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선발(1)
‘잠재력 S등급’은 말할 것도 없었고, ‘현재 능력치 54’ 역시 황립 아카데미의 2학년 중 가장 뛰어난 학생들을 모아놓은 A반에서도 최상위권이라 할 수 있었지만.
내게 있어 저 조그만 여자애가 ‘최고의 인재’인 이유는...
S급 잠재력을 지니고 있어서도 아니었고.
또래 중에서 특출난 현재 능력치로 인한 것도 아니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2학년 A반의 학생 중 (현재 능력치가) 리즈 엘리엇의 앞뒤에 해당하는 두 사람의 프로필과 비교해 보아야만 했다.
[루이스 엔리케(B+) : 18세, 파일럿 재능 ? 60/80(현재/최대치)......]
[웨인 레이우드(A) : 18세, 파일럿 재능 ? 52/87(현재/최대치)......]
잠재력에서 비교 불가능할 정도의 차이(90대 이상에서 잠재력 1의 차이는 80대에서 잠재력 5 이상의 차이)를 보이는 두 사람과 비교하면.
리즈 엘리엇의 잠재력 대비 현재 능력치가 얼마나 형편없는 수준인지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뭐, 아직 폭발할 때가 되지 않았거나... 아예 대기만성형일지도 모르지.’
아무튼, 리즈 엘리엇이야말로 고유스킬 ‘호랑이 교관’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인재임이 분명했다.
사실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제국의 인재를 발굴, 성장시켰다는 건 ‘보상’의 질을 업그레이드 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테니.
이왕이면 손쉽게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학생들을 선발해서 나쁠 게 없었다.
그런데...
“흐음...”
4등(현재 능력치 46)과 비교해 월등한 현재 능력치를 지닌 웨인 레이우드까지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루이스 엔리케? 이 자식은 뭐지? 무슨 조로병 같은 건가? 프로필이 왜 저 모양이야?’
물론 A-등급에 아슬아슬하게 못 미치는 잠재력 수치 ‘80(B+)’ 역시 상당히 준수한 편임은 분명했다.
문제는 고작 18살인 주제에, 잠재력과 현재 능력치의 차이가 20밖에 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는데.
이는 지금껏 확인한 수백의 학생 중, B-급 이상의 잠재력을 지닌 이들 중에서는 단 한 명도 보인 적 없는 수치였다.
실제로 두 괴물(루이스 엔리케, 리즈 엘리엇)을 제외하면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웨인 레이우드 역시, 잠재력과 현 능력치 간에는 무려 35라는 격차가 존재했다.
부교수 타본 레바인의 말에 따르면.
루이스 엔리케라는 녀석이야말로 현 황립 아카데미 재학생 중 최고의 인재이자, 한 30년쯤 뒤엔 ‘제국의 다섯 별’에 이름을 올릴 것이라 기대되는 천재 중의 천재라 불린다는데...
‘쯧,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군.’
지금까지의 성장 속도로 보건데, 루이스 엔리케라는 녀석은 아무리 늦어도 서른 살이 되기 전에는 성장이 멈춰 버릴 것이 자명할 듯 보였다.
‘어쩌면... 차라리 처음부터 재능이 없는 편이 나았을지도.’
현재 능력치 ‘60’이라면, 베헤르디아 대수림을 수호하던 브라이드 영지의 금십자 기사단 내에서도 평균 정도는 되는 수치였다.
‘현역 오너인 테리가 고작 54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분명 내가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만난 오너인 테리 헤링스, 그 수다쟁이 녀석의 현재 능력치가 그쯤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엑스퍼트로서의 실력 역시 꽤나 차이가 날 것이 분명한 만큼, 파일럿 능력치의 차이가 승부의 결과로 직결되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말단 중의 말단이라고는 하나 26세인 현역 기사보다도 월등한 ‘기간트 조종술’이라면?
게다가 그 장본인이 고작 18세의 아카데미 학생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을 하늘이 내린 천재로 착각한다 한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그런 기대와 찬사를 숨 쉬듯 경험했을 루이스 엔리케의 입장에서.
고작 서른 이전에, 그것도 주위의 기대에 터무니없이 못 미치는 수준에서 성장이 끝나버린 현실을 받아들이는 건 매우 힘든 일이 될 터였다.
‘조금 안타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아무리 나라도, 잠재력의 한계를 의도적으로 성장시키는 일만큼은 불가능의 영역이었으니까.
결론은?
‘뭐, 알아서 하겠지. 난 저 콩알만 한 여자애나 신경 쓰면 돼.’
어차피 3개월 뒤면 더 이상 볼 일도 없을 사이 아니던가.
나는 천천히 오른손 검지를 들어 올려 어느새 대련 상대를 무자비하게 박살 내는 중인 훈련용 검은색 기간트 ‘트라웃(400rp)’을 가리켰다.
“저 아이를 선발하겠다.”
당연히 그 기간트에 탑승한 파일럿은 붉은 머리 소녀 리즈 엘리엇이었다.
#2
첫 번째 학생을 결정했지만, 선발 결과를 곧바로 알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히아신스관의 하녀장인 마틸다 프레스턴에게 전해 들은 최근 아카데미의 분위기나, 나를 수행 중인 타본 레바인의 입을 통해 알게 된 정보를 종합해 보건데.
현 황립 아카데미의 재학생 대부분이 내가 선발하는 특별반 3인에 포함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괜히 섣부르게 말을 흘려 귀찮은 상황을 자초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 건 다른 누군가가 해결하겠지.’
어쨌든, 어느 모로 생각해봐도 안성맞춤인 인재를 발견한 터라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리즈 엘리엇이라는 꼬맹이는 현시점에도 충분히 ‘천재’와 ‘수재’ 사이의 범주에 속한다는 평가를 받을 만한 인재였다. 본래라면 50명의 A반 학생 중 고작 둘뿐인 17세란 나이(대부분 18세) 때문에라도 ‘천재’로 어화둥둥 떠받들어졌을 테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같은 해에 입학한 불세출의 천재(실상은 아니지만)로 인해, 녀석이 받을 수 있었던 스포트라이트는 대폭 줄어 버렸을 것이 분명했다.
‘그딴 거 받아봤자 콧대만 높아지던가, 부담감에 지쳐버렸을 확률이 높을 테니... 어지간하면 이득이라고 봐야겠지.’
나는 지금 막 기간트를 소환 해제한 리즈 엘리엇의 자그마한 신형을 눈에 담으며 발길을 옮겼다.
“다음은 어디지?”
첫 번째 선발자로 리즈 엘리엇이 뽑힌 이후 내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던 타본 레바인이 화들짝 놀라며 답했다.
“어억! 아, 네, 네! 그러니까... 제, 제5훈련장에 2학년 D반이 ‘중급 기동’ 훈련을 진행 중입니다.”
“그곳으로 가지. 그리고... 잡아먹지 않을 테니, 천천히 말해도 된다.”
“히이익! 네, 가, 가, 감사합니다!”
녀석은 또다시 화들짝 놀라며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저렇게 놀라는 거지?’
한국보다는 중남미 쪽 황인 계열에 가까운 험상궂은 얼굴. 거기에 나보다 월등히 큰 180대 후반의 신장과 엄청나게 단련된 듯 보이는 우락부락한 몸까지.
‘외모로만 보자면 맨손으로 오우거도 때려잡을 것처럼 생긴 인간인데.’
게다가...
[타본 레바인(A) : 35세, 파일럿 재능 ? 76/89(현재/최대치)......]
이걸 과연 대륙 최강국 황립 아카데미의 부교수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대체 왜 교수 노릇이나 하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해야 할지.
무려 잠재력 ‘A등급’에 현 능력치 ‘76’, 거기에 35세에 불과한 나이라면. 어지간한 상급 기사단에선 서로 모셔가지 못해 안달이 날 수준의 인재였다.
심지어 12살이나 많은 정교수 브루노 힐(A-, 79/81)과 비교해도 현재 능력치에서 그리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는데.
이것 하나만으로도, 40대 후반인데다 이미 잠재력의 한계에 가까워진 브루노 힐에 비해 훨씬 더 뛰어난 포텐셜을 지녔다 할 수 있겠다.
‘나이를 감안하면 거의 황실 기사(근위 기사단을 제외한 황실 기사단 소속 기사)급 인재 아닌가? 성장 속도가 빠르다면 근위 기사도 무리가 아니고.’
그런 인간이 저토록 과할 정도로 주눅이 들어 있는 모습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다.
혹시 저게 연기라면 의뢰와 관련된 첩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본 그의 훈련병 프로필은 의심의 여지조차 없이 깨끗했다.
아마도 평생 엘리트 코스만 걸어왔을 이 소심한 황인종 부교수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으나.
잠깐 머물 뿐인 이곳 황립 아카데미의 인물들 하나하나가 지닌 사정을 모두 살필 수는 없는 노릇.
나는 머릿속에 멤도는 ‘타본 레바인’에 대한 상념을 떨쳐 버리며 2학년 D반이 훈련 중인 제5훈련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3
남은 다섯 개의 반을 샅샅이 훑었지만, 끝내 2번째 적합자(?)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물론 그 중 리즈 엘리엇처럼 현재 능력치가 터무니없이 낮은 학생들도 존재하기는 했다.
[알렉산더 서먼(D+) : 19세, 파일럿 재능 ? 22/47(현재/최대치)......]
[기욤 페트리어트(F+) : 18세, 파일럿 재능 ? 20/33(현재/최대치)......]
그중에서도 2학년 F반에서 발견한 이 두 녀석이 압권이었는데.
심지어 16세가 존재하는 1학년 중 가장 낮은 현재 능력치를 가진 학생조차 ‘24’였다는 걸 감안하면, 이 녀석들의 존재는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다.
즉, 형편없는 잠재력에 비해서도 현 능력치가 너무나도 낮다는 뜻.
“...대체 저런 녀석들이 어떻게 황립 아카데미에 존재할 수 있는 거지?”
그러자 마치 본인이 잘못하기라도 한 것 마냥 면목 없는 표정을 짓는 타본 레바인.
“그, 그게... 저 두 사람은 페트리어트 백작가와 서먼 후작가의 후계자입니다, 수석교수님.”
“아...”
그러고 보니 백작 이상의 귀족에게는 후계자 한정, 무시험으로 황립 아카데미에 입학시킬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았다.
‘뭐, 그렇다면야... 저런 녀석들이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그렇다고 해서 저런 머저리들을 입학시킨 귀족들을 욕할 마음은 없었다.
아무리 모자라다고 한들, 부모의 눈에는 모두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일 테니.
‘오너로서의 재능이 끔찍한 수준이라고 해서, 영지 운영 능력까지 떨어지란 법은 없지 않겠어?’
어차피 저런 지경이라면 기간트 학부에서 졸업장을 딸 가능성 따윈 없으니, 다른 학부로 전과를 하던지 황립 아카데미를 중퇴하는 길 이외엔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저 둘을 선발한다면 3개월이란 시간 안에 잠재력의 한계치까지 끌어올릴 자신이 있었다.
‘기욤이라는 녀석은... 어쩌면 한 달 안에 가능할지도.’
아무리 둔재라 한들, 호랑이 교관의 엄청난 버프를 받은 상태로 죽기 직전까지 구른다면...
고작 잠재력 한계 33 따위는 순식간에 그 끝을 드러낼 수밖에 없으리라.
다만...
‘그래봤자, 47과 33...’
그나마 현 능력치 47이라면, 3학년 A반에서도 평균 정도는 되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F반인 서먼 후작가의 후계자를 선발해 잠재력을 만개시킨다면, 상전벽해나 마찬가지인 상황을 연출하는 건 어렵지 않을 테지만.
‘쩝,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잔인한 짓을 할 수는 없지.’
생각해 보라.
평생 둔재로 살았던 인간이 순식간에 동 나이대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것도 고작 3개월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그렇다면 대부분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제야 뒤늦게 재능이 발휘되는 거야!’
‘내가 안 해서 그렇지 노력만 하면 이 정도라고!’
‘그동안 내 재능을 알아봐 줄 스승을 만나지 못했던 거야!’
더군다나 그 녀석이 제국에서도 명망 높은 귀족 가문의 후계자라면?
그나마 제대로 된 인성이 탑재된 녀석이라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며 더욱더 노력할 테지만.
아마 대부분은 콧대와 자존감만 한없이 높아져, 주제 파악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러 버릴 것이다.
‘처참한 프로필을 보건데, 저 녀석들은 후자일 확률이 높지. 뭐, 사실 전자건 후자건... 기다리는 미래가 ‘암울함’ 뿐이라는 건 다르지 않으니까.’
순식간에 한계까지 성장해 엄청난 고양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뿐.
그 이후로는 경험으로 인해 노련함이 더해지는 것 이외엔, 눈곱만큼도 성장할 여지가 남아 있지 않은 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것도 고작 18세, 19세라는 젊다 못해 어린 나이에 말이다.
‘저 정도면 토리를 시켜서 굴리기만 해도 능력치가 쑥쑥 오를 테니 일이 쉬울 것 같긴 한데. 쩝...’
그래도 선을 넘지는 말아야겠지?
나는 서먼 후작가의 후계자란 녀석을 일별한 뒤(백작가의 후계자는 고민할 가치도 없었다) 훈련장을 떠났고.
이후 3학년들의 강의가 진행되는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A반에 이어 찾은 B반과 C반에서...
각각 재미있는 녀석들을 하나씩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