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탤런트Talent - 1 >
3. 탤런트Talent.
난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아님 요즘 주마등은 최신영화 한 편 끼워주는 게 트렌드인가?
회귀했는데 기타가 번쩍이고 갑자기 고대 그리스 시대를 관람하는 이 정신나간 전개를 쫓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뭐야 이거.
그러나 덕분에 정신은 번쩍 들었다.
물에 젖은 듯 무겁던 몸이 이제 잘도 움직인다. 울렁이던 시야도 말끔했다. 의식이 뿌옇던 몽롱함을 걷어내고 잠깐 별거 중이던 이성을 불러들였다. 빛나는 황금기타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종합하자면, 마침내 현실감이 복귀했다.
여전히 나는 침대 위에 있고, 시계는 째깍거리고, 이현지 선생님은 그림 같은 자태로 독서에 빠져 계셨다.
이 모든 것이 명백한 사실감을 갖추고 내 오감을 범했다.
꿈이 아니다.
난 정말로 회귀한 것이었다.
‘···그럼 이것도 진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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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미다스의 손](Rank : Ex)을 습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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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으로 도금한 듯 빛나는 문자가 눈앞에 가지런히 정렬해 있었다.
둥둥 떠다니는 글자라.
회귀도 했는데 날아다니는 글자 정도는 있을 수도 있지.
음음.
호기심에 툭 건드려보았더니 글자들이 사금처럼 잘게 분해되었다가, 다시 재조합되었다.
다만 다시 조합된 문자들은 이전의 것과는 달랐다.
===
·이름 : 이한열
·특성 : [미다스의 손](Rank Ex) - New!
·탤런트 : [······]
·카르마 :
-청색 카르마 : 500 - New!
-적색 카르마 : 500 - New!
-자색 카르마 : 500 - New!
-황색 카르마 : 500 - New!
===
음.
상태창?
장르소설 경력 20년인 내 판단에 따르면 이건 회귀에 딸려온 두 번째 기연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상태창과는 달리 전혀 직관적이지 않았다.
능력치도 스킬도 없고, 탤런트니 카르마니 뜻을 짐작하기 힘든 것들만 가득했다.
그렇다고 대충 넘길 수는 없지.
어디 숨겨진 도움말 기능이라도 있을까 글자 하나하나를 꼼꼼히 눌러보았다.
꾹.
꾹.
꾹꾹꾹.
꾹.
띠리링-♪
===
특성 [미다스의 손](Rank : Ex)
: 황금을 빚는 자, 그대의 손에서 세상 모든 진귀한 것이 탄생하리라.
: 카르마를 분석·흡수하며, 당신의 신체에 최적으로 적용시킵니다.
===
New!를 누르니 반응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카르마는 또 뭔데?
팝업창을 옆으로 치우고 밑에 있는 New를 클릭해보았다.
===
축하드립니다! 초보자 특전! 청색 카르마 500을 보너스로 얻습니다!
===
아니 그런 건 대충 보면 안다고.
그보단 카르마가 뭔지 설명해줘야 될 거 아니야.
투덜거려 봤지만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AI 따위는 없었다.
그 밑의 New!들도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나는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상태창을 종료시켰다.
생각을 해보자.
500이란 숫자, 보너스, 특전··· 아무리 봐도 카르마는 추가 스탯이나 코인이 연상됐다.
그렇다면 어딘가에 투자 혹은 소비하는 용도라는 건데, 어디에 어떻게 쓰는 건지는 또 알 수 없었다.
애당초 청/적/자/황 네 가지 색으로 나누어진 이유는 뭔가?
생각할수록 아리송하네···.
===
·탤런트 : [······]
===
그리고 이건 또 뭘까.
Talent는 ‘재능’이란 뜻이니까 해석하면 ‘재능 : 없음’ 이런 건가.
음.
내가 다방면으로 무능한 거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시각적으로 확인사살 당하는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그보다 저 뒤의 말줄임표는 또 뭐지.
가만 보면 ‘살다살다 이렇게 무능한 놈은 처음이라 말을 잇지 못하겠네.’라는 의미에서 상태창이 당황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종합하자면 알아낸 게 별로 없었다.
한숨이 나왔다.
비참하달까 어이가 없달까.
기껏 기연을 얻었는데 그게 뭔지 몰라 쓰지 못하는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절로 자살하고 싶어지는 미래였다.
내 망할 팔자라면 진짜 그럴지도 몰라. 내 의식 밑바닥에 세 들어 사는 비관론자가 그렇게 진단했다.
저놈의 비관론자는 나에 한해서는 거의 예언에 가까운 적중률을 자랑했으므로, 나는 조금 우울해졌고 또 그만큼 분노 게이지가 차올랐다.
그래서 손가락을 날카롭게 세워, 상태창에 통한의 찌르기를 가했다.
얍얍.
얍얍얍.
그리고 이현지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
“······.”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5초가 흘렀다.
5초 뒤에 그녀는 어른다운 처세를 발휘했다.
못 본 척을 한 것이다.
“이제 일어났니?”
“···네.”
그녀가 훌쩍 다가오더니 능숙하게 내 입에 체온계를 물렸다.
“어디 보자. 열은 좀 내렸고. 어지럽지는 않니? 회귀하신 이한열 씨?”
“괜찮아요. 아마도.”
“그래. 먼 미래에서 오셨으니 존댓말이라도 해드려야 되나? 연세가 어떻게 되셔요?”
“마흔다섯 살이요.”
“우리 어린이 마흔다섯이나 먹으셨어요? 잘 됐네. 약 투정은 안 하시겠어. 자 쭈욱 들이켜.”
그러면서 가루약을 맹물에 타서 건네는 것이었다.
가루약이라니.
이 시대에는 이런 야만적인 치료법이 횡행했단 말인가.
그래도 중년의 자존심을 걸고 원샷.
“좋아. 잘 먹네. 착하다.”
그녀는 칭찬을 하면서도 표정변화가 거의 없었다.
목소리도 높낮이가 적고 평탄해서 국어책을 읽는 듯했다. 구체관절인형이 말하면 이런 느낌일까.
그래서 오해도 사지만, 그녀는 결코 차가운 사람은 아니었다.
그보단 뭐랄까, 좀 심각하게 느긋하다고 해야 할까. 감정이 느리게 움직이는 타입이랄까.
몸이 허약해서 양호실 신세를 자주 졌던 나는 잘 알았다. 잘 드러나진 않지만, 그래도 그녀는 상냥한 사람이었다.
“그럼 어쩔래?”
“네?”
“더 쉬다 가도 돼. 눈치 볼 거 없어.”
“아. 잠만 좀 깨고 갈게요. 폐 끼칠 순 없으니까요.”
“그래? 그럼 그러든가.”
이 선생님은 그녀답게 두 번 권하지 않고, 태연한 태도로 컵과 체온계를 회수했다.
그 모습을 나는 멍하니 감상했다.
진짜 아무 것도 아닌데 그 자체로 그림이었다.
역시 이 양호실은 그녀의 자태를 담기에 너무 좁았다. 이런 데서 시시각각 미모가 낭비되고 있는 현실이 아깝다. 가히 전지구적 손실이 아닌가. 그녀가 공중파를 타고 만인에게 공개되는 순간 살인범이 참회하고 IS조차 그리스도를 믿을 게 분명했다. 세계 평화는 그렇게 이뤄지는 것이었다.
가로되 가히 아가페적 미모.
그건 나만의 평가는 아니었다.
대원고교에는 3대 미녀가 있는데, 이현지 선생님과 보건교사와 양호선생님이 그 셋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여기 남학생 중 그녀에게 연심을 품지 않은 놈이 없었고, 나도 그놈들 중 한 구석을 당당히 자리했다.
그래서 그녀가 학생과 연애를 하다 적발돼 퇴직 당했다는 사실이 전해졌을 때, 난 다른 모두와 같이 크나큰 충격을 받았었다.
그날은 가히 국장國葬급 비장함이 감돌았었지.
“왜 그렇게 쳐다보니?”
“선생님.”
“응?”
“그래도 학생이랑은 안 돼요.”
“???”
그녀가 뭔 소린가 싶은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보셔도 안 말해드릴 거거든요.
흥.
순정을 배반당한 남자는 무섭다구요.
난 그녀가 어리둥절하게 놔둔 채, 남자다운 단호함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때 그녀가-
“한열아.”
“예?”
“근데 아까 그건 뭐였어? 요즘 그런 게 유행하니?”
라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허공을 얍얍 찔러댔다.
여전히 무표정으로.
그제야 나는 그녀가 못 본 척을 한 게 아니라 그게 뭘 뜻하는지 몰라서 계속 고민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오···.
난 대충 얼버무리고 조속히 퇴각했다.
더 있다간 얼굴이 익어버렸을 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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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 대원고교 1학년 3반.”
현재 내 신상명세를 읊어보았다.
“45세. 현진무역 대외협력부 과장.”
그리고 과거의 나를 그 뒤에 덧붙여보았다.
뭔가 기분이 묘했다.
회귀한 직후엔 후자의 정체성이 강했다. 삶에 찌든 중년 남자가 아이의 몸에 들어왔다, 그런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감각이 반전되고 있었다.
전생의 기억이 점점 꿈처럼 흐려지고, 고등학생으로서의 내가 의식의 전면에 들어서고 있었다.
30년이나 지났던 일이 자연히 떠오르고, 나보다 한참 어릴 선생님에게 그야말로 학생처럼 반응했다.
호접지몽인가.
난 중년이 되었던 꿈을 꾸었던 것에 불과할까?
물론 답이 없는 철학적 문제 따위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건 이거다.
‘까먹기 전에 빨리 적어놔야지. 코인이 언제 뜨더라···.’
수첩에다 돈이 될 법한 정보들을 일필휘지로 적어 내려갔다.
글자가 반쯤 차니 마음이 넉넉해졌다.
이중 절반만 실현 되도 난 부자다.
알부자!!
그렇게 알차게 미래설계를 하다보니 어느새 교실에 도착했다.
드르륵. 문을 여니, 교실 안의 시선이 순간 확 밀려왔다.
교사는 짧은 스포츠머리에 트레이닝복을 입은 인상 강한 중년남성으로, 과학 담당의 이태백 선생이었다.
수업 흐름이 잠깐 끊긴 게 언짢았는지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집중해 집중! 넌 어디 갔다 이제 와? 지금 등교한 거냐?”
“양호실이요.”
“뭘 대단한 일 했다고 당당히 말하고 있어? 빨리 가서 앉아!”
“네에···.”
어떤 학생이 손을 들고 외쳤다.
“쌤 쟤 우리 반 기절 담당이에요.”
“뭐? 뭔 담당?”
“쟨 뭐 시키면 안 돼요. 하다가 맨날 기절하거든요. 그래서 그냥 기절 담당이죠.”
“뭘 시답잖은 소릴 하고 있어?”
“아 진짠데?”
“시끄럽고. 넌 씨부릴 시간에 나와서 3번 문제나 풀어.”
“으잉?!”
조심히 내 자리를 찾아 걷고 있는데,
-콱!! 돌연 턱이 지끈거리더니 눈앞에 돌바닥이 등장해 있었다.
뭐지.
중력이 고장 났나?
왱왱 이명이 울리고, 뇌수가 콧물로 흘러나오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 즈음, 귓가로 킥킥 웃는 소리가 파고들었다.
모기처럼 군집한 조소들.
“쌤! 얘 또 기절! 걸어가다 그냥 기절! 이쯤 되면 증명이 필요 없는 거 아닙니꽈아아?!”
“다들 조용히 못해?! 넌 빨리 나오라니까!”
“아 곽쌤은 나만 싫어해···.”
넘어졌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무능해도 걷기 재능까지 없지는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저 말은 좀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누군가 내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로.
이 순간 두근거리는 판타지 전개가 순식간에 시궁창 다큐멘터리로 변모된 듯했다.
그랬지.
학창 시절,
그들에게 나는 우스꽝스러운 존재였고, 광대로서 응당 그 해학을 전시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여겨졌었다.
또래는 즐겼고 선생들은 귀찮아했다.
나는 왕따였다.
아무 것도 바뀐 것은 없었다.
회귀를 했다 한들 나는 여전히 무능했고, 이 병든 영혼에는 패배의 기억만 축적되어 있었다.
난 뭘 그리 들떠 있던 거지?
새삼스런 감정이 확 치고 올라오다가 돌처럼 굳는 것을 느끼며,
나는 덤덤히 일어섰다.
툭툭 먼지를 털고 자리에 가서 앉았다. 얼굴을 붉히지도 눈치를 살피지도 않았다.
내가 별 반응이 없자 웃음소리도 잦아들었다.
웃음소리가 사라진 곳에는 불온한 적막감이 스몄다.
광대가 정색을 했으니 관객 입장에서는 불쾌하기도 하겠지.
뭐.
그래서 뭐 어쩌라고.
“주목! 이거 다음 주 시험에 나온다.”
과학선생의 목소리에 아이들의 주의도 칠판으로 옮아갔다.
단 한 명.
발을 걷어차서 내 안면과 바닥을 상봉시킨 한 명만이 이지러진 눈매로 날 흘겼다.
난 그를 알았다.
“야아··· 이한열이. 양호실 가서 깡다구 좀 단련해 왔나봐?”
“······.”
“대답 안 해?”
김송헌.
그는 희멀겋고 잘생긴 얼굴에 심술을 크림처럼 발라 좀 부조화스럽게 보였다.
이 자식은 뭐랄까.
말하자면 왕따 브로커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어느 반에 가든 거기서 가장 못난 인간을 찾아내어 왕따로 만들고, 여타 아이들에게는 괴롭힘 서비스를 제공해 반의 평균 스트레스 지수를 낮추는 일을 사명이자 일생의 업으로 삼는···.
개새끼다.
“시발 대답 안 하냐고.”
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앞을 흘긋 보았다가, 그에게만 보이게 손짓을 했다. 대충 이런 뜻이었다. ‘앞이나 보는 게 좋을 걸.’
못 알아들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전달된 모양이다.
놈이 얼굴을 와락 구겼다.
“이 새끼가 진짜 돌았···. 악!”
그때 그의 관자놀이에 분필 하나가 통렬히 꽂혔다.
따악-!
맑은 소리♬
그러게 내가 앞을 보라고 했잖아.
“김송헌!! 내가 조용히 하라고 몇 번 말해!!”
“아 쌤 그게 아니라요···.”
“시끄러! 복도에 나가 있어!”
“아씨 진짜 쪽팔리게···.”
“뭐야 자식아? 뭐가 팔려?”
이태백 선생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뚜껑이 열리기 직전에 일어나는 증상으로, 우리끼리는 저 상태를 ‘태프콘3’라 불렀다. 저기서 한 단계 올라가면 교실에 피바람이 분다.
김송헌도 그제야 실수를 했다는 걸 알았는지 낯을 굳혔다.
그때 타이밍 좋게 종이 울렸다.
댕댕.
이태백 선생이 굵은 단목교편을 흔들며 김송헌을 가리켰다.
“너, 교무실로 따라와.”
“······.”
곱지 않은 시선이 날 향했지만 난 굳이 응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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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탤런트Talent - 1 > 끝
ⓒ 달의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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