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수련의 성과
#1
개학식 당일과 그 다음 날, 그리고 그 다음다음 날인 오늘까지.
히아신스관에 틀어박힌 내가 한 일이라곤 지난 일주일과 마찬가지로 수련, 수련, 수련뿐이었다.
그러니까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식사까지 실내수련장에서 해결하며 수련에 열중했다는 뜻이지.
이렇게 미친 듯이 수련에만 몰두한다고 해서, 내가 수련을 광적으로 좋아한다거나 맹목적으로 이것에만 집착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크나큰 오산이다.
“세상에 수련 자체를 좋아하는 인간이 있을 리가. 아니, 잘 찾아보면 한둘쯤은 있으려나?”
수련 같은 걸 하지 않고도 강해질 방법이 있다면 나는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재능이 흘러넘친다 한들, 적어도 인간이라면 아무런 노력 없이 강해지는 데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잔인한 진실을 더하자면, 아무리 미친 듯이 노력을 해봐야 타고난 재능의 한계를 넘어서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재능’이라는 건, 좀 더 쉽게 ‘노력’이란 걸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윤활유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가끔은 너무나 엄청난 재능으로 인해, 스스로가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했는데.
지구에서 본 몇몇 소수의 S급 헌터(각성자)들이 그러했었고.
이곳 오르비스 대륙에서 기간트라는 ‘마스터피스’를 찾아낸 지금의 내가 그러했다.
사실 ‘파일럿’ 자체가 ‘탑승물’의 성능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특성이니만큼.
단순히 더 강력한 기간트를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단숨에 몇 배에 달하는 스펙업을 이루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니까 나는 별도의 수련 따위를 하지 않더라도, 그저 막대한 돈을 지불하거나 특별한 의뢰를 완수하는 등의 방법으로 등급이 높은 기간트를 손에 넣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내가 각성한 건 일반적인 파일럿 특성이 아닌 무려 S등급의 파일럿 특성이었고.
이 ‘S등급’ 특성이 내포하고 있는 능력의 어마어마한 효과들로 인해, 단순한 기체의 업그레이드만으로는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본신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곧바로 기간트의 스펙업으로 이어진다.
기간트에 탑승한 채 행하는 모든 일들 또한 곧바로 나 자신의 강력함을 업그레이드시킨다.
그렇기에 내게 있어 수련은 더이상 ‘노력’의 범주가 아니었다.
그토록 ‘강함’이라는 것을 갈구했음에도 좀처럼 손에 넣을 방법을 찾을 수 없었던(지구에서는) 내게.
매 순간 스스로가 강해지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는 현재의 수련은, 그저 ‘즐거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즉,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수련을 광적으로 좋아하거나 맹목적으로 이것에 집착하는 인간이 아니다.
“이건 뭐, 피드백이 워낙에 좋으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그러니까 정말로 수련 자체가 좋은 게 아니다.
단지 강해지는 것이 좋았을 뿐이지.
#2
파바바바바바밧...
츠츠츠츠츠츠츠...
어지간한 엑스퍼트의 눈으로도 쫓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흐릿하고 거대한 존재들.
그들은 서로의 반대편에서 자신들의 가운데 위치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날카로운 발톱과 거대한 송곳니를 드러냈다.
하지만...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퍼어어어어어어어억
그들이 목표로 했던 존재의 날카로운 반격으로 인해, 달려들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반대쪽으로 튕겨 나가고 말았다.
크아아아아아아악!
뮤우우우우우우우!
황립 아카데미의 별관 중 하나인 ‘히아신스관’.
그곳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거대한 실내수련장 내부에 고함인지 비명인지 모를 커다란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그 예사롭지 않은 하모니의 주인공은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최상급 몬스터 듀오 토리와 아나투레스였다.
신장 8미터짜리 황금색 털복숭이 아나투레스와 몸길이를 5미터까지 키운 거대한 회색 고양이(?) 토리가 30미터가량 거리를 벌린 채 같은 방향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나투레스의 윤기 넘치던 황금빛 털은 군데군데 잿빛으로 그을려 있었고. 녀석의 한쪽 눈은 심하게 부어올라 거의 감겨 있는 수준이었으며, 양쪽 코에서 흘러내린 피가 풍성한 얼굴과 턱의 수염을 붉게 물들인 상태였다.
토리의 경우는 그에 비해 조금은 사정이 나아 보였다. 군데군데 털이 눌려있는 것과 연신 핥아대고 있는 오른쪽 앞발의 상처를 제외하면 딱히 심각한 부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그런 두 몬스터의 시선을 정면으로 감당하고 있는 상대는 아나투레스와 비슷한 신장의 붉은색 기간트 가이아였다.
크르르르르르르르...
뮤우우우우우우우...
벌써 3일째, 자신들의 주인이 탑승한 강철 거인을 상대로 2대1의 대련(을 가장한 폭행)을 지속해야만 했던 두 최상급 몬스터의 눈빛에는 절반의 두려움과 절반의 독기가 뒤범벅된 상태였다.
츠르륵
끼리릭
[흐음, 이 정도면 됐나? 벨런스는 적당히 잡힌 것 같긴 한데...]
강철로 이루어진 신체를 이리저리 움직여보는 가이아로부터, 두 몬스터의 경계심 가득한 태도 따윈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한 태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크아아아아아아악!
뮤우우우우우우우!
심령으로 연결되어있는 데다, 본능적인 감각이 극도로 발달한 두 몬스터는 자신들의 주인이 내뱉은 말에서 엄청난 불쾌감을 느꼈고.
이에 마치 항의라도 하듯 연달아 하악질(?)을 해댔다.
[아, 알았어. 그만할 테니 진정들 하라고.]
그제야 흥분을 가라앉히는 토리와 아나투레스.
철퍼덕.
털썩.
긴장이 풀린 듯 수련장 바닥에 대(大)로 뻗어버린 아나투레스와는 달리, 신체 구조상 그런 자세를 취할 수 없었던 토리는 제자리에 주저앉아 눌려버린 털을 연신 핥아대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냉정한 스노우라 할지라도, 절로 안타까운 마음이 치밀어 올랐을 정도로 처량한 몰골이었다.
‘조금 심했나? 오늘은 비싼 고기라도 먹게 해줘야겠군.’
무려 3일간 이어진 강행군.
이 모든 일의 발단은 개학식 날 있었던 황립 아카데미의 부학장 아르헨 베를리오스와의 대련이었다.
마지막 탑승이었었던 ‘재앙급 몬스터’와의 전투 이후 엄청나게 상승한 본신의 실력과 특성을 간과한 것이 문제였다.
가뜩이나 향상된 스펙에 기체마저 갑작스레 500rp급 기간트 브롱코스에서 1700rp급인 가이아로 바뀌자.
‘S급 파일럿’ 특성의 소유자인 스노우조차 순간적으로 기체의 완전무결한 통제에 실패해 버리고 만 것이다.
그로 인해 애초 적당히 어울려주다 제압하려던 계획과는 달리. 기간트, 그것도 무려 2700rp급 초고등급 기간트인 크루거의 헤드를 일격에 산산조각 내버리는 황당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만 것이다.
“그 덕에 꽤나 귀찮아져 버리고 말았지.”
지금도 이곳 수련장 밖에서는, 히아신스관의 문턱을 넘는 귀족들을 상대하느라 하녀장인 마틸다 프레스턴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야망 넘치는 귀족 부인이자 능력 있는 하인장인 그녀는 특유의 화술과 사교계의 경험을 활용해 찾아오는 귀족들의 발길을 매끄럽게 돌리면서도, 그들이 가지고 온 선물들은 차곡차곡 받아 챙김으로써 스노우의 마음을 매우 흡족하게 만들었다.
“아들이 4학년이라고 하던데. 나중에 훈련병 프로필이라도 한번 살펴봐 줘야겠군.”
나름대로 은원이 확실한 스노우였기에 별다른 의미 없이 해본 생각에 불과했지만.
그의 관심을 받게 될 누군가는 ‘기연’이라 부를 만한 일을 겪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파아아아앗
스노우는 수련장 바닥에 드러누워 있던 아나투레스를 사육장으로 돌려보냈다.
굳이 스킬을 이용해 치료를 해주거나 할 필요는 없었다.
각인을 새긴 소환수의 경우 사육장 내에서 강력한 치유 효과를 받을 수 있었기에, 고작(?) 저 정도 부상은 불과 서너 시간 뒤면 흔적조차 남지 않을 터였다.
아나투레스에 비해 경미한 부상을 입은 토리라면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멀쩡한 상태가 될 수 있을 테지만, 사육장에 들어가는 걸 죽을 만큼 싫어하는 지라 스노우가 직접 치료를 해주어야만 했다.
토리의 부상을 치료한 스노우는 30cm 크기로 줄어든 녀석과 함께 수련장의 거대한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제 이곳에 올 일을 없겠지?”
묘오오오오오오오오...
스노우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인지, 나른한 울음을 토해낸 토리가 그의 바짓단에 얼굴을 비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호된 경험(아나투레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을 한 터라, 토리에게 있어 이곳 히아신스관의 실내수련장은 생애 최악의 장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녀석의 하는 양을 지켜본 스노우는 피식 실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난 3일간의 수련으로 그가 얻은 것은 어긋나 있던 벨런스를 완벽하게 바로잡은 것 말고는 딱히 없었다(물론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소득이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 기간동안 가장 큰 발전을 이룬 건 다름 아닌 셋 중 최약체였던 토리였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 토리는 최상급으로 진화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는 데다, 서식지 주위엔 천적이라 할 만한 존재조차 없었기에 딱히 전투 경험이랄 게 없었다.
그런데 자신보다 월등하게 강력한 두 존재와 3일 밤낮을 어울렸으니, 최상급 몬스터로서 지닌 포텐이 터지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그 증거로 대련 초반만 해도 아나투레스의 변칙적인 움직임을 제대로 쫓아가지 못하던 토리는, 3일째인 오늘에 이르러서는 마치 합격술이라도 연마한 듯 아나투레스의 초고속 기동에도 완벽하게 호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었다.
하지만 강해지는 것 따위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는 듯, 그저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던 이 장소에 더이상 오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뻐할 뿐인 토리였다.
“뭐, 굳이 너까지 강해질 필요는 없겠지.”
사실 3일간의 대련으로 인해 충성도가 [77/100(87/100)]에서 [충성도 75/100(86/100)]로 감소하는 걸 확인했기에 더 이상 수련을 시킬 마음도 들지 않았다.
토리의 경우는 충성도 90을 넘겨 테이머 특성의 고유스킬인 ‘스텟 공유’의 대상이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전투 보조라면 아나투레스로도 충분하지.’
재밌는 사실은, 토리와 비교가 불가능 할 정도로 호되게 두들겨 맞은 아나투레스의 경우.
황립 아카데미 입성 이후 지난 10여 일간 이루어진 수련으로 인해, 오히려 충성도가 [37/100(83/100)]에서 [38/100(83/100)]로 상승했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녀석은 강해진다는 것 자체에 큰 만족감을 느끼는 타입일 테지.’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두들겨 맞았음에도 충성도가 오를 리 없을 테니까.
드르륵
스노우는 닫혀 있던 수련장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사용인들은 물론, 근처를 지나치던 이들까지 깊숙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얼마 뒤, 복도를 따라 걷고 있던 스노우의 곁으로 마틸타 프레스턴이 다가왔다.
“지시를 내리실 사항이 있으신가요, 수석교수님?”
그녀의 물음에 스노우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내일부터 학년별 실전 파트 수업을 참관하겠다.”
바야흐로 황립 아카데미의 ‘수석교수’로서의 역할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