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신임 수석교수의 특별반(6)
*이전 화 스텐리 제퍼슨의 최종 파일럿 능력치가 ‘50’에서 ‘51’로 수정되었습니다.
#1
쉬이이이이이이익... 타앗
나는 까마득한 높이에서부터 하강해 대지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는 어깨에 둘러메고 있던 A급 아이템 ‘루흐의 날개’를 아공간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흐음... 과연, 나쁘지 않군.”
‘탐색(C)’ 스킬의 탐지 범위 내에는 무수히 많은 마력 반응들이 포착되고 있었는데.
수십 개의 붉은 점들은 그 크기마저 천차만별이었고. 대부분 서로 일정하게 거리를 둔 채, 마치 시간이 정지해 버리기라도 한 것마냥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수많은 점들의 움직임이 멈춰버린 이유는 간단했다.
느닷없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불청객.
그러니까, 바로 나로 인한 것일 테지.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이펜타르크 제국과 엘프 왕국 하르세리안 사이에 존재하는 해발 2700여 미터의 고산 ‘파슈미르’였고.
파슈미르산은 대부분의 대륙 북부 산맥 혹은 산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발길이 극도로 뜸한 장소였다.
건국 이래로 무수한 전쟁을 벌여온 이펜타르크 제국이었지만.
이종족들과 함께 마족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쟁취한 후 제국을 세운 건국 황제의 유훈에 의해, 이종족들의 왕국(드워프, 엘프, 판)과는 그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차례의 다툼조차 없었고.
이는 엘프들의 왕국 하르세리안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사이좋은 이웃 국가로서 오랜 교류를 이어온 두 나라 사이에는 매우 잘 정비된 통행로가 존재했고.
그런 만큼 굳이 이 험난한 파슈미르산을 통해 양국 사이를 왕래하려는 이들은 드물디드물 수밖에 없었다.
정말 소수의 몬스터 헌터나 이곳에서만 나는 귀한 약초를 캐 한몫 잡으려는 무모한 약초꾼, 혹은 마법 재료를 찾으려는 마법사 정도만이 목숨을 걸고 파슈미르산을 오를 뿐이었다.
때문에 지난 수백 년간, 나름의 평온을 구가하며 번식의 번식을 거듭한 이곳은 ‘몬스터들의 천국’이라 불릴 만큼 막대한 숫자의 몬스터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이펜타르크 제국은 동쪽과 서쪽 국경이 대체로 비슷한 환경이로군.’
그 동쪽과 서쪽 국경에 면하고 있는 왕국들이 하필이면 엘프와 드워프들이 세운 국가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내가 굳이 제국의 국경을 넘어 이 파슈미르산까지 온 이유는 실로 간단했다.
‘이왕이면 다양한 상대와 대전 경험을 쌓는 쪽이, 성장에 도움이 될 테지.’
바로 지금 이 시간에도 훈련에 여념이 없을 제자들을 위해, 친히 그들의 대련 상대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이건 하늘을 날 수 있는 A급 아이템 ‘루흐의 날개’와 중급으로 진화한 바람의 정령, 거기에 한 시간에 1000km를 주파할 수 있는 바이크(일직선으로 쭈욱 내달린다는 가정 하에)가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의뢰의 보상을 높여 받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기량이 상승하는 애송이들을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녀석들의 훈련 재료(?)를 구하기 위해 몇 시간 정도는 기꺼이 희생할 수 있을 만큼.
‘특히 노아 그 녀석은 정말 제법이었지.’
그 상식을 벗어난 성장 속도는, ‘파일럿’에 관련된 일이라면 어지간해서는 감정의 동요를 느껴 본 일이 없는 나조차 놀라움을 금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디 보자. 어떤 녀석이 적당할까? 일단 오우거는 무조건 포함해야겠지? 그 녀석들은 보통 산 정상 부근을 선호하니 조금 더 올라가야 할 테고. 여기서는...”
과연 인간의 손길로부터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장소답게, 산의 중턱부터 소수지만 상급 몬스터들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콰아아아아앙
커허어어엉...
퍼어어어어억
끼에에에엑
콰과과과과광
꾸어어어어어억...
나는 상급으로 추정되는 몬스터(관찰(C) 스킬의 한계로 정확한 등급은 알 수 없다)가 보이는 족족 제압한 후 사육장으로 이동시켰다.
당연히 ‘포획’만 했을 뿐, ‘각인’을 새기지는 않았다.
애초에 고작 상급 몬스터를 소환수로 등록할 이유가 없었던데다. 이 녀석들의 역할은 단지 애송이들의 성장을 위한 제물일 뿐이었기에, 쓸모가 다하면 폐기 처분되거나 몬스터 부산물 상인에게 넘겨질 운명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대련 상대로 쓰이기도 전에 죽거나 병신이 되어서는 곤란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최근 들어 소환할 일이 없었던 아나투레스를 불러냈다.
파아아아앗
근 3주간 사육장에서만 지낸 탓인지. 녀석의 얼굴에는 개기름이 잔뜩 끼어있었고, 살이 통통하게 올라있었으며, 전신을 뒤덮은 황금빛 털에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상태였다.
“하아, 아주 그냥 제집 만났군. 제집 만났어.”
토리의 경우 아주 잠시만 사육장에 가둬놔도 며칠씩이나 토라져 있곤 하는데.
신기하게도 이 녀석의 경우엔, 평생 그곳에 방치 해둔다 한들 불만 한 줌 없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아무튼 사육장 안의 사정까지 알 길은 없었고, 알 바도 아니었기에.
나는 애초의 목적대로 아나투레스를 향해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절대 죽이면 안 돼. 조금 건드리는 것 정도는 뭐라 하지 않겠지만, 뼈를 부러뜨리지는 마. 알아들었냐?”
서로 간의 언어가 통하지 않을 뿐, 심령으로 연결된 소환수와 소환사의 관계였기에 의사를 전달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크아아아아아악
쿵쿵
왠지 조금은 흥분한 듯한 아나투레스가 가슴을 두드리며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좀 불안하긴 한데... 뭐, 멍청한 놈은 아니니까. 명령을 어기진 않겠지.”
거의 ‘재앙급’에 근접한 최상급 몬스터와 한 장소에 갇히게 된 상급 몬스터들에게는 그야말로 ‘재앙’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겠지만.
어차피 애송이들의 성장을 위한 ‘제물’일 뿐.
몬스터들의 복지까지 신경 써 줄 이유는 없었다.
#2
콰아아아아아아앙
[이 개 같은 고양이 새끼!]
묘오오오오오오오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자, 잠깐! 개 같다는 건 취소. 취소오오오오오오오!]
특별반 편성 20일 차.
노아 프린스로 말하자면, 황립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자발적(?) 열등생’을 자처하던 인간이었다.
하지만 특별반에 속한 이후, 고작 20일 만에 변모한 그의 실력은 동료들이 경악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는 중이었다.
아무런 의욕조차 없었던 특별반 초창기와 비교해, 20여 일이 지난 지금의 그는 어엿한 한 명의 전사라 칭하기에 부끄럽지 않은 수준이었으니까.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훌륭한 교관의 존재로 인해, 강제로 몸에 각인되어 버린 움직임이 그러할 뿐...
[좀 적당히 해, 이 고양이 새끼야! 개 같은 특별반! 개 같은 수석교... 으아아아아아악]
정신 상태까지 전사의 그것으로 변화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아무런 반응조차 못 하던 초반과는 달리, 간간이 솜뭉치 같은 앞발(겉으로 보기에는) 공격을 피해내는 그의 기동엔 더 이상 일반적인 학생 수준의 어설품은 남아있지 않았다.
물론 여전히 저만치 앞서나가고 있는 리즈 엘리엇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본래라면 상대조차 되지 않았던 스텐리 제퍼슨과는 어느새 비등비등한 전투를 치르는 수준까지 도달한 상태.
치열한 본신의 대련 이후 잠시 찾아온 휴식 시간.
나란히 앉은 리즈 엘리엇과 스텐리 제퍼슨은 은빛 기간트와 거대 고양이의 대련을 바라보며 연신 감탄을 토핸내기 바빴다.
“오오, 솔직히 말해 노아 저 녀석... 조금씩 상대하는 게 버거워지고 있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야.”
그의 말에 상기된 표정으로 대련을 감상하고 있던 리즈 엘리엇의 고개가 아래위로 격하게 흔들렸다.
이윽고 그녀는 오른손 검지를 들어 올려, 거대 고양이의 앞발에 얻어맞아 나뒹구는 은빛 기간트를 가리켰다.
“확실히... 저기 저 사람이 그 ‘게으름뱅이’ 노아 프린스라곤 아무도 믿지 못할 거예요. 1차 시험 때가 되면,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이 까무라칠 정도로 놀랄 거라구요!”
모르긴 몰라도, 적어도 2학년 중엔 자신과 루이스 엔리케, 웨인 레이우드(2학년 3등) 정도를 제외하면 그의 상대가 될만한 이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지금이라면 웨인 레이우드 정도는 이길 수 있을 지도...’
처음 이곳 히아신스관에 발을 들일 때까지만 해도, 2학년 A반에 턱걸이하는 것조차 간당간당했었던 실력임을 감안한다면.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에 가까운 변화라 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의문점이라면...
‘나와 스텐리 선배도 그렇지만, 특히 노아 선배의 저 미친 성장 속도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그런데...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지?’
물론 엄청난 고수(스노우)와의 대련이나 훌륭한 동료들과의 대련이 도움이 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단지 대련만으로 이토록 극적인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음... 이런 게 바로 동대륙의 신비, 뭐 그런 것이려나?”
리즈 엘리엇이 생각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이 정도뿐이었다.
#3
사실 스텐리 제퍼슨 역시 어느 정도 의심은 하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노아를 괴롭... 아니, 노아의 상대가 되어주는 몬스터는 절대로 평범한 녀석이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몸 크기를 저토록 큰 폭으로 키우고 줄일 수 있는 몬스터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게다가 제아무리 노아가 형편없는 실력을 지녔다고는 한들, 500rp급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성능을 지닌 ‘브롱코스’를 마치 장난감 다루듯 하는 걸 보면...
“아무리 봐도 저거... 상급 몬스터가 아닌 것 같아요.”
“당연하지, 리즈. 지금 노아의 실력이라면,,, 아마 오우거를 상대로도 얼마간 싸움다운 싸움을 할 정도는 가능할걸? 그런데 저걸 보라고. 첫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잖아.”
최상급 몬스터는 제아무리 대륙 최강 이펜타르크 제국이라 해도 함부로 여길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최상급 몬스터 중 비교적 약한 개체라 한들, 적어도 제국의 1개 기사단 병력 정도는 출동해야만 제압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괴물이었으니까.
그런데 만약 그런 최상급 몬스터를 부리는 인간이라면?
물론 수백만분의 1 정도의 확률로 ‘테이머’의 재능을 타고나는 이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제대로 재능을 ‘개화’하는 이는 그들 가운데서도 수백 명 중 하나 정도에 불과했기에.
보통의 경우 몬스터들을 길들일 수 있는 존재는 오직 ‘마법사’라는 족속들 뿐이라는 것이 대륙의 상식이었다.
게다가 저런 최상급 몬스터를 길들일 수 있으려면 마법사의 역량이 최소한 6서클은 넘어서야만 할 터.
그 말인즉...
“수석교수님이 마법사일 확률이 매우 높다는 뜻이지. 그것도 최소한 6서클인 고위마법사...”
“그런... 그럼 수석교수님이 최소 최상급 엑스퍼트(그의 경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인 동시에 6서클 마법사인...”
“그래, 그야말로 완전무결한 마검사라는 뜻이지.”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스텐리 제퍼슨 필생의 염원이기도 했다.
그들의 이런 추측은, 해가 질 무렵에야 모습을 드러낸 그들의 스승이 줄줄이 소환해내기 시작한 상급 몬스터들로 인해 확신으로 변했다.
“역시...”
“저, 정말! 마법... 아니, 마검사였어!”
#4
제일 먼저 소환된 몬스터는 브롱코스에 비해 머리 하나는 큰, 상급 몬스터 중에서도 상위 개체인 오우거였다.
그리고 이 괴력의 몬스터와 상대하게 된 이는 3인의 특별반 학생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리즈 엘리엇.
특별 훈련 20일 차. 어느새 그녀의 파일럿 능력치는 58(최초 54)까지 상승한 상태였다.
이 정도 속도라면, 1차 시험이 기다리고 있는 훈련 40일 차 즈음에는 2학년 수석이자 황립 아카데미 최고의 기대주인 루이스 엔리케를 넘어서는 것도 결코 꿈이 아닐 터.
그녀는 일반적인 500rp급 기간트의 몇 배에 달하는 전투력을 지닌 브롱코스의 성능을 바탕으로 선전을 펼치긴 했지만...
콰당탕탕...
[아아아아악! 젠장! 조금만 더 하면...]
약 8분간 놀라운 기동과 변칙적인 공격으로 여러 차례 공격을 성공시킨 리즈 엘리엇이었으나, 오우거의 엄청난 맷집과 힘을 극복하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고.
마지막 일격이 가해지기 전.
오우거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덕에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이는 누가 보더라도 그녀의 명백한 패배였다.
만약 초급 엑스퍼트의 경지에만 올라있었다 한들, 승리는 그녀의 것이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여전히 벽을 넘지 못한 상태였다.
다음 차례는 스텐리 제퍼슨이었다.
상대는 상급 몬스터 ‘바트론’으로, 쉽게 말해 악어의 머리에 코뿔소의 몸통을 지닌 몸길이 6미터가량의 4족 보행 몬스터였다.
상급 몬스터 중에서는 하위권이긴 했지만, 엄청난 방어력만큼은 상위권에 뒤지지 않는 녀석이었다.
근 20여 분간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고.
화르르르륵
크륵?
바트론이 갑작스레 눈앞에 나타난 불꽃에 놀라는 틈을 타 목에 검을 꽂아 넣어 승리를 쟁취해내는 스텐리 제퍼슨.
“와, 마법이라니! 좀 치사해 보이긴 하지만 어쨌든 대단해!”
“쳇, 그따위 꼼수를...”
[......]
다음으로 노아 프린스 역시 바트론을 상대하게 되었는데.
서걱
크르르르르륵
채 2분이 지나가기도 전.
바트론의 직선적인 돌격을 날렵하게 피해낸 노아 프린스의 브롱코스가 녀석의 다부진 등위로 내려섰고.
그대로 굵고 거친 목에 기간트용 롱소드를 꽂아넣으며 승부를 마무리 지어 버렸다.
“마, 말도 안 돼!”
“대체 저 움직임은...”
너무나 손쉬운, 그리고 예상외의 승리에 리즈 엘리엇과 스텐리 제퍼슨이 경악하는 가운데.
승리를 거머쥔 노아 프린스의 브롱코스로부터 사뭇 거만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훗, 미친 고양이 새끼에 비하면 뭐... 별것도 아니더구만.]
지난 20여 일간의 특별 훈련은...
노아 프린스라는 게으름뱅이 열등생이.
대 몬스터전의 귀재로 거듭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