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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 자꾸 늘어-21화 (21/164)

< 6. 연옥과 지옥 -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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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 순경이 형사수첩에 뭔가를 가지런히 적어 내려갔다. 글자가 또박또박한 것이 그의 성격과도 비슷했다.

“그거 피해자들 연락처 정리한 거예요?”

“응. 이제 다 됐···. 어엇?! 아, 안 돼. 이건 진짜 안 돼.”

권 순경이 수첩을 다급히 숨겼다. 난 떨떠름하게 말했다.

“달라고 안 해요.”

“진짜지?”

“진짜.”

“그 진짜 진짜 진짜지?”

“아유 왜 하루 만에 인간불신이 되셨을까?”

“학생 때문에 그렇잖아···. 시키지도 않은 짓 한다고 강형사님한테 엄청 깨졌다고···.”

“아. 아까 같이 흡연실 가시더니 그런 일이.”

“난 담배도 안 피는데···. 고문이었다고 아주.”

“죄송해요.”

“괜찮아. 그래도 오늘은 뭔가 일다운 일 한 거 같았어. 여자친구한테 자랑할 수 있겠다.”

“그래서 여자친구가 있으시겠다···?”

우린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풋 웃었다.

“잘 가, 한열아. 오늘 고생 많았어. 너도 인생이 참 스펙타클하구나.”

“제 업보죠 뭐. 권 순경님이야말로 오늘 수고하셨어요.”

우리는 그렇게 훈훈하게 헤어졌다.

그러나 이 훈훈함 이면에는 반전이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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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동사무소 소장의 암기력](Rank D)

- 이 탤런트는 암기력에 관여합니다.

- 동조율 :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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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

옆에서 빤히 지켜보는 것만으로 다 외워졌기 때문에.

죄송해요, 권 순경님.

마무리를 제대로 하려면 저도 어쩔 수 없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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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원으로 돌아가는 길.

원장 선생님은 차를 운전하셨고, 나는 조수석에 앉아 밤풍경을 구경했다.

세상이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뛰어오다가 휙 스쳐지나가 어둠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별도 달도 보이지 않는 밤이었다.

오래된 디젤엔진이 그르렁거렸다.

늙으면 다소 시끄러워지는 건 사람이든 차든 똑같다. 젊을 때와 달리, 그저 살아감에도 기합을 줘야할 시기가 우리에겐 온다. 끙끙. 아이고야. 으으. 그런 소리들. 지겹기도 하련만 난 그것들이 싫게 되지는 않았다. 가끔은 반갑기도 했다.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으면, 그건 이제 정말 골동품이 되었다는 거니까.

그렇다면 우리 원장선생님은 무엇일까.

앓는 소리, 한숨, 어딘가 삐걱대는 그런 소리는 이 사람과는 연관이 없게 느껴졌다.

멀쩡하게 움직이고는 있는데, 언젠가는 아무 징조도 없이 갑자기 관절 한 부분이 뚝 떨어질 것만 같은 위태로움이 그에겐 있었다.

정말 골동품 같은 사람.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삶을 거쳐 늙어왔던 것일까.

그가 말했다.

“어디 다친 데는 없어?”

“네, 아까 병원 가서 진찰까지 받았는데 이상 없대요.”

“그래.”

또 한참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 침묵이 익숙해질 때쯤 그가 또 말했다.

“학교에서 따돌림 당한다는 건 무슨 말이냐?”

“네? 아···. 아무 것도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신경이 쓰인다만.”

“···김송헌이요. 아까 그 뺀질뺀질하게 생긴 놈. 걔가 절 찍었거든요.”

“아, 그 중2병.”

“유치한 놈이 어설프게 힘이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죠.”

“난 전혀 몰랐네. 음, 힘들진 않으냐? 뭐라도···.”

“네. 아무 것도 아니라니까요. 제가 알아서 할 수 있어요.”

“···그러냐.”

너무 매몰차게 말했나 싶어 마음이 걸렸다.

뭔가 말을 하는 게 좋을까. 아랫입술을 깨물고 말을 고르고 있는데, 반 박자 먼저 그가 말했다.

“뭔가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라.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도와주마.”

“···예. 필요하면 말씀드릴게요.”

필요할 일이 있을까 싶다.

전생에서도 난 끝내 원장선생님께 왕따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상대는 3선 의원이었고, 선생님은 상대가 누구든 도와달라면 도와줄 사람이었다.

나 때문에 그가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다, 그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필요하지 않았다.

보육원에 도착하고, 숙소 앞에서 헤어지면서 그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한열아, 난 네가 자랑스럽다.”

“···예? 뭐가요?”

“그냥. 경찰서에서 있던 일들 다. 이젠 다 컸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리고 미안하다. 난 해준 게 없는데, 넌 혼자서 커버렸구나.”

“······.”

“들어가라. 공기가 차다.”

그가 등을 보이며 교사 숙소로 향했다.

난 그 등을 한참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 파묻히다 결국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등.

경찰서에서도 내 앞을 벽처럼 지키고 선 그 등이었다.

난 그가 좋았다.

무뚝뚝하다가도 가끔 보여주는 관심이 좋았다. 서투르지만 곡진한 태도가 좋았다. 그의 등은 작지만 유난히 단단해보였다. 세상을 다 품을 수는 없어도, 품 안에 들어온 것들은 든든히 지켜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의 등이 좋았다. 그의 등을 나는 닮고 싶었다.

다 착각이었지만.

숙소로 돌아가며 나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씹었다.

그러지 않으면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왜.

왜 또 그렇게 자상한 얘기를 해주시는 겁니까. 결국에는 다 버릴 거면서. 우리를 사실은 그다지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이제 곧, 주현보육원 횡령사건이 터진다.

범인은 보육원장 마기철.

사실 그 자체로 큰 충격은 아니었다. 횡령이 무슨 죄인지도 잘 모를 나이였으니까. 중요한 건 그 뒤부터 드러난 진실들이었다.

횡령사건을 조사하면서, 사실 주현보육원 전체가 돈세탁에 유용됐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막대한 검은돈이 후원금 조로 유입되고, 복지비라는 명목으로 다시 어딘가에 흘러들어갔다. 여긴 돈세탁의 중간 기착지 같은 역할이었던 것이다. 보육원이라면 의심의 눈이 적을 테니까. 일종의 위장이다.

마기철 보육원장은 조직의 중간관리자로서 돈세탁을 관리 운영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경찰은 더 파고들어가지 못했고, 조직은 정확히 마기철만을 넘겨주고 꼬리를 잘라버렸다.

주현보육원은 공중 분해되고,

우리는 조직이 위장 목적으로 세운 다른 보육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그곳의 위장은 주현보육원보다 어설펐다. 사실, 비교도 되지 않았다. 우린 거기서 조폭 똘마니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내 지옥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회귀한 직후에는 덮어놓고 도망갈까도 생각했다.

그 괴물 같던 조직도 몇 년 뒤에는 와해된다. 어딘가에 처박혀서 시간을 죽이다보면 자유는 찾아온다.

그러나 이건 고심 끝에 기각.

무저갱 같은 깊이를 자랑하는 거대 조직. 거미줄처럼 전국에 뻗어있는 조직망을 피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난 놈들의 방식을 안다.

내가 이 주현보육원에 입원한 순간부터 난 그놈들 목구멍에 반쯤 걸쳐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내 신상명세 따윈 이미 주머니 속 쌈짓돈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멀쩡하게 생활하는 건, 그들이 자비로워서가 아니라 그런 ‘겉모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내가 도망가면?

멀쩡한 쌈짓돈이 주머니를 탈출한 것이므로 찾아 나설 것이다.

운이 나쁘다면 조직의 정보가 유출된 걸로 의심받을 수도 있다. 그 경우엔 사냥개를 풀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빨간마스크가 직접 올지도. 그런 리스크를 감수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아직은 괜찮다.

나는 아직 연옥에 있었고, 연옥에선 천사의 손만 잘 잡으면 천국으로 갈 티켓을 얻는다.

그렇다, 결국 방법은 천사의 손을 잡는 것.

달리 말하면,

조직조차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뒷배를 두어야 한다.

그것만이 그 지옥에서 탈출할 길이었다.

교내 따돌림?

이 일에 비하면 애들 장난에 불과하다. 왕따를 벗어던지려는 건 그 자체로 중요한 게 아니라 더 큰 목적을 위한 포석일 뿐이다.

“···후.”

답답한 공기를 한숨에 뱉어냈다.

미세먼지가 내 구강만 따라다니는 것 같다.

이래서 원장선생님하고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평생 쌓아온 의문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으니까.

우릴 무슨 생각으로 키웠느냐고.

단순히 돈세탁을 위한 수단일 뿐이었냐고.

그래서 그렇게 손쉽게도 버릴 수 있던 거냐고.

결국 눈가의 물기가 방울을 맺었다. 멍울이 터지기 전에 나는 거칠게 눈을 비볐다. 따갑고 쓰라렸다.

“후우후우.”

두 번의 심호흡과 함께, 내 안의 불순한 심기를 다 갈아치웠다.

나도 수양이 부족하군.

겨우 이런 일에 흐트러지다니.

내 우상이자 아버지였던 사람은 그날 내 안에서 죽었다. 그러니까 방금 전의 그자는, 말하자면 살아 움직이는 시체일 뿐이다.

좀비에게서 받을 감상은 혐오뿐이었다.

그 외의 것은 필요 없다.

애당초 돈세탁이나 하고 그걸 또 횡령하는 범죄자에게···.

“···잠깐.”

문고리를 잡는 내 손이 멈칫했다.

생각해보면 [암기력]이란 입력만이 아니라 출력에도 관여하는 재능이다. 꺼내 쓸 수 없다면 그건 제대로 기억한 게 아니다.

뭔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인가 하면,

지난 삼십 년 간 완전히 처박혀있던 변두리 기억들이 새로운 재능에 힘입어 마구 튀어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돈세탁.

그 한 마디가 내 머릿속 기억을 촉발시켰다.

마기철 원장은 주현보육원만 관리한 게 아니다.

자기 이름 올려 직접 운영한 건 보육원 하나뿐이지만, 그 외에도 보고 받으며 관여했던 돈세탁 사업이 여럿 있었다.

그중 하나가 문화재 및 미술품 유통 사업.

그리고 내 기억에 따르면 그 물품들을 보관하는 창고가 이 근처에 있었다. 조직에 있을 때 보고문건을 직접 봤기 때문에 정확하다.

난 문고리를 놓고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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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 뒤.

“···헉헉. 미친. 생각보다 더 깊은 곳에 있잖아···.”

창고는 보육원 뒷산에 위치해 있었다.

나무와 수풀에 반쯤 파묻혀있는 창고는 거의 자연의 일부처럼 보였다.

벽에 낀 이끼와 먼지, 얼룩진 듯 벗겨진 페인트조차 거기 태곳적부터 있었다는 듯 뻔뻔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그중 문짝과 쇠사슬은 유독 위화감이 있었다.

사람의 손길을 탄 흔적이 있는 것이다.

더욱이 그 가운데의 자물쇠에 이르면 아예 온기마저 남아 있었다.

명찰을 고정하는 클립을 빼내, 뾰족한 끝부분을 살짝 구부렸다.

이건 조직 사람들이 ‘짧은 손’이라 부르던 전설적인 대도(자칭)에게 직접 배운 기술.

필살 자물쇠 따기.

즉석 제조한 간이 열쇠를 자물쇠 구멍에 쓱 밀어 넣고, 걸리는 감각에 맞춰 탁 튕기면-

철컥.

···이게 이렇게 쉽네.

전생에는 그렇게 해도 안 되더니만.

귀수의 손재주를 새삼 찬양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벽에 손을 더듬어 스위치를 올리자 낡은 백열전구가 깜빡이며 켜진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실내.

“···제대로 왔네.”

미술작품들이 창고 안에 한 가득이었다.

아방가르드한 조형물. 뭔가 엄청난데 뭐가 엄청난지는 잘 모르겠는 그림들.

이것들은 심미안이 있는 자에겐 예술품이요, 나 같은 사람에겐 그냥 종이와 물감, 그리고 범죄자들에겐 가격표가 비어있는 돈세탁 도구로 보일 것이었다.

뭐.

어쨌든 별 감흥은 없었다.

내 하찮은 안목과는 별개로 탤런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음.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기야 했지만.’

심혈을 기울여 만든다, 그런 표현이야 흔했지만.

사실 그림에 창작자의 업이 깃들 정도로, 일생을 들여가며 한 작품을 완성시키는 사례는 극히 드물 것이다.

카르마의 유무는 예술의 성취와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됐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으므로 돌아다니며 꼼꼼히 살펴봤다.

보다보니 생긴 의문.

미술작품은 이렇게 많은데, 문화재는 다 어디에 있지?

그때부터 난 벽을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RPG 게임에서 숨겨진 벽을 찾던 내공을 발휘했다.

···예스, 찾았다.

통통 두들겨보니 소리도 비어 있고, 전해져오는 감각도 특이한 벽이 있었다. 손으로 밀어보니 찰칵 하면서 키패드와 오목한 센서가 등장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홍체인식 센서다.

갑자기 첨단기술이 나오니 좀 당황스러웠다.

‘···문화재는 더 중요하니까 보안을 강화했다 이건가.’

어쨌든 이 벽 저편에 뭔가 있긴 있다는 거군.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돌파할 수 없겠지?

아, 여기까지 와서 허탕이라니.

아쉬운 마음에 벽을 자세히 탐색했다. 힘으로 밀어도 봤지만 어림도 없고. 음···. 작은 구멍이라도 있길 바라는 건 염치없겠지?

있다.

뭐야 이거, 허술한 거야 치밀한 거야?

구석에서 발견된 틈새는 쥐구멍처럼 작았다. 팔 한 짝 겨우 들어갈 정도. 하지만 충분한 시간과 장비만 있다면 넓혀볼 만하지 않을까 싶었다.

어쨌든.

노동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바닥에 빈대떡처럼 붙어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구멍도 작고 컴컴하기도 하여 어떤 윤곽도 눈에 잡히지 않았지만,

찾던 것은 있었다.

붉은빛 카르마다.

생각할 것도 없이 팔을 구멍 안으로 쑥 밀어 넣었다.

물론 팔을 넣으면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괜찮다.

이 기묘한 감각은 척수에 꽂히는 듯 직감적이었고, 나는 느낌이 가는 대로 팔을 뻗으면 그만이었다.

손끝에,

뭔가 거칠고 둥그스름한 것이 닿았다.

그 순간 환영이 눈앞을 파노라마처럼 지나쳤다.

환호하며 소리 지르는 군중.

둥근 트랙 위, 각색의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질주하고 있었다. 사이클링, 그 중에도 스프린터 대회다.

모두가 비등한 승부를 하는 가운데,

단 한 명의 선수가 압도적으로 치고나와 선두를 내달린다.

성난 황소처럼 격동하는 근육. 땀. 안구를 때리는 먼지.

환호. 고함. 호각소리.

그 모든 소음을 제치고 고막에 꽂히는, 누군가의 외침-.

-복동아 지금이야!

···

···음.

···으으으음?

멍 때리는 와중에 환영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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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자전차왕 엄복동의 대퇴부](Rank D)를 습득했습니다.

- 이 탤런트는 대퇴부의 근지구력, 순발력 등의 육체능력에 관여합니다.

- 동조율 :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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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

UBD가 여기에···!!

< 6. 연옥과 지옥 - 6 > 끝

ⓒ 달의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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