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165화 (165/169)

165화 신임 수석교수의 특별반(2)

#1

히아신스관의 실내수련장.

신임 수석교수 스노우에 의해 선발된 3인의 학생들은 긴장 가득한 표정으로 그의 첫 번째 강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체 어떤 식으로 강의를 진행하실까요?”

“글쎄, 아무래도 인원이 소수인 만큼. 각자의 수준에 어울리는 개별 훈련법을 제시해 주시지 않을까?”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런데 제퍼슨 선배님...”

“스텐리라고 불러. ‘님’자도 빼고.”

“아, 그럴게요. 저도 편하게 리즈라고 불러주세요, 스텐리 선배.”

“그래.”

애초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적어도 황립 아카데미 내에서만큼은 신분의 격차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두 사람 모두 서로를 편하게 대하는 걸 그리 어려워하지 않았다.

이는 귀족에 비해 입학이 몇 배나 어려운 평민(평균적인 입학 비율은 귀족 9.5대 평민 0.5 정도) 중 대부분이 상위권 성적을 거두며 졸업한 뒤. 미래 제국의 요직으로 나아가거나 귀족의 작위를 획득하는 비율이 매우 높은 탓도 있었고.

능력 있는 평민을 가문의 휘하로 들이기 위해서는, 오히려 귀족들이 잘 보여야 하는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황립 아카데미 내에서는 모든 학생이 평등하다’라는 설립 황제의 유훈이 신분 간의 차별을 없애는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것을 어길 경우...

주어지는 형벌은 오로지 ‘퇴학’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이유가 아니었더라도. 평민 출신인데다, 현재도 고작 변방 남작가의 영애에 불과한 리즈 엘리엇이 귀족의 권위를 내세울 리가 없었고.

무엇보다 그녀의 성격 자체가 그런 것들과는 몇만 광년쯤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이것은 명망 높은 백작가의 자제인 노아 프린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그는 타인에 대한 관심 자체가 별로 없는 부류인데다,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 역시 거의 없다시피 했었기에. 평생 ‘귀족의 권위’ 따위를 내세워 본 경험이라곤 없는 인간이었다.

뚱한 표정으로 서 있는 노아 프린스를 향해 고개를 돌린 리즈 엘리엇이 말했다.

“저기... 노아 선배라고 불러도 돼요.”

그녀를 향해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노아 프린스가 답했다.

“좋을 대로 해.”

그의 쌀쌀맞은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리즈 엘리엇이 밝은 얼굴로 재차 물었다.

“노아 선배는 어떻게 생각해요? 수석교수님의 강의?”

“뭐가 됐든 빨리 끝내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네에에?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선배? 베를리오스 부학장님을 한 방에 날려... 흠흠, 아무튼 최소 대륙급 강자인 게 확실한 고수에게 가르침을 받을 기회라구요. 난 최대한 오래 강의를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야, 끔찍한 소리 하지 마! 가뜩이나 피곤해 죽겠는데...”

“아니, 고작 피곤하다는 게 이유가...”

스르륵

두 사람의 언성이 차츰 높아지려 할 때, 그들이 서 있는 실내수련장의 중앙으로부터 몇백 미터나 떨어진 곳에 있는 출입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문으로 모습을 드러낸 건 검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사내와 몸길이 30cm가량의 귀여운 회색 고양이였다.

뚜벅뚜벅뚜벅......

너무나도 여유로운 걸음으로 세 사람을 향해 다가온 검은 머리카락의 사내, 신임 수석교수 스노우는 가타부타 말이 없이 그들을 향해 무언가를 던졌다.

흠칫

예상치 못한 수석교수의 행동에 놀란 세 사람의 행동에는 각자의 개성이 듬뿍 묻어나왔다.

리즈 엘리엇은 무언가 수석교수의 손을 떠남과 동시에 두 눈을 크게 뜨며 날아드는 물체의 정체를 파악하려 들었고.

스텐리 제퍼슨은 본능적으로 자세를 낮추며 경계 태세를 취했으며.

노아 프린스의 경우에는...

따악...

멀뚱멀뚱 서 있다 날아든 그 무언가에 이마를 강타당하고 말았다.

“아오...”

인상을 찡그린 채 이마를 문지르는 그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리즈 엘리엇과 스텐리 제퍼슨.

수석교수가 던진 무언가가 제법 빠른 속도로 날아들긴 했지만, 상급 오러 유저인 노아 프린스가 반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 증거로 비슷한 수준의 상급 유저인 리즈 엘리엇은 그것을 한 손으로 가볍게 받아 들었으니까.

“주워라.”

“헉, 네, 넵!”

귓가를 파고든 수석교수의 서늘한 음성에 재빨리 자신의 이마를 강타한 물건을 집어드는 노아 프린스.

그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엄청나게 고급스러워 보이는 문양이 새겨진 은빛 팔찌였다.

그리고 이건 그 누가 보더라도...

“테네시?”

노아 프린스의 말에, 다른 두 학생 역시 반사적으로 자신들이 집어든 물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오... 이렇게 예쁜 테네시는 처음 봐!”

“엄청나게... 고급스럽군.”

얼핏 봐서는 최소 2000rp급 이상의 테네시라고 해도 납득이 갈 정도였다.

하지만 고작 아카데미의 학생인 자신들에게 그런 고등급 기간트를 내줄 이유는 없었다.

역시나 가장 먼저 질문을 던진 것은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리즈 엘리엇이었다.

그녀는 한쪽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말했다.

“수석교수님! 이건 뭔가요? 혹시 강의 시간에 저희가 타게 될 기간트?”

다소 예의가 부족한 말투였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눈앞에 서 있는 동대륙인 수석교수는 그런 것에 연연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잘 알고 있군. 그게 앞으로 3개월간 너희가 타게 될 기간트다.”

그 말에는 리즈 엘리엇은 물론, 스텐리 제퍼슨과 내내 뚱한 표정을 짓고 있던 노아 프린스마저도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저, 정말 이걸 탄다는 건가?”

“아무리 봐도 엄청 비싼 기체인 것 같은데...”

평민 출신으로 고등급 기간트는 물론 그 테네시조차 접할 기회가 없었던 스텐리 제퍼슨과는 달리, 수십 기의 기간트를 보유한 백작가의 자제인 노아 프린스는 꽤 다양한 기체의 테네시를 목격한 바(아버지인 백작에 의해 강제로) 있었다.

대부분은 기준 출력 전후의 기체들이었으나, 개중에는 1500rp를 상회하는 중상급 기체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 어떤 기체의 테네시도 눈앞의 이것만큼 고급스러워 보이지는 않았었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들의 행태를 보고있던 수석교수 스노우가 입을 열었다.

“웃기는 녀석들이로군. 지금 너희들 수준으로 탈 수 있는 기간트라면 뻔한 것 아닌가? 분수를 알도록.”

수석교수의 냉정한 말에 누군가는 분한 표정을 지었고, 누군가는 납득이 간다는 표정을, 또 다른 누군가는 어찌 됐든 상관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수석교수의 말이 이어졌다.

“그건 500rp급 기간트 브롱코스다. 물론 드워프제이니 만큼, 그간 네 녀석들이 탔던 기체와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미안한 수준일 테지.”

그의 말을 들은 세 학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브롱코스?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인데...”

“이상하군. 내가 알기로 브롱코스의 테네시는 이런 색이....”

“고작 500rp짜리를 이리 고급스럽게 만든다고? 돈이 썪어나나?”

하지만 그들의 스승은 학생들의 의문에 일일이 답해줄 생각이 없었다.

“지금 차고 있는 테네시를 빼고 브롱코스로 교체한다. 실시.”

#2

세 학생의 손목에는 어느새 검고 투박한 형태의 팔찌 대신, 은은한 광택을 발하는 아름다운 은색 팔찌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스노우가 엘가드 왕국을 떠나오며 강탈(?)해온, 엄청난 튜닝을 거쳐 완성된 뉴타입 브롱코스였다.

황립 아카데미의 기간트 학부 학생들은 1학년의 경우 300rp급 ‘자크’를, 2학년과 3학년은 400rp급 ‘트라웃’을, 4학년의 경우 500rp급 ‘익시아’를 훈련용 기체로 지급받는다.

당연히 계약 기능 따위는 없었고(600rp급 이하의 기간트는 거의 전부가 그렇다), 네스트 상태에서 소환한 후(마력을 불어넣은 후) 누구나 탑승이 가능한 기체였다.

대륙 최강 이펜타르크 제국의 국력을 자랑이라도 하듯, 황립 아카데미 기간트 학부 학생들에게는 무려 1인당 1기의 훈련용 기간트가 배정되었는데.

황립 아카데미가 보유하고 있는 기간트는 자크 400기, 트라웃 700기, 익시아 800기였고.

이는 교수들과 경비 병력이 소유한 기간트를 제외하고도, 무려 2000여기의 기간트가 황립 아카데미 내에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이 부분만큼은 어지간한 스노우 역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아무리 훈련용 기간트라고해도... 그 정도면 대체 돈이 얼마야?’

물론 어디까지나 500rp급 이하의 훈련용 기간트에 불과했기에, 실전 상황에서 도움이 될 만한 전력은 아니었다.

하지만...

‘뭐, 만약 일이 터진다면... 그나마 훈련용 기간트라도 탑승하고 있는 게 안전상 도움이 되긴 할 테지.’

아무리 훈련용 기간트라고 한들, 인간 본연의 방어력과는 비교할 바가 아닐 테니까.

아무튼, 2학년과 3학년이었던 관계로 앞선 두 학기(3학년의 경우 1년하고도 2학기) 동안 400rp급 기간트 트라웃을 이용했었던 학생들은, 자신들이 소환한 500rp급 기간트 브롱코스의 자태에 황홀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름다워...”

“이게 정말 500rp급 기간트라고? 물론 크기로 보면 납득이 가긴 하지만...”

“겁나 비싸 보이는군.”

극한의 가성비만을 고려해 만들어진 이펜타르크제 훈련용 기간트들과는 달리. 애초부터 드워프들의 장인 정신을 듬뿍 담아 만들어진 브롱코스는, 스노우의 요구에 의해 본래 가격의 몇 배에 해당하는 재원을 쏟아부어 튜닝을 마친 상태였기에.

바로 어제까지 그들이 애용했었던 400rp급 제국제 기간트 트라웃과는 엄청난 성능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마, 말도 안 돼! 이게 고작 트라웃과 출력 100rp 차이의 기간트라고?]

[부, 불이... 두 배 이상 커졌어.]

[오, 뭔가 움직이기 편한데?]

두 선배에 비해 월등한 파일럿 능력치를 지닌 리즈 엘리엇이 신바람을 내며 실내수련장 이곳저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빠르군, 역시 천재는 다르다는 건가?]

[쳇, 잘난척은... 어헉!]

끼이이이이익

투덜거리는 노아 프린스의 코앞에서 급제동을 건 리즈 엘리엇의 브롱코스로부터 뾰족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잘난척 한 적 없거든요! 이런 멋진 기체를 타고도 멀뚱히 서 있는 선배가 이상한 거라고요! 스텐리 선배처럼 손에서 불이라도 피워보던가!]

[무슨 소리야! 마법사도 아닌데 어떻게 불을 피워?]

[아, 그건 그렇지. 그럼 좀 움직여 보기라도 하던가. 이 기간트 정말 끝내준단 말이에요. 나 사실, 우리 영지에서 ‘알라딘(600rp, 이펜타르크제)’을 타 본 적 있거든요? 근데 그것도 이 브롱코스랑은 성능이 비교가 안 됐단 말이지. 이건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아니, 그렇다고 반말은 좀...]

[아, 죄송.]

가난한 귀족 가문인 엘리엇 남작가였지만. 오너로서 이룬 공적을 인정받아 작위를 획득한 만큼, 일반적인 남작가에 비해 월등한 기간트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일단 엘리엇 남작이 보유하고 있는 2000rp급 기간트 크루거부터가 ‘남작가’로서는 엄청난 오버 스펙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이외에도 1000rp급 기간트 테페리 2기와 600rp급 기간트 알라딘 1기까지 보유하고 있었으니.

이 정도면 적어도 제국의 남작가 중에서는 손에 꼽힐 만큼 탄탄한 전력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바로 이런 과도한 기간트 전력이야말로, 엘리엇 남작가가 가난해진 원인이었지만.

[정말 최고야!]

기간트 이외에는 그 무엇도 관심 없는 ‘천재’ 리즈 엘리엇에게는 그야말로 최고의 환경이었던 셈이다.

“다들 주목.”

다소 어수선한 장내의 분위기를 한 방에 정리해버리는 서늘한 음성.

3인의 시선이 그들의 새로운 스승을 향해 집중되었다.

“훈련을 시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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