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이 자꾸 늘어-3화 (3/164)

< 2. 황금의 왕 >

2. 황금의 왕.

과거 회귀를 하였다.

회귀回歸

: [명사] 제 자리를 찾아 돌아감.

그러나 술 먹고 필름 끊기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잘 못하던 나였다.

그런 날 보고 강부장은 귀소본능이 연어만도 못하다 하여 ‘물고기 미만 잡’ 줄여서 물미잡 대리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었지.

이는 과장으로 진급해 트과장이 되기 전까지 내 메인 칭호가 되었다.

그런 내가 아예 과거로 돌아와 버리다니.

말이 되나?

한낱 물미잡에 불과한 내가?

과연 나 따위에게 이렇게 형편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질문.

다각도의 고찰.

그리고 결론.

“······.”

이거 다 꿈이구나.

에이 씨 속을 뻔했네.

아무렴. 상태창이 있었다면 [상태이상 : 오지게 불행함]이 디폴트로 박혀 있을 내게 회귀 같은 행운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꿈이라고 확신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또 있었다.

기타.

내 머리맡에 통기타가 비스듬히 세워져 있다.

브랜드 로고가 없는 민짜 헤드. 꽤 닳아 있는 프렛과 손때가 묻은 넥. 오랜 세월 동안 상판이 벗겨진 드레드넛의 큼직한 바디.

곱게 늙은 올드 기타.

이건 분명, 내가 그 버스킹 뮤지션에게 샀던 바로 그 기타였다.

내가 진짜 회귀했다면 이게 여기 있을 리가 없잖은가?

그러므로 이건 꿈이다.

백 번 양보해서, 이현지 쌤에게 기타 치는 취미가 있었고 우연히 기타 생김새가 엄청시리 비슷했다,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럼 이 기타가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는’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건데.

아.

아무리 행복회로를 돌려도 다른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빛나는 기타라니.

이게 뭐람.

한참 독서 중인 이현지 쌤에게 “쌤, 기타가 누렇게 발광하고 있어요···.”라고 고발하고 싶었지만, 역시 꿈이라서인지 입도 잘 움직이지 않았다.

꿈이 아니라면 주마등같은 거겠지.

그래도 학창시절 내심 짝사랑했던 쌤을 보고 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지하통로의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던 공연에서부터 이현지 쌤의 찬란한 미모를 감상할 수 있는 이 순간까지 통틀어, 이 모든 것이 내 불우한 삶의 끄트머리에 주어진 최후의 선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래도 빛나는 기타는 좀 아니지 않나요?

라고 생각하며 무거운 팔을 들어 기타를 툭 건드렸다.

그러자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황금빛이 폭발하듯 내 시야를 덮치더니,

기대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장면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

프리기아의 신민들은 마침내 인정했다.

자신들의 왕이 미쳤다.

“분야 불문, 나를 꺾을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나라를 넘기겠다.”

처음에는 농담으로 여겼다.

그러나 정식 포고문이 선언되고 자세한 계획이 하달되자 그때야 사람들은 그들의 왕이 진심임을 깨달았다.

나라가 난리가 났다.

그중에서도 가장 난리가 난 자들이라면 역시 왕의 자식들이었다.

왕의 저의는 무엇인가? 교만한 왕자들에 대한 경고인가? 긴장감을 조여 왕의 권위를 바로세움인가? 아니면 공주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해서?

많은 추측이 오갔지만, 왕의 진짜 의도를 알아차린 자는 없었다.

왕이 이런 전무후무한 왕위계승 대전을 준비한 이유.

그것은 바로

심심했기 때문이다.

그랬다.

왕은 무료했다.

예견된 무료함이었다.

대저 자극이란 무엇인가. 왕은 그것을 부지불식不知不識의 밑바닥에서 찾아오는 손님이라 정의했다.

모르는 것.

인지 바깥의 것.

이해할 수 없는 것.

그래서 때론 공포스러운 것.

그 미지와의 충돌이야말로 자극의 본질이며, 인간을 인간으로서 살아있게 하는 근본적인 원동력이라고, 왕은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왕은 태생이 그럴 수 없는 존재였다.

그는 아테네로부터 최강의 육체를, 아폴론에게서는 무한의 지혜를, 디오니소스에겐 천상의 재주를 선물 받았다.

그 능력으로 무지렁이 농부일 뿐이던 아비를 왕국의 왕으로 만들었으며, 자신의 치세에 이르러선 소국 프리기아를 그리스와 서아시아의 맹주로 군림케 했다.

그리하여 천하 만민이 그를 칭송했다.

황금을 빚는 자.

위대한 대왕 미다스, 라고.

허나 그 모든 것이 무슨 의미인가.

그따위 것이야, 그에겐 새롭지도 자극적이지도 않고, 하물며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쉽다. 세상은 너무나 쉬운 것이다. 세상만사가 그에게는 설계도면을 보며 인형을 조립하는 일과 하등 다르지 않았다.

어떤 위업도 새가 날고 지렁이가 땅을 파는 것처럼 당연하고 손쉬운 일이라면, 거기엔 대체 무슨 가치가 있는가?

그래서 왕은 무료했다.

-약은 누군가에겐 독이다. 독도 어느 순간엔 약이 되지. 우린 너에게 축복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은 저주일지도 모르지···.

아폴론 신의 말이었다.

미다스 왕은 이제는 그 말뜻을 알 것 같았다.

“규칙은 간단하다. 너희의 재주로 나를 진심으로 탄복케 할 수 있다면 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풀릴 것이다. 매듭을 푼 자는 능히 이 땅의 주인이 되리라.”

그를 왕으로 만들어준 우마차와 신전 기둥이 복잡한 매듭으로 동여매여 있었다.

그것이 바로 고르디우스의 매듭.

제우스의 권능이 깃든 신물이자 왕의 증표인 것이었다.

이를 두고 내린 왕의 선언이 결코 허언일 리 없었으므로, 왕위를 노린 인세의 기재들이 속속 프리기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달.

미다스 왕은 한 달 만에 자신의 결정을 조금 후회하고야 말았다.

수많은 도전을 받았지만

여전히 왕은 무료했던 것이다.

어느 소피스트가 논리대결을 걸어왔지만 어버버거리다가 도망쳤다. 헤라클레스의 후손이라던 무인은 2합 만에 대가리가 깨졌다. 그리스에서 가장 이름난 가인歌人은 왕의 답가를 듣고 충격을 받아 3일간 침식을 잊었다. 아테네 제일가는 학사라는 자는 왕과의 문답 끝에 펜을 꺾었다.

도전자 중에는 공주도 왕자도 있었지만 왕은 조금도 봐주지 않았다.

모두가 가차 없이 격퇴됐다.

이를 지켜보던 한 관람객은 그 광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왕의 손끝에서 황금이 쏟아지는 듯했으나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다. 왕 본인을 포함해서.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두 달 열흘째의 날.

한 소년이 왕을 찾았다.

조금은 지친 왕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무슨 종목으로 도전하려는가?”

“검무劍舞입니다.”

“해보아라.”

소년은 말없이 스파타Spatha를 들고, 춤을 추었다.

고요했다.

침묵을 강요케 하는 검사위였다.

허공에 곡선을 그리는 검날, 구름 같은 보보步步, 힘은 낭비됨 없이 오롯이 집중되어, 공기를 스치지도 않고 제 길을 매끄럽게 베어낸다. 숨소리도 끼어들 틈 없는 찰나가 이어지고.

토옥-.

땀 한 방울이 바닥을 적심과 동시에 소년의 검무가 멈췄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스파타를 검갑에 수납하는 것까지, 이를 데 없이 깔끔하다.

멋진 춤이었다. 그러나-

소년 정도로 인상적이었던 도전자들은 많고 많았다.

구경꾼들은 이번에도 왕이 믿기지 않는 검무를 선보이며 소년을 패퇴시키리라 믿었다.

그런데, 이번에 왕은 뭔가 석연찮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군···.”

왕이 검을 들고 검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건 대결이 아니라 재연이었다. 왕은 소년보다 더 나은 검무를 미뤄두고, 완벽히 ‘똑같은’ 춤을 추는 데만 열중하였던 것이다.

검무가 끝나자, 왕은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했다.

기술적으로는 분명히 동일했다.

그러나.

“난 너와 똑같은 춤을 추었다. 한 번의 숨에서부터 가장 난해한 기교까지. 그러나··· 뭔가 다르군. 무언가가.”

“그럴 것입니다.”

“왜지?”

“왜냐면, 저는 춤에 재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왕이 소년을 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제 수많은 무능無能 중에서 춤에 관한 재능이 가장 일천하지요.”

“그건 설명이 아니다.”

“왕이시여, 당신은 무력감에 몸부림쳐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없다.”

“하늘이 내린 재능에 질투하고, 열등감에 밤잠을 설친 적은 있습니까?”

“없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한없이 전지전능에 가까운 존재.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지?”

“범부의 절망감입니다.”

소년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하늘을 보았을 때의 그 비참함을 모릅니다. 비참함을 모르므로 절박함도 없습니다. 절박함이 없으므로 향상심도, 시련을 헤쳐 냈을 때의 달성감도 모릅니다. 왕이여, 당신은 인간을 모릅니다.”

“······.”

“저는 이 1분의 춤을 완성하기 위해 10년을 바쳤습니다. 그럼에도 부족하지요. 당신이라면 이보다 완벽한 춤은 출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와 같은 춤은 출 수 없습니다. 내 춤에는 인간의 절망이 담겨 있지만, 당신은 결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그제야 왕은 이전의 도전자들과 소년이 다른 점을 깨달았다.

모두가 본인에게 가장 자신이 있는 분야로 승부를 걸어올 때, 소년만큼은 감히 자신하지 못함에도 끝내 극한으로 연마해낸 재주를 준비해왔다.

그 의도는 명백했고, 왕은 소년의 잔머리에서 괘씸함을 느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흥미롭다고도 왕은 생각했다.

내가 불쾌하다고 여긴 이 감정의 정체는 무엇인가?

“열등한 자에게서 열등감을 느끼다니! 하. 이 무슨 역설인가.”

결핍된 자아가 스스로 생채기를 내며 삶을 추동하는 것.

이것이 열등감.

왕은 흉중의 끓어오르는 어둠을 기꺼이 음미하며, 껄껄 웃었다.

“네 검무 자체는 내게 일말의 감흥도 주지 못했다. 인정하느냐?”

“예. 인정합니다.”

그 증거로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연회의 진정한 목적은 내 영혼의 불꽃을 지피기 위한 것. 너와의 문답은 그 본질에 도달했으므로, 나는 절반의 성공을 인정한다.”

왕은 신전의 기둥에 다가가, 풀리지 않은 매듭을 싹뚝 잘라내었다.

흘러내린 매듭의 반쪽을 왕은 소년에게 건네었다.

“성공이 절반이므로 매듭도 절반, 그러므로 포상 또한 절반이어야겠지. 이건 왕좌에 오를 최소한의 자격일 뿐. 넌 앞으로도 끊임없는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절반의 매듭을 받겠느냐?”

“그야말로 이 몸이 바라는 것. 남의 권위에 편승하는 건 제 방식이 아닙니다. 자신의 권위는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지요.”

“핫. 그야말로 패왕의 대답이로다. 소년, 이름이 무엇이냐?”

소년은 형형한 눈빛을 왕에게 당당히 부딪히며, 답했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그날.

알렉산드로스가 고르디우스의 매듭 절반을 가져간 이후, 미다스 왕은 홀연히 사라졌다.

그러나 신전 기둥 밑에는 그들이 남긴 매듭 절반이 남아있었고, 이를 탐한 야심가들이 왕위를 두고 이전투구를 벌이면서부터 프리기아는 빠르게 쇠퇴하게 된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청년이 된 알렉산드로스가 마케도니아의 군세를 이끌고 프리기아를 쳤다.

그는 허리춤에 왕으로부터 받은 매듭을 동여맨 채, 애마 부케팔로스 위에 올라 서아시아의 평야를 오시했다.

“아쉽군요. 미다스 왕이 있었다면 그나마 괜찮은 싸움이 되었을 텐데.”

친위대장 헤파이스티온이 입맛을 다셨다.

그는 단지 침략의 명분을 위해 매듭을 받아왔으리라 여기고 있었겠지만, 왕의 진면목을 눈앞에서 본 알렉산드로스의 생각은 달랐다.

“웃기는 소리. 나 따윈 그의 기휘를 범하지도 못한다. 꾀를 짜내 그를 스스로 왕위에서 내려오게 하는 게 고작이었지.”

“···왕자님이 그렇게 말하실 정도입니까?”

“더하고 뺄 것 없이, 그래. 그 방법 외에 마케도니아가 이 땅의 패자가 될 일은 요원했으니.”

그러나 이제 신은 없다.

저곳에 있는 것은 인간뿐이었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는 인간에게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리란 자신이 있었다.

그는 스파타를 빼어들며 부케팔로스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평원이 바로 그의 앞에 있었다.

“출진!!”

그날 프리기아는 마케도니아에 병탄된다.

한 불세출의 왕이 세운 황금의 나라는 그렇게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날의 문답을 기억하는 알렉산드로스는 그 뒤로도 가끔 생각하곤 했다.

지금도 어딘가에는 한 반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을 유랑하고 있으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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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미다스의 손](Rank : Ex)을 습득했습니다.

: 황금을 빚는 자, 그대의 손에서 세상 모든 진귀한 것이 탄생하리라.

: 카르마를 분석·흡수하며, 당신의 신체에 최적으로 적용시킵니다.

: 행운을 빕니다, 이한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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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황금의 왕 > 끝

ⓒ 달의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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