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160화 (160/169)

160화 참관

#1

개학식 이후 황립 아카데미 학생들의 관심은 온통 ‘동양인 신임 수석교수’에게로 쏠려 있었다.

좀 더 정확하게 파고들자면 개학식 연설에서 천명한 강의 방식에 관한 관심이었다. 그가 연설을 끝낸 뒤 단상을 내려갈 때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그 듣도 보도 못한 방식에 콧방귀를 끼었더랬다.

제아무리 수석교수라는 직위의 권위가 엄청나다 한들. 이름 한번 들어본 적 없고, 능력조차 검증되지 않은 인물의 ‘오만’에 휘둘릴 정도로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대륙 최강 이펜타르크 제국의 황립 아카데미는.

‘분명 그랬었지. 그 말도 안 되는 대련을 목격하기 전까지만 해도...’

개학 이후 3일 차.

‘중급 기동’ 강의를 위해,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아카데미 북쪽의 제1훈련장으로 들어서던 2학년 A반의 루이스 엔리케. 그는 아직도 눈만 감으면 아른거리는 그 날의 충격적인 장면을 떠올렸다.

솔직히 수석교수의 그것은커녕, 아르헨 베를리오스 부학장의 움직임조차 제대로 따라잡지 못했었지만...

마지막 순간 유려한 자세로 주먹을 뻗고 있었던 붉은색 기간트와, 헤드가 산산이 부서지던 그 유명한 제국의 초고등급 기간트 크루거의 모습만큼은 그의 뇌리에 화인처럼 새겨져 있었다.

‘부학장님은 제국 오너 서열 14위에 오른 분이야. 그런 실력자의 헤드를 날려버리려면 대체 서열이 어디까지 올라가야 할까?’

제국 오너들의 순위는 매년 1월에 갱신된다. 순위를 조사하고 발표하는 기관은 ‘기간트 관리국’이며, 그 권위를 보증하는 것은 무려 제국의 황실이었다.

그런데 사실 제국을 대표하는 초강자들이 실력을 겨룰 기회가 어디 흔하겠는가.

그런 이유로, 보통 ‘은퇴’가 아니고서는 좀처럼 순위권의 변화가 일어나기 힘든 구조일 수밖에 없었다.

확고한 ‘결과’나 ‘단서’가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누군가의 순위를 끌어내리는 건(올라가는 쪽이야 뭐...), ‘기간트 관리국’으로서도 상당히 부담되는 일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사실 제국의 오너 서열은 어디까지나 근사치일 뿐, 절대적인 실력의 기준은 아니었다.

지난 10년을 되돌아봐도, 10위권 이내의 오너 순위가 변한 경우는 딱 두 번뿐이었는데.

자발적인 은퇴를 제외하면, 무려 ‘마스터’의 벽을 뚫어낸 랑트쉬 그리즈만의 서열이 단숨에 18위에서 5위까지 상승하며 새로운 ‘제국의 다섯 별’로 이름을 올린 것이 유일했다.

물론 그로 인해 기존 다섯 별의 일원이었던 마르퀴즈 바우만 후작의 가슴에서 별이 떨어졌고, 서열 5위부터 17위까지 모두가 한 계단씩 아래로 밀려나야 했으니 결코 작은 변화라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로 인해 서열 13위에서 14위로 내려앉은 이가 바로 아르헨 베를리오스 부학장이었는데. 그는 황립 아카데미가 문을 연 이래로 이곳에 몸을 담았던 인물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만한 강자였다.

그런 강자가 무명(적어도 이펜타르크 제국에서는)의 수석교수에게 단 한 수만에 패해버리고 만 것이다.

‘서열 10위인 랑트겐 후작님? 아니야, 일격은커녕 100합 정도는 겨루고도 남을걸. 그럼 8, 7, 6위... 흐음, 이것도 아니야. 마르퀴즈 후작님도 부학장님을 열 합 안에 제압하는 건 불가능해. 헤드를 박살 내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고. 그럼 적어도...’

루이스 엔리케의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은 아버지와 함께 딱 한 번 만난 적 있었던 40대 초반의 중년인이었다.

‘맞아, 최소한 그리즈만 백작님 정도는 되어야 부학장님을 일격에 제압할 수 있을 테지. 그래도... 솔직히 한 방에 헤드를 날려버리는 그림은 잘 그려지지 않지만.’

루이스 엔리케의 기억 속에서 랑트쉬 그리즈만의 모습이 40대로 기억되는 이유는, 그를 만난 시기가 황립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황도를 지나쳤었던 2년 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랑트쉬 백작은 마스터가 아니었고. 나이에 비해 10년 이상 젊어 보이기는 했지만, ‘바디체인지’를 겪으며 서른 전후의 신체로 회귀한 현재의 모습(비록 직접 본 적은 없지만)과는 극명한 차이가 존재할 터였다.

‘하아, 그리즈만 백작님이라니...’

어느새 신임 수석교수의 비교 대상을 ‘최소 제국의 다섯 별’로 잡고 있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낀 루이스 엔리케였다.

그러니까 만약 그가 선발하는 ‘3인’ 안에 들 수만 있다면. 무려 제국의 다섯 별 수준의 강자에게 개인 지도에 가까운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었고. 이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기연에 가까운 일이었다.

‘절대로, 절대로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어.’

비록 어제와 그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수석교수였지만.

언젠가는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현장에 나타날 게 분명한 만큼...

절대로 긴장을 놓지 않겠다 다짐하는 루이스 엔리케였다.

#2

한편, 루이스 엔리케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홀로 서 있던 리즈 엘리엇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신임 수석교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한 걸까? 분명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던 것 같은데.’

아직까진 본인은 물론 주위에서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 하늘이 내린 재능으로 인해, 어렴풋하게나마 그날의 대련 양상을 되짚어 볼 수 있었던 리즈 엘리엇이었다.

그녀의 천재적인 감각은 말하고 있었다.

그 공격은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이는 두 사람의 실력 차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누가 봐도 신임 수석 교수와 아르헨 베를리오스 부학장 간에는 현격한 수준 차가 존재했으니까.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아직 잠재력의 절반은커녕 1/10조차 제대로 개화하지 못한 탓에, 단지 회피가 불가능했다는 강렬한 ‘느낌’ 하나만이 뇌리에 깊숙이 박혀 버린 리즈 엘리엇이었고.

그것이 자신의 잠재력을 월등히 뛰어넘는 ‘이레귤러’가, 아주 잠깐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해 빗어낸, 말도 안 되는 ‘회피 타이밍’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었음을 알아챌 도리는 없었다.

그러니까 수석교수는, 보통은 열이면 열 크루거의 롱소드에 꿰뚫리고도 남았을 늦은 타이밍에 회피를 위한 동작을 시작했음에도. 오직 상식을 아득히 벗어나는 속도만으로 검이 그리는 궤적을 벗어난 뒤, 반격까지 성공시켜 버리는 규격을 벗어난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리즈 엘리엇의 천재적인 재능이 오히려 독이 되어버렸다.

아직 꽃봉오리조차 열리지 않았을지언정, 그녀의 안에 내재 되어 있는 거대한 잠재력은 때때로 놀라운 수준의 통찰력(혹은 관찰력)을 발휘했고.

두 초강자가 격돌하는 순간, 하필이면 때마침 한계까지 발휘된 리즈 엘리엇의 통찰력이 ‘이상 현상’을 정확하게 포착한 것이다.

그것은 리즈 엘리엇이라는 희대의 천재가 잠재력을 모두 개화해내는 데 성공하더라도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한 움직임이었고.

그렇기에 그녀에게는 ‘이상 현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지난 3일간, 우등생인 그녀가 고장 난 로봇처럼 정신을 반쯤 놓아버린 이유이기도 했다.

“아이씨, 진짜 뭐지? 대체 그걸 왜 불가능하다고 느낀 걸까? 그 수석교수가 버젓이 해내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도...”

가장 좋은 방법은 수석교수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이었지만.

그는 지난 3일간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고.

설령 모습을 보였다 한들.

‘부, 분위기가 너무 무섭단 말이야. 히잉...’

의외로 소심한 성격의 리즈 엘리엇에게, 대화 한 번 해본 적 없는 무시무시한(?) 수석교수를 찾아가 질문을 던질 용기 따위가 있을 리 만무했다.

잠시 울상을 짓던 그녀의 얼굴에 별안간 결연함이 감돌았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야.”

리즈 엘리엇이 생각해낸 방법은 바로...

“어떤 질문을 해도 상관없는 관계가 되면 그만이지, 뭐.”

수석교수가 언급한 ‘3인’에 뽑혀 그의 직속 제자가 되는 것이었다.

#3

내가 가장 먼저 참관한 것은 1학년들의 수업이었다.

황립 아카데미의 기간트 학부 실전 파트에서 가르치는 것은 총 다섯 과목이었는데.

그 구성은 이랬다.

기간트 기동.

기간트 무기술.

대 기간트전.

대 몬스터전.

집단전.

이 중 위의 네 과목은 매주 2~3회의 강의가 편성되어 있었지만. 마지막 집단전 과목의 경우는 한 달에 한 번, 그러니까 한 학기에 총 3번의 강의만 진행되며 시험 역시 2차 시험 1회만 실시한다.

현재 내가 지켜보고 있는 것은 1학년 C반의 ‘초급 무기술’ 수업이었다.

황립 아카데미는 매 학기 성적에 따라 반을 나눈다.

상위 50명이 A반, 차순위 50명이 B반, 다음 순위 50명이 C반... 이런 식으로 F반까지 총 6개 학급으로 편성되는 셈.

그중 성적이 가장 좋지 않은 F반은 언제나 50명을 한참 초과한 인원이 배정되곤 했는데.

황립 아카데미의 모든 강의실은 최소 100인이 한꺼번에 참석할 수 있도록 건축되었다고 하니 별다른 문제는 없을 듯했다.

물론 모든 강의가 실외 훈련장에서 진행되는, ‘기간트 학부 실전 파트’의 수석교수인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는 사항이었다.

앞서 다른 5개 반을 모두 돌아본 터라, 제7훈련장에서 초급 무기술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C반 50명의 확인이 끝나면 1학년들의 프로필 확인은 마무리된다.

“흠...”

[크리스 보스웰(D+) : 18세, 파일럿 재능 ? 35/49(현재/최대치)......]

[줄라탄 오닐(C-) : 17세, 파일럿 재능 - 33/53(현재/최대치)......]

[제시 아실러스(C) : 17세, 파일럿 재능 ? 34/56(현재/최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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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너 루크라인(D) : 17세, 파일럿 재능 ? 32/44(현재/최대치)......]

확실히 성적 40% 전후의 학생들을 모아놓은 탓인지, 대체로 현재 능력치나 잠재력이 고만고만한 수준이었다.

‘영 쓸만한 녀석이 안 보이는군.’

그리고 그건, 이들보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을 몰아넣은 A반이나 B반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대륙 최고의 인구수를 자랑하는 이펜타르크 제국인 만큼, 상위 10% 이내의 학생 다수가 속해있는 A반의 경우 제법 뛰어난 인재들이 포함되어있었다.

‘S급은 없었지만 A+급이 하나, A급이 둘, A-급도 한 명 있었지. 나머지 인원들 역시 대부분이 B급 이상이었고.’

루페른 왕국을 벗어난 이후 의뢰를 거듭하며 만났었던 인물들의 평균치가 워낙에 높아서 그렇지.

사실 잠재력 B급 정도만 하더라도, 제대로 개화할 수만 있다면 어지간한 귀족가에서는 서로 모셔가려고 할 정도의 인재였다.

‘물론 개화에 성공할 확률이 그리 높지 않긴 하지만.’

그런데 이곳 황립 아카데미의 우수한 교육 덕분인지, 아니면 대부분이 17세인 어린 나이 덕분인지.

1학년들 중 거의 대부분이 자신의 잠재력에 비례하는 현재 능력치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는 내게 있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쩝,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한 놈이 안 걸릴 수가 있지?”

“네?”

곁에서 나를 수행하던 부교수 타본 레바인(안면이 있다는 이유로 떠넘겨진 듯했다)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되물었지만, 나는 가볍게 손을 들어올리는 것으로 그의 입을 막아버렸다.

“1학년은 끝난 것 같군. 다음은 2학년으로 하지.”

“네! 안내하겠습니다, 수석교수님!”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도착한 2학년 A반의 ‘대 기간트전’ 강의.

나는 그곳에서...

“오오오!”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올 정도의 인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리즈 엘리엇(S) : 17세, 이펜타르크 제국 엘리엇 남작의 첫째 딸. 황립 아카데미 2학년 차석.

159cm, 41kg

파일럿 재능 ? 54/95(현재/최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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