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투기 버리고 기간트 탑니다-168화 (168/169)

168화 신임 수석교수의 특별반(5)

#1

똑같은 성능을 지닌 기체를 타고 있다고 한들, 훈련병 프로필상에 표시된 현재 능력치가 파일럿(오너) 간 대결의 승패를 절대적으로 좌우하지는 않는다.

본신의 실력이 전투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간트 오너의 경우에는 이런 경향이 훨씬 더 두드러지는데.

똑같은 기체를 타고, 현재의 파일럿 능력치까지 같다고 해서 비슷한 수준의 전투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사실 이건 매우 간단한 이치였다.

똑같은 기체에 동일한 조종 실력을 지니고 있다 한들. 마스터와 중급 혹은 상급 엑스퍼트가 발휘할 수 있는 전투력이 하늘과 땅 정도의 차이가 난다는 건, 이곳 오르비스 대륙에선 세 살배기 어린아이조차 알고 있는 내용이었으니까.

그리고 이건 ‘특별반(스노우가 따로 언급한 적은 없지만 어느새 이런 이름이 붙어버렸다)’이랍시고 모아놓은 3명의 애송이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만약 현재의 파일럿 능력치가 오너 간의 승패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현 능력치 ‘54’의 리즈 엘리엇이 ‘49’의 스텐리 제퍼슨과 ‘45’의 노아 프린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일 따위는 불가능했을 테니까.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쿠당탕탕...

[크억! 리즈, 이 빌어먹을 년! 왜 계속 나만 노리는 거냐!]

[네가 항상 한 박자씩 늦게 움직이니까 그렇지. 이건 1대1 대결이 아니야, 노아. 서로의 움직임에 맞출 필요가 있다고. 최소한 해보려는 의지 정도는 보여 줘야 할 거 아냐?]

[빌어먹을 년? 노아 선배, 선배는 항상 그 입이 문제라고!]

타아아아앗

서걱

[으아아악! 아파! 아프다고! 빌어먹을...]

물론 능력치가 ‘80대’ 정도에 이르게 되면, ‘1’이란 숫자가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격차를 만들어 내는 만큼. ‘85’의 파일럿 능력치를 지닌 오너가 능력치 ‘70대’의 오너 10명을 상대로 거뜬히 승리를 거머쥐는 일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을 테지만.

능력치 간 격차가 그리 크지 않은 능력치 50대 이하에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게다가 오러 유저 상급에 불과한 리즈 엘리엇에 비해, 이미 엑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스텐리 제퍼슨 본신의 무력이 압도적으로 강한 만큼.

실상은 1대1 대결에서조차 리즈 엘리엇이 아주 약간의 우세를 점할 정도의 격차가 존재할 뿐이었다.

하지만 특별 훈련 초반...

무려 능력치 ‘45’의 오너(노아 프린스)가 가세했음에도 불구하고, 양측의 대련은 리즈 엘리엇과 스텐리 제퍼슨이 1대1로 맞붙었을 당시에 비해 딱히 나아진 바가 없었는데.

오히려 의욕이라곤 쥐꼬리만큼도 존재하지 않는 노아 프린스의 안일한 움직임으로 인해, 서로가 서로의 동선을 방해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고.

천부적인 전투센스를 지닌 리즈 엘리엇에게 그 불협화음이 간파당하며 연신 실내훈련장의 바닥을 나뒹굴어야만 했다.

물론 바닥을 나뒹구는 비율은 9대1 정도로 노아 프린스 쪽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리고 특별 훈련의 시작 이후 3일간 녀석들의 모습을 관찰한 나는.

대략적인 훈련의 방향성에 대해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2

특별 훈련 4일 차.

“응?”

나는 처음 3일 간, 내내 리즈 엘리엇을 포함한 3인의 학생에게 1대1 대련과 2대1 대련을 지속할 것을 지시했고.

기간트광(狂)인 리즈 엘리엇과 훈련광 스텐리 제퍼슨은 내 지시를 매우 충실하게 이행했다.

노아 프린스?

그 녀석이라면 정말 의욕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지만, 두 광인(?)의 등쌀에 못 이겨 억지로 훈련에 동참하는 듯한 모양새가 연출되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고작 3일간 이어진 억지 대련만으로, 녀석의 파일럿 능력치는 45에서 46으로 한 단계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허... 대체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온 거냐?’

사실 강의 시간 이외에는 기간트에 탑승한 적이 없다는 사실 정도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저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는 그러한 사실마저 잠시간 잊게 만들었을 정도로 놀라웠다.

‘어쩌면 이미 경험치가 레벨의 한계까지 쌓여 있었던 걸지도 모르지.’

훈련병으로 지정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장 가중치가 붙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이 스킬을 사용해 본 것은 지난 칼튼 에거시의 경우가 처음이었던 만큼, 나 역시 고유스킬 ‘호랑이 교관’의 성능을 정확하게 파악했다고 자신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재능 면에서만큼은 스텐리 제퍼슨을 능가하는 노아 프린스였기에 그 무시무시한 성장 속도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아직 능력치가 고작 40대 중반이기도 하고.’

S급 파일럿 특성에 기반을 둔 내 감각에 의하면. 정상적인 성장 속도일 경우, 노아 프린스나 스텐리 제퍼슨 모두 현 능력치가 최소 50대 중반은 넘어섰어야 할 천재 중의 천재들이었다.

‘리즈 엘리엇이라면 최소 60 정도는 되어야 했을 테고... 뭐, 그런 녀석들이니 내 눈에 든 것이긴 하지만.’

정상적인 속도로 성장한 녀석들이었다면.

제아무리 재능이 넘친다 한들, 내게 선택받는 일을 없었을 테니까.

아무튼, 학생들에 대해 얼추 파악을 끝낸 나는 총 3가지 파트로 훈련 스케줄을 나누었다.

‘사실 리즈나 스텐리의 경우는 정석적인 훈련만 시키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

이 두 사람의 경우 기본적인 두 가지 훈련 파트를 이행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장세를 보일 것이 확실했다.

그러니까 훈련 파트가 3개로 늘어난 이유는, 전적으로 ‘열등생’인 노아 프린스 때문이라는 뜻이었다.

첫 번째 파트는 나와 세 애송이의 1대3 대련.

호랑이 교관의 특성상, 훈련병들이 교관과 직접적으로 몸을 부대낄 때 가장 빠른 성장 속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강의 시간 내내 1대3 대련을 진행하는 것이 가장 높은 효율을 보이리란 의미였다.

하지만 애송이들과의 대련은 하루 20분씩 3번, 그러니까 한 시간이 전부였는데.

그 이유는...

‘귀찮으니까. 한 시간도 많이 봐주는 셈이지.’

사실 3개월 후면 헤어질 녀석들에게 그 이상의 시간을 쏟을 이유는 없었다.

또한 그 정도만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제국과 아카데미의 인물들이 경악할 만큼 저 애송이들을 성장시킬 자신도 있었다.

두 번째 파트는 학생들 간의 1대1 혹은 1대2 기간트 대련.

세 학생 중 군계일학이라 할 수 있는 리즈 엘리엇이었기에. 특별 훈련 초반은 물론 일주일이 지나가는 시점까지도 1대1은 물론 1대2 대련까지 전승을 거두는 뛰어난 모습을 선보였다.

스텐리 제퍼슨의 경우 아직은 기간트에 탑승한 상태로 제대로 된 마법을 구사하지 못했기에, 차라리 마법을 봉인하는 쪽이 더 나은 전투를 펼칠 수 있었다.

그리고 본신의 실력이 훨씬 더 뛰어난 만큼, 파일럿 능력치가 월등한 리즈 엘리엇을 상대로도 간간이 위협적인 움직임을 선보이곤 했다.

문제는 1대1 대련에서 리즈 엘리엇과 스텐리 제퍼슨의 샌드백 역할이 되어버린 노아 프린스였다.

게다가 1대2 대련 역시 전력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동료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모습을 보이기 일수.

결국 의외로 소심한 리즈 엘리엇은 물론, 무던한 성격의 스텐리 제퍼슨의 분노가 잦아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비슷한 재능을 가지긴 했지만. 십수 년을 열등생과 우등생으로 살았으니, 그 격차가 어마어마할 수밖에.’

하지만 바로 그 재능으로 인해 그 격차가 좁혀지는 속도 역시 어마어마 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나는 그 속도를 폭발적으로 높이기 위해, 노아 프린스에게 특별한 교관을 붙여주었다.

특별반의 세 번째 훈련 파트는 바로 리즈 엘리엇과 스텐리 제퍼슨이 진행하는 본신의 대련이었고.

이 경우 기간트 대련과는 반대로, 본신의 실력이 월등한 스텐리 제퍼슨과의 대련이 리즈 엘리엇의 성장에 막대한 자양분이 될 터였다.

그리고 두 사람의 대련이 진행되는 동안.

노아 프린스는 새로운 교관과의 1대1 대련에 돌입하게 되었다.

‘널 믿는다, 토리.’

묘오오오오오오오오오...

마치 자신만 믿으라는 듯 기분 좋은 울음을 터뜨리며 혀를 날름거리는 토리.

그랬다.

특별반 결성 후 4일 만에 노아 프린스를 위해 붙여준 교관의 정체는...

바로 최상급 몬스터인 토리였다.

#3

‘미쳤어. 미친 인간이 분명해.’

노아 프린스가 판단하기에 신임 수석교수는 미친 인간이 분명했다.

설령 미치지는 않았다 한들, 적어도 정상적인 인간이 아닌 것만큼은 확실했다.

일단 그 비싼 마력 회복 물약을 마치 물처럼 퍼먹이며 훈련 시간을 대폭 늘려버리는데, 이에 소비되는 돈은 제국에서 손꼽히는 부잣집 도련님인 노아 프린스가 보기에도 살 떨리는 금액이었다.

‘아카데미에서 지원해주는 건가? 그렇겠지? 설마 자기 돈으로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르겠어?’

아직 10대에 불과한 학생들이었기에, 그들이 보유한 마력의 양이란 일천 할 수밖에 없었고. 대체로 20여 분 정도 전력 기동을 펼칠 경우, 지닌바 마력이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초급 엑스퍼트인 스텐리 제퍼슨의 경우 다른 둘에 비해 기동 한계 시간이 두 배가량 길긴 했지만, 상대 없이 혼자 몸을 움직이는 건 훈련 효율이 극도로 떨어지는 일이었다.

적어도 이곳 ‘특별반’에서 만큼은 확실히 그랬다.

‘그것도 좀 이상하단 말이지. 보통 수련이라는 건 대부분 혼자 하기 마련인데.’

보통의 경우, 황립 아카데미 학생들의 수련 시간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오롯이 ‘홀로’ 진행하는 훈련이었다.

대련이라는 건 자주 한다고 해봐야 하루 한 번 정도가 고작이었고. 보통은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가 한계였는데.

왜냐하면 스스로에 대한 고찰이나 기본적인 훈련 없이, 무작정 대련 횟수만 늘린다고 해서 그것이 곧장 성장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어린 나이인 황립 아카데미 학생들의 경우는 더더욱.

하지만 이곳 특별반에서 진행하는 훈련이라고는 오직 대련, 대련, 대련이 전부였다.

그런데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방식이 효과가 있다는 건 노아 프린스 역시 절실하게 체감하는 중이었다.

그것은 리즈 엘리엇과 진행하는 1대2 대련 양상의 변화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처음 일주일간 치른 1대2 대련의 결과는 노아 프린스와 스텐리 제퍼슨의 전패.

하지만 2주차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조금씩 대등한 수준의 전투가 전개되더니.

결국 훈련 11일 차 만에 처음으로 승리를 거두게 된 노아 프린스와 스텐리 제퍼슨 듀오였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 것이 바로 노아 프린스의 전담 교관인 거대 고양이 ‘토리’였다.

‘생긴 거랑 하는 짓은 영락없는 고양이이긴 하지... 근데 저렇게 크고 강한 고양이가 어딨나고!’

아직도 첫 만남에서 얻어맞은 등짝이 욱신거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몸길이가 30cm가량에 불과하던 귀여운 고양이가 순식간에 3미터가 넘는 괴물로 성장하는 걸 목격한 노아 프린스.

그는 입을 쩍 벌린 채 한동안 미동조차 할 수 없었고.

샛노란 눈으로 그를 유심히 바라보던 거대 고양이 토리가 별안간 앞발을 휘둘러 그의 등짝을 후려쳤던 것이다.

‘진심으로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지.’

그 미증유의 생명체와 마주한 첫날에야 정신없이 넘어갔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세상만사에 관심 없는 노아 프린스라고 한들, 기간트의 장갑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기는 괴물이 평범한 존재일 리 없다는 사실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분명해, 저건 못해도 상급 몬스터야.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고...’

이것이야말로 노아 프린스가 자신의 스승이자 수석교수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이유였다.

‘대체 그 누가 황립 아카데미에 저런 괴물을 데려오냐고! 거기다 앞길 창창한 학생을 공격하게 해? 저 인간은 미쳤어! 정말 제대로 미쳤다고!’

하지만 그 미친 인간 덕분에, 황립 아카데미 역사상 최고의 게으름뱅이라 일컬어지던 노아 프린스의 실력은 나날이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나갔고.

결국 특별반이 발족한 지 고작 보름 만에...

파일럿 능력치 ‘50’을 달성하며.

같은 시간 동안 능력치 ‘2’가 상승한 스텐리 제퍼슨과 동일한 수준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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