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탤런트Talent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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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실로 끌려간 김송헌은 5분도 안 되어 돌아왔다.
그럼 그렇지.
너무 예상대로라 실소가 픽 나왔다.
가서 호되게 혼나리라곤 기대도 안 했다.
저 멀끔하게 생긴 개자식은 꼴에 끗발 날리는 지역의원의 자제분 되신다.
그 의원이란 놈도 비리에 청탁에 아주 못지않은 개놈이므로 그야말로 아래위로 개 같은 집안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놈과 개자식이 사람 노릇을 하려면 보통보다 품위유지비가 곱절은 들 텐데, 그들은 그 값을 지불할 만큼의 위세는 갖췄다.
요컨대 마음만 먹으면 선생 한둘 쯤 날려버릴 힘은 있는 거다.
이태백 선생도 당장 선생 체면이 있으니까 끌고 갔을 뿐, 막상 가서는 간단한 주의만 주고 돌려보냈을 게 뻔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이 무어 중요하랴.
따까리 놈이 ‘감히’ 대든 바람에 수모를 당했다···. 폼생폼사를 우주적 원리쯤으로 아는 저놈 같은 타입에겐 이만한 분노 촉진제가 없을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날 보는 눈빛이 아주 사납다.
여기서 포인트는 그냥 보기만 한다는 거다.
김송헌 나름의 왕따 철학이랄까.
그냥 가볍게 놀 때는 직접 손을 쓰기도 하지만, 진심으로 상대를 짓밟고자 할 때는 흑막처럼 주변 사람들을 움직여 괴롭힌다는 중2병 같은 버릇이 있었다.
분명 ‘크크크. 우·주·전·체에 거부당하는 기분을 선사해주마. 크크크’라고 중얼대면서 스스로의 멋짐에 취해있는 게 분명했다.
단언합니다만 여러분.
중2병은 병입니다. 여러분의 세심한 관심과 의학적 조치가 필요···.
“야. 이한열.”
누군가 내 뒷통수를 툭 치면서 뇌까렸다.
관심이 필요하신듯하여 쳐다봐주었다.
“뭐 시발. 이 새끼 눈깔이 불온하네. 눈 안 깔아?”
“······.”
아.
이놈도 있었지.
머리를 짧게 깎고, 그 짧은 머리에 기어코 노란물까지 들인 사내 녀석이 거기 있었다. ‘난 반항하겠다.’는 의지를 대가리에 집약시킨 듯했다.
체구는 평범하고 얼굴도 곱상했는데, 그런 신체조건을 극복하기 위해(왜 극복해야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녀석은 어깨에 두꺼운 뽕을 넣고 안면근육을 혹사시켜 만든 험악한 표정을 늘 달고 다녔다.
한 마디로 엄청 븅신같은 이놈에겐 박종철이라는 과분한 이름이 붙어있다.
“불러서 봤는데. 왜? 내가 보니까 부끄럽냐? 보지 말까?”
“뭐래 이 새끼가. 부끄럽긴 누가 부끄럽다고.”
“그래서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니 맘대로 해 새끼야!!"
"그럼 보지 뭐."
“눈은 깔라니까!”
“눈을 깔면 못 보잖아.”
“어···!!”
박종철은 몰랐던 사실을 깨달았다는 듯 동공을 파르르 떨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입에는 사실 숨겨진 세 번째 기능이 있다. 바로 벌리고만 있으면 멍청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인데, 박종철은 정확히 그 기능으로 입을 활용했다.
그는 훌륭하게 멍청해보였다.
“···아니, 아니 이게 아니지.”
정신을 차리고 재정비를 하는 박종철.
놈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뒤에 김송헌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
측근 서열 37위쯤 되는 박종철로서는 어떻게든 충성도를 증명해야 하는 처지.
박종철이 뽕을 추켜올리고 흐트러진 얼굴을 다시 긴장시켰다. 내겐 그것이 내면의 양아치성을 끌어올리는 의식처럼 보였다.
녀석이 내 앞의 책상다리를 쾅-! 걷어찼다.
“너 뭐냐?”
“······.”
“오늘 뭐 잘못 먹었어? 뭔데 이렇게 뻣뻣한데?”
그리고는 책상 위에 500원짜리를 툭 던진다.
“늘 하던 대로 빵이나 사와. 좋은 말로 할 때. 지금이라도 굽히면 송헌이가···.”
그러나 나는 원운동을 하는 동전이 멈추기도 전에 손등으로 쓱 밀어서 책상 바깥으로 추방시켰다.
동전이 탱, 탱, 탱··· 맑게 울렸고 그와 반대로 교실은 고요했다.
모든 학생이 나와 박종철의 대치를 관람했다.
이런 병신 같은 짓거리가 재밌다고들 보고 있는 건가?
쯧.
지금 이런 시답잖은 일에 휘둘릴 때가 아니다.
리만브라더스 사태가 언제 일어나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단 말이다. 몇 월인지만 알면 공매도 때려서 한 몫 잡아볼···.
콱-!
시야가 휙 기울었다.
박종철이 내 멱살을 쥐고 거칠게 밀어붙인 것이다.
허약한 내 몸은 아주 가뿐하게 휘둘리며 창가까지 내몰렸다. 콰당! 책걸상이 요란하게 넘어졌다.
녀석이 악문 잇새로 으르렁거렸다. 숨결이 온도로 느껴질 만큼 밀접한 거리에서.
“···너 대체 무슨 깡이냐? 대책도 없이?”
“······.”
“빌어먹을. 이래봐야 소용없다는 거 너도 알잖아. 그냥 고분고분··· 적당히 굽히면 쟤도 적당한 선에서 넘어간다고. 근데 왜 괜히···.”
이젠 숫제 애원하는 듯했다.
분명 겁박당하는 건 난데 저쪽이 더 절박해 보인다. 실제로도 그렇겠지.
난 잠시 녀석의 눈을 응시하다, 한숨처럼 한 마디를 흘렸다.
“적당히 굽힌다는 건 없어.”
“···뭐?”
“그게 그래. 한 번만 엎드려야지. 이번에만. 다음에는 다를 거야. 그렇게 평생 변명을 하면서 계속 굽히게 되더라. 산다는 게 참··· 그렇더라고.”
내게는 두 개의 어제가 있다.
폭력과 외로움에 굴복했던 16살의 나와, 그것을 수십 년 반복하다 굴종이 습관이 되어버린 45살의 나.
둘 모두 꼴사납기로는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후자의 나는 그 끝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시리도록 깨닫고 있었다.
이제 그딴 건 싫다.
“너··· 그게 무슨···.”
그때 때마침 수업종이 울렸다.
뭔가 복잡한 표정으로 내 멱살만 쥐어뜯던 박종철은 별 성과 없이 제 자리로 돌아가야만 했다.
김송헌의 눈빛은 이제 사나움을 넘어 광기를 띠기 시작했고,
그 말인즉 앞으로 귀찮은 일이 많아질 것임을 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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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3일이 지났다.
난 여전히 상태창의 비밀을 풀지 못했고, 아주 잠깐 판타지를 경유한 내 삶은 현시창이라는 본궤도로 돌아와 있었다.
그럼에도 감상을 묻는다면 뭐,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흠.”
책상서랍에 면도칼 더미 뿌려놓기, 사물함에 썩은 우유 투기하기, 체육복 실종으로 체육시간에 얼차려 당하기, 발 걸기, 뒷머리 잡아당기기, 괜히 걷어차기 등등 무수한 린치 시도가 있기는 했지만, 뭐 그냥저냥 괜찮았다.
사내 정치와 상사의 내리갈굼으로 단련된 내 멘탈을 흔들 정도는 아니었다.
요새 왕따 수준이 이래서야.
분발들 하시라.
그나저나 오늘은 이거군.
지금 내 눈앞에는 조각조각 찢기고 물에 불어서 곤죽이 된 교과서들이 있었다.
왠지 몇 개가 안 보인다 싶더니만, 오늘 내 책상 위에 요딴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뭔가 퀴퀴한 냄새도 나는 게··· 저 물기의 출처는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
아주 정성이다 정성이야.
쯧쯧.
나는 교과서(였던 것)들을 쓰레기통에 쓸어 넣고 물기까지 깔끔하게 닦아냈다.
호들갑 떨지 않고, 철저히 덤덤한 스텐스로 해치운다. 사실 그것이 관건이다. 수도사적 태도. 느긋한 의연함.
보기만 해도 잠이 오는 경건함으로 이 모든 일을 받아넘기는 것.
막장 드라마를 기대한 시청자들에게 교육방송을 상영해주는 내 대응에 누군가는 심드렁해졌고 누군가는 당황한 듯 보였다.
내 전략이랄까.
작전명 : 개노잼.
왕따를 왜 할까? 뭔 이유가 있겠나 그냥 재밌으니까 하는 거지. 왕따는 일종의 놀이문화요 교실의 예능이다.
그런데 예능이 재미가 없으면?
왕따 프로젝트의 총괄 PD라 할 수 있는 김송헌의 연출력 논란 속에서 조기종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전략이 유효한 건 김송헌의 썩은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귀찮은 일이 귀찮지 않게 되지는 않았다.
“이한열. 넌 왜 교과서가 없냐?”
“어떤 도둑놈이 훔쳐가서 갈기갈기 찢어 놨더라구요.”
“뭐? 누가 그랬는데.”
“글쎄요. 어떤 할 일 없는 놈이 그랬을까요.”
“얌마! 그게 학생이 할 소리야!”
왜 학생이 할 소리가 아닐까?
반대로 학생이 할 소리는 대체 뭘까?
도둑질을 당한 건 난데 왜 절도의 책임도 내가 져야만 하나? 관리 소홀이라고? 선생이 그렇게 가르쳐도 되나?
그럼 사기 당한 사람은 본인이 멍청한 거니 감당해야 하나?
그런 개떡 같은 논리는 어디서 주워온 거야?
심지어 지금 지껄이는 선생은 윤리 담당이었다.
공자님한테 사서삼경으로 쳐맞아야 저딴 소리를 안 하지.
라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주의하겠습니다. 선생님.”
내가 평정을 유지할 수 있던 건 역시나 표정관리로 생사가 갈리던 전생의 직장경험 덕분이었다.
그 뒤로 한참 동안 갈굼과 힐난이 이어졌지만 난 이번에도 산이야 물이야 하면서 흘려보냈다.
역시나 이놈의 학교는 학생이나 교사나 쓰레기 천지라는 새삼스런 깨달음 속에서,
오늘도 시간은 흘러갔다.
점심시간.
방송이 하나 흘러나왔다.
[아아. 학생들에게 알립니다. 오늘부터 3일간, 대원고교 부지에서 통천시가 주최하는 바자회 내지 나눔행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중고 참고서나 교과서도 다량 취급하므로, 관심 있는 학생들의 많은 방문과 이용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오늘···.]
오.
안 그래도 교과서 구해야 했는데 잘 됐다.
난 점심을 얼른 해치우고 학교 뒤편으로 향했다.
바자회는 생각 이상으로 본격적이었다.
판매 부스만 수십 개였고, 중간 중간 먹거리를 팔거나 페이스페인팅을 해주는 곳도 있었다.
인근 주민들은 다 모였나? 거의 축제 느낌으로 바글바글했다.
숨은 명품을 찾아 눈을 번뜩이는 사모님들. 프라모델에 동시에 손을 뻗은 소년과 삼촌의 기 싸움. 핫도그를 떨어뜨리고 나라 잃은 표정을 짓는 아이.
기타 등등의 군상을 헤치고 학습지 코너로 직행했다.
이런.
벌써 학생들이 꽤 모여 있다.
“야 이거 필기 빼곡한 거 봐라. 이거 들고 다니면 엄마가 나 공부 엄청 하는 줄 알겠지?”
“이 새끼 천잰데? 야 이거 500원이다. 아빠한테 교재비 받은 거 삥땅칠 수 있겠다.”
“너야말로 천재다···.”
면학도 보다는 등골브레이커들이, 제사보단 젯밥에 관심 두는 사람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탐욕이라면 나도 지지 않지. 전력으로 뛰어들었다.
어디 보자.
수학책··· 과학책···.
그래도 교과서 쪽은 경쟁이 적어서 다행이다.
가격도 싸서 거의 거저나 다름없었으므로, 분실할 것을 대비해 추가로 몇 개 더 구매하기도 했다.
목적을 다 달성하고, 참고서는 뭐 볼 게 없을까 무심코 고개를 돌린 순간이었다.
울렁.
급격히 현기증이 몰려왔다.
몸뚱이의 안과 밖이 통째로 뒤집힌 것만 같다. 세계와 내가 결정적으로 어긋나버린 느낌이었다.
시야가 뿌옇다.
보이는 모든 것이 모호하고, 윤곽을 잃어 흐려지고 있었다···.
아니, 아니다.
그냥 흐려진 게 아니라, 시야가 어떤 한 점에 집중되어 주변부가 도려내어진 것이다. 극단적으로 포커싱을 당긴 카메라처럼.
그럼 그 점은 무엇인가? 답은 금방 도출됐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푸른 빛깔을 머금은 어떤 책 앞에 서 있었다.
책은 두툼했고, 양장된 표지의 끄트머리는 많이도 닳아 있었다.
[수학의 정석]
나는 홀린 듯이 책에 손을 뻗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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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 [어느 수학 신동의 수리적 통찰력](Rank C)과 접촉하였습니다.
흡수하시겠습니까?
(Yes/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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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잊고 있던 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 3. 탤런트Talent - 2 > 끝
ⓒ 달의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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