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이 자꾸 늘어-30화 (30/164)

< 8. 아이들 - 2 >

“너 요새 상진이랑 같이 다닌다면서?”

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다보니.”

매우 용의주도하고 고의적으로 접근해서 기생충처럼 붙어있는 것이었지만 난 운명의 섭리에 따라 그렇게 되었다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니까, 어쩌다가?”

“착하게 살다 보니까 그런 친구도 생기더라고. 우주의 신비라 할 수 있지.”

“에잇, 말 돌리지 말고 좀 자세히 말해 봐.”

“물은 물이요 바람은 바람이니 흘러가다 보면 모두 제 자리로 돌아오는 법···.”

“뭔 소리야. 싫으면 그냥 말해주기 싫다고 해.”

“응, 말하기 싫어.”

“아오···.”

배윤하가 불독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눈코를 한데 모으고 입매를 축 늘어뜨리는 그 못생기게 귀여운 표정으로 남정네들 심장 여럿 떨구었겠지만, 미안하게도 난 그 여럿에 속하지 않은 신인류였다.

“못생긴 얼굴 좀 치워줄래.”

“흥. 이게 아주 배가 불렀네. 내 미모가 얼마나 수요가 많은지 모르지? 아, 아싸라 모르나?”

귀여운 도발에 난 픽 웃었다.

알지.

인기로 살을 찌울 수 있다면 배윤하는 이미 고도비만을 넘어 미쉐린 맨이 되어있을 것이다.

거기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그녀가 난 우습고,

조금은 안쓰러웠다.

“그래서 상진이는 왜?”

“소개시켜 달라고.”

“내가 왜?”

“음···. 친구의 친구는 다 같은 친구···니까?”

배윤하는 본인의 말에 본인이 질겁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꾹 닫았다.

친구.

우리가 아직 그 단어로 묶일 수 있는지, 그녀는 확신하지 못할 것이었다.

난제였다.

인간은 모호함을 생리적으로 싫어한다. 모든 단어는 그래서 만들어진다. 연인은 아니고 친구보단 가까운 애매한 관계를 애매한 채로 놔두기 싫어서 ‘썸’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처럼.

그런데 친구와 그냥 지인 사이 어디쯤의 관계를 칭하는 단어는 아직 발명되지 못했다.

발명되지 않았으므로 그 감정은 정처가 없다.

우린 그 감정을 어디에 두는 대신 그냥 표류하게 방치해왔었다.

이제 와서 그걸 정의하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 부표도 없는 망망대해 속에서, 이미 보이지 않는 어딘가로 흘러가버린 것이다.

그래서 배윤하는 이번에도 같은 선택을 했다.

복잡한 건 일단 미뤄두기로 결정.

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철면피가 되었다.

“아아아. 몰라몰라. 어쨌든 난 상진이랑 친해지고 싶어. 협조 좀 해주라.”

“맡겨놨냐? 겁나 당당하네 이 자식.”

“그치? 난 당당한 21세기 여성이니까.”

“칭찬 아니거든. 왜 그렇게 상진이랑 친해지려는 건데?”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야?”

배윤하가 팔짱을 턱 끼며 콧김을 킁 내뿜었다.

“내가 오르는 이유는, 거기 산이 있기 때문이다!”

“아 그러세요.”

“뭐야 기껏 말했더니 왜 심드렁한 건데.”

대충 짐작하고는 있었으니까.

인맥왕 배윤하는 이 학교에서 자신이 친해지지 못한 누군가가 남아있다는 게 불만스러운 것이었다.

사실 전상진이란 인간 자체에겐 별 관심이 없겠지.

그보다는···.

“사실 진짜 친해지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긴 해.”

“누구. 학생회장?”

“어? 어떻게 알았어?”

“뭐, 니가 좋아할 것처럼 보이긴 하더라고.”

“후웃후웃. 너도 정희 선배님의 위대함을 조금은 아는구나? 그래, 모를 수 없지. 멀리서도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걸. 선배 완전 멋있지 않니? 내 워너비라니깐.”

“···포기하는 게 좋을 거라 생각한다만.”

“닥쳐. 난 꿈은 크게 가질 거야.”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걸 말해줄 수가 없어서 유감이었다.

그 여자는 늑대다. 배윤하 같은 카피바라 따위가 조심성 없이 다가갔다간 목에 예쁜 구멍이 생겨버릴 것이다.

그러나 심리는 이해됐다.

전상진과 윤정희는 이 대원학원의 아이돌들이었다. 동경을 갖는 건 지당했다.

허나 동경을 넘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자 직접 행동에 나서는 게 보통의 사고방식은 아니었다.

그녀는 나와 같았다.

물론 동족의식 따윈 눈꼽만큼도 없었다.

“그럼 너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냐?”

“으응···?”

“나한테 부탁하는 거 아냐? 근데 태도가 뭐 그따구야? 뭐? 아싸니까 몰라? 쪼잔해? 그러니까 인기가 없다고?”

“우우우··· 그거언···.”

배윤하가 다시 쫄보가 되어서 우물쭈물 하였다.

“오랜만이라 쑥스럽고 그래서···, 으응, 그래서 어떻게 말하다보니···. 그냥 그런 거지 머···.”

“그래서? 미안해?”

“우응···.”

“미안하면 어떻게 해야지?”

그녀가 손가락을 한참 꼼지락대다가 허리를 꾸벅 숙인다.

“죄송합니다아아···.”

“오냐.”

“그럼 나 상진이 소개시켜 주는 거야?”

“으응? 그런 소리는 안 했는데? 그 사과 조건부였냐?”

“뭐어어?! 내가 맘먹고 자존심까지 구겼는데! 그게 할 소리야?!”

또 길길이 날뛴다.

이거 완전 텐션이 고무줄인데. 왠지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야! 그러고 보니 어지간하면 들어준다면서!”

“그래서 들어줬잖아. 듣고 해준다는 얘기까진 안 했다만.”

“으익으이이익!!”

세 번째 펄떡.

그녀가 팔딱팔딱 뛸 때마다 시간차를 두고 카메라와 포니테일이 들썩였다. 그녀 주위로만 중력이 이상하게 작용하는 것 같았다.

배윤하가 평정을 되찾고, 새삼 교섭의 자세를 갖추게 된 건 그로부터 5분 뒤의 일이었다.

“그래서? 뭐 바라는 거라도 있어?”

“···음···.”

생각에 잠긴 척 했지만, 사실 어느 정도 계산은 잡혀 있었다.

배윤하에겐 여러 장점이 있지만, 넓은 인맥과 좋은 평판이야말로 그중 으뜸이었다.

그녀의 원조가 있다면, 내 계획을 보다 매끈하게 성사시킬 수 있을 테지.

무엇보다도

‘어차피 배윤하는 머지않아 윤정희의 측근이 된다. 전생과 어떻게 달라질지는 미지수지만.’

그렇다면 이참에 그녀에게 빚을 지워두는 편이 낫겠지.

“좋아. 전략적 제휴를 맺자.”

“제휴?”

“그래. 상진이 소개시켜줄게. 물론 그럴 만한 명분을 만들어야겠지만. 그 뒤로도 자잘한 도움은 주겠지만, 어쨌든 친해지는 것 자체는 네 몫이고.”

“그 정도면 충분해. 그럼 나는?”

“내가 필요할 때 네 인맥을 좀 빌리자. 무리한 걸 요구하진 않을 거야.”

“···그래? 그 정도는 간단···.”

“그리고 또.”

“또?”

“그거 좀 만져보자.”

그녀의 가슴께를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엔 카메라 한 대가 진자운동을 하고 있었다.

“내 카메라?”

“그래.”

“···왜?”

“그냥. 오랜만에··· 만져보고 싶어졌어.”

“······.”

당연히 거기 보라색 탤런트가 있기 때문이었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낯선 침묵이 감돌았다. 그녀는 생각에 잠긴 듯 입을 다물고 구부정하게 섰다. 내 요구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표정이 묘했다.

“···꼭 그래야 해?”

“그러고 싶은 기분이네.”

“누가 뭐래도? 꼭?”

물론 반드시 그럴 이유는 없었다. 시간을 두고 나중을 노려도 좋겠지.

하지만 내 [눈치]는 그녀의 심경이 기울고 있음을, 지금이 바로 적기임을 간파해냈다.

“그래, 꼭.”

“···으으으음···.”

누군가는 그깟 카메라로 뭐 저리 고민하나 싶겠지만,

앞서도 언급했듯 배윤하에게 저건 ‘그깟’ 카메라가 아니었다. 이런 반응은 충분히 예상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같이 날 샐 생각까진 없으므로,

나는 이쯤에서 살짝 튕겨보기로 했다.

“싫으면 됐어. 아쉬운 건 내가 아니니까 뭐. 나 간다.”

“어어어···? 자, 잠깐···. 으헉···!”

몸을 돌려 가려는데, 다급한 기성이 들려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내 시야에 비친 것은,

발이 꼬여 넘어지기 직전의 윤하와,

그녀의 목을 벗어나 활공하는 카메라,

넘어지는 와중에도 카메라에게 뻗은 손과, 결국 그 손을 탈출한 야속한 스트랩의 모습이었다.

난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내 쇄골을 향해 포물선운동을 하는 카메라를 잡아채고, 태클을 하듯 몸을 미끄러뜨려 그녀 밑으로 파고들었다.

콰당!

육체적인 충격과는 별개로, 여지없이 떠오르는 금빛 알림창.

===

탤런트 [어느 무명 포토그래퍼의 사진술](Rank D)과 접촉하였습니다.

===

낯선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지나쳤다.

어느 사진작가의 뒷모습이었다.

셔터를 처음 눌렀을 때의 그 짜릿한 감각. 카메라를 선물 받았을 때의 기쁨. 암실에서 필름을 인화한 첫경험.

뷰파인더는 마법 같아서 그 너머로 보면 초라한 현실도 작품의 일부로 둔갑시켜버렸다.

그러므로 세상은 찍어야 할 피사체로 가득해 질릴 일이 없다.

그렇게 찍고,

또 찍기만 하던 삶의 귀퉁이에,

그 자그맣던 뷰파인더에 어느 순간 한 명의 여인이 끼어들었다.

사랑이었다.

남자는 액자 바깥의 무언가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태어났다.

평균보다 무게가 덜나가는 미숙아였지만 남자는 아기가 렌즈 안에 꽉 들어찬다고 느꼈다.

사진작가는 기쁨 속에서 셔터를 눌렀다.

-난 너를 찍기 위해 지금까지 셔터를 눌러 온지도 몰라. 나의 뮤즈. 나의 사랑. 나의 딸아.

그러나.

비극은 밤중의 도둑처럼 찾아왔다.

“······.”

사진작가의 인생을 요약하는 이미지들이 찰나에 흩어졌다.

나는 예의를 갖추어, 그의 삶을 내 안에 차곡차곡 저장해두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우선 느껴진 것은 등 쪽의 둔통과 단단한 아스팔트길의 감촉. 그리고 위에서 몸을 누르는 적당한 무게감과 정체불명의 물컹함이었다.

물컹?

뭔가 싶어 시선을 내리는데, 알아보기도 전에 뭔가가 호다닥 일어서더니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얼굴에서 빨간 물이 뚝뚝 떨어지는 듯했다.

“그 놀라운 무빙은 뭐냐?”

“나, 남녀칠세부동석 워킹···!”

“뭐라는 거야.”

피식 웃으며 상체를 세우니, 그제야 카메라의 무게감이 손목에 얹혔다.

보라색 카르마는 사라지고 없었다.

===

탤런트 : [어느 무명 포토그래퍼의 사진술](Rank D)을 습득했습니다.

-이 탤런트는 사진 촬영에 관한 기술적 적응 능력 전반에 관여합니다.

-동조율 : 9.78%

===

그렇군.

파란색 탤런트는 정신에 관한 재능.

빨간색 탤런트는 육체에 관한 재능.

그리고 보란색은 파란색과 빨간색의 혼합색이다. 즉, 정신과 육체 양 측면이 고루 관여하는 재능.

‘사진촬영이 딱 그렇지.’

촬영에는 심미안 같은 정신 작용 뿐 아니라, 잘 보고 잘 찍는 육체의 반응 또한 주요하게 요구된다.

그걸 포괄해서 ‘기술적 적응 능력’이라 표기한 거겠지.

얼추 납득이 되었다.

탤런트에 무심코 카르마를 투자하고 있는데, 동조율 아래쪽에 금빛 글자가 어른거렸다.

===

[황색 카르마를 투입하여, 해당 탤런트의 기술을 학습하실 수 있습니다.]

- 습득 가능 리스트

<촬영 기술 총론 하급> 50p

<촬영 기술 총론 중급> 100p

<촬영 기술 총론 상급> 500p

===

깜놀.

‘···이럴 수가.’

말하자면, 대가만 지불하면 탤런트 원주인의 기술 그 자체를 배울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왜 청색이나 적색 탤런트의 경우엔 반응하지 않았는지도 알겠다.

귀수의 손재주의 경우, 원주인은 타짜였지만 나는 이 재능을 요대술이나 자물쇠 따기 따위에 활용했다.

요컨대 범용성이 높다.

반면 보라색 탤런트는 범용성은 없는 대신, 그 하나의 기술에 한해선 보다 전문적이고 심도 깊은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황색 카르마를 이용해서.

‘···진정하자. 지금 황색 카르마를 얻을 방법이 확실치 않은 이상, 함부로 써버리는 건 위험해.’

시험 삼아 50p짜리 <촬영 기술 총론 하급>만 적용해보자.

내가 상태창을 조작한 것과, 배윤하가 제정신을 차린 건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앗! 아아앗! 내, 내 카메라 왜 거기 있어?!

“니가 나한테 냅다 던졌으니까 여기 있지.”

“아, 안 돼에! 돌려줘어!”

“흐음.”

윤하가 허둥지둥 다가왔지만, 미안하게도 난 그녀를 잠시 잊고 말았다.

모든 감각이 손끝에 집중됐다.

낯선 이물질이 혈관에 파고드는 듯. 내 것이 아닌 것이 내게 스며드는 느낌.

온몸이 일점에 빨려 들어가 카메라 안의 네모반듯한 공간에 묶여진 듯했다. 도무지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몰입감.

===

탤런트 : [어느 무명 포토그래퍼의 사진술](Rank D)

-이 탤런트는 사진 촬영에 관한 기술적 적응 능력 전반에 관여합니다.

-동조율 : 100%

-비  고 : 촬영 기술 총론 하급

===

카메라를 잡아본 게 얼마만인가.

소싯적에 카메라도 꽤 공부해본 적이 있었다. 내 재능을 찾아 헤매던 젊은 시절의 일이었다.

그러나 아이돌을 찍었는데 오징어가 찍혀서 팬클럽에서 광속으로 밴 당한 이후로는 겸허하게 현실을 인정하고 그만두게 된 취미였다.

그래도 오랫동안 전설의 짤로 사랑받아 내심 뿌듯했던 기억이···.

허나 지금 이 순간.

난 내게 결핍된 한 조각이, 철컥, 하고 내 안에서 맞아 들어감을 느꼈다.

수천수만 번 그래왔다는 듯이, 두툼한 렌즈 밑을 받치며 카메라를 들어올렸다. 뷰파인더에 눈을 맞추며 반사적으로 광량을 체크했다.

윤하 녀석은 렌즈가 자신을 향하자 뛰어오다 말고 덜컥 멈춰 섰다.

“아앗!”

그 와중에도 포즈를 잡는 것이 과연 타고난 관종이었다.

찍었다. 찰칵.

첫 테이크는 영점 조절 같은 것.

바로 스크린으로 모니터링을 했다.

뷰파인더로 본 것과 결과물의 차이를 확인하고, 다시 카메라를 들어올렸다. 셔터스피드를 조정하고, 조리개를 쭈욱 돌려 노출값을 맞췄다.

이 모든 과정에는 어떤 위화감도 없다.

“아아앗!”

찰칵.

이번에는 포즈를 제대로 잡지 못한 윤하가 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마저 찍어두었다.

찰칵.

“아앗. 아아앗!”

찰칵. 찰칵.

쉼 없이 쏟아지는 셔터질에, 윤하는 자포자기했는지 저도 흥이 올랐는지 아예 표정연기까지 해가며 본격적으로 촬영에 임해주었다. (비명은 왜 계속 지르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기대에 부흥해야지.

안 그래도 나도 점점 신이 나던 참이었다.

손떨림 보정도 없는 카메라를 빈틈없이 파지하고, 노출값을 감각적으로 계산해서 상상한 그대로의 샷을 뽑아내며, 기술적 이해가 거꾸로 영감을 자극해 사진의 퀄리티를 끌어올렸다.

이건 정말이지···.

끝내준다.

엿가락처럼 녹아 흐른 노을, 쩍쩍 갈라진 귀갓길 도보 위. 매일 한 번씩 지나치는 그것들이 지금 이 순간만은 조명이고 스튜디오였다.

찰칵. 찰칵. 찰칵.

즉흥적으로 시작된 촬영회는 해가 완전히 넘어가면서 끝났다.

화려한 포토존이 아스팔트길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윤하도 그즈음 ‘핫’하고 제정신으로 돌아오더니 내게서 카메라를 앗아갔다.

“뭐, 뭐야! 왜 허락도 없이 갑자기 찍고 그래?!”

“신나게 즐겨놓고 이제 와서 그래 봐야.”

“즈, 즐기긴 누가···.”

“그게 즐긴 게 아니면 더 놀라운데.”

“너 이씨 진짜 가만 안두··· 어···? 어어어?”

툴툴대면서도 착실히 사진을 확인하던 그녀의 손이 일순 경직됐다.

정지 상태로 두 눈과 입이 커지더니, 이젠 손가락만 까닥여 사진을 확인하기 시작. 잠시 후엔 내 얼굴과 사진을 번갈아 보며 소리 없이 입만 뻐금댔다.

그 모습이 마치 예쁜 관상어 같았다.

물고기 수준으로 멍청해보였다는 소리다.

“이거, 이거 뭐야? 너 뭐야? 여긴 어디야? 나는 누구?”

“뭐라는 거야. 정신 차려.”

“대박이잖아아아!!”

윤하가 방방 뛰었다.

“쩔어! 대애박!! 진심 레알루다가!! 사진 완전 예쁘잖아! 요거! 요거 삔또 쓕 하고 나간 거! 나 알아! 아웃포커싱! 으앙 오지구영지리구영!”

“진정해. 이봐. 진정하라고.”

“음영 깔린 거 봐라. 키야. 이거 분위기 죽이는구마이! 키향향향!”

“자, 잠깐···.”

그녀의 텐션이 하늘을 뚫어버리면서 난 심히 괴로워졌다.

웃으면서 날 막 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중에도 난 이게 제일 좋아.”

윤하가 내 옆에 찰싹 달라붙더니 스크린에 사진 하나를 띄웠다.

공교롭게도 의견이 일치했다.

어스름이 서녘의 불길을 짓누르고, 박야薄夜의 거리는 어둑한데 멀리 가로등이 때마침 불을 밝혀온다.

그리고 그 안에서 환히 웃는 한 명의 소녀.

얕은 심도의 사진이다.

따라서 소녀 외의 모든 배경은 흐릿해 물감처럼 얽혀 있었고, 가로등 빛은 인공물이 아닌 밤바다에 흩뿌려진 별가루 같았다.

일몰의 찰나에만 포착되는 미묘한 긴장감··· 혹은 적막감.

그래서 윤하의 미소는 해맑으면서도, 어딘가 비어있고 또 위태롭게 느껴졌다.

“진짜로 그랬거든.”

“뭐가?”

“해가 딱 떨어졌을 때 말야. 좀 슬프다고 생각했거든. 왜 그런 거 있잖아. 막 즐겁다가도 속에서 우울한 게 톡, 튀어나올 때. 탄산처럼 말이야. 톡톡.”

“그랬냐?”

“응. 정말로···.”

뭔가 부담스러운 뉘앙스의 눈빛.

무심코 시선을 피하니, 또랑또랑 빛나는 그녀의 눈이 바짝 따라붙어왔다.

“뭐···. 어쨌든 카메라 잘 만졌고. 약속대로···.”

“나 또 찍어줄 거야?”

“응?”

“나 또 찍어주라. 나 다음엔 더 잘 할 수 있어. 연습해 올게.”

“어···.”

얘기가 왜 그쪽으로 진행되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뭘 연습해온다는 건지는 더욱 더 의미불명이었다.

가장 이상한 건 고개를 끄덕이는 나 자신이었다.

“그래 뭐. 너 하는 거 봐서.”

“진짜? 진짜 진짜 진짜지?”

“좀 조용해지면 진짜가 될 것도 같은데.”

“합.”

조용해졌다.

또각또각, 발소리만 울렸다.

머리에 열기가 빠지자 우린 순식간에 어색해졌다.

이상할 것도 없이, 이게 원래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감이었다. 평소의 스텐스로 돌아온 것 뿐이다.

그 사진작가가 옳았다.

카메라의 시야에는 마법 같은 힘이 있었다.

세상의 한 국면을 싹 도려내어 현실에서 유리시키는 힘. 찍는 이도 찍히는 이도 홀려버리는 환상적인 찰나.

그러나 사진은 거기에 멈춰 있고 우리의 시간은 필연적으로 흘러간다.

마법은 종국에 깨어지고

이젠 현실로 돌아올 때였다.

보육원 숙소 앞에 도착해 그녀를 일별했다.

“들어가. 약속은 지킬게.”

“···응.”

윤하는 미련을 털어내듯이 단호히 몸을 돌렸다.

그 뒷모습을 잠시 보다 가려는데, 저쪽까지 갔던 윤하가 다시 몸을 돌리더니 뻣뻣한 걸음걸이로 다가왔다.

그리곤 내 손에 뭔가를 쥐어주는 것이었다.

반창고와 연고였다.

“그, 뭐냐, 오다 주웠다! 바르든지 말든지.”

“이잉?”

“그리구 말야! 남자가 얼굴에 퍼런 거 달고 다니면 못써!”

그러더니 건물로 호다닥 들어가 버렸다.

뚜껑을 따지도 않은 새 연고가 표면만큼은 울퉁불퉁했다.

언제 줄까 전전긍긍하면서 주머니 안에서 오물조물 거렸을 것을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

난 숙소로 돌아가면서 환영 속 사진작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딸에 대해서.

혼자 남겨졌을 그녀의 삶에 대해서.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는 성격, 대인관계와 평판에 과도히 집착하는 경향, 그로 인해 비대해진 ‘돋보이고 싶은 욕망.’

밝고 명랑한 미소 밑에 깔린 그림자들에 대해서.

어쩌면 그건 다,

자신을 오롯이 보아주던 누군가의 부재, 더 이상 피사체가 되지 못한다는 절망에서 비롯된 결핍 증상일지도 모른다.

물론 다 추측일 뿐이지만.

“뭐, 일단은 고맙게 받아둘까.”

손 안의 연고는 누군가의 온기를 오랫동안 받아, 무척이나 따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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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아이들 - 2 > 끝

ⓒ 달의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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