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완용의 법 - 7 >
---
난 이틀 정도 뜸을 들이다가, 큰 고심 끝에 결정했다는 뉘앙스를 풀풀 풍겨가며 세미나 참가를 상진이에게 알렸다.
그는 크게 기뻐하며 오늘부터 바로 참가할 것을 권했다.
“···난 우리 학교에 이런 게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외진 데 있긴 하지? 그래도 0반 애들은 자주 사용해.”
세미나 장소인 ‘공용학습실’은 제3별관에 있었는데, 0반이 위치한 바로 그 건물이었다.
그러니까 애초에 0반 애들 쓰라고 만든 곳이다.
시설은 필요 이상으로 훌륭했다. 모든 장비가 최신식인데다, 가죽에 원목에 고급감이 아주 좌르르 흘렀다. 그냥 앉아있는 것만으로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수준이다.
그리고 저건 뭐냐.
“···저거 먹어도 되는 거야?”
“어? 응. 당연히 먹으라고 갖다 놓는 거지.”
쿠키와 조각 케이크 따위가 고오오급 식기에 담겨 있었다. 그 옆에는 다기와 여러 종류의 차茶세트까지 구비되어 있다.
“저런 건 누가 갖다 놓는 거야 대체.”
“모르겠네. 학습실 신청하면 기본 세팅되는 거라···. 일하시는 분이 있지 않을까?”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거겠냐. 하도 어이없어서 말한 거지.
기분이 뭔가 에스프레소 콘파냐 같았다. 엄청 쓰고 무진장 달다. 속으로 망할 빈부격차를 성토하는 와중에도 몸은 솔직하게도 케이크를 흡입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겁나 맛있음.
그러고 있으니 세미나 구성원이 한 명씩 학습실에 들어왔다.
“민영아. 어서 와.”
“하이 상진. 롱 타임 노 씨!”
“우리 요새 맨날 보는데.”
“핸드폰도 하루에 한 번씩 충전해야 되는 법이잖니. 비슷한 거지.”
“뭔 소리래. 이쪽은 새로 온 구성원. 한열이라고 해. 서로 인사 해.”
내가 “안녕.”하고 인사를 건네자, 커다란 안경을 쓴 여자애가 날 빠르게 스캔하더니
“어.”
하고 짧게 답했다.
그리고는 다시 상진이에게 달라붙어 재잘재잘 떠드는 것이었다.
과연.
한 음절, 발음에 1초도 걸리지 짧은 말이었지만, 심리를 파악하기엔 충분히 길고 깊었다.
그 뒤로 몇 명이 더 들어왔지만 반응들은 엇비슷했다. 거의 유령 취급이다. 오기도 전에 그러기로 미리 말을 맞춰둔 것 같았다.
난 그러려니 했는데 오히려 전상진이 사이에 껴서 안절부절 못했다.
“···저기, 미안. 나쁜 애들은 아닌데···.”
“응, 알아. 난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응.”
진짜 괜찮다.
외려 풋내가 나서 상큼하기까지 했다.
‘···애송이들이네. 애송이들.’
어찌 됐든 난 전상진이 초대해서 온 사람이다. 따라서 날 홀대하는 건 곧 초대자인 상진이의 면을 상하게 하는 짓이다.
그 기본적인 걸 얘들은 모르는 거다.
말하자면 못마땅하니까 일단 투정을 부리고 보자는 유아적 사고의 발로. 엄마가 막내만 신경쓰니까 삐친 첫째. 대충 그런 느낌이었다.
이런 건 그냥 귀여운 수준 아닌가?
그리고 비밀을 말하자면, 저들이 저럴수록 내게는 오히려 이득이었다.
은혜 갚으려고 데려왔는데 외려 폐만 끼쳐버린 거다. 상진이의 내면에는 최근 줄어든 부채감 스탯이 다시 급증하고 있을 것이었다. 감사한 일이지 않고 뭔가.
“어. 다 와 있었네. 늦어서 미안미안. 어서 시작하자.”
방민종이 마지막으로 입장함과 동시에 세미나가 시작됐다.
“주제는 최대 정수 함수와 그에 관한 응용으로써···.”
세미나는 각자가 준비해온 발제를 읽고, 풀이를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난 진지하게 경청했다.
친목질이 목적이라고 말하긴 했다만, 경시대회를 어설프게 준비할 생각도 없었다.
[수리적 통찰력]의 초기동조율이 처참했던 만큼 방심했다간 퀘스트를 실패해버릴 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세미나는 퍽 만족스러웠다.
‘수준이 제법 높다.’
통찰력이나 계산능력과는 별개로, 지식 자체는 나보다 우위에 있음이 확연했다.
어쨌든 얘들은 남들 가나다 읊을 때 수학공식 외우던 애들이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난 더 흥분됐다.
배울 게 많다는 것, 그리고 그 배움을 담기에 내 그릇이 충분히 넓다는 것, 내 의지와 성취도가 비례한다는 것은 축복이다.
벽은 무능한 자에겐 절망이지만 유능한 자에게는 조금 가파른 길에 불과했다. 그뿐인가. 뛰어난 재능은 그 가파름조차 즐기게끔 한다.
난 전생엔 감히 허락되지 못했던 기쁨을 과감히 누렸다.
“근데··· 한열이는 아무 말도 안 하네?”
갑자기 안경녀(미안하지만 관상이 딱 조연이라 이름을 기억해두지 않았다)가 대뜸 나를 거론했다.
세미나 시작 한 시간이 훌쩍 넘은 시점이었고, 다들 집중력이 조금씩은 흐려져서 마침 휴식이 필요한 때였다.
만만한 놈 잡고 시비 털기, 두뇌를 활성화시키기에 좋은 주제가 아닌가. 나름 영악한 타이밍 선정이었다. 10점 정도는 점수를 줄 의향이 있었다. 물론 백점 만점이지만.
“이 주제는 공부해본 적이 없어서. 결정하고 바로 온 거거든. 미처 예습을 못 했네. 오늘은 그냥 분위기 보러 온 거라.”
“공부한 적이 없다고?”
“응. 오늘 나온 개념들 다 고등학교 범위 밖의 내용이지 않아?”
“풋.”
안경녀가 웃었다. 몇몇 사람도 따라 웃었다.
“야. 그런 건 당연하지. 여긴 대학교 교재들을 기본으로 두고 공부한다고. 너 괜찮겠어? 못 따라갈 것 같으면 지금이라도 말해. 괜히 거기 뚱하게 앉아서 분위기만 망치지 말고.”
상진이는 거의 사색이 됐다. 모르긴 몰라도 [자책감이 +1 증가했습니다.] 같은 메시지가 뜨지 않았으려나.
반면 방민종은 팝콘이 없어서 매우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걱정 마라.
팝콘 없이도 꿀잼으로 만들어줄 테니.
난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이 정도 수준은··· 별로 어렵지 않게 따라갈 것 같은데? 괜찮아. 호들갑 떨 필요 없어. 모르는 건 배우면 그만이지 뭐.”
“···하. 허세는. 그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아? 우리가 몇 살부터···.”
“쉽진 않겠지만, 그렇게 어렵지도 않아. 나한테는. 아, 너한테는 어려웠나 보구나? 미안. 그것도 모르고 잘난 척을 했네.”
“···뭐야?!”
그때 방민종이 끼어들었다.
“워워. 진정들 하라고. 공부하다 갑자기 왜 싸우고들 그래.”
“쟤가 지금 날 무시하잖아!”
“자자. 목소리 낮추고. 그리고 무시한 건 네가 먼저잖냐. 민영아.”
“뭐어? 넌 대체 누구 편이니?!”
“뭘 편 가르기까지 하고 있냐. 그래, 좋아. 싸우는 건 좋은데, 우린 수학 공부하러 왔잖냐. 그럼 싸워도 수학으로 싸워야지. 안 그래?”
방민종이 내가 할 말을 대신 해주었다.
“그거 하자. 수학 릴레이.”
“쟤랑 나랑?”
“그래. 대신 한열이는 고등 영역까지밖에 학습이 안 된 상태니까. 범위는 그 안에서.”
수학 릴레이란, 심판이 주제를 정하면 그 주제에 맞는 문제를 즉석에서 만들어 출제, 상대방의 문제를 푸는 게임이다.
문제는 5분 안에 풀어야하며 시간이 지나면 실패. 그렇게 각자 10문제씩 출제하고 풀며, 정답이 더 많은 쪽이 최종 승리한다. 정답률이 같다면 풀이시간을 기준으로 승패를 가른다.
“그리고 진 사람이 이긴 사람 소원 하나 들어주기로. 어때?”
안경녀가 사납게 으르렁거리며 날 노려봤다.
“난 찬성. 넌 지면 여기 발도 못 붙일 줄 알아.”
“재밌겠네. 너한테 딱히 바라는 건 없다만···.”
난 왠지 모를 기시감을 느끼며 말했다.
“그건 이긴 다음에 생각하도록 하지.”
■■
요새 고윤숙은 짜증으로 머리가 곤두서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뭐예요. 당신이 거기 왜 있는데? 내 말 들으라고 있는 거 아냐? 그럼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요! 난 그 새끼가 고개 빳빳이 쳐들고 다니는 것만 봐도 창자가 익어버릴 거 같으니까.
물론 그녀는 김필재 의원의 라인이었다.
그리고 김필재 의원이 그녀에게 ‘아들을 부탁한다’고 직접 부탁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녀 자신이 그걸 부탁이 아니라 명령으로 ‘옳게’ 해석한 것도 사실이었고.
하지만 그렇다고 한참 어린놈에게까지 고개를 숙여야 하나.
자신은 당내에서 입지가 취약한 교육부 쪽을 공략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교사가 된 것이었다. 학생 하나 뒷바라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후우.”
아무리 속으로 푸념을 늘어놓은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김송헌과는 달리, 자신에게 있는 건 얄팍한 끈 하나뿐이었다.
김필재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끊어지는 끈. 김송헌이 아비에게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내구도가 달라지는 변덕스러운 끈.
‘···내 꼴이 어쩌다가···.’
그녀가 조용한 교실을 쓱 훑었다.
학생들이 책상에 머리를 박고 문제를 풀고 있었다. 경시대회 신청자를 대상으로 한 학교자체평가. 여기서 우수한 성적을 내면 참가비까지 지원받게 된다.
교실을 훑던 눈이 한 곳에 고정되고, 이내 그녀의 눈빛에 뚜렷한 경멸이 서렸다.
‘···이한열···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잔챙이에 불과했다.
그런데 대뜸 올림피아드 기출문제를 풀어버리더니, 이후에는 쪽지시험을 비롯한 모든 평가에서 만점을 기록, 순식간에 반의 에이스로 등극했다.
그뿐인가.
중간고사 점수 결과는 경악스럽기까지 했다.
전 과목 만점.
아직 학생들에게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선생들 사이에서는 이미 화제였다.
대원학교는 ‘변별력을 위해’라고 쓰고 ‘0반의 내신을 위해’라고 읽는 이유로 학교시험조차 좀 어렵게 출제되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매 시험마다 만점을 받는 괴물이 등장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0반의 상위권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일반반에서는 전례가 없던 일이다.
고윤숙은 즉시 교무회의에 안건을 내놓았다.
-커닝임이 분명합니다! 이 학생에 한해 재시험을 보고, 기준치를 못 넘길 경우 징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재시험 문제는 극악의 난이도가 되도록 선생들을 구워삶으면 된다.
그러나-
-글쎄요. 전 과목을 커닝했을 리 없잖습니까. 감독관들 눈이 죄다 옹이구멍인 것도 아니고···.
-우리가 모르는 어떤 수를 썼겠죠! 보세요. 30등이 오른 것도 아니에요. 무려 300등이 올랐다고요!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열심히 하면 불가능한 일까진···.
-신성한 시험에 장난질을 친 거예요. 엄벌로 대처하지 않는다면 학생들이 학교를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하지만···.
교사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평소엔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안달인 사람들이··· 그날따라 이상할 정도로 손발이 엇나가는 게 아닌가.
분명 재시험 문제를 또 만드는 게 귀찮은 거겠지. 고윤숙은 그렇게 판단했다.
-평가원 모의고사가 바로 앞입니다. 이 문제는 그때 다시 거론하도록 하죠. 만약 모의고사도 우수한 성적을 거둔다면 그땐 진짜 실력인 게 확실하니까요. 됐죠?
자신의 주장은 더 관철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타협됐다.
진짜 커닝이라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모의고사 성적으로 발각될 테니까. 그러나 고윤숙은 불안했다.
왠지 모르게 저 모든 게 진짜 실력일 것만 같았다. 갑자기 급증한 수학실력처럼, 나머지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까.
그런데 이젠 수학경시대회까지 나간다고?
고윤숙은 이한열이 학교 돈까지 지원받으리라는 사실이 마뜩찮았다.
왜 이사회는 그런 쓸모없는 제도를 만들었는가? 그냥 다 자기 돈 내고 나가라고 하지!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그녀는 고아가 싫었다.
비슷한 이유에서 장애인도 싫었다.
고윤숙의 눈에 그들 대부분은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망상병 환자들이었다.
그들은 본인의 결핍을 세상 사람들이 채워줄 의무가 있다고 당연하다는 듯이 믿는다. 다른 시민과 구분되는, 어떤 생득적인 특권이라도 얻은 양 말이다.
그리고 사회는 그들에게 지나치게 관대했다. 저런 망상병적인 요구를 우쭈쭈하면서 들어준다. 이게 비극이 아니고 대체 뭔가···.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물론 본인이 여성성을 교묘히 이용해가며 편의를 챙겨왔다는 사실은 도외시했다.
그녀의 기준은 자기 자신에게는 매우 관대하게 적용됐다.
띵동땡동-♬
“다들 손 무릎에 올리고. 맨 뒷사람이 카드 걷어와.”
그리고 OMR 뭉치가 손에 들어오는 순간,
어떤 발상이 그녀의 머리를 스쳤다.
김송헌의 히스테리적인 압박, 이한열에 대한 생리적 혐오감,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 그 모든 것이 그녀로 하여금 교사로서 해선 안 될 행동을 추동했다.
‘···그래···. 그렇게 하자.’
이한열의 OMR 카드를 바꿔치기 하는 거다.
그럼 놈은 재단 지원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본인에게 알리지 않는다면? 참가비를 내지 않았으므로 신청은 자동으로 취소.
그러면 이한열은 경시대회에 나가지도 못한다. 시험 결과에 비관해서 출전을 포기하는 다른 학생들과 같은 카테고리에 묶인다.
어차피 일반반 대회 출전에 관해선 그녀가 전권을 쥐고 있었다.
다 말했는데 본인이 조치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건 쉬웠다.
‘좋아.’
그녀의 입에 오랜만에 미소가 돌아왔다.
큰 타격까진 못 되겠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잽 정도는 될 거다. 적어도 경고는 되겠지. 김송헌에게 할 말도 생기고.
그런 계산을 희희낙락 하느라 그녀는 알지 못했다.
이한열은 [눈치]가 좋았고,
본인이 그의 앞에서 너무 오랫동안 웃어버렸다는 사실을.
---
그리고 며칠 후.
그때의 ‘스트레스 해소’ 이후 어떤 흐름이라도 탄 것일까. 그녀에게 희보가 전해져왔다.
“0반 애들이 경시대회 세미나 하는데, 고선생을 고문으로 삼고 싶다나봐. 거기 상진이도 있고 일광그룹 이사 딸내미도 있다니까 어디 잘 해봐.”
“진짜요? 애들이 제가 필요하다면 해야죠.”
0반 아이들 관리는 부장급 연차가 되지 않고서야 맡기 힘들다.
세미나 같은 개인 활동 지원이니까 자신에게까지 기회가 온 것일 테지.
고문이래 봐야 하는 건 별로 없지만, 그래도 명목상 책임자다. 학부모들과 대면할 일도 생기고 운이 좋다면 인맥을 쌓을 수도 있다.
그녀는 부푼 마음으로 제3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세미나실에 발을 들인 순간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
“민영아.”
“···으응?”
“차 좀 따라 보거라.”
“······.”
뿌드드득. 쪼르륵.
“방금 차 따르는 소리에 이 가는 소리가 섞인 듯한데?”
“···아니야. 잘못 들었겠지.”
“그렇지? 내 귀가 이상한 거겠지?”
“그, 그렇지.”
“알았어. 근데 나 홍차는 별론데. 녹차가 좋아.”
“야!! 해도해도 너무하는 거 아니야?!”
김민영(a.k.a 안경녀)이 버럭했다.
릴레이 게임에서 5라운드를 내게 내리 지고, 6라운드에서 반칙(본인도 못 푸는 문제를 내놨다)을 썼다 뽀록 나서 수치스러운 패배를 당한 그녀였다.
그렇게 내 꼬붕이 하나 생겼다는 아름다운 결말.
아 좋다.
어디 또 시비거는 놈 하나 안 나타나나.
“왜? 주인님 취향을 안 물어보고 멋대로 차를 탄 네가 문제 아닐까?”
“너 어제는 홍차가 좋다며!”
“오늘부터 취향을 바꾸기로 했어.”
“으아으아앙!! 얘들아 살려줘어!”
그러나 모두가 그녀를 외면했다.
“민영이가 잘못했네.” “그러게 주인의 마음을 읽었어야지.” “한열이는 꼬붕이 말대꾸해도 다 들어주네. 참된 주인이야.”
난 그간 세미나 구성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방민종과 순위를 다투는 실력자인 김민영을 제압한 건 시작일 뿐이었다.
그들의 지식을 순식간에 따라잡고, 어느 순간부터는 격차가 확 벌어져 토론이 아니라 내 쪽에서 가르침을 내리는 구도가 형성됐다.
그리고 내 통찰을 아낌없이 나누자 애들도 점차 날 신뢰하게 됐다.
공부만 판 애들이라 그런지 이런 면에선 또 순수했다.
“민영이는 빨리 녹차로 바꿔오고. 한열아. 나 이것도 좀 설명해주면···.”
“음 이건 말이지···. 아, 민영아 오는 길에 쿠키도.”
“이 악마들! 저주 받을 거야! 모서리에 발가락이나 찧어라! 레고 조각이나 밟아라!”
무엇보다 내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는 평이었다.
천재는 본인에게만 당연하고 남들에겐 당연하지 않은 걸 쉽게 간과하므로 가르침에 약하다는 속설이 있지만, 그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난 둔재였던 시절을 똑똑히 기억하니까.
어떤 지점에서 사람들이 힘들어하는지 대충 감이 오는 거다.
응? 방금 누가 저주했다고? 그건 그냥 배경음악 같은 것이므로 무시하도록.
“얘들아. 고문 선생님 왔는데.”
음.
주제파악을 시켜줘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오는구나.
난 넉넉히 웃으며 그녀의 방문을 환영했다.
< 7. 완용의 법 - 7 > 끝
ⓒ 달의등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