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이 자꾸 늘어-35화 (35/164)

< 8. 아이들 - 7 >

“요! 뱃맨! 여긴 어쩐 일로 왔어?”

학생회 서기 은지은이 부실 한 구석에서 수다를 떨고 있다가 날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은지은은 원래 언론부 방송반이었는데, 학생회로 스카우트 된 지금은 두 조직을 잇는 연락책이자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그냥 놀러오는 것 같다만 아무튼 그랬다.

“잘 됐다. 야, 너 취재 같은 거 할 생각 없냐.”

“취재? 무슨 취재. 나 지금은 방송반 활동은 쉬고 있는데.”

“학생회로서도 중요한 일이야.”

“아항-.”

그녀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전부터 느낀 건데, 얘는 흥미로운 일의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아낸다. 몸이 예능을 찾아다닌다고 해야 하나. 그 분야의 눈치로는 나조차 넘어설지 모른다.

“뭔지 맞춰볼까?”

“그러든가.”

“몰카범 색출?”

“맞는데, 조금은 달라.”

“그럼 할래.”

“조금 다르다니까. 뭔지 듣지도 않고?”

“그러니까 하는 거야. 뻔한 건 재미없잖아.”

역시 촉이 좋다.

그녀는 방 안으로 들어가서 몇 마디 쑥덕쑥덕하더니 카메라맨 한 명까지 섭외해왔다.

“여기 촬영하시는 밍기밍기 선배. 선배 여긴 한열이라고, 배트맨이에요.”

“난 최민기. 반갑다. 네가 걔구나? 전상진 구했다는?”

“···어, 선배님을 데려올 줄은 몰랐네요. 안녕하세요. 배트맨은 아닙니다.”

“걱정 마. 은지은 헛소리 들은 경력은 너보다 내가 훨씬 기니까. 어쨌든 한 번 보고 싶었다. 학생회에서 막지만 않았어도 너 취재하러 갔을 텐데.”

“그래요?”

“그래. 상진이 측에서 사건이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래서 참았지.”

난 속으로 웃었다. 상진이는 그런 거 생각도 안 했을 걸. 이것도 윤정희의 작품일 것이다. 어쩐지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아는 사람만 안다 싶었다.

“근데 아마 오후 통째로 무단결석할 거 같은데···. 지은이는 그렇다 쳐도 선배는 괜찮으세요?”

“난 왜 그렇다 치는 거냐 닝겐.”

“아아, 괜찮아. 우리 촬영 때문에 그런 건 부지기수거든. 선생님들도 사정 아셔서 대충은 이해해주셔.”

“네, 그러면 바로 출발하실까요.”

“그러자고. 근데 내가 뭘 찍는 건지 아직 못 들었는데.”

“···아.”

생각해보니, 사실대로 말하면 안 따라올 가능성이 높겠는데.

“그거 아세요? 여자 기숙사에 속옷 도둑이 든다는 소문이요.”

“들어는 봤지. 안 그래도 기사 쓰려고 준비 중이더라.”

“제가 생각할 땐···. 이 속옷 도둑이랑 몰카범이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으래?”

지은이와 민기 선배가 서로 반대쪽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의 의구심을 난 이해했다. 여자 기숙사와 사건이 벌어진 1별관 샤워실은 학교 끝과 끝에 위치했다. 동일범이라기엔 동선낭비가 너무 크다.

“그럴듯하긴 한데, 뭔가 단서가 있어서 하는 말이야?”

“아니요. 그래도 이상하잖아요. 이렇게 같은 시기에 유사한 사건이 겹쳤다는 것이. 의심을 해 볼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네 심증밖에 없다 이거잖아.”

“그렇긴 하죠. 근데 이건 비밀인데요···.”

“응?”

“제가 좀 영험합니다.”

“······.”

“상진이 사건도 그래서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죠. 전날 꿈에서 어떤 굴다리가 눈앞을 스치는데···.”

현지 쌤이 하도 무당무당 해대길래 아예 그쪽으로 캐릭터 빌드업을 해볼 생각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믿지는 않을 테니 지금은 좀 억지를 써서라도···.

“쩌는데.”

“쩔어.”

“···응?”

“함께 해서 영광이야. 나 열심히 찍을 게.”

“가자! 어서 앞장 서! 뱃맨! 아니, 오라클!”

“근데 그 ‘영험합니다.’부터 다시 말해주면 안 될까? 내가 카메라를 아직 안 켰는데.”

“······.”

저널리스트에서 슈퍼히어로의 사이드킥으로 전직한 두 선후배가 눈빛을 반짝였다. 정확히 ‘비밀인데요’부터 반짝이기 시작했다.

역시 은지가 데려올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이 선배도 정상이 아니야.

우린 건물을 나와 기숙사가 위치한 서문 쪽으로 향했다.

가는 길 오른편에 위치한 제2별관은 역시나 여학생들로 바글바글했다. 무심코 시선을 두니, 누군가와 눈이 딱 마주쳤다.

“···응?”

“···으음?”

배윤하가 정문 옆 화단에 뭔가를 설치하고 있었다. 자그마한 카메라로 보였다.

눈이 맞은 김에 멈춰서니 그녀가 입모양만으로 ‘왜, 뭐’하고 뻐끔댔다.

“네가 몰카범이었냐?”

“뭐래, 아니거든. 범인 잡으려고 장비 설치하는 거거든.”

“여기 CCTV 많잖아. 또 설치해?”

“일개 학생한테 그걸 공개하겠니. 내가 뭐라고. 그러니까 직접 찍어야지.”

“근데 장소 선정이 잘못된 거 아니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범인이 켕겨서 올 수나 있겠어?”

“그러니까 여기지. 학교를 가로질러야 되는 제1별관까지 침투한 놈이야. 대담하고, 자신만만하고, 사람이 많으면 많은 대로 오히려 군중 속에 숨는 스타일이겠지. 그런 놈이니까 더더욱 여기로 올 거야.”

“···그러냐. 그놈 눈으로 보면 여기가 먹잇감이 제일 많아 보이긴 하겠네.”

“바로 그거···. 근데 내가 왜 친절하게 설명중인 건데. 훠이훠이. 저리 가. 범인은 내가 잡을 거야.”

“그래 수고해라. 내가 먼저 잡을 거지만.”

“흥. 그런 너는 어떻게 잡게?”

“뭐, 내 영험한 감으로?”

“우 와 그 거 참 대 단 하 다.”

배윤하가 교과서 읽기를 하며 카메라 설치를 마쳤다.

은지은이 이왕 나온 김에 리포터 역할을 제대로 해볼 셈인지 배윤하에게 종종 뛰어가서 인터뷰를 땄다.

배윤하는 순식간에 대외용 미소를 꺼내며 범죄박멸의 의지를 어필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몰카로 몰카범을 잡겠다는 이 계획은 의외로 제대로 들어맞는다. 배윤하는 이 방법으로 일주일 만에 범인을 특정해낸다.

통찰 역시 대부분 적중.

옛날부터 느낀 거지만 참 영리한 녀석이었다.

‘미안하지만, 이번엔 내가 먼저다.’

다시 걸어걸어 기숙사 정문에 도착. 난 카메라를 의식하며 말했다.

“아마 범인은 대원산 쪽에서 침투했을 겁니다. 정문 쪽은 사감실이 바로 앞이라 바로 들켰을 거예요. 산등성이를 타고 지붕으로 내려가고, 지붕에서 다시 테라스를 통해 3층 창문으로 진입했을 겁니다.”

“일리는 있네요. 범인에게 특전사급 레펠 하강 실력이 있다면요. 무리한 가정 아닌가요?”

“그거야 조사해 보면 나오겠지요. 그런데 그 전에···.”

난 카메라를 찍는 민기 선배를 지나쳐 돌담이 굽어지는 끄트머리까지 걸어갔다.

거기서 잠시 멈춰 서고,

팔을 쭉 뻗어 모서리 뒤편의 무언가를 잡아챘다. 다시 손을 회수하니 거기엔 누군가의 멱살이 잡혀 있었다.

“으앗! 으아아!”

“범인?! 범인인가요?!”

“그건 아니고요. 야 너 뭐냐? 왜 자꾸 따라다녀? 아, 카메라 잠깐 꺼두셔도 되요.”

“······.”

박종철이 고개를 비스듬히 틀어 시선을 피했다.

입을 비쭉 내민 것이 저도 지금 상황이 탐탁찮은 모양이다. 난 녀석의 낌새를 읽으며 의도를 파악해냈다.

“김송헌이 시켰냐?”

“······!”

“뭘 놀란 얼굴이야. 뻔하지 뭘. 지는 바빠서 나한테 신경 쓸 겨를이 없고. 근데 듣자하니 내가 한창 잘나간다지. 그래서 저놈이 또 뭘 하나 일거수일투족 조사해서 갖다 바치라는 지시를 내렸겠지. 아니냐?”

“······!!”

“맞네.”

박종철은 한 마디도 않았지만 얼굴 표정으로 대신 대답했다.

이 자식 진짜 표정 못 숨기네. 국립국어원에 건의라도 해볼까. 포커페이스 반대말로 ‘박종철 면상’이라고 명명하면 딱이겠는데.

“으유 이놈 진짜. 꺼져 자식아. 나 남자 놈한테 스토킹 당하는 취미 없거든?”

“···내가 무슨 스토킹을 했다고···!”

“그럼 미행이라고 정정해주지.”

“냅두시지? 내가 내 발로 다니겠다는데 무슨 상관이야?”

박종철이 거칠게 내 손을 뿌리쳤다.

난 놈을 한심하게 쳐다보다 그냥 외면하기로 결정했다. 좀 보인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으니까.

난 고개를 돌렸다.

대원산은 학교를 비스듬히 감싸며 우뚝 서 있었다.

“일단 대원산을 오릅니다. 거기서 범인의 흔적을 찾아볼 건데요. 선배 괜찮으시겠어요?”

“그런 거 하라고 카메라맨이 있는 거지. 걱정 마.”

“예, 그럼 가죠.”

“역시 오라클쯤 되면 방해 세력도 있는 법이군. 음음. 미행이라···.”

“······.”

산을 올랐다.

정비된 등산로 따윈 없었고 산은 제멋대로 굴곡졌다. 발밑으로 낙엽과 나뭇가지가 우드득 밟혔다.

슬쩍 뒤를 보니, 박종철이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우리 뒤를 쫓고 있었다.

30분쯤 오르니, 기숙사 지붕과 가장 가까운 능선을 탈 수 있었다. 만약 내가 말한 방식대로 침입했다면 이곳을 반드시 지났을 것이었다. 그러나.

“놀라울 정도로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자체 나레이션이냐.”

“이게 어찌 된 일이죠! 이한열 군! 아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데요!”

“뭐, 그럴 수도 있지요. 좀 더 산으로 들어가 보죠. 그럼 뭐라도 나올 겁니다.”

“···라는 말에 점점 불안해지는 리포터였다.”

쯧쯧.

이 사람들도 아직 믿음이 부족하군.

바로 오르려는데, 이제야 가까스로 따라와서 땅에다 헛구역질을 하는 박종철이 눈에 밟혔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서는 전혀 아니고.

‘···그러고 보니 저놈 묘한 속성이 있었지.’

얘를 이용하면 좀 더 그럴듯한 스토리가 만들어지겠다 싶었다.

나는 녀석의 등에 대고 말했다.

“야 박종철. 이왕 따라오는 거 나 좀 도와라.”

“···흐억. 허어억. 싫어어. 허억. 허억···.”

“김송헌 말은 재깍재깍 들으면서 치사하네. 일단 듣고 나서 결정하지?”

“···뭘 말하든 싫어. 후우후우. 안 할 거야. 젠장, 뭐 이런 데를 처올라오고···.”

“보일러실 뒤편 다락문 아래 세 번째 칸.”

움찔.

저 새파란 얼굴은 힘들어서일까, 아님 불안한 미래를 직감해서일까.

“···네가 그걸 어떻게···.”

“애지중지 숨겨놨던데, 꽤 아끼는 그림들인가 봐.”

“···뭐야, 협박이라도 할 셈이야?”

“협박은 무슨. 난 그냥 민새랑 혁재한테 문자를 보낼 뿐이지. 얘들아, 재밌어 보이는 게 있던데···하고.”

“안 돼! 그만 둬! 이 악마 자식아!”

민새와 혁재, 우리 보육원에서 이 두 악동들은 왕성한 창작욕으로 악명 높았다.

특히 그림 비슷한 거라도 보이면 일단 돌격해서 그들 나름의 해석을 가미해 재창조하는 일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박종철에게 그들은 주적이자 천적, 강림할 때마다 재해를 불러오는 파괴신이었다.

어쨌든.

나는 텍스트를 다 치고 전송만 남겨놓은 문자를 그에게 보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할게.”

“으응? 잘 안 들리네?”

“한다고 이 새끼야!”

“좋아.”

나는 폰을 집어넣고, 메고 있던 백팩에서 뭔가를 뒤적뒤적 찾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톤으로 말했다.

“지금부터는 미끼를 쓸 겁니다.”

“미끼? 어떤 미끼를 말씀하시는 거죠?”

“이런 거죠.”

난 흰색 삼각팬티를 꺼냈다.

이 예상외의 전개에 모두가 아연실색했다.

“참고로 남성용입니다.”

“누구도 궁금해 하지 않은 걸 굳이 말하는 이한열 군이었다.”

“어쨌든.”

난 팬티를 박종철에게 휙 던졌다. 녀석이 질겁하면서 팬티를 받았다.

“뭐야! 이 새끼야 나한테 뭘 시키려는 거야!!”

“뭐긴 뭐야 미끼라니까.”

“이건 무슨 상황일까. 악마를 사냥하기 위해 악마가 되고, 변태를 잡기 위해 스스로 변태가 되는 전략인 걸까. 리포터는 의문을 금치 못하였다···.”

“자자. 산 중앙으로 더 올라갑시다. 미끼 역할의 박종철은 좀 떨어져서 오고.”

의문과 경악 속에서도 등산은 속행되었다.

불신이 팽만하는 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나는 설명을 덧붙였다.

“범인은 속옷 도둑이므로, 속옷으로 꾀어내는 게 제일 아니겠습니까? 뭔가 문제라도?”

“전부 문제라서 뭘 지적해야 될지 모르겠는데요.”

“진짜 이게 뭐냐고오!”

박종철이 멀찍이서 포효했다.

그는 손가락 두개만으로 속옷 끄트머리를 집게처럼 잡고 있었다. 깨끗하게 세탁했는데 알아주지 않아서 야속했다.

“아니!! 아무리 속옷에 환장한 놈인들! 이 상황에서 나 잡아줍쇼 하고 등장해주겠냐고오! 심지어 이건 여자 팬티도 아니잖아!!”

“변태자식. 그렇게 여자 팬티를 만지고 싶었냐?”

“아니 그런 말이 아니···!”

그때

박종철이 잡고 있던 속옷이 사라졌다.

“···잖아···?”

나 외의 모두가 깜짝 놀랐다. 카메라맨조차 당황해서 휘청거렸다. 나만이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범인입니다! 모두 쫓아가도록 하죠!”

범인은 잽싼데다가 예측불허의 거동을 보였다.

굴곡진 경사면을 아주 능숙하게 타오르고, 벽을 차고 진로를 순식간에 꺾으며 질주했다.

반면 우리의 못난 몸짓은 ‘휘청휘청’ ‘우왕좌왕’으로 표현함이 옳았다. 변명을 하자면 산은 두발짐승에겐 극히 불리한 전장이었다.

그나마 놓치지 않을 수 있던 건 전적으로 내 눈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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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명 사냥꾼의 동체시력](Rank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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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품점에서 발견한 낡은 모신나강 소총에서 얻은 탤런트다.

[동체시력]은 일단 시야 안에 들어온 것은 놓치지 않고, 어떤 미세한 변화도 잡아내는 우수한 눈.

모든 나무와 바위와 덤불들이 혼란스럽게 등장해도, 내 눈은 녀석의 작은 등에 고정된 채 묵묵히 그 거동을 추적했다.

이윽고 결승점에 다다르고,

우리는 마침내 범인의 실체를 목도할 수 있었다.

아니.

범인犯人이라면 틀린 말이려나.

“···고양이?”

범묘犯猫라 해야 옳겠지.

커다란 암반, 사람 머리 높이에 난 틈새에, 갈색 고양이가 ‘이제 왔냐?’는 표정으로 우릴 권태롭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놈은 그동안 훔친 수많은 여성 속옷들을 카펫처럼 깔고 앉아 있었다. 영광스럽게도 내 속옷도 놈의 컬렉션에 추가됐다.

호사스러운 놈이로고.

저 심드렁한 표정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냐, 이놈. 깜짝 놀라게 해주지. 난 준비해온 비장의 무기를 가방 안에서 꺼내들었다.

반려동물용 소형 이동장이었다.

내가 이동장의 입구를 열자, 놈이 고개를 바짝 세워들었다. 방정맞을 정도로 빠르게 눈꺼풀이 여닫혔다. 꼬리가 민활하게 허공을 휘저었다.

“그래 이 자식아. 네가 신출귀몰해 봐야 짐승이지.”

범묘 녀석이 자리를 박차고 뛰어올라, 이동장 안으로 쏙 들어왔다. 난 입구를 닫아주는 것으로 포획을 마쳤다. 사냥 끝.

“잡았다.”

난 이동장을 살짝만 열어 손을 쑥 집어넣었다.

턱을 쓱쓱 긁어주니 녀석이 기분 좋게 그르릉 울었다. 작은 이동장이지만, 녀석에겐 충분히 넓을 것이다. 필요로 하는 게 거기 다 있으니까.

고개를 드니 모두가 설명을 필요로 하는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이한열 군, 설명을 좀 해주실래요?

“속옷을 도난당한 학생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떤···?”

“같은 섬유유연제를 쓴다는 거죠. 좀 비싼 브랜드인데 특유의 향이 있습니다.”

“···섬유유연제···? 아아아.”

은지은이 알았다는 듯 길게 탄식했다.

“아마 사람 손에 크다가 버려졌거나, 주인의 부주의로 실종된 아이일 겁니다. 그럼에도 주인의 냄새만큼은 잊지 못했겠죠.”

“그래서 같은 섬유유연제 냄새를 찾은 거다?”

“제 추측은 그렇습니다. 거기서 느낀 게 그리움인지 평온함인지는 몰라도.”

그리고 이 이동장엔 그 섬유유연제가 원액 그대로 뿌려졌다. 이놈은 지금 거의 마약 중독에 버금가는 상태일 것이었다.

“와우. 미제 사건 하나가 해결됐네요. 근데 한열 군.”

“네.”

“이렇게 되면 몰카 사건이랑은 그다지 관련이 없는 것이? 그 아이가 몰카를 설치할 만큼 영리해보이진 않는데요.”

“그건 그러네요.”

“‘그러네요’라니. 이 싸람이. 여기까지 데려와 놓고 너무 무책임···. 어?”

은지은이 미간을 찌푸리고는 이동장 안을 유심히 바라봤다. 카메라 초점도 그런 그녀를 잡는다.

“···얘 어디서 많이 봤는데?”

“여기서 보셨겠죠.”

난 전단지 하나를 꺼냈다.

[우리 나비를 찾아주세요]

이 전단지 사진과 아주 흡사하게 생겼다. 사실 흡사한 게 아니라 같은 녀석이다.

“어어. 그러네요. 와, 그럼 얘가 나비인 거네요? 신기해라. 한열군은 그럼 알고 있었던 건가요?”

“그렇습니다. 저는 영험하니까요.”

“오오오···.”

“일단 주인에게 전화해보도록 할까요?”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컨텐츠 하나 찍자!! 속옷도둑 괴담에서 감동 스토리로 마무리되는 거지! 이야. 이거 조회수 좀 나오겠는데?”

“뭐야, 존댓말은 이제 버리기로 했냐?”

“아 몰라몰라. 안 그래도 피곤했는데 대충 하자.”

“거참.”

난 피식 웃으며, 전단지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금세 연결됐다.

-···예. 여보세요.

“아, 네. 전단지 보고 연락드리는데요. 제가 고양이를 본 거 같아서요.”

-아! 그러신가요? 혹시 어디···.

“대원고등학교요. 이쪽으로 오실 수 있으시겠어요?”

-네! 네!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셔서 이 번호로 연락 주세요.”

-네!!

통화가 끊기고, 우리는 슬렁슬렁 하산했다.

카메라는 계속 돌고 있었지만 은지은은 이제 리포터 컨셉은 갖다 버린 건지 걀걀대며 웃었다.

“안 그래도 계속 안쓰러웠거든. 그 언니, 다크서클은 턱까지 내려와서 전단지를 돌리고 있는데··· 아휴, 정말. 그래서 우리 언론부에서도 몇 번 기사도 내줬었어.”

“그래?”

“응. 뒤늦게라도 찾아서 다행이다.”

은지은이 해맑게 웃었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박종철이 묘한 표정으로 걷고 있었다. 난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 쳤다.

“야 고생했다.”

“뭐야. 빈말은 됐어.”

“진심이야. 덕분에 빨리 찾을 수 있었다.”

“···내 덕분이라고?”

“그래, 너 옛날부터 동물들이 이상할 정도로 잘 꼬였잖아. 친근하게 본 건지 만만하게 본 건지는 몰라도. 내가 미끼역할 했으면 한참은 더 걸렸을 걸.”

“······.”

“얜 네가 구조한 거기도 하지. 그러니까 이거 네가 들고 있어라.”

“내가?”

“그래 이 자식아. 나 어깨 아파.”

난 이동장을 박종철에게 떠넘기다시피 하고 다시 은지은 옆으로 돌아왔다.

슬쩍 보니, 그는 끈을 어깨에 걸지 않고, 마치 아기를 안듯이 이동장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옛날부터 쟤는 저랬지.

어깨에 대롱대롱 매달면 안에 있는 애가 얼마나 멀미가 나겠냐며 꼭 저렇게 안고는 했다. 내가 고양이는 균형감각이 좋아서 괜찮다고 말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저런 건 또 변하지 않는구나 싶어서

어딘가 그립고

입맛이 텁텁해져왔다.

산을 다 내려오자, 딱 타이밍 좋게 전화가 걸려왔다.

우린 교문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교문에 도착하니, 노란머리에 후줄근한 복장 그대로의 그녀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고양이 주인이시죠?”

“예! 예! 안녕하세요. 혹시 저희 아이는 어디서 보셨는지···.”

“사실 봤다기 보다는, 가서 그냥 데려왔습니다.”

“···예?”

박종철이 이동장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가려다가, 멈칫했다. 멈칫한 발걸음은 더 움직이지 않았다.

어째서

반려동물을 되찾았다는 소식을 들은 주인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가.

“왜 그러시죠?”

“···아, 아뇨. 그냥 보셨다고만 말해서. 놀랐어요. 찾아주실 거라곤 생각지 못했거든요. 아, 정말 고맙습···.”

“그쵸? 원래는 학교 안으로 들어가셔야 되는데.”

“예?”

“그렇잖아요. 그동안은 고양이 찾는다는 명목으로 빈번하게 출입하셨을 텐데.”

난 그녀에게 한 발 다가섰다.

“들어가서 그 눈가에 꺼먼 화장도 지우고.”

또 한 발.

“가발도 벗고. 그 가방에 있는 교복으로 갈아입으면 이 학교 학생으로 쉽게 변신. 때마침 가을이겠다, 마스크도 쓰시겠네.”

애당초 고양이 이름이 나비가 뭐냐.

요새 애묘인 중에 누가 저런 몰개성적인 이름을 붙이나. 뭐, 검은 녀석이었으면 네로라고 하려고?

애당초 전단지의 사진부터가 수상하다.

분명히 배경이 외부인데, 주인이 가슴줄을 안 채워놓는다는 게 말이 되나. 저건 이 산에 서식하는 고양이를 찾아가서 멀리서 찍고 확대시킨 사진이다.

왜?

여길 드나들 명분을 만들려고.

다른 데는 몰라도 교문만큼은 경비의 눈을 피할 수 없으니까.

고양이를 찾아다니는 불쌍한 주인. 누가 그런 사람을 의심하겠는가? 학생들이 직접 전화를 줄 테니 알리바이도 명확해진다.

“몰카범은 남자일 거라는 선입견을 잘 찌르셨어. 안 그래?”

그녀가 뒷걸음을 쳤다.

나는 이전보다 발을 더 크게 성큼 내딛어, 그녀의 팔을 움켜쥐었다.

“잡았다. 요놈.”

< 8. 아이들 - 7 > 끝

ⓒ 달의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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