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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 자꾸 늘어-25화 (25/164)

< 7. 완용의 법 - 4 >

전교 1등 할 수 있겠는데.

그런 이유로 그나마 있던 긴장감도 성대히 증발.

시험공부는 하루 한 시간으로 줄이고, 대신 남는 시간엔 체육관을 돌거나, 체력단련과 요대술 단련에 힘썼다.

이윽고 중간고사 마지막 날.

“우와악!! 끝나뜨아아아!!”

“야야. 노래방 가자 노래방.”

“난 그냥 잘 거야. 방바닥하고 합체할거야.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기절할 거라고···.”

모두가 해방감에 젖어 긴장을 팽개치고 있을 때, 난 그들이 두고 간 긴장감을 주섬주섬 주워들어 팔다리에 장착했다.

교복을 벗고 간편한 운동복을 갖춰 입었다.

두 개의 허리띠와 함께.

전생에서의 일이다.

대원고교의 아이돌 전상진이 외딴 굴다리 밑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일로 전상진은 복부와 흉부에 걸쳐 5회의 자상을 입고 중태에 빠진다.

그리고 그대로 리타이어.

사망했단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어쨌든 내가 전학을 갈 때까지는 학교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오늘 일어날 일이었다.

“······.”

난 미리 위치를 봐둔 건물 2층에 자리 잡고, 전상진이 습격당했으리라 짐작되는 굴다리를 망원경을 통해 관찰했다.

저녁 먹고부터 계속 있었으니 벌써 3시간째 잠복 중.

예상하기로 사건 발생 시각은 대략 11시에서 11시 30분 사이였다.

그때가 올 때까지 차분히 기다릴 참이었다.

‘···근데 저놈 뭐지. 수상한데.’

아까부터 굴다리 주변을 맴도는 놈이 눈에 띄었다.

허름한 후드 밑으로 관리가 안 된 턱수염이 불규칙적으로 돋아있고, 걸음걸이도 심하게 절뚝이는 남자였다.

외견이 수상하다는 게 아니다.

그의 행동.

고개를 숙인 상태로 사방을 살피는 시선. 행인임을 가장하듯 굴다리 안팎을 쉼 없이 걷는 행위. 내 [눈치]는 이 멀리서도 작동했다. 저놈, 뭔가 수상하다.

마침내 전상진이 가로등 밑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내 의혹은 정점을 찍었다.

놈이 걸음을 멈추더니, 몸을 좌우로 흔들, 흔들, 기울인다. 오른손을 쑤셔 넣은 품 안에서 날붙이의 빛이 언뜻 비쳤다.

난 잽싸게 행동에 돌입했다.

열 개나 되는 계단을 한 번에 뛰어넘는다.

관절을 박살내기 딱 좋은 짓이었고 중력은 내 무모함을 말릴 생각이 없었다. 잠깐의 활공을 거친 내 몸이 빨려 들어가듯 땅에 쇄도한다.

그러나 나는 기꺼이 충돌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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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파쿠르 달인의 유연성](Rank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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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명 발레리나의 발목](Rank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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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간 동네 체육관과 교습실을 이 잡듯 돌아다니며 얻은 성과들을 믿었다.

몸이 절로 반응했다. 다리 관절, 골반, 허리와 등뼈가 스프링처럼 휘며 힘을 상쇄하고, 남은 충격은 질긴 아킬레스건이 버텨냈다.

착지와 동시에 도약.

초기동조율 50%에 육박하던 파쿠르 달인의 경험에 몸을 맡겼다.

뛰어오른 발이 벽을 차고, 난간을 딛고, 마지막으로 사뿐하게 땅을 밟는다. 가볍게 앞구르기를 하며 관성을 무마. 발이 지면에 닿자마자 다시 전력으로 뛴다.

꾸준히 단련시켜둔 [엄복동의 대퇴부]를 쥐어짜냈다. 발바닥으로 땅을 움켜쥐고 저 뒤편으로 던져버리듯이 나는 달렸다.

“으아악!! 다, 당신 뭐야?!”

경악성을 들은 순간, 버클을 깊게 쥐고 오른팔을 털었다. 허리띠가 낭창낭창 늘어진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전상진은 겁에 질려 주저앉아 있었고, 괴인은 그런 전상진을 위에서 찍어 누르며, 칼을 든 손을 뒤로 쭉 당기고 있었다. 나는 지체 없이 손을 뿌렸다. 허리띠가 채찍처럼 괴인의 손목을 가격했다. 팡-!!

손맛이 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반발을 통해 제대로 맞았음을 직감했다.

달인이 제대로 펼치는 요대술은 쇠파이프로 후려치는 수준의 충격을 가한다. 나이프를 놓치지 않고는 배길 수 없···.

···아니네?

“···이런!”

괴한은 충격에 크게 휘청거리며 팔도 덜덜 떨었지만, 그럼에도 날붙이를 끈덕지게 감아쥐고 있었다.

내 쪽은 쳐다볼 생각조차 않는다.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었지만, 더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괴한은 이젠 양손을 겹쳐 나이프를 쥐고, 위에서 깔아뭉개듯이 제 몸을 쓰러뜨린다. 팔뚝 상황이 열악하니 체중을 실어 찌를 생각인 거다.

난 달리던 관성을 한껏 이용해 발을 박찼다. 거의 몸을 던지는 수준. 그러나 그 순간의 판단이 옳았다.

내 몸통박치기가 괴한의 어깨를 밀쳤고, 가슴을 노리고 쇄도하던 칼날은 정상진의 팔뚝을 스치고 콘크리트 바닥에 박혔다.

피가 확 튀었다.

“···윽···!”

칼날은 콘크리트에게 격렬히 구애했다가 거절당한 충격으로 튕겨나갔다.

나는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도망가!”

잠시 멍해있던 전상진은 내 외침에 후다닥 정신을 차리고 움직였다.

그다지 성공적이진 않았다. 다리가 풀렸는지, 그는 달리는 건지 기어가는 건지 모를 자세로 휘청휘청 도망쳤다.

난 상진과 괴한 사이에 버텨 섰다.

괴한은 비틀비틀 일어섰다. 칼이 튕기면서 베였는지 손에 핏물이 뚝뚝 흘렀다.

“그쯤 하시지. 안 잡을 테니까 그냥 가쇼.”

“···넌 뭐야.”

“지나가던 행인.”

“뭐야, 뭐야, 뭐야, 뭔데 막아. 뭔데, 뭔데. 뭔데···. 왜왜왜왜···!!”

“······.”

괴한이 온몸을 부들부들 떤다. 공포나 추위 때문이 아니다. 제 격정에 못 이긴 경련이었다.

언뜻 비친 눈에서 귀기가 흐르고 거품 섞인 침이 입가를 더럽혔다. 흙투성이에 비쩍 마른 몰골까지 더해지니 지옥에서 막 올라온 망자나 다름없다.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닌데,

그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도 품에서 주머니칼을 빼드는 손은 묘할 만큼 침착해보였다.

광기를 제어하는 굳은 의지.

내 [눈치]는 그의 몸짓에서 그런 낌새를 읽어냈다.

‘···뭐지. 묻지마 범죄가 아니었던 건가?’

지금도 바로 눈앞에 있는 나에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관심이 있다면 내 뒤의 전상진.

상대를 가리는 묻지마 범죄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낙관적으로 본다면 단순한 우발 범죄(꽃미남 혐오증이었던 걸까?)일 테지만, 가장 최악을 상정한다면···

‘계획범죄?’

세상일이란 게 최악만 골라 일어난다던가.

아니나 다를까.

“어어! 어어억!!”

내 뒤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전상진의 목소리다.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돌리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그 결과 전상진의 진로를 막아선 제2의 인물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 대가로 날 향해 뛰어드는 괴한의 움직임은 잠시 놓치고야 말았다.

“거기서 비켜어어어···!!”

“이런 씨···!”

주머니칼이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난 허리띠를 감아둔 왼팔을 들어 목덜미를 방해했다. 작은 칼이므로 급소만 방어하면 치명적일 일은 없다. 예상대로 칼날이 가죽에 미끄러졌고, 난 그 틈을 타 어깨로 놈을 밀쳤다.

한 걸음 정도의 거리를 확보.

그럼에도 지근거리라 공격까진 힘들지만, 그 대신 이런 건 되지.

괴한의 발목을 노려 손을 뿌리자, 허리띠가 놈의 오른 허벅지에 착 감긴다.

그대로 뒷걸음을 치며 허리띠를 쭉 당기자, 괴한의 몸뚱이가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갔다. 됐다···!

그러나 바로 그때, 내 등 뒤로 떠미는 듯한 충격이 가해졌다.

“으아, 으아아!”

운 없게도, 거꾸로 도망쳐오던 전상진과 부딪힌 것이었다.

아놔.

이 트롤새기···.

욕을 다 마치기도 전에 턱에 가해진 강렬한 충격. 넘어져있던 괴한의 발버둥에 공교로운 일격을 당한 것이었다.

그 순간 이를 악물지 않았다면 그대로 정신을 놓을 뻔했다.

난 혼몽한 와중에도 심상찮은 낌새를 읽고 정상진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그리고 옆으로 밀듯이 던져버렸다.

“으아아앗!!”

정상진이 널브러지고,

방금까지 그가 있던 허공을 사시미 칼이 길게 찔렀다. 제2의 괴한이다!

숱한 반복훈련에 힘입은 손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내 스냅을 받은 허리띠가 놈의 손목을 후려친다. 짝-!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맞았다!

놈이 사시미를 놓쳤다. 날붙이가 빛을 뿌리며 굴다리 어딘가로 활공했다..

지옥훈련을 한 보람이 있구만···!

라고 쾌재를 치기 무섭게 눈앞이 번쩍했다.

“크윽···.”

괴한이 솥뚜껑 같은 손을 휘둘려 내 안면을 후려친 것이었다.

난 휘청거리며 뒷걸음을 쳤다. 이런 씨···. 잠깐 정신이 날아간 거 같은데.

그건 그렇고.

저놈.

잠깐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무기를 놓쳤는데도 당황 한 번 안 하고 바로 반응했다. 먼젓번 놈처럼 약 빤 낌새가 아닌, 얼음처럼 침착한 태도로.

전문가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런 일에 능숙한 놈이었다.

“으으··· 으으으···.”

반쯤 저능아가 된 전상진을 뒤로 두고,

난 숨을 고르며 상황을 살폈다.

광전사 모드의 괴한1은 왼쪽. 그리고 침착 모드의 괴한2는 오른쪽.

둘 모두 놓쳤던 무기를 어느 새인가 찾아서 손에 쥐었다.

더하여 칼날 못지않게 예리한 살기까지 장착하고, 우리 둘을 포위하듯 간격을 좁혀오고 있었다.

전황은 절망적.

심장이 우두망찰 뛰며 이미 바닥인 체력을 갉아먹고 있다. 어딜 잘못 맞았는지 왼쪽 시야는 아예 시뻘겋다. 뇌가 떨리는 것마냥 초점도 엉망진창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허리띠로 바닥을 치며 위협을 가하는 일뿐이었다.

그러나 괜찮다.

내가 멋지게 다 처리했으면 가장 좋았겠지만,

최악의 경우라도 잠깐만 버티면 되는 거였거든.

“이 무으으으슨 삿된 짓거리들인가아아아···!! 그런 흉측한 것으로 아이들을 겁박하다니이이이-!!”

굴다리 저편.

개량한복을 입은 노인이 흰머리를 길게 흩날리며 척척 다가오고 있었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이 도포자락을 휘날리고, 달빛을 가리던 구름이 걷히며 월광이 비처럼 노인의 등에 쏟아졌다.

우와.

등장씬 쓸데없이 근사해.

“···넌, 너넌, 너넌 뭐야아···. 너도, 너도, 방해, 방해?! 용서 못···.”

“나?! 나에 대해 물었는가? 이 몸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고려시대 여진족의 침입에 맞서···”

노인의 수다가 광인의 광기를 집어삼켰다.

굴다리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퍼지는 TMI.

나는 본능적으로 흘려들었다.

“···했던 천무도 31대 전승자, 이름하야 송학 진철진이로다! 여기서 수박이란···.”

“으아아아!!”

“요새 젊은이들은 참을성이 없어 문제로다!!”

괴한1이 칼을 앞세운 채 송학선생에게 달려들었다.

설마 듣기 싫어서 저러는 건 아니겠지.

흠.

확신할 수가 없다···.

어쨌든.

달려오는 괴인을 마주하여,

송학선생이 마보자세에서 발바닥을 땅에 딱 붙이고 끄는 듯이 걸었다. 일자로 수평을 이루는 두 팔은 칼처럼 곧다.

이윽고

충돌.

“흐이어읏차흐아!!”

예의 아스트랄한 기합소리와 함께, 송학선생이 수도를 도끼처럼 내려찍었다.

그리고

쩌엉-!

사람과 사람이 맞붙어서 나서는 안 될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략 1초간의 정적과 정지.

그러나 괴한 쪽이 먼저 스르륵 쓰러지며 승자가 밝혀졌다. 송학선생은 상처 하나 없이 달빛 아래 고고히 서서 패자를 오시했다.

그러다 그가 마보자세 그대로 뒷걸음을 밟더니, 두 팔을 풍차처럼 휘돌리다 수평상태로 복귀시키며 기수식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마지막 방점.

“이것이 고려의 무예!!”

뭐야 이거.

병신 같은데 멋있어.

그렇게 원펀치 한 방으로 상황은 완전히 종료됐다.

남아있던 괴한2는 상황이 불리하다 판단했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물론 난 쫓아갈 엄두도 내지 못했고. 긴장이 가라앉자 몸에 힘이 탁 풀렸다. 주저앉지 않은 건 백프로 [대퇴부] 덕분이겠지.

나는 한숨을 쉬며 전상진을 돌아보았다.

완전 얼이 빠져 있다.

“전상진, 무사하냐?”

“어? 어어어어? 어?”

“오늘 모든 대사를 이응으로 점철하기로 했냐. 정신 차려 인마.”

“어어. 미안. 근데 내 이름을 알아?”

“알지. 같은 학교니까. 너 유명하잖아.”

“아···. 너도?”

“이한열이다. 자.”

내가 손을 내밀었지만, 그는 고개만 휘휘 저었다.

“···아니. 지금 못 일어날 거 같아. 다리 풀렸어. 방광은 안 풀렸나 모르겠네.”

“그래. 그럼 잠깐 앉아 있어라. 경찰에도 전화하고.”

“어? 어어. 알았어.”

난 감사도 표할 겸 송학선생에게 다가갔다.

사실, 전생에서 전상진을 구한 건 그였다. 송학선생의 귀갓길이 이 굴다리와 겹치지 않았다면 전상진은 그 자리에서 확실히 사망했을 것이다.

신문에선 ‘굴다리’라고만 나온 이 장소를 내가 찾을 수도 없었을 것이고.

말하자면 나는 그의 공을 가로챈 셈이었다.

전생에는 이걸로 나름 언론 타서 도장도 세웠다는데,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르신, 구해주셔서 감사···.”

“소년, 거기 서보게.”

“···네?”

“이 노구는 지금 실망감을 금치 못하고 있네.”

갑자기 뭐라는 거야.

“그때 나는! 소년이야말로 나의 전인이라 생각했네! 어떤 교감이 있었단 말이야! 눈이 먼 무지렁이들 속에서 천무도의 가치를 똑바로 발견해주었기 때문이지!”

아뇨. 그냥 신문에서 본 건데요.

“그런데 무언가!”

“······?”

“그 말총 찌꺼기 같은 무기는 뭐냔 말일세!!”

“······!!”

“천무도란 하늘과 땅을 잇는 무예! 하늘을 짊어지고 땅을 받쳐야 하므로 그 몸은 극한! 극기! 극강! 칼처럼 담금질된 팔은 장난감 따위에 의존하지 않네! 그런데 어찌 그딴 잡술을 휘두르며 무를 논한단 말이야···!!”

대체 어떤 포인트로 화를 내는지 당최 알 수 없다.

그럼 맨손으로 싸우다 찔려 죽었어야 된다는 건가.

나는 욱했다.

헛소리라고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었겠지만···.

요대술은 전현생을 통틀어 수년 이상 연마했던 기술이었다.

[손재주]를 얻고 금세 통달하긴 했지만, 그것은 그 기예의 수준이 하찮아서가 아니라 전생에 쌓은 노력과 경험들이 소급되어 반영된 거라 생각한다. 나로선 나름의 자부가 있는 것이다.

근데 잡술?

그럼 전생의 난 그 잡술조차 익히지 못해 그 지랄을 떤 건가?

“···그 말은 넘겨들을 수 없겠네요.”

“호오. 눈빛이 변했군. 소년. 어디 반론해 보실 텐가?”

“반론? 치고박고 싸우는데 말로 주절거릴 거 있습니까?”

“무어라? 크하. 크하하핫! 그래, 그렇지. 무론은 언제나 실투에 못 미치는 법! 그럼 몸으로 증명해 보시겠다?”

“못 할 것도 없지요.”

달인이 사용하는 요대술은 일대다에도 능하지만, 일대일일 때는 거의 무적에 가까운 승률을 자랑했다.

오늘 내가 고전한 건 내 운동신경이 빻아서 그런 것뿐. 그러나 그조차도 한 명이었다면 절대 밀리지 않았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애초에 인간의 동체시력으론 따라갈 수 없으니까.

유연하게 출렁이는 허리띠는 어디로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불가능하다. 버클을 쥔 주인 외에는 말이다.

난 허리띠를 땅에 질질 끌며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어디 좋을 대로 해보게. 그 장난감으로 펼쳐낸 잡술이 내 몸에 실밥만한 상처라도 남긴다면, 내 패배를 기꺼이 인정하지. 그리고 승자에게는··· 음, 이렇게 하는 건 어떤가.”

“뭘 말입니까.”

“패자가 승자의 바람을 하나 들어주는 것일세. 나는 천무도 다음 전승자로서 자네를 제자로 받겠네. 그게 내 바람.”

“난 딱히 선생님한테 바라는 게 없습니다만. 뭐, 좋습니다.”

난 왼손 허리띠까지 풀어, 양 손에 각각 버클을 쥔 채로 섰다.

“그런 건 이긴 다음 생각하도록 하죠.”

“패기는 좋구만. 그럼 시작하도록 하지.”

그리고 적막이 흘렀다.

우리 사이로는 바람도 을씨년스럽게 불어댔다.

보기 지루하다면 지금쯤 황야의 무법자 OST를 깔아두기를 추천한다.

그렇게 일분여의 시간이 지나고

부지불식간에 왼팔을 휘두른다. 근섬유를 짜낸 탄력이 손목을 거쳐 허리띠로 옮아간다. 속도에 집중한 스트레이트한 일격.

팡-! 요대 끝이 사선으로 휘며 선생의 쇄골을 노렸다.

그러나,

텅-!

“···엇!”

송학선생이 가볍게 휘두른 손에 아무렇지도 않게 튕겨나가는 게 아닌가.

그게 보였다고?

이를 악물고, 이번엔 오른팔을 휘두른다.

속도는 좀 느리지만, 손목을 절묘하게 털어 끄트머리에 복잡한 변용을 주는 기술이다. 뱀이 머리를 흔드는 것 같은 움직임.

그러나

텅-!

그조차 쉽사리 튕겨져 나간다.

그 뒤로 나는 무아지경으로 기술을 난사했다. 눈속임에 흙뿌리기에, 치사하다는 말을 들을 각오까지 하며 양손을 놀렸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한 쌍의 요대가 허공을 난자하고,

송학선생은 머리카락 하나 흩날리지 않으며 여유롭게 그 모든 것을 파훼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허억. 허억···.”

나는 숨을 가쁘게 쉬며 뒤로 물러섰다.

내 허리띠는, 단 한 번도 목표를 타격하지 못하였다.

선생은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 알겠는가? 공권이야말로 무의 본질에 닿아 있음을. 자 보게. 그 장난감과 맨손이 공박한 결과를 보란 말일세.”

“손에···.”

“손에!”

“피가 나고 있네요···.”

“그래! 피가 나고 있구나!”

거의 날붙이에 가까운 걸 계속 쳐냈으니 손이 너덜너덜해질 수밖에···.

송학선생은 피가 철철 흐르는 두 손을 내려다보며, 어딘가 많은 것을 잃어버린 듯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그리고 매우 아파!!”

잠시 후 경찰과 앰뷸런스가 도착했고, 송학선생은 가장 먼저 응급요원에게 처치를 받았다.

며칠 후 뉴스에 ‘학생들을 구한 천무도의 달인, 범인과의 혈투로 손에 치명적인 부상’ 같은 기사가 실렸지만, 우리는 서로를 위해 침묵하기로 했다.

내기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뭐랄까, 손도 몸의 일부니까 그냥 내가 이긴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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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완용의 법 - 4 > 끝

ⓒ 달의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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