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155화 (155/169)

155화 신임 수석교수의 실력(3)

#1

180정도는 되어 보이는 신장과 옷에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극도로 단련된 듯 보이는 탄탄한 몸.

제국인과는 확연하게 차이 나는 짙은 피부색과 20대 초반 정도로 추측되는 다소 차가워 보이는 인상.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황립 아카데미의 정교수들에게 지급되는 최고급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

마치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가 바로...

소문의 주인공인 기간트 학부 실전 파트의 신임 수석교수임이 틀림없었다.

황립 아카데미의 두 부학장 중 1인이자, 아카데미가 위치한 황실 직할령 오베이트시와 그 인근 수십 개의 영지를 통틀어 적수를 찾아보기 힘든 제국 오너 서열 14위의 강자 아르헨 베를리오스 백작.

그는 오만해 보일 정도로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신임 수석교수의 모습을 확인한 직후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건... 젊다 못해 어리잖아. 설마 마스터? 하지만 아무리 마스터라 한들,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마력을 감추는 건 불가능해. 발렌타인 공작 전하와 같은 그랜드마스터가 아니라면 말이야.’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게 사실일 가능성 따위는 없으니, 이건 저 동대륙인 수석교수가 익힌 ‘오러 임브레스’가 마력을 감추는데 특화되어 있다고 보는 쪽이 옳았다.

‘아무래도 동대륙쪽 오러 임브레스가 그런 방면에선 압도적으로 뛰어나긴 하지.’

아르헨 베를리오스가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비록 그의 오너 서열은 제국 전체에서 10위권 중반에 불과했지만, 최상급의 극에 이르러 있는 엑스퍼트로서의 실력으로만 따지자면 달랐다.

그랜드마스터인 발렌타인 공작과 다른 두 마스터를 제외한 제국의 엑스퍼트 중 최강으로 불리는 이가 바로, ‘크란티노(아르헨 베를리오스의 고향인 후작령)의 검귀’라 불리는 그였기 때문이다.

‘베일리쉬 후작님이나 랑트쉬 녀석도 내 감각을 완벽하게 속이는 건 불가능해.’

비록 2살 어린 아트링거 백작가 출신(전대 백작의 4남) 랑트쉬 그리즈만(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며 백작의 작위와 영지, 그리즈만이라는 성을 하사 받음)이 불과 10개월 전 한발 먼저 제국의 3번째 마스터가 되기는 했지만, 마스터의 벽을 넘어서기 직전까지만 해도 오히려 대련에서 더 높은 승률을 기록한 쪽은 아르헨 베를리오스쪽이었다.

그리고 신입 마스터인 랑트쉬 그리즈만뿐만 아니라, 이미 수십 년 전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대륙 10강’ 페리슨 베일리쉬 후작 역시 제아무리 극도로 마력을 통제한다 한들 그의 감각을 완벽하게 속이는 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마스터로 보기에는 저 신임 수석교수의 외모는 어려도 너무 어려 보였다.

서대륙 최고의 국력을 자랑하는 데다 대륙 북부 해안에 엄청난 규모의 항구들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1년에 단 한 번이기는 하지만(그마저도 여러 사정으로 인해 실패하는 경우가 존재) 동대륙과 정기 무역선이 왕래하는 이펜타르크 제국이었다.

당연하게도 오르비스 대륙의 그 어느 국가보다 동대륙인을 흔하게 볼 수 있는 곳 역시 바로 이곳 이펜타르크 제국이었고, 아주 가끔은 미지의 대륙에 대한 호기심을 참지 못해 정기 무역선에 몸을 실은 ‘동대륙의 대륙급 강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아르헨 베를리오스 역시 그러한 동대륙의 강자들을 몇 번 정도 만나본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저쪽 대륙의 최상급 엑스퍼트나 마스터라 한들 이곳과 그리 다를 바는 없었다.

노화가 지연되고 심지어 바디체인지를 통해 젊은 시절로 육체가 회귀한다 한들, 그 정도에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잘해봐야 22? 23? 설령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해 젊어진다 한들, 20대 초반으로 돌아간단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

55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제국 역사상 마스터들이 벽을 넘긴 평균 나이는 약 58세)에 마스터의 벽을 넘어 바디체인지를 겪은 랑트쉬 그리즈만 또한 20대 후반 시절의 외모로 되돌아가지 않았던가.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최상급 엑스퍼트건 마스터건... 엄청나게 젊은 나이에 벽을 넘어버린 천재란 뜻이겠지.’

하지만 마스터에게서 느껴지는 강자 특유의 위압감이나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절대로 마스터는 아니라는 것이 아르헨 베를리오스가 내린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20대에 최상급 엑스퍼트가 된 괴물...’

이는 이펜타르크 제국 역사를 되돌아보아도, 오직 오르핀 발렌타인 공작 홀로 도달한 바 있었던 전설과도 같은 경지였다.

아르헨 베를리오스는 스스로의 추측에 납득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공작 전하께서 직인을 하사하신 이유가 있었던 거야.’

그리고는 뒤이어 치밀어오르는 질투심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말았다.

‘빌어먹을! 저딴 애송이가 공작 전하의...’

오르핀 발렌타인 공작은 평생 단 두 명의 제자를 두었는데.

그 중 하나는 명실상부한 ‘대륙 10강’의 초강자 페리슨 베일리쉬 후작이었고, 다른 하나가 바로 얼마 전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랑트쉬 그리즈만 백작이었다.

그리고 랑트쉬 그리즈만이 제자가 되기 전, 공작의 눈에 들기 위해 그와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던 존재가 바로 아르헨 베를리오스 본인이었다.

아르헨 베를리오스의 재능이 랑트쉬 그리즈만에 못지않았던 만큼, 두 사람 모두 제자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테지만...

스스로의 단련을 중시하는 데다, 제국 내에서 자신의 영향력이 늘어나는 것을 경계한 발렌타인 공작은 자신의 뒤를 이어 제국 제1검의 무게를 짊어질 페리슨 베일리쉬 후작 이외의 제자를 두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마도 페리슨 베일리쉬에게 후진을 양성하는 능력이 눈곱만큼이라도 존재했더라면, 랑트쉬 그리즈만이 오르핀 발렌타인 공작의 제자가 되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페리슨 베일리쉬는 스승인 발렌타인 공작 이상의 ‘수련광’이었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과는 100만 광년쯤 떨어진 인간이었다.

결국 다음 세대(최상급 엑스퍼트 이상의 관점에서 한 세대는 20~30년), 그러니까 차차기 제국 제1검의 양성 역시 당시 100세를 눈앞에 두었던 발렌타인 공작의 몫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어쨌든 공작의 제자가 된 지 불과 9년 만에 랑트쉬 그리즈만이 마스터의 벽을 허물어버렸으니, 제국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자신의 자리를 빼앗겼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던 아르헨 베를리오스만은 쓰라린 속을 애써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랑트쉬 그리즈만이 발렌타인 공작의 제자로 선정되었을 당시에만 해도, 분명 한발 앞서 있었던 것은 아르헨 베를리오스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리하여 견고하게 구축된 제국 제1검의 계보.

오르핀 발렌타인(100대)

페리슨 베일리쉬(70대)

랑트쉬 그리즈만(50대)

그리고 바로 여기서 아르헨 베를리오스의 질투심에 불을 지르게 된 포인트가 발생하고 말았다.

지금 막 자신의 앞을 스쳐 지나간 저 젊디젊은 수석교수(아마도 30대로 추정), 무려 발렌타인 공작의 직인이 찍힌 추천서를 들고 황립 아카데미에 발을 들이민 저 신임 수석교수가...

랑트쉬 그리즈만의 뒤를 이어 제국 제1검의 계보를 이을(조금만 생각해 봐도 너무 성급한 판단이었지만) 후계자라 판단해 버린 것이다.

‘마음에 안 들어. 저토록 오만한 표정이라니. 좋아, 대체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 있는지... 내 직접 확인해 주겠어.’

물론, 만에 하나라도 마스터일 가능성이 존재하는 만큼...

‘기간트 학부 실전 파트의 수석교수라고 하니, 기간트로 상대해주는 정도의 배려는 해주도록 하지... 크흠.’

#2

무려 수천 명의 인원이 운집해 있었지만, 그 몇 배나 되는 공간이 비어있을 만큼 황립 아카데미 대강당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가장 앞 열의 학생들과 30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 우뚝 솟아있는 단상의 뒤로는 100여 석에 가까운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얼핏 봐도 그중 비어있는 자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학교 운영진과 내빈들의 자리로 추측되는 가장 앞 열의 중앙에는 유일하게 안면이 있는 아카데미의 학장이 앉아있었고, 그 주위로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신분의 인물들이 모여있었다.

뚜벅뚜벅......

내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다가가자 단상 위에 앉아 있던 이들 대부분이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움직이지 않은 것은 학장을 비롯한 대여섯 명의 인물들 뿐이었는데, 그들조차 내가 자신들의 앞에 다다랐을 때에는 몸을 일으키며 인사를 건네왔다.

끝까지 몸을 일으키지 않은 이는 학장의 옆옆옆 자리에 앉아있던 30대 후반의 사내 단 한 명뿐이었다.

‘호오...’

마치 한 자루의 날카로운 검을 연상시키는 그 사내는, 대강당 안에 존재하는 수천 명의 인원 중 ‘강자의 아우라’를 풍기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고.

그 몇 안 되는 인물 중에서도 가장 짙은 아우라가 느껴지는 엄청난 강자였다.

‘알버트(루페른 왕국 브라이드 영지의 최상급 엑스퍼트) 자작이나 드워프 국왕과 비슷... 아니, 그보다는 조금 더 강한가?’

오르비스 대륙에 도착한 초창기였다면 감히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을 무시무시한 강자였을 테지만, 당시보다 몇 배나 강해진 지금이라면 박빙의 승부를 예측해 볼 수 있을 정도의 아우라였다.

‘물론 스킬이라는 변수가 존재하는 이상, 승산은 이쪽이 훨씬 더 높을 테지만. 그나저나... 이쪽 세계 최고의 교육 기관이라고 하더니, 과연 대단하긴 하군.’

조금 거북할 정도로 강렬한 눈빛을 보내오고 있는 사내를 제외하고도, 강자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인물들이 무려 여덟이나 더 존재했다.

물론 그중 절반 정도는 매우 희미하게 느껴지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그 정도만 하더라도 최소한 최상급 엑스퍼트나 능숙한 수준의 6서클 마법사는 된다는 뜻이었다.

나는 단상 위에 서 있던 실전 파트의 정교수 브루노 힐(진행자 역할을 맡은 듯했다)의 안내를 받아 가장 앞 열에서 유일하게 비어있던 자리로 안내되었다.

그 자리는 학장과 황실의 대표로 개학식에 참가했다는 황족을 제외하면 가장 상석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내가 그 자리에 착석하자 나를 향해 쏟아지던 강당 내의 시선들이 한층 더 강렬해졌다.

‘저 자식은 왜 저렇게 노려보는 거야?’

그 수많은 시선 중에서도 유독 강렬한 것은 예의 그 ‘강자의 아우라’를 풍기던 사내의 것이었는데, 이제는 얼굴까지 시뻘겋게 달아오른 상태로 마치 잡아먹을 듯한 눈빛을 쏘아 보내는 중이었다.

‘뭐지? 어줍잖은 텃세라도 부릴 셈인가?’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자리에서 주먹을 날릴 수도 없는 노릇.

나는 사내의 시선을 무시한 채, 어서 빨리 이 지겨운 개학식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야만 했는데.

무려 개학식의 첫 번째 식순이 바로 새로운 수석교수의 신상과 앞으로의 교육 방침을 소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귀찮군.’

나는 요란한 박수 세례를 받으며 연단 앞에 섰다.

그리고는 미리 생각해두었던 수석교수로서의 강의 방침을 연설했다.

“스노우다. 보다시피 동대륙인이고, 발렌타인 공작가의 추천으로 이곳에 왔다. 학기 간 진행될 내 강의 내용은 간단하다.”

나는 잠시 말을 끊은 뒤 수천의 학생들, 그중에서도 기간트 학부로 추측되는 1500여명의 학생들을 향해 눈길을 주었다.

“일주일간 수업을 참관한 이후, 최대 3명의 인원을 선발하겠다. 선발된 인원은 모든 강의에 열외이며, 학기 내내 내 지도를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과목의 성적은 학기 말에 치르는 ‘기간트 대련’의 성적과 동일하게 주어질 것이다. 이상.”

웅성웅성웅성웅성...

말을 마치고 돌아서자 내내 조용하던 학생들 사이에서 적지 않은 소요가 일었고.

100여 명의 관계자와 내빈들 역시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대놓고 수석교수의 권위에 도전라려는 사람은 없는 듯했고, 식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너무 지겨운데...’

터져 나오려는 하품을 참아내며 덤덤한 표정을 유지하길 30여분.

드디어 학장과 황족을 비롯한 몇몇 높으신 분들의 고리타분한 덕담과 연설을 끝으로 모든 식순이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진행자(브루노 힐)가 식을 마무리하기 위한 멘트를 준비하던 그때.

“잠깐, 식을 끝내기 전에 할 말이 있소.”

처음부터 날 향해 마뜩잖은 시선을 보냈었던 바로 그 사내였다.

그는 연단으로 걸어 나가더니, 진행자로부터 마치 빼앗듯 음성 증폭 장치를 건네받았다.

“부학장 아르헨 베를리오스입니다. 먼저......”

아르헨 베를리오스라는 이름의 사내는 우선 식의 진행을 방해한 것에 대해, 관계자들과 내빈 그리고 학생들을 향해 매우 귀족적인 사과를 표했고.

그런 다음에야 자신의 진짜 목적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니다. 또한, 결코 전통적인 수석교수의 권한을 침해할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변해버린 커리큘럼에 당황스러울 학생들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저는......”

학생들에게 향해 있던 사내, 아르헨 베를리오스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큭...”

나도 모르게 입술 새를 비집고 실소가 튀어나왔다.

장황하게 떠벌리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저 녀석이 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은 간단했다.

“거참, 한 판 붙자는 말을 참 어렵게도 하는군.”

흠칫 몸을 떠는 학장과 황족을 비롯해, 내 말을 들은 몇몇 관계자와 내빈들의 반응을 무시한 채.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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