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신임 수석교수의 특별반(4)
#1
황립 아카데미의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일주일이 흘렀다.
당연한 일이라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온한 하루하루가 반복된 일주일이었다.
학생들은 강의를 들었고, 강의가 끝난 이후의 시간에는 개인 학습 또는 훈련을 이어갔으며.
황립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지닌 교수들은 열정적으로 각자가 맡은 강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지난 학기들에 비해 달라진 점이 한 가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5년 만에 새로 부임한 기간트 학부 실전 파트의 수석교수와 관련된 것으로.
그중에서도 그가 선발한 ‘특별반 학생 3인’에 대한 이야기가, 황립 아카데미 학생들의 대화 주제 중 하나로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는 사실이었다.
#2
새로운 학기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왠지 모를 설렘과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상될 테지만.
재학생 중 대부분이 어려서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아온 귀족 출신인데다. 치열한 경쟁을 유도하는 교육 기조, 거기에 더해 퍽 빡빡하게 적용되는 졸업 요건 탓에.
황립 아카데미의 학기 초 모습은 그러한 일반적인 학교 혹은 아카데미의 분위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질투심이든 호기심이든 간에. 이전에는 없었던 학년을 초월한 ‘특별반’의 존재로 인해...
황립 아카데미의 새로운 학기 역시, 조금은 분위기가 붕 떠 버린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저 일주일째 모습이 보이지 않는 3인에 대한 궁금증을 표하는 정도였지만.
일부 학생들은 그들에 대한 질투심을 여과 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쳇, 특별반이니 뭐니... 마음에 안 들어.”
“거기서 뭘 하는지도 모르는데, 마음에 안 들건 뭐야?”
“바보냐? 수석교수 실력 못 봤어? 그런 강자한테 개인지도나 다름없는 가르침을 받을 기회라고! 그런데 선발 기준에 대해선 일언반구조차 없잖아. 이건 너무 불공평해! 수석교수가 로비에 넘어간 게 틀림없다고!”
“그건 또 뭔 헛소리야? 너야말로 바보냐? 그래 뭐, 프린스 백작가의 아들인 노아 프린스라면 인정. 그런데 찢어지게 가난한 남작가의 딸 리즈 엘리엇이랑, 애초에 평민인 스텐리 제퍼슨이 로비? 걔네 집안에 그런 돈이 있을 것 같아?”
“그건... 어, 어쨌든 너도 노아 프린스는 인정하는 거지? 그게 아니라면 그 게으름뱅이가 무슨 수로 수석교수의 눈에 들 수 있었겠어?”
“으음, 뭐, 솔직히 그 녀석이라면...”
대체로 각 학년 상위권 학생들이 질투심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3학년 상위권 학생들의 불만이 가장 심각한 수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내 학년 차석을 유지 중인 리즈 엘리엇의 경우, 그녀의 특별반 합류로 인해 위기감을 느낄만한 사람이라고 해봐야 고작 한 사람이 전부였지만.
마법을 배운답시고, 오너로서의 역량 증진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었던 탓에. 내내 B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스텐리 제퍼슨의 성장에 위협을 느끼는 이들은 근 100여 명(A반과 B반 전체)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3학년임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특별반에 선발된 노아 프린스에게 경각심을 가지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수석교수라고 해도... 그 녀석은 안돼.”
“노아의 게으름은 불치병이야. 성녀님이 오신다 해도 그 녀석의 병은 치유 할 수 없을걸?”
“그건 그렇지. 근데... 어제 오후에 히아신스관에서 나온 노아를 본 얘들이 있다던데?”
“뭐? 정말?”
“그래, 그런데...”
“그런데?”
“녀석의 상태가... 마치 걸어 다니는 시체 같았다고 하더군.”
“걸어 다니는 시체? 좀비? 그렇게 상태가 안 좋아 보였어?”
“뭐, 나도 직접 보진 못했으니까. 아무튼 눈 밑이 새카만데다, 바짝 말라서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더라고.”
“바짝 마르다니... 고작 일주일밖에 안 지났는데?”
“뭐, 소문이라는 게 본래 과장되기 마련이니까.”
실상은 특별 훈련(?)을 견디다 못한 노아 프린스가 탈출을 감행했고.
그가 나가는 모습을 본 동료(리즈 엘리엇, 스텐리 제퍼슨)들은 물론, 이미 지시를 받은 사용인들 역시 그의 앞을 막아서지 않았기에 어렵지 않게 히아신스관의 정문을 나설 수 있었으며.
거의 무의식에 가깝게 자신의 기숙사 방을 향해 비척비척 걸어가던 그의 모습이 황립 아카데미의 곳곳에서 목격된 것이었다.
그 충격적인 모습을 목격한 이들의 궁금증이 폭발했다.
대체 어떤 훈련을 받고 있기에, 고작 일주일 만에 사람이 저 지경으로 변해버린 것인지 대한 궁금증이.
하지만 애초에 자발적 아웃사이더인 노아 프린스와 가깝게 지닌 이도 없었던 데다.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둠의 아우라로 인해 그 누구도 접근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동안.
그의 모습은 기숙사 건물 안으로 홀연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물론 자신의 기숙사 방에서 쓰러지듯 잠들었던 노아 프린스는, 고작 1시간 뒤 기숙사 창문을 통해 소리 없이 침투한 어떤 존재에 의해 강제로 히아신스관으로 복귀해야만 했고.
이후 두 배로 강화된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가 알려지지 않은 사건의 후반부였다.
#3
2학년 수석이자 현 황립 아카데미 최고의 인재란 평을 듣는 루이스 엔리케의 경우, 겉으로는 평상시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강의와 훈련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런 덤덤한 겉모습과는 달리, 그의 내심은 일주일 내내 부글부글 끓고 있었는데.
이는 자타공인 황립 아카데미 최고의 인재인 자신이, 신임 수석교수가 선택한 3인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던 탓이었다.
‘대체 왜... 대체 왜 리즈 엘리엇은 뽑았으면서 나는 제외했느냔 말이다!’
무려 그 베를리오스 부학장을 일격에 다운시켜버린 초강자의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기연’이었다.
그런 초강자가 개인적으로 3명의 제자를 ‘선발’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당연히 자신이 그 3인에 포함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었던 루이스 엔리케였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의 인생 최초로 녹록지 않은 상황을 마주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래, 솔직히 그 꼬맹이가 선발된 건 충분히 납득 할 수 있어.’
아직까지는 자신에 비해 부족하지만, 리즈 엘리엇의 성장 속도는 그가 위협을 느낄 정도로 엄청난 수준(실은 그마저도 지닌 바 재능에 비해 매우 느린 편이었지만)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녀가 선발되었다는 사실 자체에는 루이스 엔리케 역시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입학하기 전부터 소문으로 익히 들어왔던 유별난 선배 스텐리 제퍼슨 역시, 어떻게든 이해하려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선발이었다.
오너로서의 역량은 2학년 A반에서도 중하위권 수준에 불과했지만. 이미 엑스퍼트의 경지에 오른데다 2서클 마법사이기도 한 드물디드문 ‘마검사’가 아니던가.
게다가 1학년 때부터 일과의 절반 이상을 마법에 쏟아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내 B반을 유지할 정도면 오너로서의 재능 역시 상당하다고 볼 수 있었다.
루이스 엔리케는 적어도 평민이라는 이유로 재능 넘치는 인재를 깎아내리는 소인배는 아니었다.
‘현 제국에 고작 하나밖에 없는 마검사 오너가 될 인재이니... 그래, 그 선배까진 용납할 수 있어. 그런데...’
스텐리 제퍼슨과는 다른 의미로, 황립 아카데미의 명물로 불리는 마지막 한 사람의 경우는 도무지 납득 할 수가 없었다.
‘그 노아 프린스라니... 정말로 프린스 백작의 로비에 넘어가기라도 한 건가?’
두 사람은 제국 내에서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는 실세 백작가의 자제들이었기에, 아주 어린 시절부터 서로의 얼굴을 익혀온 사이였다.
그리고 그건, 그만큼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는데.
불행하게도 전혀 상극의 성향을 지닌 두 사람의 사이는 빈말로도 그리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천성이 게을러터진 노아 프린스의 경우, 자신보다 어린 주제에 언제나 비교 대상으로 거론되는 루이스 엔리케가 마음에 들 리 없었고.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데다 노력마저 게을리하지 않는 루이스 엔리케의 입장에선, 그저 먹고 자는 것이 삶의 전부인 노아 프린스는 경멸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서로의 영지에서 귀족 모임이라도 열리지 않는 한 두 사람이 마주칠 일은 그리 많지 않았고. 그렇기에 서로가 서로에 대해 신경을 쓸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그건 황립 아카데미 입학 이후로도 그리 달라지지 않았는데.
어차피 학년이 달랐기에, 노아 프린스가 유급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두 사람이 마주칠 일은 그리 많지 않았기에.
그저 서로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마음 한편에 묻어둔 채, 가끔 마주칠 경우에도 서로 소 닭 보듯 하며 각자의 생활을 영위해 나가던 중이었다.
아마도 루이스 엔리케가 뽑히지 못한 신임 수석교수의 특별반, 그곳에 노아 프린스가 뽑히는 말도 안 되는 사건이 벌어지지만 않았어도. 아마 두 사람의 사이는 평생 이런 식으로 적정 거리를 유지했을 확률이 높았으리라.
‘이것만큼은 도저히 이해가 안 돼. 대체 왜 저 돼지 같은 노아 프린스를 선발 한 거지? 대체 기준이 뭐냔 말이다!’
굳이 그가 아니더라도 노아 프린스의 선발 사실에 의문을 품은 수많은 학생들이 실전 파트의 정교수들과 부교수들에게 선발 기준과 이유에 대해 질문을 퍼부어댔지만.
그때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한결같았다.
‘수석 교수님의 뜻이다.’
황립 아카데미에서 수석교수, 그것도 기간트 학부 실전 파트의 수석교수가 지니는 권위는 총장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그 말에 토를 달 수 있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불만이 완전히 사그라들 리는 없었고.
대부분의 3학년 상위권 학생들은 한 달 뒤에 있을 1차 시험(개학 후 40일 뒤에 치러진다)에서 노아 프린스에게 망신을 주는 것으로, 자신을 선발하지 않은 수석교수에게 앙갚음 아닌 앙갚음을 해주리라 결의를 다진 상태였다.
그리고 이는 루이스 엔리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빌어먹을 돼지 자식은 물론, 리즈 엘리엇과 스텐리 제퍼슨까지 모조리 박살을 내주겠어. 그렇다면 그 대단한 수석교수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
루이스 엔리케.
제국 실세 중 하나인 엔리케 백작의 아들이자 현 황립 아카데미 최고의 인재(적어도 아직까지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인 그는 대부분의 일에 대인배적인 면모를 보이곤 했지만.
단 하나.
‘기간트’와 관련된 일에서만큼은 지독하게 속이 좁아지는 인간이었다.
#4
하루 전.
그러니까 황립 아카데미 개학 후 6일 차.
노아 프린스가 히아신스관의 실내수련장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것은 어디까지나 본능에 의한 행동이었다.
개학 후 6일간, 그의 지난 삶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신체를 혹사한 그의 정신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고.
그의 본능은 정말로 ‘살아남기’ 위해 육신을 움직여 필사의 탈출을 시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도는 성공했다.
문제는 탈출에 성공해 아늑한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잠에 빠져든 것도 잠시.
어느새 눈을 뜬 그의 시선에 들어온 건 지난 6일간 지겹도록 본 실내수련장의 천장이었고.
그의 곁에는 거대하고 귀여운 머리통을 지닌 몸길이 3미터가량의 회색 고양이가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꾸, 꿈이었나?’
노아 프린스는 잠시나마 이 지옥 같은 곳을 탈출해 자신의 기숙사 방에서 잠드는 꿈을 꿨다고 생각했다.
‘젠장...’
그리고 자신의 삶을 지옥으로 변화시킨 원인의 절반(나머지 절반은 빌어먹을 수석교수)이라 할 수 있는 거대 고양이에게서 거리를 벌리며 기간트 ‘브롱코스’를 소환했다.
‘테리마!’
노아 프린스는 거대 고양이가 저런 눈을 하고 있을 땐 재빨리 기간트에 탑승해야만 한다는 걸 그간의 경험으로 체득한 상태였다.
조금이라도 늦장을 부렸다간...
기간트에 타고 있건 말건, 저 빌어먹을 고양이 새끼가 거대한 앞발로 자신을 후려칠 게 분명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