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금빛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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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 임계치에 도달했습니다!
- 보상으로 황색 카르마를 100p 지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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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생각대로 됐다.
잠깐 딴소리를 하자면.
전생의 최석현과 지금 내 수학 실력을 비교하면 어느 정도에 눈금이 머무를까?
어림잡아 판단컨대, 영재원에 머물던 청소년 시절 정도일 거다. 수학 정석만 파던 좁은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그의 진짜 재능이 개화했던 시기. 인생 1막의 최절정기.
그러나 최석현은 부단했다. 뒤를 보지 않고, 아니 뒤를 잊은 듯이, 일생에 마주친 정류장마다 방점을 찍어가며 진화를 거듭했다. 그런 삶이 쉽겠는가. 가히 통찰에 날을 세워 스스로를 박피하는 나날들이었다.
최석현은 무덤덤하게 그 시간들을 감당했으나,
나도 과연 그럴 수 있을 것인가.
내 심장은 빨리도 답을 내놓았다.
아니. 그럴 수 없다.
어쩌다 보니 경시대회에도 나가고 수학천재인 양 으스대고 있지만, 난 사실 수학과 거리가 먼 사람이다. 초기 동조율 0.87%가 그를 증명한다. 선물처럼 받은 재능에 들떠서, 또 내 그릇으로 감당되는 시련만을 만나서, 지금까지는 수월하게 왔다만 앞으로도 그럴까.
C랭크의 재능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벽들에 넘어지고 깨지면서도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갈 자세와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럴 리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수학을 탐구해 황색 카르마를 얻을 기회는 앞으로 한 번, 많아야 두 번 정도일 거다. 그것조차 꽤 오랜 시간을 맘먹고 투자해야겠지.
하지만 ‘자색 탤런트’에 딸린 기술습득 시스템은 그런 고민을 뛰어넘게 만든다.
[미다스의 손]은 남의 재능을 심어주는 것도 모자라, 그들이 인생을 지불해가며 이룩한 경지, 땀, 노력조차 단번에 카피해서 이식해버리는 것이다.
덕을 보는 나조차 부조리하다고 느낄 정도의 능력. 이치를 뛰어넘어 결론으로 바로 도약하는 가공할 이적.
그러나 그랬기에 허점을 찾아냈던 거다.
시스템을 이용하면 경험치는 꽉 채울 수 있지만, 그게 원주인의 발자취를 밟아가며 이룩한 건 아니니까. 반쪽짜리 경험을 온전하게 만드는 것으로 ‘업적’을 쉽게 달성시킬 수 있으리라는 짐작이 가능했던 것이다.
요약하자면,
50p를 지불해 100p의 황색 카르마를 얻었다. 투자 이익률이 무려 100%다.
그리고 [어느 무명 포토그래퍼의 사진술]에는 아직 중급과 고급, 두 단계의 학습이 추가로 가능하다.
이 둘에서도 투자 대비 카르마 수익률이 괜찮게 나온다면···.
‘그럼 앞으로는 자색 탤런트를 찾아다니는 게 일이 되겠군.’
이제 충분하다고 여겨 최근엔 탤런트 탐색에 좀 소홀했는데, 다시 기합 넣고 찾아다녀야 할 것 같다.
“뭐야. 다 찍었어?”
내가 한참 생각에 빠져있으니 배윤하가 눈을 껌벅거리며 다가왔다.
그리곤 내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카메라를 가져갔다.
“우와아아아···. 진짜 볼수록 쩌네. 너 옛날에도 이렇게 잘 찍었던가? 아닌가? 잘 기억이 안 나네.”
“아니. 살다보니 재능이 막 생기더라고.”
“뭐래. 근데 이거 진짜 막···. 오오. 우오. 옴마마. 으햐아아. 이건 진짜 말도 안 돼. 제길. 분하다. 이한열 따위에게···.”
“뭘 그렇게 분해하는 거야.”
“분하잖아! 내가 네 반만 됐어도 맨날 셀카 찍고 다닐 텐데! 난 셀고라고!”
배윤하는 감탄하다 감탄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내게 핀잔을 놓으면서도 감탄했고, 가만 보면 그 투덜거림조차 더 큰 감탄을 위한 조미료가 되었다.
그녀에겐 그게 쉬워 보였다. 부러움이나 열등감 같은 건 그녀가 이 순간을 즐기는데 어떤 방해도 되지 않는 듯했다.
그건 아마, 내게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와아아. 이거 달이 너무 예뻐. 달빛에 빠져서 수영치는 것처럼 찍혔어. 나 이 사진이 제일 좋다. 으향향향!”
-아빠! 이거 달에서 헤엄치는 거 같아요. 여기에 토끼 두 마리도 같이 찍어주면 안 돼요? 응응? 안 돼요? 왜애애···?
움찔.
몸이 멋대로 경련했다. 작은 짐승이 내 살점 어딘가를 물어뜯은 듯했다. 겉은 멀쩡해 보이니, 아마도 내 안쪽 어딘가가 뜯겨졌겠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래? 갑자기?”
“응? 뭐가.”
“아니, 네 얼굴이···.”
“내 얼굴이. 뭐?”
“······.”
난 진심으로 물었다. 지금 내 얼굴이 어떤지 나도 짐작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배윤하는 답하는 대신, 들뜬 기색을 가라앉히고 카메라를 도로 목에 걸었다.
“뭐, 됐고. 어때? 찍고 싶은 만큼 다 찍었어?”
“그래. 다 찍었다. 새벽에 미안했어.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서 말이지.”
“미안하면 이렇게 갑자기 불러내지 말란 말이야. 나 이래봬도 비싼 몸이다? 나랑 친해지려는 애들이 삼고초려할 기회도 못 잡아서 예약이 150명 정도는 밀려있단다. 니가 그걸 알란가 몰라?”
“그런 것치고 오늘도 엄청 즐기···.”
“아아아 몰라몰라. 그런 사소한 건 넘어가라구. 여튼 다 찍었으면 나 들어간다?”
“그러시든가.”
배윤하는 어쩐 일인지 뚱한 얼굴로 날 한참 바라보기만 한다.
달빛이 그녀의 살갗에 미끄러지다 뚝 떨어졌다. 어딘가로 사라진 달빛은 어둡게 잠겼다.
“이한열 너···.”
“······.”
“아냐, 아무 것도. 뭐, 잘 자든가 말든가!”
그러면서 호다닥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뭐야 갑자기.
난 숙소로 돌아가면서, 어딘지 낯설게 느껴지는 내 얼굴을 매만졌다. 윤곽을 따라 더듬으며 내 표정을 짐작했다. 짐작되지 않았다.
다만 뜯겨나간 내 살갗 안쪽이 쓰라렸다.
어디서 온 건지, 어디에 난 상처인지, 왜 쓰라린 건지, 어느 하나 짐작할 수 없는 낯선 상처가 나는 황망했다. 알 수 없으므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상태창에서 <촬영 기술 총론 중급>에 카르마 100포인트를 지불하고 습득했다.
내일은 카메라를 한 대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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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니까. 그 새끼가 원장네 아새끼래매. 그럼 당신이 뭐라도 알 거 아녀.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벌써 고막에 녹이 슨 거여 뭐여.
“말했잖나. 난 모르는 일이라고. 그리고 새끼새끼 하지 말지. 내가 키우는 애들이야. 당신 새끼가 아니라고.”
-하. 그게 뭔 꼴같잖은. 난 그런 거 관심 없고. 17살 고아 새끼가 어디서 돈이 생겨서 땅 사고 보물 파서 횡재했느냔 말이야. 소상히 말해 보라고. 당신이 모른다는 게 말이 돼?
“그래. 모른다.”
-하! 미치겠네. 이봐, 마기철 당신. 당신이 언제부터 ‘그분’을 모셨는지는 모르겠는데, 당신 한 물 갔어. 퇴물이라고. 우리 형님이 입김 좀 쐬면 당신 그 조막만한 자리도 못 챙겨. 알아들어?
“알아들었고, 할 말 없다. 그만 끊지.”
-잠깐! 야! 야 이 마기철 이 새···!!
뚝.
마기철은 핸드폰을 끊고 아예 배터리까지 분리해서 주머니에 넣었다.
“···후.”
한숨이 길어졌다.
동부파의 압박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저자가 뭐라든 하나도 무섭지는 않지만 말 자체는 옳았다. 자신은 퇴물이었다. 단지 쓸모가 있어서 쓰이고 있을 뿐.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언제까지 보육원과 아이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그때, 유리 저편의 문이 열리고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까까머리에 비쩍 마른 중년의 사내가 들어오다 마기철과 눈을 마주쳤다. 많이 달라졌지만, 역시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자신이 알던 그 사내였다.
교도소 보호유리를 사이에 두고 두 사내가 마주 앉았다.
“···오랜만이오, 마 아저씨.”
“은찬아.”
“이름 부르지 마시오. 친한 척도 마시고. 뒈지기 전에 푸념 한 번 해보고 싶어 나온 것이니.”
“······.”
약에 취해있던 그날의 밤과는 달랐다.
열 번의 청 끝에 겨우 면회를 받아들인 이 사내, 한때 지은찬이라 불렸던 남자는, 텅 빈 눈에 마기철을 빠뜨리고 마침내 익사시켜버릴 것처럼 시선을 두었다. 날선 눈빛이었다.
그 의도는 성공했다.
마기철은 숨이 막혔다.
“···그동안은, 어찌 지냈느냐.”
“어떻게 지냈냐고? 뭘 묻소? 알면서. 이대로 죽어나자빠지면 분하고 억울해서 살았소. 니들은, 씨발, 결국 날 못 죽였다고, 그렇게 시위하듯이 숨을 쉬었지.”
“······.”
“난 당신들이 법의 심판을 받은 줄 알았소. 그렇게 알고 살았지. 사는 게 좆같아도 그 생각만 하면 버틸 만 했소. 근데 아니더군. 정말···.”
지은찬이 웃었다. 물기 하나 없이, 살아오며 감정을 조금씩 짜내어 결국 황폐해진 사토만 남은 가슴으로, 그는 웃고 있었다.
“흐흐흐. 왜. 왜 그런 얼굴이시오? 웃으시오. 웃어야지. 우리들은 아예 죽거나 살아도 반쯤만 살았는데, 정작 당신들은 멀쩡하게 잘 살고 있잖소. 이만한 코미디가 어디 있단 말이오? 크흐흐···.”
“···그래서 상진이를 해치려 한 거냐?”
“그래!!”
지은찬이 보호유리를 손바닥으로 텅! 가격했다. 유리에 바짝 붙은 숨에서 격분이 흘러나와 증기로 맺혔다. 일그러진 습기가 그의 모습을 탁하게 흐렸다.
“너희들도 느껴야지!! 죽어 나자빠지는 게 어떤 건지!! 몸소 체험해보셔야 할 거 아닌가!”
“···그런다고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
“당연히 안 돌아오지! 죽었으니까. 다 뒈져버렸으니까! 그러니까 한 거요. 당신네들도, 사람이 망가져서, 죽든 살든, 어쨌든 사람으로 다시 못 돌아올 때, 돌이킬 수 없다는 거, 그게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
“당신들도 알아야 하니까.”
창에 맺히던 숨이 멀어졌다.
지은찬은 자리로 돌아가 숨을 가다듬었다.
“난 아직도 밤마다 아이들의 숨소리를 듣소. 이미 죽은 애새끼들이, 질리지도 않는지, 매일 밤 내 귓구멍에다 한 마디씩 하고 간단 말이오.”
“···그러냐.”
“그 새끼들 맞장구 쳐주다 보면 밤이 다 가지. 난 잠드는 게 아니라 지쳐서 기절하는 거요. 그러다 악몽에 다시 깨지.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았소. 그런 내가 요새 들어, 가장 후회되는 일이 뭔지 아시오?”
“잘, 모르겠구나.”
“한때는 당신을 형님처럼 생각했다는 거요. 그 지옥에서 그나마 당신은 인간 같았으니까. 하지만 돌이켜보면···.”
지은찬이 마른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입가에 맺힌 검붉은 핏물조차 윤기가 없었다.
“놈들은 이해가 돼. 악마들이 악마짓을 한 거니까. 하지만 당신은 인간이었잖소. 인간인데 그걸 다 두고 본 거잖아. 우릴 먹이고 입히면서 무슨 생각을 했소. 자위라도 한 거요? 개새끼들 사이에서 혼자 사람이라 우월감이라도 느꼈어?”
“···나는.”
“위선자.”
“······.”
“꺼지시오. 뭘 하러 여기에 왔소. 날 도와줄 수는 있소? 그럴 수 없겠지. 당신은 그럴 수 없는 인간이야. 주현보육원? 까고 있네. 당신이 주현이 이름을 감히 거기에 붙여? 무슨 낯짝으로?”
마기철은 입을 다물었다.
모든 말은 여기선 의미를 상실했다. 말을 압도하는 과거가 그들 사이엔 있었다. 알고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온 이유는 무엇인가.
그의 욕이라도 받으면, 그래서 죄책감이라도 들면, 그래도 자신이 사람이라는 실감이 들어서일까?
왠지 반론할 수가 없어 서글펐다.
맞다. 자신은 위선자다.
노력 하나 없이 인간임을 자처하는 끔찍한 게으름뱅이다.
“···사식을 좀 넣어주마. 몸 건강히 있거라.”
“맘대로 하쇼. 당신 원래부터 맘대로 했잖소.”
지은찬이 거칠게 일어나 면회실을 나갔다.
마기철은 그의 숨이 닿은 유리를 조심히 매만지다, 온기와 습기마저 사라졌을 즈음에야 일어나 교도소 밖으로 나왔다.
심해처럼 목을 죄던 시선에서 벗어난 뒤에도 여전히 그는 숨이 가빴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걸었다. 한 발자국마다, 누군가의 이름이 떠오르고 또 지나갔다. 잊지 못하고 마음에 묻은 이름들이었다.
“아저씨 그 사람 면회하신 거예요?”
“···응?”
교도소 정문에서, 소녀로밖에 보이지 않는 학생이 자신을 맹랑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교복을 보니 대원고교를 다니는 듯했다.
“무슨 말이냐? 그게.”
“지은찬이란 사람이요. 언론에는 조선족이라고 나왔는데 연변 말은 하나도 못하는 그 이상한 남자.”
“······.”
“맞군요?
“근데 넌 누구길래 그런 걸 묻는 거지?”
“아. 죄송해요. 종일 허탕만 쳤더니 마음이 급해져서. 전 대원고교 언론부 학생이고요, 은지은이라고 해요. 주현보육원 원장님 맞으시죠?”
“맞긴 하다만.”
“원장님이 왜 살인미수범을 면회하러 오신 거죠? 취재에 협조해주실 수 있나요?”
“이미 다 물어본 다음에 협조를 구하는 법이 어딨나.”
“요새 다들 그렇게 하더라고요.”
“어려서 요령만 배우지 말거라.”
그리곤 은지은을 지나쳐 걸었다.
그녀는 그 뒤를 졸졸 뒤쫓으며 말을 돌격소총마냥 쏟아냈다.
“에이 쫌. 말 좀 해주세요. 그 사람 조선족 아니죠?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살해 동기에 대해 짐작가시는 점은? 공범이 있었다는데 그 사람도 아시나요?”
“······.”
그렇게 주차장까지 따라붙는 것이었다.
마기철은 질렸다는 기색을 대놓고 뿌렸지만, 은지은은 강철의 미소로 받아치며 녹음기를 내밀 뿐. 그는 한숨 반 건성 반의 말투로 말했다.
“그에게 한열이한테 악감정 가지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러 간 거다. 그 외엔 없어.”
“에이. 그 사람 면회 거부하던데. 그럼 왜 아저씨만 받아준 건데요?”
“오늘은 그러고 싶었나 보지.”
“제 면회는 안 받아···. 잠깐만요! 어이이이! 아재요! 거기 서요! 아니 서냐고 물어본 건 아니고!”
그러나 마기철은 단호하게 차를 몰아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은지은은 멀어지는 차를 눈으로만 쫓아야 했다. 그러나 그 표정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
“그래도 단서 하나 잡았고. 후후. 누구도 이 은지은의 탐구욕을 막아설 수 없지.”
그녀가 손을 흔들어 택시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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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끼 이거 전화기 아예 꺼버렸는데? 이런 씹잡놈 쉐끼가···.”
“그렇습니까, 형님?”
“아오. 열 뻗치네.”
“유감입니다, 형님.”
“···형만아 잠깐 이리로 와 봐라.”
“싫습니다 형님. 저 때릴 거잖습니까?”
“아놔 이 새끼가 날 뭘로 보고. 그냥 와. 안 때릴 게.”
“···알겠슴다 형님.”
오늘도 형만이는 속았고, 이길재는 형만이의 물렁살에 실컷 분풀이를 한 뒤에야 다시 자리에 앉았다.
“후우. 씨부랄 것. 하나부터 열까지 맘에 드는 게 하나 없어.”
동부파의 자금을 총괄하는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놈들을 밟고 날려가며 왔는가.
이제 다 됐다 싶은데, 고아들이랑 소꿉장난이나 하는 잡놈 따위가 자신을 무시하니 기분이 영 아니었다.
과거 ‘그분’을 가까이서 모신 공신이니 대우를 해줄 뿐, 조직의 실권이 동부파 중심으로 개편된 지금에 와선 옛 망령일 따름이다. 근데 어찌나 고개가 뻣뻣한지.
“···분명 이 새끼 뭐 있단 말이지.”
그의 계산법에 따르면 주현보육원은 조직의 자산이고, 조직의 돈은 자신의 돈이었다.
따라서 이한열이라는 놈이 땅 파서 뭘 얻었다면 마땅히 자신에게 바쳤어야 했다. 그런데 뭔가. 나라가 이토록 난리인데 자신의 손에 뭐가 떨어졌나.
“그렇다고 무턱대고 재낄 수는 없고. 흐음.”
고뇌
고심
숙고.
이윽고 그는 결정을 내린다. 사실 3초 만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득칠아.”
“예 형님.”
“이 이한열이라는 새끼. 뒤 밟아봐. 분명 그 땅덩어리에서 나온 게 더 있을 거다. 어디다 꿍쳐놨는지 모조리 밝혀내란 말이야. 알아들어?”
“예 알겠습니다.”
“그래그래. 돈이 줄줄 새는데 가만 놔둘 수야 없지···.”
그의 눈에 이건 마기철이 몰래 뒷주머니를 챙기면서 벌어진 해프닝으로 비쳤다.
이한열은 단순히 심부름꾼일 거고. 제음일기는 작업하다 실수로 누설되어 어쩔 수 없이 국가에 헌납된 것. 그러나 나머지는 멀쩡히 쥐고 있을 거다. 그걸 쫓다 보면 마기철이 조직을 배신했다는 증거도 잡을 수 있을 테고.
완전 헛짚은 거지만, 어쨌든 그는 확신했다.
고딩 한 놈이 신들려서 아무도 모르는 보물창고를 찾아냈다는 게 말이나 되느냔 말이다···.
‘이것만 잘 되면 성과도 올리고, 눈엣가시도 치워버리고, 일석이조네. 통재구만 통재야···.’
이길재의 눈빛이 독사처럼 번뜩였다.
< 9. 금빛 - 3 > 끝
ⓒ 달의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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