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163화 (163/169)

163화 선발(3)

#1

‘하, 이건 대체 뭐 하는 놈이지?’

맹세컨대 리즈 엘리엇을 처음 봤을 때도 이 정도로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물론 이 동태 눈깔을 한 ‘노아 프린스’라는 애송이가 리즈 엘리엇 이상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노아 프린스(A+) : 19세, 파일럿 재능 – 45/94(현재/최대치)......]

‘뭐, 그 꼬맹이랑 비슷한 수준이긴 하지만.’

고작 잠재력 ‘1’의 차이로 내가 발견한 네 번째 S등급(첫 번째 칼튼 에거시(97), 두 번째 테일러 포지(95), 세 번째 리즈 엘리엇(95))이 되지는 못했지만. 잠재력 ‘94’ 정도면 이 역시 두말할 여지가 없는 천재적인 재능이었다.

그런데...

그런 압도적인 재능을 타고난 주제에 현 파일럿 능력치가 고작 ‘45’?

이건 S급인 리즈 엘리엇의 현재 능력치가 54인 것보다 몇 배는 충격적인 수준이었다.

본신의 능력이 같다고 가정한다면, 능력치 45짜리 오너가 7~8명 정도는 있어야 54짜리 오너 한 명을 간신이 상대가 가능한 수준이었으니까.

‘기간트에 탄 채로 숨만 쉬어도 저 정도 수준을 될 것 같은데?’

그리고 이런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리즈 엘리엇이 평균 이상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아직 때가 되지 않아 개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케이스라면.

부교수 타본 레바인에게 듣기로, 저 노아 프린스라는 녀석은 그야말로 ‘게으름’의 화신 같은 인간이라고 했다.

수업에는 빠지지 않고 참가했지만, 정규 수업 이외에 개인 훈련을 하는 일 따윈 절대로 없었고. 그나마 수업 태도마저 극도로 불성실했으며, 교우 관계마저 최악이라고 했다.

“대, 대체 어떻게 C반에 남아 있을 수 있는 건지... 정말로 미스테리한 녀석입니다, 수석교수님. 그나마 실전 파트 강의는 야외 훈련장에서 진행되니 졸지는 않습니다만. 이론 파트 부교수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쪽 파트의 강의 시간에는 내내 제일 뒷자리에 앉아......”

나는 모처럼 열변을 토하는 타본 레바인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었지만, 정말로 저 게으름뱅이 녀석의 생존(?) 비결이 궁금한 것은 아니었다.

‘그거야... 당연히 재능빨이겠지, 뭐.’

분명 개인 훈련은커녕 강의조차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파일럿 능력치는 3학년 C반(43~40) 학생들에 비해 한 단계 이상 윗줄에 도달해 있는 상태였고.

황립 아카데미 기간트 학부의 성적은 실전 파트의 비중이 80%를 차지하는 만큼, 이론 파트에서 낙재점을 받는다 한들 실전 파트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다면 얼마든지 만회가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뭐, 그런데도 고작 C반인걸 보면 수업 태도가 어지간히도 나빴나 보군.’

물론 실전 파트에 배정된 80%의 점수 중, 수업 태도에 대해 교수가 부여할 수 있는 점수의 비중은 고작 20%에 불과했기에 C반에나마 남을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중요한 것은...

잠재력 94인 노아 프린스의 현재 능력치가 고작 45에 불과하다는 건, 잠재력 95인 리즈 엘리엇의 현재 능력치가 54라는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사실이라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확신 할 수 있었다.

‘완벽해. 저놈이야말로 완벽하게 내가 찾던 인재상이야.’

‘시기’나 ‘계기’의 문제일 것이 확실해 보이는 리즈 엘리엇에 비해.

단지 ‘노력’의 문제일 뿐인 노아 프린스의 아웃풋이 훨씬 더 뛰어날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어쩌면...

‘당장 3개월 뒤엔, 두 녀석의 실력이 역전되어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흡족한 눈으로 여전히 동태 눈깔과 삐딱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노아 프린스를 바라보았다.

#2

3학년 C반에서 생각지도 못한 ‘최상의 인재’를 발견한 나는, 타본 레바인과 함께 나머지 반들을 돌았다.

‘흠, 특별히 눈에 띄는 녀석은 없군.’

간혹 발견되는 ‘인재’들의 수준이라고 해봐야, [비탈리안 로페즈(C+) : 18세, 파일럿 재능 – 34/63(현재/최대치)......] 정도가 최고 수준이었는데. 나이도 1살 어린데다 등급이 C+에 불과했기에, 극적인 연출을 선보일 수 있을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A반과 C반(노아 프린스 획득)에 이어 F반, D반, E반을 차례대로 돌았으나 3번째 적합자로 삼을 만한 학생을 찾는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흠, 4학년에서 뽑을 생각은 없었는데...’

따로 편성된 강의 없이, 1년간 개인 훈련을 통해 졸업 시험을 준비하는 황립 아카데미의 4학년.

이들에게는 일주일에 두 번, 개인 면담형식으로 스스로 부족하다 느낀 점을 가르침 받는 시간이 주어지는데. 이 역할은 보통 제국의 여러 기사단 중 2년 단위로 차출되어 오는 멘토들이 담당하게 된다.

이들은 멘토 역할과 동시에 황립 아카데미의 보안을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이들이기도 했다.

황립 아카데미는 다른 근무지에 비해 훨씬 더 편한데다, 상당한 인맥까지 형성할 수 있는 기회였기에.

대부분의 오너들이 한 번쯤은 경험해보고 싶어 하는 자리였다.

아무튼, 4학년들은 지금도 특별 훈련을 진행 중인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무엇보다 인생의 변곡점이라 할 수 있는 졸업 시험을 눈앞에 두고 있는 4학년 3학기였다.

‘괜히 어느 놈 하나 환골탈태시켜 놓았다가는... 그 원망이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을 테지.’

특히나 순위가 밀려 들어갈 수 있는 기사단의 수준이 바뀌어 버린 최상위권 학생들의 원망은 골수에 사무치는 수준일 터.

물론 그래봤자, 내겐 아무런 감흥도 없을 테지만.

만약 3학년 B반에서도 쓸만한 놈을 못 찾는다면, 원망이야 하건 말건 4학년 학생 중에서 선발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행(4학년 최상위권 학생들)인지 불행(중위 혹은 하위권의 누군가)인지, 4학년들을 확인하기 위해 발품을 팔 필요는 없을 듯했다.

“찾았군.”

“네?”

“저기, 저 녀석은 누구지?”

내 손가락을 따라가던 타본 레바인의 시선이 평범한 인상의 남학생에게서 멈추었다.

그리고는 잠시 흠칫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녀석의 정보를 줄줄 내뱉기 시작했다.

“저 학생의 이름은 스텐리 제퍼슨입니다, 수석 교수님. 로우드 백작령 출신의 평민......”

#3

스텐리 제퍼슨은 제국 서부 로우드 백작령에 속한 콜터빌이란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백작령에 속한 아홉 개의 영지 중 백작이 직접 다스리는 영지에 속한 마을이었고, 제법 넓은 목초지가 펼쳐져 있는 관계로 목축업이 성행했는데.

스텐리 제퍼슨의 아버지는 백작의 양을 관리하는 양치기들의 우두머리였다.

제국의 백작 중 가장 넓은 땅(대체로 발전도가 낮은 서부 영주들의 영지였지만 그 면적만큼은 가장 넓었다)을 다스리는 로우드 백작은 나름 ‘선정(善政)’을 펼치는 귀족이었고.

대대로 백작 가문을 섬기며 양치기 노릇을 해온 제퍼슨가는 평민치고는 매우 부유한 편이었기에, 스텐리 제퍼슨의 유년 시절은 꽤 평탄한 편이었었다.

평탄했던 그의 삶에 파도가 일기시작한 것은 그가 10살이 되던 해였다.

물론 ‘파도’라 하여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평온 그 자체이던 그의 인생에 굴곡이 생기기 시작한 시기임으로 파도라 표현한 것일 뿐.

10살인 그를 덮친 ‘파도’는 어쩌면 또래 아이 중 누구라도... 아니, 평민이라면 누구라도 겪어 바라마지 않을 법한 ‘기연’의 일종이었다.

‘허, 헨리. 이 아이가 자네의 손자란 말인가? 내 보기엔 꽤 재능이 있는 것 같군.’

스텐리 제퍼슨의 인생에 거대한 파도를 일으킨 사람은, 무려 30여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할아버지의 친구이자 은퇴 기사인 ‘알론 페니반’이었다.

꽤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콜터빌 마을의 (최대한 좋게 표현해) 소박한 나무집에 자리를 잡은 그는 무려 ‘남작(단승)’의 작위를 하사받은 귀족이었고.

은퇴 직전까지 제국 여러 기사단의 검술 훈련을 지도하던 교관이자 상급 엑스퍼트의 극에 이른 강자였다.

기간트 조종술에 재능이 없어 평생 일반 기사이자 군인으로 지낸 그는, 오러 임브레스와 검술을 지도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고.

수많은 제국 엑스퍼트들의 기량 향상에 이바지한 결과, 그 공을 인정받아 끝내 귀족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지만.

자신의 직무와 수련 이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그가 진정한 귀족이라 할 수 있는 ‘계승 작위’를 얻는 것은 요원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30대 초반에 아내(병사)와 사별한 이후 대부분의 세속적인 욕망과는 담을 쌓은 그는 부나 권력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최상급 엑스퍼트의 벽을 깨려 수년간 노력했지만, 결국 (상급 엑스퍼트로서) 전성기가 끝날 때까지 이에 실패한 그는 60세가 되던 해에 군을 은퇴했고. 곧바로 수십 년 전 떠나왔던 고향 콜터빌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그간 유일하게 안부를 주고받았던 60년지기 친구 헨리 제퍼슨 이외의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진정한 신분을 알리지 않은 채 조용히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또래들과 전쟁놀이를 하던 친구의 10살배기 손자를 발견했고.

며칠 간의 관찰 결과 그 아이가 엑스퍼트로서 상당한 재능을 지니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당연한 수순으로, 친구의 진정한 신분을 알고 있던 헨리 제퍼슨은 자신의 손자에게 검과 오러를 가르쳐 줄 것을 부탁했고.

‘허허, 말년에 생각지도 못한 제자를 거두게 생겼군.’

스텐리 제퍼슨의 성품이나 재능이 마음에 들었던데다, 유일한 친구의 부탁이기까지 했으니 그로서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하여 시작된 수련.

과연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교관인 알론 페이반의 눈은 틀리지 않았는지, 스텐리 제퍼슨은 제법 훌륭하게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분명 ‘천재’라고까지 불릴 수준은 아니었지만.

‘평범한 수준’은 훌쩍 뛰어넘는 재능이었고.

가르침을 받은 지 2년, 그러니까 스텐리 제퍼슨의 나이 12살 여름에 오러를 각성하며 ‘초급 오러 유저’가 되었다.

이는 각 가문에서 검과 오러를 익히는 귀족 자제들의 수준에 빗대어 봤을 때, 20% 이내에 너끈히 들어갈 수 있는 제법 뛰어난 성취도였다.

대체로 예닐곱에 배움을 시작하는 귀족 자제들에 비해 훨씬 더 출발이 늦었음에도 이러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데에는.

제국 최고의 교관이라 할 수 있는 알론 페이반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여기서 끝이었다면, 그나마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전형적인 ‘평민’ 출신 인재의 성장 스토리의 시작으로 마무리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텐리 제퍼슨에게 닥친 파도는 고작 그 정도가 끝이 아니었다.

‘이 아이, 제법... 아니, 꽤 재능이 있군요.’

그의 인생에서 두 번째로 이 말을 듣게 한 인물은 챙이 무지막지하게 널따란 보라색 고깔모자를 쓰고, 그와 똑같은 색의 로브를 걸친 40대 초중반의 여성이었다.

실제로는 알론 페이반과 고작 2살 차이인 당시 63세였던 그녀는, 제국 마탑 중 하나의 장로인 6서클 마법사 일리아 레버런트였다.

62세가 되는 해에 6서클의 벽을 뚫어낸 그녀는, 마침 마법 재료를 찾아 서부 국경으로 향하던 길에 친분이 있었던 알론 페이반의 안부 확인차 콜터빌을 방문했고.

그곳에서 마법사의 재능을, 그것도 꽤 높은 수준으로 지니고 아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법사의 변덕’이 작용하기라도 한 듯, 콜터빌에서 머물며 스텐리 제퍼슨에게 마법을 가르쳤다.

사실 알론 페이반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불가’의 뜻을 분명히 밝혔지만. 애초에 6서클의 벽을 뚫어내며 한 단계 앞서 나가버린 일리아 레버런트를 힘으로 저지할 수도 없었고(암살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호기심 가득한 제자, 스텐리 제퍼슨이 강하게 염원했기에 마법을 배우는 것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반전이 존재했다.

이 역시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사실 일리아 레버런트가 마법 재료를 찾아 서부 국경으로 향한다는 건 핑계에 불과했다.

젊은 시절(30대) 제국 남부 국경 수비군에서 함께 근무하던 당시, 알론 페이반으로부터 무려 두 번이나 목숨을 구원받은 전적이 있었던 일리아 레버런트는 그때부터 쭈욱 그를 마음속에 품어왔고.

그가 은퇴하고 단 2년 만에 6서클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 이후(일리아가 속한 마탑의 마법사들은 6서클에 도달하면 완벽한 운신의 자유가 생긴다). 단 몇 개월 만에 마탑에서의 생활을 모두 정리한 그녀는, 일이 마무리되자마자 곧장 은퇴한 알론 페이반이 자리 잡은 콜터빌로 향했고.

마침 마법에도 재능이 있는 제자를 공동으로 가르친다는 명분을 들이밀며 그의 곁에 눌러앉아 버린 것이다.

이것이 제국 서부 촌동네인 콜터빌의 양치기 아들 스텐리 제퍼슨이 ‘마검사’의 길을 걷게 된 이유였다.

물론 황립 아카데미 입학 전, 오러 유저 상급 초입과 1서클에 불과한 마법 실력(일리아 레버런트로부터 배운 기간이 채 2년이 안 되었기에)으로는 마검사라고 떠벌리는 것조차 부끄러운 수준이었지만.

어느새 3년이 지난 현재는 초급 엑스퍼트이자 2서클 마법사인, 황립 아카데미의 유일무이한 ‘마검사’로 인정받고 있었다.

기간트 학부의 교수들로서는 부족한 시간(마법부 복수 전공까지 하느라)에도 불구하고 나쁘지 않은 성적(B반)을 유지하는 그가 마검사의 길을 포기하길 바랐지만.

‘전 반드시 대륙 최고의 마검사 오너가 되고야 말 겁니다!’

학생의 뜻이 워낙 확고했기에 안타까움의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야흐로...

거대한 그의 야망에 날개를 달아줄, 이전 두 번의 파도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무지막지한 크기의 인생 3번째 파도가.

스텐리 제퍼슨을 향해 밀려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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