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신임 수석교수의 특별반(1)
#1
[리즈 엘리엇(S) : 17세, 파일럿 재능 – 54/95(현재/최대치)......]
[노아 프린스(A+) : 19세, 파일럿 재능 – 45/94(현재/최대치)......]
[스텐리 제퍼슨(A+) : 19세, 파일럿 재능 – 49/93(현재/최대치)......]
공교롭게도 황립 아카데미의 1~3학년 중 가장 높은 잠재력을 지닌 세 사람이 나, 그러니까 신임 수석교수 스노우의 특별 훈련을 받게 될 인원으로 선발되었다.
‘솔직히 리즈 엘리엇을 발견했을 때만 해도, 그 꼬맹이보다 더한 녀석들이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었지.’
하늘이 내린 재능을 지닌 데다, 평균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현 파일럿 능력치가 54에 머무르고 있는 리즈 엘리엇.
비슷한 재능의 칼튼 에거시(97)가 17세 이전에 이미 어지간한 현역 오너들을 때려눕히기 시작했다는 걸 감안하면, 그녀의 성장은 분명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칼튼 녀석에 빗대 봤을 때, 잠재력 차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현 능력치 54는 말이 안 돼. 적어도 60은 넘기는 게 정상이다.’
70, 80, 90대로 갈수록 능력치 ‘1’을 올리기 위해 필요한 노력과 경험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걸 반대로 말하면, 70, 60, 50대로 내려갈수록 능력치를 올리는 일이 그만큼 쉬워진다는 뜻이었다.
하물며 잠재력 S급인 리즈 엘리엇이라면?
그저 기간트에 탄 채 숨만 쉬고 있어도 쭉쭉 성장해 나가는 게 정상일 터였다.
‘스킬의 효과로 성장 속도를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을지 궁금하군.’
그리고 리즈 엘리엇보다 더욱 막장을 달리고 있는 두 녀석.
노아 프린스와 스텐리 제퍼슨의 경우, 현 파일럿 능력치가 각자의 소속 반보다 한 단계 윗줄이었으나.
각각의 이유로 현재 능력치에 걸맞는 수준의 성적조차 기록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그 현 능력치조차, 가진 바 재능에 비하면 말도 안 될 정도로 낮긴 하지만.’
노아 프린스의 경우는 매우 단순했다.
‘이 녀석은 뭐... 그냥 엄청나게 게으른 거지. 강의 시간 이외에는 기간트에 타고 있는 걸 목격한 사람이 없다고 하니까.’
스텐리 제퍼슨은 노아 프린스와는 정반대의 경우라 할 수 있었는데.
‘이쪽은 너무 바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기간트 훈련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거고.’
엑스퍼트로서의 실력(초급 엑스퍼트 중위)에 비해 마법 실력(2서클 초입)이 많이 떨어지는 탓인지, 스텐리 제퍼슨은 하루의 50% 이상을 마법 수련에 투자하고 있었다.
이는 기간트 오너로서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현 대륙의 상식상 말도 안 되는 짓이었지만. ‘마검사 오너’라는 원대한 꿈을 품고 있는 스텐리 제퍼슨의 고집은, 여태껏 황립 아카데미의 그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의 재능이 아까웠던 기간트 학부의 교수들이 ‘오너’로서의 역량 향상에 집중할 것을 권유했었지만. 황립 아카데미의 규율상, ‘강의’를 선택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을 제외한 그 어떠한 외부적 요인의 개입도 금지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놈은... 날 만나지 않았다면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오너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르겠군.’
나 역시 기간트 마법에 대해 뭔갈 가르쳐 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일단 나부터가, 마법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니까.’
하지만 단지 ‘지정’되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오너(훈련병)의 역량을 급격하게 상승시키는 고유스킬 ‘호랑이 교관’의 효과를 감안한다면.
스텐리 제퍼슨의 마법 능력 역시 성장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리고...
‘녀석이 도달하고자 하는 완벽한 ’마검사 오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정도는 가능하니까.’
물론 그건 ‘마법’이 아닌 ‘스킬’을 이용한 퍼포먼스가 될 테지만.
#2
180 정도 되어 보이는 신장에 마른 듯하지만 탄탄해 보이는 몸매.
제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짙은 검은색 머리카락과 황색 피부.
결정적으로 다소 서늘해 보이는 인상과 마치 심연을 형상화해놓은 듯한 검은 눈동자.
“이미 알고 있겠지만. 수석교수 스노우다.”
이펜타르크 제국 황립 아카데미 기간트 학부에 5년 만에 부임한 수석교수 ‘스노우’.
성조차 없이 달랑 이름 하나만을 내뱉었지만, 동대륙인이라는 특이성과 개학식에서 보여준 충격적인 실력이 어우러져 그의 모든 행동을 신비롭게 만들었다.
꿀꺽...!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수석교수님.”
‘와씨, 카리스마 쩔어...’
‘성격 장난 아닐 것 같은데...’
‘그는 마검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1000여 명의 학생(4학년 제외) 중 선발된 3인.
리즈 엘리엇과 노아 프린스, 스텐리 제퍼슨은 드디어 마주하게 된 수석교수를 향해 깊숙이 허리를 숙이며 각자의 상념에 빠져들었다.
인사말도 통일되지 않은데다, 허리를 숙이는 각도도 중구난방이었으나 신임 수석교수는 그런 것에는 그닥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인 듯했다.
현재 그들이 서 있는 장소가 어딘지를 고려하면, 정말로 ‘정석’과는 거리가 먼 인간인 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배움에 대한 열의로 가득 찬 다른 둘에 비해, 수석교수의 특별 강의를 받게 될 3인에 선발된 것이 영 마뜩잖았던 노아 프린스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 숙소에 딸린 훈련장으로 학생들을 데려오다니... 게다가 아무리 꼬맹이라고 해도 쟨 여자애잖아. 그런데 여기서 3개월 동안 합숙을 한다고? 제정신인가?’
그랬다.
수석교수 스노우가 선발 인원 3인을 불러모은 곳은 바로 그가 머무는 히아신스관의 실내훈련장이었고.
앞으로 숙식마저 이곳에서 해결하며 3학기를 보내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부교수 타본 레바인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물론 야외 훈련장이나 기숙사보다 시설이 몇 배나 좋긴 하지만...’
게다가 무려 황실 주방 출신 요리사가 매끼 화려한 식사를 준비해주었고, 이 특별반에 뽑혔다는 이유만으로 무려 50골드의 장학금이 지급된다는 말도 들었다.
‘미친, 50골드라니...’
기간트 학부에서 평균 성적을 유지해내고 있다는 업적(?)으로 인해, 엄청난 부자인 백작으로부터 넉넉하게 용돈을 받아 쓰는 형편의 노아 프린스에게도 50골드는 어마어마한 거금이었다.
황자 부럽지 않게 자라온 노아 프린스가 그러할 진데, 그에 비해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온 다른 두 사람은 어떠하겠는가?
평민인 스텐리 제퍼슨이나 가난한 남작가의 영애 리즈 엘리엇에게, 한 학기 학비의 절반에 해당하는 50골드는 실로 엄청난 금액이었다.
‘5, 50골드면... 네뷸러 마탑의 하급 영약 두 개 정도는 살 수 있어!’
‘50골드라... 스승님들께 드려도 받지 않으실 테니, 방학 때 선물이나 사가야겠군. 부모님과 동생들 것도.’
리즈 엘리엇은 전액 장학생이었고, 지난 학기 상위 20%를 달성해 장학생 요건을 달성한 스텐리 제퍼슨의 경우는 전체 학비의 절반인 50골드였다.
사실 평민인데다 부유한 상인의 자식도 아닌 스텐리 제퍼슨이 황립 아카데미의 살인적인 학비를 감당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의 두 스승은 각자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주제에 가정조차 꾸리지 않은 인물들이었고.
그 말인즉, 벌어만 놓고 쓰지 않은 돈이 넘쳐나는 인간들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이유로 동시에 둘(리즈와 오빠)을 황립 아카데미에 보내느라 허리띠를 졸라맨 가난한 남작가의 영애 리즈 엘리엇보다, 오히려 평민 양치기의 아들인 스텐리 제퍼슨의 사정이 훨씬 더 여유로운 기이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무튼,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상황이었으나. 자신의 앞에 선 ‘수석교수’라는 존재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로 인해 노아 프린스는 찝찝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렇게 소수만 뽑았다는 건... 엄청나게 굴리겠다는 뜻이겠지?’
그저 몸 성히 기간트 학부의 졸업장을 따는 것만이 목표인 노아 프린스에게 이는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는 사건이었다.
사실 제대로 된 친구는커녕, 반 구성원들 사이에서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있기는 했지만.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조차 귀찮을 뿐인 그였기에, 지난 ‘3년간의 아카데미 생활’은 매우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자평하고 있었다.
4학년의 경우 집단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이 개인 수련이었고, 졸업 시험을 제외하면 다른 시험조차 없었기에 실질적으로 남은 건 3학년 3학기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하필...
‘아니, 더 잘하는 애들도 널렸잖아. 근데 왜, 왜 하필 나냐고!’
대체 자신의 어떤 점을 보고 뽑은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함께 뽑힌 다른 두 명과 자신은 명백하게 다르지 않은가?
한 학년 후배인 리즈 엘리엇은 3학년들 중에도 모르는 이가 없는 천재로 명성이 자자했고.
같은 학년인 스텐리 제퍼슨 역시 마법에 시간을 쏟아붓는 바람에 B반에 머물고 있기는 하지만, 기간트 학부 교수님들이 마법 수련시간을 조금만 줄이자고 사정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학생이었다.
‘게다가 벌써 초급 엑스퍼트인데다, 2서클 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다니. 진짜 마검사 아니냐고! 이런 녀석이 천재가 아니면 그 누가 천재겠어?’
그런데 그런 엄청난 천재들과 함께 뽑힌 인간이, 3년 내내 ‘C반’에 붙어있었던 것이 유일한 업적인 자신이라니.
노아 프린스는 이 불합리함에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솔직히 어지간한 상황이라면 제국의 실세 중 하나인 자신의 아버지, 프린스 백작의 힘에 기대어 항의라도 해보던가... 아니면 그 아버지에게 직접 하소연해볼 수도 있었을 테지만.
노아 프린스는 단지 게으른 것일 뿐, 머리가 나쁜 인간은 아니었다.
그의 이성과 본능이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그런 짓을 했다간 정말 끝장이다.
우선 다른 모든 걸 떠나서 개학식에서 보여준 수석교수의 실력이 문제였다.
무려 제국 오너 서열 15 이내의 초강자 베를리오스 후작을 단 일격에, 그것도 머리통을 박살내며 끝장내 버리지 않았던가.
‘그건 어지간한 제국 서열 10위권 이내의 강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야.’
단순히 승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인간의 본능 상 최우선 순위로 경계하게 되는 머리를 타격하는 건 절대로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걸 단 한 번에 성공시켜버렸다는 건, 적어도 상대와 몇 단계 이상의 격차가 존재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렇다는 건, 저 수석교수가 원하기만 한다면 당장에라도 제국의 후작 자리 정도는 꿰찰 수 있는 초초초강자라는 뜻이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개학식에서 보여준 것만을 바탕으로 아카데미를 휩쓸었던 이야기이고.
더욱 무서운 점은 저 수석교수의 진정한 실력을 그 누구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인 프린스 백작에게 하소연한다?
‘굴러들어온 기연을 제 발로 차버렸다며... 가문에서 축출해버리고도 남을 분이시지.’
어쩌면 아들을 죽도록 굴려달라며 수석교수에게 수십만 골드를 바칠지도 몰랐다.
‘가만, 부학장님과의 대련 결과가 아버지 귀에 들어가고. 내가 수석교수의 특별반에 선발된 걸 알게 되신다면...’
순간, 노아 프린스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지, 진짜 그러고도 남을 분이다.’
그는 제발 아버지의 귀에 이곳에서의 일들이 들어가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3
하필 프린스 백작령은 황립 아카데미와 그리 멀지 않은 대륙 동북부에 자리하고 있었고.
노아 프린스의 아버지 프린스 백작은, 개학식에서 있었던 대련 소식을 접하자마자 오베이트시로 출발할 수 있는 결단력을 갖춘 인물이었다.
‘그런 강자와 인연을 맺을 기회를 놓칠 순 없지.’
그런데 오베이트시에 여장을 풀자마자 훨씬 더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자신의 셋째 아들이, 엄청난 고수인 신임 수석교수의 제자 중 하나로 선발되었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아니, 대체 왜 노아를?’
그런 의문이 잠시 그의 뇌르를 지배했었지만. 순식간에 냉정함을 되찾은 프린스 백작은 곧장 영지에서 준비해 온 선물들을 죄다 내팽개쳐 버렸다.
그리고는 품속에 단 한 장의 종이만을 간직한 채 어젯밤, 그러니까 첫 수업이 있기 하루 전날 밤 수석교수의 숙소인 히아신스관을 방문했다.
만남이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히아신스관의 정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프린스 백작은 앞서 방문한 귀족과 수석교수의 대담이 끝난 직후 곧바로 응접실로 안내되었다.
‘미욱한 제 자식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수석교수님. 황립 아카데미에 상주하는 신관들의 실력이야 워낙에 정평이 나 있으니, 수련 중 팔다리 한둘쯤 잘리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하하하! 그리고 이건, 약소하나마 제가 준비한 것인데... 부디 제 아들에게 수석교수님의 고절한......’
그가 테이블 위로 슬쩍 밀어 넣은 새하얀 종이는 제국 제1의 은행에서 발행한 수표였고.
그곳에는 프린스 가문의 인장과 함께.
‘300000’이라는 숫자가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 종이를 힐긋 본 스노우는...
드륵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서늘한 인상과 절제된 움직임, 은연중에 풍겨오는 아우라에 프린스 백작은 흠칫 몸이 굳고 말았다.
‘이, 이게 아닌가? 설마 돈을 줬다고 기분이 상한 거라면...’
그의 머릿속에서 온각 상념이 휘몰아치던 그때.
스으윽
스노우가 그를 향해 오른손을 내밀며 말했다.
‘좋은 아버지로군. 노아 프린스라면 중간에 뽑은 그 녀석인가? 내 좀 더 신경 쓰도록 하지.’
프린스 백작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저도 모르게 그 손을 맞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