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아이들 - 4 >
밀수품 외에도, ‘처치 곤란’하다고 여긴 값진 물건들을 이완용은 착 모아서 한 곳에 모아두었다.
요컨대,
저 밑에는 보물창고가 있었다.
그리고 장담컨대 저 보물창고는 내 전생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다.
발견되었다면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이상 모를 수 없을 만큼 화제가 되었을 테니까. 간첩이 제1순위로 외우고 내려가는 상식이 되었겠지.
그렇게 삼십 분이나 지났을까.
내 짐작보다 성과가 빠르게 나온 건 오랜 세월에 토사가 씻겨나간 탓일까.
텅-!
이질적인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굴삭기가 작동을 멈추었다. 암을 아주 조심스럽게 올려둔 채, 현지 쌤이 조종석에서 얼굴만 빼꼼 내밀고는 말했다.
“저 밑에 뭔가 있네. 단단한 돌벽인데, 안이 텅 빈 느낌이야. 네가 찾던 거 같은데?”
“오. 그게 느껴져요?”
“그럼. 나 정도의 베테랑이면 손쉽지.”
24세 보건교사가 어째서 굴삭기 베테랑이 됐는지는 잠깐 넘어가도록 하자.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자 그럼 삽으로 조심스럽게 파보도록 하죠. 쌤은 잠깐 대기해 주세요.”
나도 삽을 집어 들고 작업에 나섰다.
외벽은 당시로선 최신기술인 철근 콘크리트로 세워졌다. 그런 만큼 고대 유물 발굴 하듯이 애지중지할 것까진 없겠지만, 그래도 반백년 넘게 땅에 방치되어 있던 곳이었다. 신중할 필요는 있었다.
난 인부들에게 조심할 것을 재차 당부하며 흙을 퍼 날랐다.
그렇게 석굴石窟의 입구가 드러난 건 그로부터 또 한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음.”
“근데 여기가 입구 맞냐? 아무리 봐도 그냥 벽 같은데.”
“여기가 맞아요, 입구.”
이완용이 공사에 직접 참여했으므로 확실했다.
“쌤! 여기 이 돌만 파버릴 수 있어요? 그 뭐냐, 드릴 같은 걸로요.”
“착암기 말이지?”
굴삭기가 암에서 버켓을 떼어버리고 두툼한 봉이 돌출된 파츠를 장착, 내가 짚은 돌을 정확히 바수어버리기 시작한다. 으드득···!
원래는 해머로 때리면 부서지게 설계된 곳이다. 착암기의 무지막지한 파쇄력은 입구를 일 분만에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먼지가 가라앉자, 주저앉은 돌무더기 사이로 입구가 드러났다.
“들어가죠.”
그 뒤 작업은 금방이었다.
석굴로 밀폐시킨 것도 모자라, 유물 하나하나를 대리석 함에 다시 한 번 봉했다. 당연히 상태는 매우 양호. 수십 년 동안 물기 한 번 닿지 않았을 것이다.
우린 그 안에 있던 것들을 하나하나 옮기면 되었다.
“이야···. 이건 대체 뭐냐. 칼인가?”
“일본도죠. 야마토노카미 야스사다라는 이름난 명인의 걸작입니다.”
역사에서는 신선조 대원 오키타 소지가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명검으로, 일본 본토에서 유실된 것을 이완용이 몰래 소유했던 것이다.
그 뒤로 들려 나온 것은 고대 일본식 갑주인 오오요로이. 전국시대 다이묘가 썼던 것으로, 진실은 불명이지만 어쨌든 이완용은 우에스기 겐신의 것으로 알고 있었다.
아쉽게도 둘 다 탤런트는 없었다.
그리고 다음.
<臣之視君如寇則君視臣如土芥>라는 글이 적힌 낡은 족자.
“···오. 이건 뭔가 공자님맹자님 말씀이신가···.”
난 삼촌의 반응에 킥 웃었다.
저건 홍무제 주원장의 글이었고 그는 평생토록 맹자를 극혐하던 인물이었다.
해석하면 ‘신하가 군주를 원수로 알면, 군주는 신하를 지푸라기로 여긴다.’ 맹자의 말에서 선후관계를 뒤바꾸어 뜻을 비틀었다.
명백한 조롱이 담긴 글.
그럼에도 그 대단한 주원장의 글이라는 것, 그리고 그 말의 광오함에 이끌리는 사람은 있을 것이었다. 이완용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문제는 데라우치 총독도 저 족자를 탐냈다는 것.
뺏기기 싫었던 이완용은 저걸 이 석실 안에 감추어두기로 결심하고, 마침내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 뒤로는 자잘한 것들, 비녀나 작은 장식품 따위가 몇 개 출토됐다.
그러나 내가 찾던 물건은 이것들이 아니다.
‘마침내···.’
인부가 마지막으로 들고 나온 작은 목함.
다른 것들은 대리석으로 포장했으면서, 이것만 묘하게 취급이 박했다. 그러나 그걸 본 순간 심장이 요란하게 뛰어댔다.
목함의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강렬한 카르마의 빛.
난 목함을 받아들어, 아주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었다.
오랜 세월에 여기저기 부스러진 낡은 서책, 그 표지에는 세로로 <制音日記>라는 글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난 꿀꺽 침을 삼키고, 주책 맞게 떨리는 손을 뻗었다.
===
전하께서는 오늘도 태평하셨다.
황희 정승은 그런 왕의 모습이 못내 고까웠고, 그리 느끼는 자신이 불민하여 심란함을 금치 못하였다. 그런 심사가 낯에 드러난 것인가.
“어이하여 그런 얼굴이시오? 영의정.”
"무릇 사람이란 나이값을 해야 하는 법이옵니다, 전하."
"또 무슨 말을 하려고 밑밥을 까는고."
"약관, 이립, 불혹, 지천명이라는 말들이 왜 있겠습니까. 나이에 맞게 처신하라는 뜻이요, 늦거나 빠르면 자못 아름답지 못함을 경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니 되오."
"전하. 아직 본론은 꺼내지도 않았사옵니다."
"보나마나 나이 들었으니 집에 가서 놀겠다는 말 아니오. 내 그 꼴은 못 보지."
"즈언하! 어찌 그런 망측한 말씀을!"
"아아. 망측해도 어쩔 수 없소. 과인이 이리 고생하는데, 신하 된 몸으로 어딜 혼자 내빼겠단 말이오. 그대와 난 운명공동체요."
"···그럼 일이라도 좀 줄여주심이. 이 노구 등골이 휠 지경이옵니다."
"그렇소? 흐음. 안 그래도 낯빛이 많이 죽었구려.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럼···!"
“고기를 드시오. 허할 땐 닭이 좋소.”
“···예, 전하.”
오늘도 언제나처럼 퇴사에 실패한 영의정이었다.
한낮의 궐은 쾌청하고 고즈넉했다.
햇빛은 잠잠하고 나비들만이 볕과 그늘을 오가며 부산했다. 고요한 가운데 왕과 정승의 종이 넘기는 소리만 사락사락 울렸다.
그러다 별안간, 왕께서 외딴 말을 꺼내셨다.
“닭이라 하니, 그때가 생각나는구만.”
“그때라 하심은···.”
“내 언문을 새로이 만들기로 결심한 날 말이오.”
“······.”
황희는 왕께서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나싶어 바짝 긴장했다.
“중전이 수라상에 고기를 금하였지. 건강이 걱정된다며 사정사정하는데 내 그 청을 차마 마다할 수가 없었소. 어의도 이때다 싶어 중전을 거들더군. 해하에서 사면초가를 듣는 항적의 기분이 과연 이럴까 싶었소···.”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지요.”
“처음엔 알았소만 했지만, 이게 생각할수록 이치에 맞지 않는 게요. 몸에 수분이 부족하니 갈증이 있는 것이고, 치료가 긴요하니 아픈 것이 아니겠소? 그것이 순리요. 그러니 만약 고기가 먹고 싶다면, 그건 고기가 이 몸에 필수불가결하다는, 반드시 섭취해야 하는, 뭐 그런 문제가 아니겠느냐 말이오.”
“전하, 그건 과장이 아니올는지···.”
“그래서 과인은 생각했소. 중전과 어의는 틀렸다. 사이비 의학에 홀려 오판을 범하였다. 과인은 한 나라를 짊어지는 자로서 본인의 몸을 스스로 보해야 했소. 그래서 밀지를 보내었지.”
여기서부턴 황희도 아는 내용이었다.
내금위가 총동원되어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기동전으로 궁녀들 몰래 고기를 공수해온 사건이었다.
그 밀지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삶은 닭고기를 가져오라>
왜 하필 닭인가 물으니 왕께서는 ‘닭은 진리니라.’ 하시었다.
“···그런데 영의정께선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시는가?”
“음. 중전 마마께서 노하셨겠지요?”
“그랬긴 했다마는, 그런 건 중요치 않소.”
“그렇다면···.”
“한 입을 베어 문 순간 깨달았지. 이것은···.”
“이것은···?”
“닭고기가 아니라 꿩고기로구나.”
“아, 그렇사옵니까.”
정말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대답이 절로 심드렁해졌는데, 왕께선 그걸 또 아셨는지 목청을 확 키우셨다.
“그 비극을 모르시겠는가! 닭을 시켰는데 꿩이 왔다는 것이오!”
“소신은 잘 모르겠사옵니다. 그게 그렇게 큰일이옵니까?”
“내금위 대원이 직접 고기를 구하진 않았을 터. 그렇다고 궐에 드나드는 상인에게 접근할 수도 없었겠지. 그럼 상궁에게 들킬 게 아닌가. 그래서 대원은 평소 알던 보부상에게 밀서를 보내었다 하오. 그러나··· 그 보부상은···.”
“까막눈이었던 것이로군요.”
“그렇소. 이 얼마나 큰 비극인가?! 문맹은 닭을 꿩으로 둔갑시키는 해악이라오!”
한글창제의 비밀, 여기서 밝혀지다.
물론 황희 정승은 왕께서 그저 농을 건넸다고 여기지 않았다. 농을 건네도, 항상 그 안에 뜻을 남기는 분이시니.
‘필시 집현전 학사들을 잘 잡도리 하라는 말씀이시겠군.’
황희는 왕께서 집현전에 훈민정음 해례를 집필하라는 명을 하셨음을 기억했다.
그건 글자를 뚝딱 만들어오라는 명이 아니셨다.
언문은 이미 만들어졌다. 왕께서 ‘홀로’ 만드셨다. 외부로부터 받은 도움이라곤 단순 자료조사뿐. 자모와 음운에 관한 모든 통찰은 왕의 머리에서 엮이고 왕의 손으로 빚어졌다.
따라서 집현전에 내려진 명령은
그저 학사들이 제대로 잘 공부했는지 확인하고자 함이었다.
‘···창제 이유를 스스로 격하하셨다. 그건 서문 따위에 얽매이지 말고 알맹이를 공부하라는 뜻일 터.’
조선 최고의 석학들이 모인 집현전 학사들에게도 이 새로운 과제는 낯설고 어려웠다.
음운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면 어떻게 쓰든 껍데기뿐일 것이다.
그렇다면 왕과 같은 학식과 통찰을 갖춰야 된다는 말인데, 그건 왕의 천재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로서는 까마득하게까지 느껴지는 일이었다.
따라서 최근 학사들이 ‘일단 서문부터 멋들어지게 써봅시다.’라는 현실 도피적 논의를 무의식적으로 전개했고, 왕께선 그걸 또 간파하신 것이었다.
‘무서우신 분.’
대왕 생전에 해례가 다 쓰이기는 할까?
황희는 왠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 또한 왕의 안배에 있으리라는 생각에 전율이 일었다.
그는 머리를 깊게 조아렸다.
“전하의 뜻, 잘 받잡겠사옵니다.”
그러자 한참 꿩과 닭의 식감 차이를 역설하던 왕께서 깊은 미소를 지어보이셨다.
“고맙소. 역시 내 뜻을 헤아리는 건 경밖에 없소. 영의정이 없으면 안 된다니까.”
“···부디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요새 맡기신 일만 해도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옵니다. 이러다 이 신이 급사해버리면 어쩌시렵니까?”
“걱정 마시오. 장수하실 상이니 죽기 전까진 다 하시지 않겠소. 그래도 정 못 버티겠다면···.”
“그렇다면?”
“고기를 드시오. 과로엔 오리고기가 좋소.”
“그러어어언···.”
황희는 절망했다.
왕께선 껄껄 웃으셨다.
“난 이래서 영의정이 참 좋소.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보는 눈이 훌륭하지. 내 평소 그대에게서 배우는 게 많소이다.”
“과찬이시옵니다.”
“그러고 보니, 그때 그대가 말해준 그 일화도 제법 좋았지.”
“일화라면 어떤?”
“밭을 가는 농부에게 누런 소와 검은 소 중에 뭐가 더 맛있느냐 물었더니, 농부가 귓속말로 대답했다는 것 말이오. 거 참 흥미로웠어.”
“뭔가 제가 아는 얘기와 다른 듯 합니다만···.”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지가 먹히는 건 알아듣는다는 게지. 이 일화의 교훈은 바로 이렇소.”
“······.”
“어쨌든 소고기는 맛있다.”
궁극의 기승전육起承轉肉.
황희 정승은 바야흐로 소고기 예찬에 몰입하시는 왕을 불경하게 바라보다 생각했다.
‘의외로 별 생각 없으신 건지도.’
===
탤런트 : [세종대왕의 언어능력](Rank A)을 습득했습니다.
-이 탤런트는 언어이해, 논리적 사고, 추론 등의 지능지수에 관여합니다.
-동조율 : 13.78%
===
‘···맙소사. A 랭크라니.’
높을 거라고 대충 생각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나는 경악성을 간신히 참으며 내 손에 얹힌 목함을 내려다보았다.
제음일기制音日記.
이건 세종대왕께서 문자를 만드시면서, 공부하고 깨달은 내용들을 잡다하게 적은 서책이었다. 일종의 연구일지다. 당연히 조선왕 이도 본인의 필체로 되어 있다.
학문적 의미를 차치하고서라도,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또 얼마나 높을 것인가.
나로선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래서 이완용이 이렇게 꽁꽁 숨겨둔 것일 테지.’
이게 공개된다면 조선인들의 가슴에 어떤 파문이 일 것인가···.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거다.
그렇다면 얻은 그 순간 어째서 바로 파기하지 않았을까. 한때 조선왕조에 충성했던 신하로서의 마지막 양심이었던 걸까. 아니면 놔두면 훗날 값지게 팔 수 있으리라 판단했던 걸까.
후자이겠지.
다만 그는 자식들도 완전히 믿지 못했다. 죽는 그 순간까지 그랬다. 그랬기에 그 후손들에게 유산이 이어지지 못하고 지금껏 묻혀있던 거겠지.
불신의 삶을 산 정치인의 말로란 그런 법이었다.
< 8. 아이들 - 4 > 끝
ⓒ 달의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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