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금빛 - 1 >
9. 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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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상대성 이론을 살아서 증명하는 것 같아.
한 때 사귀었던 연인이 최석현에게 했던 말이었다. 보면 알겠지만 물리학을 전공하던 친구였다.
최석현은 과연 그런가 싶다가도, 또 한 편으로는 과연 그렇구나 싶었다.
수학문제를 풀고 있자면,
시간이 가끔 다가와 본분을 잃어버릴 때가 있었다. 흘러서 뒤로 가버리지 않고 머물러 쉬곤 하던 순간들. 그때마다 그는 버겁던 숨을 잠시 거기에 내려놓을 수 있었다. 숨과 시간이 함께 잠잠하여 세상은 고요했다.
그것이 밖에서 보기에도 느껴진 모양이지. 최석현이 기억하기로 그녀는 두 번 정도 저런 말을 꺼냈었다.
교제를 신청하면서 한 번.
결별을 선언하며 또 한 번.
처음에는 시간조차 휘게 만드는 거대한 중력을 느꼈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모든 걸 빨아들이다 결국 아무 것도 아니게 되는 블랙홀 같다고 말했다.
자신은 그때 뭐라고 대답했던가.
이때와 저때의 대답이 달랐던가.
“······.”
그래.
시간 같은 건 흐르지 않았으면 했다. 삶이란 어쩜 그렇게 분주한가. 여기에 다들 멎어서 숫자와 기호로 된 한 권의 책이 되면 어떠할까. 세상은 단지 도서관이면 좋지 않을까. 그거면 족하지 않을까···.
그런 헛된 바람을 품었다.
그리고 삶의 끝을 목도하고 있는 지금, 그런 몽상으로 살아온 대가를 치르고 있다며, 최석현은 조급하게 한탄했다.
“요샌 안 보이던데 뭐 하느라 그리 바빴나?”
“···이용하 교, 교수님.”
최석현은 말을 조금씩 절었다.
자폐증은 거의 극복했지만 그 잔재는 이런 부분에 조금씩 남아 있었다.
“요새 개, 개인적으로 연구할 게 이, 있어서요.”
“자네가 그렇게 열중하는 건 처음 보는구만. 그건가? 리만 가설?”
“아, 아뇨. 그, 그건 처음부터 풀려고 거, 건드리던 게 아, 아니니까요.”
“그래 그랬지. 취미 생활이랬던가? 자네도 어지간히 괴상한 사람이야.”
“···하하하.”
리만 가설을 탐구했던 건 존 내쉬 교수의 영향이었다.
딱 한 번 만났을 뿐이지만 이상하게 그에게 끌렸다. 아마 그의 개인적인 이력 때문이겠지. N극이 S극을 쫓듯. 요철이 다른 모양의 요철에 맞아 들어가듯.
존 내쉬 교수는 리만 가설을 풀려다 조현병에 시달렸다. 너무 거대한 이치는 때로 들여다보는 사람을 잡아먹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최석현은 반대였다.
그의 정신은 원래부터 반쯤 부서져있어 그 빈 부분에 숫자와 기호를 채워야 그럭저럭 온전해졌다. 그는 리만 가설을 증명하지는 못했지만 그 안에서 숨 쉬는 건 제법 안락했다.
“그래. 뭘 하든 좋은데 가끔 얼굴 좀 보자고. 이 넓은 곳에서 한국인이라곤 두 명밖에 없는데 이렇게 소원해서야 되겠어? 이 노인네 삐지면 오래 간다?”
“······.”
가볍게 최석현의 어깨를 친 이용하 교수는, 그제야 그의 이상을 깨닫는다.
평소보다 해쓱한 얼굴.
어딘가 초조해 보이는 기색.
잠깐 스치듯 만진 몸은 섬뜩할 정도로 살점 하나 없었다.
“···자네 무슨 일 있나? 어디···.”
“교수님.”
“···응?”
“저는 지, 지금껏, 도망치며 사, 살아왔어요. 수학은 제겐 조, 좋은 도피처였죠. 그걸로 족하, 하다고. 그러다 죽어도 좋다고.”
“······.”
“하지만 아, 아니었어요.”
이용하 교수는, 자신이 발탁하고, 키우고, 결국엔 자신을 넘어버린 자랑스러운 제자를 보았다.
그가 처음으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1년. 1년 남았대요. 제 시간이.”
“···그게 무슨···.”
“전 제가 있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어요. 제가 훌륭하게 잘 컸고 이제 누구의 폐도 끼치지 않으며 오히려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증명을.”
“······.”
“도와주시겠어요?”
놀랍게도 그는 조금도 더듬거리지 않았다.
그의 안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길이 들어버린 말을 단지 흘려냈을 뿐인 거겠지.
이용하 교수는 ‘누구에게 증명하고 싶은 거냐’고 되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으니까.
그런 그를 어찌 말릴 수 있겠는가. 스승으로서 고개를 깊이 끄덕일밖에.
“뭘 해볼 생각이냐?”
반쯤 허락하는 말에 최석현이 밝게 웃으며 그간 축적해온 연구 자료를 꺼내었다.
“푸앵카레 추측이에요. 어느 정도 길이 잡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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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일곱 명 체크 끝. 다들 버스에서 문제 푼답시고 지랄들 하다가 토해서 컨디션 망치지 말고. 차라리 자빠져 자라.”
경시대회 참가자들을 실은 버스가 출발했다.
물론 교사의 당부를 귀담아 듣는 학생은 없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쪽지나 문제지를 꺼내서 뭐든 눈에 박아두었다.
스스로도 뭔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진 않았을 거다. 그냥 뭐든 해야 되니까 하는 거지. 원래 학생이란 몸을 고생시키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한 법이었다.
나도 좀 힘들었다.
잠이 오는데 버텨야 하는 점이 그러했다. 얘들 사이에서 혼자 코 골고 자고 있으면 눈총에 찔려서 치명상을 입을지도 몰랐다.
“민영아 뭐 씹을 거 없냐.”
“응? 잠깐만 기다려봐.”
옆에 앉아 있던 안경녀 김민영이 가방에서 주전부리를 꺼내어 건넸다. 별 말 안 했는데도 내가 바랐던 바로 그 과자가 내 손에 놓였다.
근 한 달의 꼬붕 생활에 완벽히 적응한 그녀는 내 마음을 읽는 경지에 오른 것이었다.
놀랍도다. 사람의 적응력에 과연 한계는 있는가.
“오늘 지나면 이것도 이제 끝이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생 부림권을 두고 내기할 걸 그랬네. 쳇.”
“왜, 아쉬워?”
“그럼 아쉽지. 유능한 만능 집사 계약이 끝나는 건데.”
“···혹시 그 계약, 연장이 가능하면 할 거야?”
“가능하면 당연히 해야···. 응? 뭐야. 너도 계속 하고 싶었어? 민영이 너 혹시 괴롭힘 당하는데서 어떤 감정의 고조를 느끼는···.”
“무, 무슨 소리야?! 계약 사기로 엿이나 먹여볼까 생각하고 있었거든!”
“그걸 말하면 사기가 아니잖아. 멍충아.”
“···칫.”
그러면서 새침하게 고개를 돌리는 것이다.
목덜미는 뻔히 벌겋다.
내 눈치가 누구 건데 그녀의 심리를 모르겠는가. 놀랍게도 김민영은 한 달 동안 내 시종 노릇을 하면서 날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물론 난 모른 척 했고.
‘뭐, 별 걱정은 안 들지만.’
이게 고백으로 이어질 만큼 깊은 감정인가 하면, 그건 또 아니기 때문이다. 저 감정의 근원은 노예 심리와 스톡홀름 신드롬의 변주다.
말하자면 시녀 노릇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연정을 무의식적으로 꾸며낸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봉사하는 건 그다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니까.
멀어지면 자연히 없어질 감정.
물론 내가 하기에 따라 발전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추호도 그런 마음이 없으므로 이 관계는 한때의 풋풋한 기억 정도로 끝날 것이었다.
‘귀엽긴 하네.’
그러나 딱 여기까지.
김민영의 복잡한 마음과, 졸음과의 사투로 버거운 나, 그리고 머리가 복잡한 여타 아이들을 싣고, 버스는 1시간여의 주행 끝에 시험장에 도착했다.
“도착했다! 다들 필기도구 챙기고! 뭣보다 정신머리 챙기고! 어차피 점수는 하던 만큼 그대로 나올 테니까 마음 비우고 다녀와라. 대원!”
“화이팅!”
“아자!”
“가즈아!”
“우라질 이 새끼들은 구호가 맞는 적이 없어.”
수험표를 확인해 시험장을 찾아갔다.
잠시 기다리니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문제지가 너울 치며 넘어왔다. 시험이 시작되기 직전. 시험지를 엎어놓은 상태로 나는 눈을 감았다.
긴장은 되지 않았지만, 대신 만감이 짙게 떠올랐다.
중간고사 때는 내 수준을 시험 받는다는 느낌은 없었다.
사실상 이게 처음이다.
회귀 후 내가 갈고 닦은 지적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는 자리는. 그래서 이 시험은 무능했던 과거의 내게 작별을 고하는 의식처럼도 느껴졌다.
띵동-.
종이 친 순간 눈을 부릅 뜨고 연필을 고쳐 쥐었다.
좋아. 몽땅 찢어버리는 거야.
탁, 타다닥, 탁. 연필 끄트머리를 공성추 삼아 시험지를 가차 없이 난도질해 나간다. 얌전히 포장되어 있던 문제들을 거칠게 뜯어재낀다.
탁탁. 왼손이 허벅지를 두드릴 때마다 두뇌가 가속한다.
숫자가 해일처럼 몰려들어와 휩쓸고 지나간 곳에 단서들이 흩뿌려졌다. 좋아, 주워라. 주워서 결합해. 그게 뭔지 알고 줍느냐고? 괜찮아. 내 통찰을 믿어라. 최석현의 두뇌를 믿어.
파훼할 때는 거칠어도 좋았다.
그러나 적을 때는 아름답게 적어라. 건축을 하듯 기반에서부터 외장까지 차근차근 쌓아라. 어지러운 것을 가지런히 하여 보기 좋게 두는 것이 수학의 근본이다. 근본에 충실한 글이 가장 아름답다···.
‘···응?’
거침없이 문제를 공략해나가던 내 손이 마지막 문제에서 멈췄다.
어렵다.
문제의 첫 글자를 본 순간부터 직감했다.
어느 정도냐면, 다른 모든 문제의 난이도를 수치화하여 전부 더하더라도 이 문제 하나만 못했다.
애당초 풀라고 놔둔 문제가 아닌 듯했다. 어떤 접근법을 취하는지, 어디까지 통찰할 수 있는지, 얼마나 창의적인 수를 동원하는지 따위의 풀이 과정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쫄?
그럴 수야 없지.
나는 전투적으로 달려들었다. 대충 풀어내는 것 따윈 생각지도 않았다. 완벽하지 않으면 건드리지도 않을 생각으로 나는 문제에 집중했다.
허벅지를 두드리는 왼손이 점점 빠르고 과격해진다. 템포가 가속될 때마다 나의 시간은 점점 느려졌다. 상정 가능한 가설들이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결합되고 무너진다. 그러나 아직 느리다. 지식의 군더더기를 덜어내라. 생각은 단순하게. 사고의 속도를 올려. 사고가 통찰의 찰나를 잡아챌 수 있을 때까지···.
그리하여
조각이 하나씩,
찰칵,
찰칵, 체결되고, 유격에 맞물리고, 부품 하나가 완성되더니 다시,
철컥,
하고 또 다른 조각이,
더 빨리
좀 더 빠르게
깊게
더
아래 더 아래로
···
···
······
그래서
그러므로
그렇기 때문에-
“-풀었다.”
난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내뱉었다. 그러나 말이기 보단 탄식에 가까웠기에 수험장 내의 백색 소음에 쉽게 묻혔다.
머리가 심히 멍했다. 평시로 복귀한 사고가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두개골을 들이받아버린 듯했다.
정신을 차리고 증명을 재점검하니 시간은 딱 3분이 남아 있었다.
이걸 다 적는 것만 해도 빠듯하겠군.
나는 부지런하게 연필을 놀렸고, 30초가 남았을 즈음 마지막 방점까지 찍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눈앞에 팝업이 뜬금포로 튀어 오르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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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 임계치에 도달했습니다!
- 보상으로 황색 카르마를 300p 지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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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여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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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교수님 이걸 풀라고 내놓으신 거예요? 이건 저도 못 풀겠는데요.”
조교수는 감탄을 빙자한 타박을 감행했다.
그러나 이용하 교수에겐 타격이 없었다. 애당초 별 관심 없는 자신을 억지로 출제위원에 앉힌 놈들이 문제였다.
출제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겠다. 엿 좀 먹어보라고 대놓고 못 풀 문제를 내버렸다. 너무 어려운 문제는 너무 쉬운 문제와 마찬가지로 변별력이 없다. 다 틀려버리면 거기서 뭘 변별한단 말인가.
“거참 다행이네. 그러라고 낸 건데.”
“교수님 심술에 애들만 죽어나요. 저거 풀다가 머리카락 다 빠졌겠네. 지금 수험장 가서 빗질만 하면 가발 장사를 해도 될 걸요.”
“걱정 마. 대부분은 손도 못 대고 포기했을 테니까.”
“어휴. 진짜 못 말리신다니까.”
그러나 덕분에 채점이 쉬운 건 다행이었다.
말마따나 변두리만 두드리다 뻗어버린 답안들이 대부분이라 점수 주기가 쉬웠다. 그나마 시도라도 한 사례만 자세히 살피면 됐다. 그중에도 진짜 알맹이가 있는 건 또 극소수였다.
그렇게 수월하게 종이를 넘겨가던 조교수의 손이 순간 턱 멎는다.
앞선 것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빼곡하게 들어찬 답안이 등장한 것이다.
아무 말이나 쓴 건가? 그렇다기엔 언뜻 봐도 글자가 정갈했다. 조교수는 답안에 빨려 들어가듯 집중해 읽었다.
“···이햐. 이거 기가 막힌데. 전개도 참신한데 논리 구성이 와···. 교수님 이것 좀 보세요.”
“또 뭐. 누가 소설 써갈긴 걸로 감탄하는 거 아냐?”
“에이, 제가 그 정도까진 아니죠. 한 번 보시고 말씀하세요. 저도 잘 모르겠는 부분도 있던데요.”
“그래 봐야···.”
이용하 교수는 반신반의하며 답안을 확인했다.
그리고 첫 문장을 읽은 순간 마지막 마침표까지 숨도 죽인 채 탐독해야만 했다. 그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완벽하다.
그리고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출제한 당사자이니 당연히 자신도 풀 수 있지만, 이 정도로 천의무봉의 답안을 내놓긴 힘들 거라 생각됐다.
그러나 그가 경악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답안에서 익숙한 누군가의 향취가 풍겼다.
“···최석현?”
< 9. 금빛 - 1 > 끝
ⓒ 달의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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