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이 자꾸 늘어-36화 (36/164)

< 8. 아이들 - 8 >

“잡았다. 요놈.”

“···왜, 왜 이러세요. 대체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전 그냥··· 그냥 제 아이를 찾고 싶었을 뿐인데···.”

“아, 그러셔?”

“이러지 마세요···. 제발 이러지 마세요···. 아, 아파요···! 이것 좀 놔주···.”

그녀는 혼란스러워하며 울먹였다.

연기가 제법이었다. 이 대담한 범행행각이 걸리지 않은 것에는 그 연기 실력도 한몫했을 거라 확신한다.

여자와 남자.

두 뼘이 넘는 신장 차.

윽박지르는 자와 겁박 받는 자.

왜소한 신체와 좀 억울해 보이는 얼굴도 이 상황에 잘 부합했다.

그녀는 영악했다. 여성이라는 점을 무기로 사용할 줄 알았다. 역으로 나를 성추행범으로 내모는 것도 손쉬울 테지.

‘그래서 카메라맨을 데리고 온 거지. 관중도 섭외한 것이고.’

카메라 앞이므로, 여긴 범행현장이 될 수는 없다.

밀리 초까지 기록하는 기계의 엄정함은 이 아스팔트길을 진실이 공박되는 청문회장으로 만들었다.

이젠 그녀의 가면을 벗길 시간이었다.

“그래? 그럼 묻지요. 저 이동장에 있는 고양이, 당신의 반려동물이 맞습니까?”

“···예, 예, 맞아요.”

“저 아이 복부에 특이사항이 있던데 뭔지 말씀해보시죠.”

“······.”

“왜 말을 못하시죠? 아, 멀리서 사진만 찍어서 알 수가 없으시겠지? 잡아서 배까지 뒤집어 보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 그냥 생각 중이었어요! 우리 나비한테는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었다구요!”

“말이 너무 늦어, 이 여자야. 자, 내가 그 가방에서 여자교복과 몰카장비가 나온다는 데 내 돈 모두와 내 손모가지를 걸겠다. 너는 무엇을 걸래?”

“···지금 내 가방을 강제로 뒤지겠다는 건가요···? 마, 맙소사.”

“쫄리면 뒈지시든가.”

“······.”

“그럼 지금부터 확인 들어가것습니다. 쿵짝짝 쿵짝짝- 따라디라라라-.”

한 손으로는 그녀의 팔을 쥐고, 나머지 빈손을 뻗어 그녀의 가방을 건드렸다.

그러자

여자가 내 손목을 꺾으며 내 목덜미에 하이킥을 올려 차는 게 아닌가. 지금까지의 맹해 보이는 이미지로는 상상하기 힘든 날카로운 일격이었다.

물론 난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

그대로 고개를 숙이며, 킥을 지탱하는 여자의 오금을 손으로 휘감고 그대로 넘어뜨렸다.

여자는 그 와중에도 반응. 킥을 회수해서 내 어깨를 걷어찼다. 얽혀있던 우리 둘이 떨어졌다. 여자는 뒤구르기를 하며 능숙하게 낙착.

가면을 벗어낸 곳엔 표독한 뱀의 낯짝이 자리해 있었다.

“···칫!”

불리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대로 도주한다.

베테랑 스프린터의 포스마저 보이는 그 뒷모습에서는 전단지를 나눠주며 어눌하게 걷던 여자의 흔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순식간에 우리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거리는 고요했다.

카메라맨과 리포터는 물론 지나가던 관전인까지 모두 이 충격과 공포의 전개에 말을 잃었다. 말 모르는 고양이만 눈치 없이 야옹거렸다.

내가 일어서서 먼지를 툭툭 털 즈음에야 정신을 차린 은지은이 신음처럼 말을 흘렸다.

“···사, 사쿠라여?”

내가 픽 웃으니 그녀가 펄떡 뛰며 다가왔다.

“아, 아니 너는 그걸 어떻게 알았어?”

“음, 영험하니까?”

“아 쫌! 이번엔 진짜 궁금하단 말야!”

“냄새.”

“···응?”

“그 여자한테서는 섬유유연제 냄새가 안 났거든. 그래서 앞뒤 정황을 짜맞춰본 거지.”

나는 준비해둔 변명을 둘러댔다. 사실은 전생에 유명했던 사건이라 기억하고 있는 거지만 말이지.

“그, 그럼 빨리 쫓아가야지!!”

그때 박종철이 소리를 빽 질렀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어딨어?! 빨리 쫓아서···.”

“진정 좀 해 인마. 고양이가 다 놀랐네.”

“···젠장. 젠장. 속으로 얼마나 응원했는데···! 젠장! 이 비열한 놈들!”

의외의 소녀감성이라기엔 이곳 모두의 공통된 심경일 것이었다.

심지어 언론부인 두 명은 그걸 홍보해주기까지 했다. 본의 아니게 몰카 범죄에 일조한 셈이었으니 과연 심각할 수밖에. 분노에 죄책감이 담기고, 그것은 곧 사명감이 됐다.

은지은이 장난기를 싹 지운 얼굴로 말했다.

“선배. 이거 다 촬영 됐죠?”

“어, 하나도 남김없이 다 찍었어.”

“···그럼 일단 경찰에 제보해서 현상수배부터 띄우는 게 좋겠네요. 지금 당장···.”

“아니, 경찰에 연락할 필요는 없어.”

“···응?”

난 그들을 제지했다.

고작 범인 얼굴 하나 알아내자고 내가 이런 쇼를 벌였겠는가.

이제부터 난 놈들의 근거지까지 탈탈 털어버릴 생각이었다.

“아마 공범이 있을 거야. 경찰 조사에서도 단독범일 가능성이 낮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나는 요즘 시대에 보기도 힘든 피처폰을 손에 들고 흔들었다.

“그게 뭐야?”

“아까 부딪혔을 때 슬쩍 했지. 이것 자체는 별 거 없을 거야. 보나마나 대포폰일 거고 연락처도 몇 개 없어. 하지만 이걸 잃어버린다면 여자는 좀 곤란하겠지.”

“···어어? 슬쩍했다고? 그럼···.”

“발각됐으니 다음 행보는 당연히 증거 인멸이겠지. 근데 이거 어쩌나. 동료에게 연락할 수가 없게 됐네. 요새 누가 번호를 외우고 다니겠어? 그러니까 지금 그 여자는···.”

“···아마도 근거지로 직접 향하고 있을 거다?”

“바로 그거야. 그러니까 그 뒤만 잘 쫓으면 우린 놈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 거지.”

“···하지만···.”

우린 여자를 방금 놓쳐버리지 않았느냐고, 은지은의 근심한 표정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걱정 마셔. 다 방법이 있으니까.”

그때 우리 앞으로 순찰차 하나가 끼익 하고 섰다.

창문이 내려가자 권익 순경이 운전석에서 등장했다. 무척이나 복잡한 표정이셨다.

“오셨어요?”

“···우리 전생에 뭐 있었나? 왜 매번 너한테 말려드는 것 같은 기분이지?”

“그럴 리가요. 다 착각입니다.”

“어쨌든 빨리 타. 이젠 나도 모르겠다···.”

내가 조수석에 타니, 멀뚱하게 보고만 있던 삼인방도 나를 따라 뒷좌석에 후다닥 올라탔다.

꽉 찬 준중형 순찰차가 버겁게 출발했다.

난 준비해둔 어플을 실행시키고는, 센터페시아 앞에 폰을 턱 놓아두었다. 넓은 맵 속에서 빨간 점 하나가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이건?”

“이거 따라가실 수 있으시겠어요?”

“그럴 수야 있다만. 이거 GPS 추적하는 거 아니냐? 이거 불법 아닌가?”

“경찰도 모르면 아니지 않을까요.”

“에라이 모르겠다···.”

어쨌든, 삼촌에게 부탁해 받은 게 이거다.

요새 GPS 발신기야 드문 게 아니지만, 오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미국굴지의 PMC에서 쓰는 최신형 물건을 주문한 것이다.

난 핸드폰을 소매치기하면서 GPS 발신기를 여자의 몸에 은밀히 부착했다.

물론 불법이지만, 권순경의 양심을 위해 난 잠시 닥치기로 했다.

대신 뒤에 앉은 은지은에게 입모양으로만 말했다.

-이 부분, 편집.

은지은은 무척 흥미진진해 보이는 얼굴로 OK 사인을 되돌려주었다.

그렇게 10여 분 간의 박진감 없는 추격전이 지나가고.

“속도가 느려졌다. 택시에서 내려서 걸어가고 있어.”

“우리도 이쯤에서 내리죠. 저랑 권순경님만 갈 거니까 나머지는 대기하고 계시죠.”

“···어어? 우리는 안 가?”

“거기 뭐가 있을 줄 알고 따라 가려고 해? 잘못하면 칼 맞을 수도 있다.”

“여기까지 와서 가만히만 있으라고? 싫어. 나는 따라갈 거다.”

의외로 박종철이 의욕을 보이고 있었다. 눈빛이 이글거리는 게 정말 배신감이 깊었던 모양이다. 민기 선배도 옆에서 거들었다.

“카메라맨이 몸 사리면 아무 것도 못 찍지. 나도 갈 거야. 말려도 상관없어.”

“···나 참. 그럼 민기 선배만요. 저희 뒤에서만 찍는다는 조건입니다.”

“나는···!”

“너도 가면 지은이 혼자만 남잖아. 생각을 해라 자식아.”

난 가방에서 호신용 전기충격기를 꺼내서 박종철에게 휙 던졌다.

“······.”

“일단 갖고 있어. 위험할 때만 사용하고. 경거망동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잘난 척은.”

“그럼 빨리 움직입시다. 놈들이 증거를 다 파기하기 전에.”

우린 GPS 신호를 따라서 이동했다. 빨간 점은 이미 근거지에 도착했는지 멈춰있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젠장. 빌라잖아.”

GPS는 수평적인 위치정보만 알려준다. 대상의 수직적인 높이를 모르는 이상 정확한 위치는 알아낼 수 없다.

“···GPS 정보로 보면 일단은 12호실 라인인 거 같네요. 총 5층짜리니까.”

“하나씩 두드려 볼까?”

“일단 잠시만요.”

난 빌라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우체통을 자세히 살폈다.

“112호, 312호, 412호는 일단 제외.”

“···어째서?”

“우체통이 깨끗하잖아요. 사람이 여기 실거주하면서 주기적으로 회수한다는 뜻이죠.”

“? 몰카범들도 거기 살고 있잖아.”

“범죄 은신처를 자기들 명의로 했을까요. 분명 브로커한테 소개받아서 장소만 빌린 거겠죠. 그러니 우편을 이쪽으로 받지도 않고, 더욱이나 우체통 따윈 거들떠도 보지 않겠죠.”

“그럼 2층이나 5층이라는 건데···. 야 넌 근데 이런 걸 어떻게 다 아냐.”

“추리소설 보면 다 나와요.”

전생에 많이 해봐서 익숙하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단독범이나 어중이떠중이라면 자택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볼 때 얘들은 전문가 집단이었다.

“그럼 둘 중에 어딜까?”

“제가 생각이 있어요. 순경님하고 민기 선배님이 좀 도와주셔야겠는데.”

난 둘을 각각 212호와 512호로 올려 보냈다.

그리고 여자에게서 훔친 피처폰을 꺼내, 최근 통화목록에서 가장 위쪽에 있는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

달칵.

-···여보세요.

낮고 음침한 남자의 목소리. 목소리 뒤쪽으로는 분주한 기색이 전해진다. 이미 파기에 들어선 것이다.

“아, 제가 핸드폰을 주웠는데요. 혹시 핸드폰 주인하고 아는 사이십니까?”

-주웠다고? 어디서.

“대원고등학교 근처에서요. 길가에 떨어져 있던데요.”

-······.

남자는 한참을 조용히 있더니 짧게 뱉었다.

-그거 그냥 버리쇼.

뚝.

버리긴 왜 버리나. 소중한 증거물이 되어줄 건데.

난 폰을 다시 집어넣고 고개를 들었다. 복도 창문에서 민기 선배와 권 순경이 팔로 표시를 해왔다.

2층은 X.

5층은 O.

찾은 방법은 간단했다.

‘이런 허름한 빌라는 벽이 얇은 편이지.’

그러므로 내가 전화를 걸 때 안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리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난 서둘러 5층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며 가방에서 가스검침원 옷을 꺼내 덧입는 것도 잊지 않았다.

5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권익 순경이 뭔 그런 준비까지 했느냐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난 씩 웃으며 허리띠를 풀어 오른손에 쥐었다. 권 순경은 총을 쥔 손을 가슴에 바짝 붙였다.

“그거 진짜 총이에요?”

“가스총이지만. 피 대신 눈물을 줄줄 뽑아 줄 거야.”

“좋네요. 준비 되셨어요?”

“그래.”

난 초인종을 눌렀다.

부산하던 저편이 일순 경직됨이 밖에서도 느껴졌다. 켕기는 것들의 켕기는 반응이었다. 난 느긋이 기다렸다. 렌즈를 통해 이쪽을 관찰하고 판단할 시간을 충분히 주었다.

다시 초인종으로 손을 옮기자, 그제야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쇼.”

“예-! 가스검침 나왔습니다! 잠깐 문 좀 열어주실 수 있으···.”

“꺼져. 그런 거 필요 없으니까.”

깜찍한 반응이로세.

난 다시 초인종을 눌러드렸다.

“꺼지라니까!”

“예-! 그럴 수는 없네요! 저도 안 하면 상사한테 엄청 까이거든요! 하하!”

“······.”

반응이 없어?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무반응에 상처 입은 심경을 담아, 비트에 그루브까지 넣으며 초인종을 두드렸다. 띠딩- 띠디디딩- 딩딩-.

내 호소력 짙은 연주에 감명을 받았음인가. 바로 잠금장치가 풀리며 문이 벌컥 열렸다.

“뭐 이런 또라이 같은 새···!”

난 반쯤 열린 문을 거세게 걷어찼다.

남자의 팔뚝은 나오다 말고 문짝과 문틀 사이에 끼어 으깨졌다. 우득-!

“-끄아아악!!”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안으로 진입했다. 권익 순경이 가스총을 겨누며 외쳤다.

“모두 꼼짝 마! 경찰이다!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면 증거인멸 혐의 추가야! 다 멈춰!!”

< 8. 아이들 - 8 > 끝

ⓒ 달의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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