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카르마Karma - 4 >
“저 안에 있는 사람. 전문 사기도박꾼이에요.”
“···뭐?”
난 의아했다.
한 명밖에 반문을 하지 않은 것이다.
무반응인 쪽을 바라보자, 노인이 똥 씹은 표정으로 날 노려보았다. 그 눈은 말하고 있었다. ‘왜 쓸데없는 얘기를 하고 그러냐.’
선생님은 그런 나와 삼촌을 번갈아보다,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삼촌은 알고 계셨어요?”
“니미럴.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니가 그럴 거 같아서 말 안한 거 아니냐.”
“아니 도박은 그렇다 쳐도···! 어떻게 사기도박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저한테 부끄럽지도 않아요?!”
“그게 뭐! 김씨 저놈이 날 털어먹은 게 얼만데! 그때 그놈이 나한테 공사치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딴 책방 주인이나 하고 있을 것 같으냐?!”
“그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시끄럽다! 당하고만 살면 그게 호구지! 그래도 걱정 마라. 귀수 저 양반이 솜씨가 좋으니 실패할 일은 없다. 김가 놈 오늘 아주 영혼까지 털어서 보내버릴 작정이니까, 너희는 가만히 있어라. 망치면 나도 가만히 안 있어.”
“······.”
삼촌 분은 그렇게 으름장을 놓더니 가게 안으로 훌쩍 들어가 버렸다.
선생님은 그 모습을 무연히 쳐다보다 휘청이듯 뒷걸음을 쳤다. 돌담에 등을 기대어 섰지만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다.
난 조용히 그녀 옆에 섰다. 아무 말 없이 창백한 가로등빛만 같이 맞아주었다.
“···외숙모가 돌아가시기 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독백인 듯 아닌 듯, 그녀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듣자하니 정말 뻔한 얘기였다.
이런저런 군더더기를 빼고 요약하면, ‘외삼촌이 도박을 함 > 외숙모가 등짝 스매시를 날림 > 삼촌 도박 > 숙모 등짝 > 도박 > 등짝’의 무한반복이었다는 이야기.
그러다 외숙모가 돌아가시고는 고삐가 풀려서 막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화룡정점으로 3년 전, 예의 ‘김씨’라는 자에게 호구 잡혀서 사업까지 홀라당 말아먹는 일이 생겼다.
“김씨라면···.”
“그 방 안에 비쩍 마른 아저씨 하나 있었지? 그 사람이야.”
난 방 한 구석에 틀어박혀서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왜소한 남자를 기억해냈다.
“선생님도 아시는 분이세요?”
“삼촌 친구 분이셨으니까. 삼촌은 그분이 3년 전에 자신을 물 먹였다고 생각하고 계셔. 김씨 아저씨가 데려온 사람이 소위 말하는 ‘꾼’이었거든. 다만 증거는 없었지. 삼촌만의 심증일 뿐.”
“거참. 우정 날라가는 거 한 순간이네요.”
“그치? 돈 그까짓 게 뭐라고 다들 참···.”
교직 규정 어기고 알바하시는 분이 할 말은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렇게 절교했다가 얼마 전부터 왜인지 다시 어울리신다 싶더니, 이런 일을 계획하고 계셨네. 미안, 한열아.”
“뭐가요?”
“어른으로서 뭔가 부끄럽네.”
“전 괜찮지만요. 그럼 어쩌시게요?”
“글쎄다. 생각 같아서는 확 경찰에 전화해서 다 엎어버리고 싶다마는.”
“······.”
“얼마 안 남은 가족이라고 그게 참··· 쉽지가 않네.”
“그렇겠네요. 그래도 뭐라도 하긴 하셔야 할 거예요.”
“응?”
“안 그러면 오늘 영혼 털리는 건 삼촌이 되실 걸요.”
선생님이 눈을 껌벅껌벅 감았다 떴다.
설명을 요구하는 표정이었다.
“삼촌께선 자기가 공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반대에요.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는 건 꾼이랑 그 김씨라는 분일 겁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흔한 수법이니까요. 시나리오가 좋잖아요? 리벤지 매치. 근데 복수심만큼 사람 눈을 멀게 하는 것도 없어요. 맹목적인 사람은 속이기 좋죠. 그러니 제가 꾼이라면, 동업자로 삼촌보다는 김씨를 택했을 겁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똑같은 질문이 반복됐지만 둘의 톤과 의미는 달랐다.
전자가 단순한 질문이라면 후자에는 의구심이 섞여 있었다. 나라도 고딩이 이런 말을 주절대면 의심스럽겠다.
“그냥요. 보육원에 봉사활동 오신 아저씨가 한때 도박판에서 날리셨다나봐요. 그분한테서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어요.”
귀수라는 사람인데요, 별거 아닙니다. 타짜 랭킹 1위였다는데 그런 사람 동네마다 한 명씩 있잖아요? 그죠?
“그래?”
“네.”
“어쨌든, 그래서?”
“뭐가 그래서예요? 이젠 큰 판을 만들어서 결정적일 때 뒤통수를, 빡! 그거죠.”
“······.”
선생님은 이제 경찰에 전화할 생각을 반쯤 굳히신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나쁘진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도박 못 끊으면 유치장에 처넣어서라도 정신 차리게 해야지.
그러나.
이번에는 좀 더 나은 선택지가 있지.
“선생님. 사태를 해결할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요.”
“응?”
“그러려면, 제가 화투판 앞에 앉아야 합니다.”
“······?!”
선생님한테 내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정보, 도박판에 대한 지식과 수법을 싹 풀었다. 그리고 내가 그린 시나리오와 혹시나 잘못됐을 때의 대처법까지 말했다.
“······.”
내 말이 끝나자 선생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콧잔등을 어루만졌다.
역시 쉽지 않겠네. 아무렴 학생이 도박판에 뛰어드는데 고개를 끄덕여주는 교사가 어디 있겠는가.
안 되면 좀 억지를 써서라도···.
“좋은데?”
“···응?”
“괜찮은 계획··· 아니 내가 듣기엔 이보다 좋을 수 없겠는데? 네 말들이 다 사실이라면.”
“아니, 안 말리세요?”
“응? 내가 왜 말려?”
“학생이 도박하러 가니까요. 당연히 말리실 줄 알았어요.”
현지 쌤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 와중에 겁나 예쁘다.
“네가 무슨 도박을 해?”
“화투판에 앉아서 화투를 치면 그게 도박이죠.”
“아니야. 그건 도박이 아니야.”
“으이잉?”
“생각해봐. 리오넬 메시가 공을 차는 건 도박일까? 매니 파퀴아오가 훅을 날리는 건 도박이니?”
“네에?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말이에요 그게.”
“하지만 전 세계 사람들은 메시의 득점율을 대상으로 도박을 하지. 파퀴아오의 승패에 돈을 걸고. 그럼 메시나 파퀴아오가 도박을 한 건가?”
“···아니···죠?”
“그렇지? 도박은 돈을 걸고 따는 행위야. 그걸 안 하면 단순한 게임일 뿐이지. 그러니 넌 그냥 플레이어일 뿐, 도박은 내가 하는 거야. 돈은 내가 거는 거니까. 알겠니?”
“그건 그렇··· 잠깐, 교사가 도박을 하는 건 괜찮아요?!”
아니, 근데 내가 왜 내 제안을 공박하고 있지? 너무 쿨하시니까 고민한 내가 이상한 거 같잖아···.
“안 되지만 괜찮아.”
“뭔가 데자뷰가···.”
“생각해보렴. 우린 뭘 하러 가는 거지? 돈 따서 부귀영화를 누리러 가는 거야?”
“그건 아니죠.”
“그래. 사기꾼 척결 및 정의구현이 우리 목적이다 이 말이야. 배트맨이 악당 좀 때려잡는다고 폭행죄와 재산손괴죄를 묻는다면, 좀 지나치게 융통성이 없는 거 아닐까?”
“···선생님은 궤변을 그럴듯하게 말하는 재주가 있으시네요···.”
개소리를 궤변으로 순화하는데 힘 좀 써야 했다.
뭐, 상관없나.
왠지 모르게 좀 신나신 것 같기도 하고. 이제야 좀 내가 아는 얼굴로 돌아온 듯하여 마음이 놓였다.
“남자가 말 많으면 인기 없어.”
“인기는 그냥 없는데···. 어어엇!”
“에잇. 자잘한 건 제쳐두고. 지금은 빨리 가자고.”
이현지 쌤이 내 팔을 끌어안더니 가게 안으로 거침없이 이끌었다.
또 데자뷰다!
그리고 이런 데자뷰라면 몇 번이라도 환영이라며 내 팔뚝이 행복의 비명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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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수는 죽음이 반가웠다.
죽음이 반갑다?
이상한 말이다.
‘반갑다’에는 환영한다는 용례도 있지만 그건 본래의 의미에서 확장된 것이다. 원래는 ‘그리운 이와 재회해 기껍다’는 뜻이다.
때문에 죽음은 반가울 수 없다.
그것이 꺼림칙해서가 아니라 죽음과의 만남은 누구나 한 번 뿐이라는 의미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과 살갗을 맞대고 있는 이 순간, 귀수는 어째서인지 반가움을 느끼고 있었다.
다르게 표현할 수가 없다.
왜일까?
“아이고 선생님. 이게이게 뭡니까? 적당히 했으면 좋았잖아. 여기가 뭐 푸줏간도 아니고 서로 피 묻고 아주··· 에이.”
“······.”
끄륵.
피거품이 끓었다. 짙은 혈향이 과거의 기억을 불러냈다. 그랬다. 자신이 처음 화투를 매만지던 그때도 피냄새가 이토록 짙었다.
생각해보면 그때 끊었어도 이상하질 않았다.
곳곳에 수라가 도사리고 가는 걸음걸음마다 피발자국이 찍힐 것임을 그때부터 이미 알았다.
그런데 왜.
“그 돈 다 처먹고 정말로 무사할 줄 알았어요? 예에? 진짜로 그리 생각했다면 실망인데에···. 천하의 귀수가, 응? 감이 그리 없어서 화투는 어찌 그리 치셨대?”
“···어떻게. 쿨럭···.”
“응? 괜찮아괜찮아. 편하게 말 하쇼.”
“어떻게··· 알았냐···.”
“아아. 당신이 이리 올 줄 어찌 알았느냐고?”
귀수도 자신이 도박판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걸 안다.
그래서 작업에 나설 때는 변장과 신분위조는 물론, 안전가옥까지 준비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고 생각하기로 실수는 없었다.
“귀수 양반, 제자를 잘 두셨더라고?”
“······!”
“압구정동 발바리. 야 그놈. 당신한테서 손재주는 몰라도 구라치는 법은 아주 찰지게 배웠어. 어떻게 눈 하나 깜빡 안하고 하늘같은 스승님을 속였나 몰라? 나 같으면 오금이 저렸을 거인데. 흐흐.”
그렇게 된 거였군.
귀수는 상황이 납득되었다.
“아, 인생 참 모르는 일이여. 그때 오지랖만 안 부렸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라나?”
발바리는 자신이 살해한 사람의 아들이다.
물리적으로 죽인 건 아니다. 그는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었다.
귀수는 단지 화투를 쳤을 뿐이나, 그 화투판으로 한 남자의 희망을 끊었다. 희망이 없으므로 남자는 죽음에 이르렀다.
귀수의 관점에선 그것도 살해다.
칼 대신 돈으로 상대의 심장을 찌르는 수법이 특이할 뿐, 자신은 연쇄살인마다.
귀수는 발바리가 자신을 원망함을 알면서도 거두었다.
왜 그랬을까?
“그래도 너무 분하게 생각하지는 마쇼. 이게 말이야, 백스테이지에서의 얘기도 참 재밌거든.”
남자가 마스크를 턱 밑까지 내렸다. 섬뜩하게도 그에겐 아랫입술이 도려내진 듯 없었다.
용모 탓에 사람들은 그를 빨간마스크라 불렀고, 어감이 마음에 들었는지 남자는 스스로 그 별칭을 퍼뜨리고 다녔다.
그리고는 하얀 마스크를 항상 쓰고 다녔다.
누군가의 피가 튀면 정말 빨갛게 될 거라며.
빨간마스크가 서서히 다가왔다.
그리고 입술이 부족해 조금씩 새는 발음으로, 속삭이듯 말한다.
“···그러니까 사실은 말이지···.”
귀수는 죽음을 감지했다.
점점 가까워지다 이제 세상을 검게 뒤덮을 테지.
아.
그는 마지막 순간에야 깨달았다.
왜 피냄새를 맡으면서도 이때까지 도박을 끊지 못했는지. 왜 자신을 원망하는 아이를 맡아 길렀는지.
왜 죽음이 이리 반갑게 느껴지는지.
자신은 이 자기파괴적이기에 매혹적인 세상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이었다. 삶을 반쯤 내놓는 걸 즐겼으므로 그야 죽음이 반가울 만도 하다.
하긴.
이런 뒤틀린 인간이 아이를 길렀으니, 그 아이가 제대로 될 리 없었나···. 이 파국은 정말이지 예견된 거나 다름없던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귀수는 어둠에 기꺼이 제 몸을 안기었다.
===
“어라? 선생님이랑 학생 아직 안 가셨네?”
건달은 역시나 실실 웃으며 우리의 등장을 반겼다.
그러나 환영받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삼촌은 경기를 일으키기 직전이었고 대머리 준기 아저씨는 안절부절 못했다. 김씨 아저씨는 여전히 석상에 가까웠지만 역시나 반기는 태도는 아니다.
물론 우린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선생님이 말했다.
“우리도 끼어도 되죠?”
“응? 화투를?”
“네. 그것도 안 된다고 하진 않으실 테죠?”
“안 될 거야 없지. 근데 선생님도 화투 치실 줄 아시나?”
“치는 건 제가 아니에요. 전 돈만 댑니다. 선수는 이쪽.”
선생님이 내 등을 살짝 앞으로 밀었다.
좌중의 표정이 묘했다. 그들은 우리가 제대로 미쳤거나, 그게 아니면 돈을 버릴 창의적인 방법을 찾고 있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그들의 뇌리엔 화투섞기로 쇼생크 탈출을 선보인 내 솜씨가 남아있을 테니까.
“허허, 아가씨 농담하는 거야?”
“왜요, 쫄려요?”
“쫄리긴···. 사람 걱정하는 마음도 모르고. 그렇게까지 말함 알았어. 난 괜찮은데. 성님들은 어떠쇼?”
삼촌이 버럭했다.
“아니 너희들은 왜!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잘 것이지!”
“왜요. 삼촌은 해도 되고, 나는 안 돼요?”
“내 말은 그것이 아니라···! 이게 막 초짜들이 끼어들 판이 아니야!”
“아 됐어요. 삼촌도 제 말 안 들으시는데, 저도 삼촌 말 들을 생각 없어요.”
“···끄응···.”
결과적으로 난 화투판에 앉았다.
그렇게나 돈을 갖다 바치고 싶으면 말리지는 않겠다는 투였다. 자금은 네 명에게 조금씩 빌리고, 지급보증을 선생님이 하는 식으로 넘어갔다.
“그거 못 내면 선생님 몸이라도 거시게?”
“그래야 한다면요.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좋아. 그럼 시작해 보자고.”
패가 돌아간다.
< 5. 카르마Karma - 4 > 끝
ⓒ 달의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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