수라는 신분과 발렌타인 공작의 직인이 찍힌 추천장의 존재만으로도, 제국 북부(해안가라 국경 수비군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해군 기사단이나 중앙의 황실 기사단 중 하나에 자리를 만들어 주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터.

그리고 만약 신임 수석교수가 상상 이상의 실력을 지닌 초강자(공작 직인의 존재가 이러한 예측을 팽배하게 만들고 있었다)라면, 그의 눈에 드는 것만으로도 자식의 출셋길은 보장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이유로...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

히아신스관의 정비 상태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마틸다 프레스턴의 눈에서는 광기에 가까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그녀의 지시를 받아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용인들은...

순간순간 느껴지는 한기에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2

“귀찮군...”

어느덧 황립 아카데미에 머문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사실 도착 즉시 학장실로 직행해 추천서를 전달한 이후로는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으니, 사실상 히아신스관에 머문 지 일주일이 지났다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테지.

황립 아카데미의 1년은 총 3번의 학기로 나뉜다.

그리고 9,10,11월에 걸쳐 진행되는 세 번째 학기가 끝나면 12월과 13월, 두 달간의 긴 방학 기간(1,2학기 방학은 1달)을 가진 이후 신입생들과 함께 새로운 1년을 시작한다.

사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세 번째 학기는 이전 1,2학기에 비해 그 중요도가 상당했는데.

유급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탓에 1,2,3학년 입장에서는 별다를 게 없었지만. 까다롭기로 유명한 졸업시험을 치러야 하는 4학년들의 경우, 이 한 학기의 결과로 인해 사회생활의 출발점이 달라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대체 졸업시험이 얼마나 어렵길래, 1,2,3학년은 300명 정도인데 4학년은 700명이나 되는 거야?”

실로 엄청난 적체(積滯) 현상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이는 타 학부에 비해 기간트 학부의 졸업시험 통과 기준이 훨씬 더 엄격하게 적용된 탓이라곤 하는데.

그나마 2,3년 연속으로 졸업에 실패한 학생 중 졸업을 포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기에 이 정도 숫자가 유지되는 것이라고 한다.

기간트 학부의 졸업 실패자들은 비교적 통과 기준이 낮은 타 학부로 옮겨 졸업장을 따는 쪽을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졸업 자체를 포기하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했다.

‘하긴, 어지간히 모자란 놈이 아니고서야... 그 비싼 돈을 들여 다닌 학교 졸업장을 포기하는 게 이상한 일이지.’

기간트 학부 졸업장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다른 학부 역시 명색이 제국 최고의 교육 기관인 황립 아카데미의 교육 과정을 이수한 것이었기에 어디서건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재밌는 사실은, 졸업 장수생 대부분이 2~4년 차를 버티지 못하고 학부를 옮기는 선택을 하는데.

5년 차부터는 오히려 학부를 옮기는 학생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보통 18~19세, 빠르면 16~17세 정도에 입학해 20대 초반에 졸업하게 되는 황립 아카데미이건만.

기간트 학부만큼은 어지간한 조교수보다 많은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의 학생들이 심심치 않게 목격되고는 한단다.

‘아무리 오너가 되고 싶어도 그렇지... 대학을 15년이나 다니는 미친놈이 있다니...’

현 재학생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이는 뭐시기 백작가의 차남이라는 놈이었는데, 18세에 입학해 32세인 올해까지 무려 15년이란 긴 시간을 황립 아카데미 기간트 학부에서만 보낸... 이를 테면 ‘화석’ 같은 존재였다.

사실 황립 아카데미를 졸업하지 않고도 오너가 될 수 있는 길은 부지기수였다.

게다가 제국 백작가의 차남 정도되면 저등급 기간트 한 기 정도 얻어내는 건 일도 아닐 터.

사실 ‘정식 오너’ 자격증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 이상, 마력을 다룰 수 있고 기간트를 소유하고 있으면 그게 곧 ‘오너’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주변이나 세상의 인정은 별개의 문제일 테지만.

‘뭔가 사정이 있어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죽치는 거라면 몰라도...’

뭐, 어차피 그런 열등생이 나와 연관될 확률은 매우 낮았기에 그리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내게 이런 정보들을 전해준 이는 내 전속 부교수로 임명된 31살의 젊은 부교수 게일 하버였다.

부교수 중 막내라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짬처리를 당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정작 히아신스관을 찾아온 본인의 표정은 매우 밝았기에 확신할 수는 없었다.

묘오오오오오오오오...

몸길이를 1미터가량으로 줄인 토리가 다가와 내 다리에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어느 순간부터 사육장을 편안하게 여기는 듯한 아나투레스와는 달리, 이 녀석은 여전히 소환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좋아했다.

지난 일주일간 단 1초도 빠짐없이 붙어있었던 탓인지.

토리의 충성도는 [81/100(87/100)]로 상승한 상태였다.

가능한 기간트에 탑승한 채로 시간을 보내보기도 했지만. 팍팍 상승하는 맨몸 상태와는 달리, 기간트 탑승 시의 충성도는 그야말로 요지부동.

‘올라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는데... 뭐, 어쩌면 평상시의 상승폭이 비정상적인 걸지도 모르지.’

사실 7,80대에 다다른 충성도가 이런 식으로 가파르게 상승한다는 게 이상한 일이긴 했다.

지구에 있는 테이밍 특성의 최고권위자 파트리스 오보노의 말에 따르면, 보통의 경우(B~D급) 충성도 70대에서 ‘1’의 수치를 올리기 위해서는 적어도 ‘주’ 단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물론 이는 S급이었던 그 자식 본인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었고.

나 역시 A급으로 각성했으니 가산점이 붙기는 할 테지만, 그렇다고 해도 거의 매일 충성도가 오르는 건 분명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내게 유리한 사항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하지 않는 타입이었고, 오히려 얼어붙은 듯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또 다른 충성도가 신경 쓰일 뿐이었다.

나는 토리의 까끌까끌한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대로라면... 스탯 공유는 맨몸 상태에서 먼저 사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토리.”

묘오오오오오오오...

녀석은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듯 나른한 울음을 토해낸 뒤, 그 자리에 엎드려 그루밍을 시작했다.

“진짜 고양이냐...”

아무튼, 지난 일주일 내내 이어진 두 최상급 몬스터와의 대련은 내 본신의 실력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고.

이제는 마스터(실제로 붙어본 적은 없지만)를 상대로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물론 내 경우엔, 본신의 성장이 오너로서의 성장으로 직결되었기에(보통은 그렇지 않다). 기간트 오너로서의 실력 역시 적지 않은 성장을 이룩한 상태였다.

“개학이고 뭐고... 수련이나 더 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원활한 임무 수행을 위해선 ‘수석교수’로서 최소한의 할 일은 해주어야만 했다.

그리고 모든 교직원과 학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신임 수석교수로서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될 개학식은 그 ‘최소한’에 속하는 일 중 하나였다.

“쩝, 어쩔 수 없지...”

나는 땀에 흠뻑 젖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수련장을 나섰다.

그런 내 뒤를...

어느새 몸길이를 40cm가량으로 줄인 토리가 기다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뒤따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