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금빛 - 6 >
“···아.”
나를 본 여자의 표정이 아주 약간, 변했다.
정말 약간이었다.
단위로 재보면 센티도 아니고 밀리미터로 논해야 하겠지.
그러나 내 주변에 어떤 인간들이 있는가.
일단 안면근육이 아주 게을러서 표정을 짓기 전에 감정이 지나가버리는 부류의 사람이 있었다. 이현지라는 보건교사가 그렇다.
나무늘보와는 템포가 맞을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사람이어서 본의 아니게 뚱-하게 지내고 있는 여자의 표정을 읽으며 나는 내 안력을 단련시켜왔다.
그와 반대로 안면근육이 지나치게 발달하여 감정과 무관하게 표정을 조형해내는 부류의 인간도 있었다. 윤정희라는 학생회장이 그렇다.
슬픈 연기를 해도 웃고만 있을 것 같아 차라리 가면을 쓰는 게 속을 짐작하는데 수월할 법한 여자의 표정을 파악하며 난 내 안목을 도야해왔다.
그에 비하면 이 여자는 쉽다.
누구처럼 감정을 꾸미거나, 혹자처럼 자기감정에 무심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표현하는데 서툴러서 어색하게 표정을 짓는 부류의 사람.
그녀의 반응은 내게 그렇게 보였으며,
따라서 그 감정 또한 간단히 읽어낼 수 있었다.
그녀는 날 반가워하고 있었다.
“···고마워요.”
“천만에요. 실례가 아니었다니 다행이네요. 이제 커피숍으로 이동할 거 같은데, 혹시 거기까지 부축해드릴까요?”
“아니요. 그럴 것까진 없어요. 감사합니다.”
“예.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그럴게요. 근데 베이징 말이 굉장히 자연스럽네요. 혹시 중국에서 유학을 하셨었나요?”
“그런 건 아니고요. 관심이 있어서 공부하다보니. 광둥어는 거의 못합니다.”
“광둥어 못 알아듣는 북경사람들도 많은 걸요 뭘. 훌륭하세요.”
내가 오기 전까지, 그녀는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힘들어서 손까지 떨리는데 뭔가 거대한 얼굴이 등장해서 못 알아들을 말을 걸어대니···. 어, 이건 나라도 좀 무섭겠는데.
어쨌든 또래에다 말도 통하는 사람이 와서 안심했을 것이다.
내가 휴식시간을 건의했다고 하니 호감도 생겼을 거고.
첫인상으로는 그럭저럭 괜찮았겠지.
“여기 이온음료요. 체력 떨어질 때 한 모금씩 마셔요. 들이키지 말고 입을 적실 정도만. 그리고 이건 찜질팩인데요. 혹시 손발이 차면 주물러보세요. 따듯해질 거예요.”
“와아. 진짜 필요했던 건데. 감사합니다아.”
“별말씀을요.”
“아, 저는 샤오 메이라고 해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이한열이에요. 발음하기 복잡하면 그냥 한이라고 부르세요.”
“네, 그렇게 할게요. 한.”
난 무리하게 말을 걸지 않았다. 몸이 힘들면 말하는 것도 노동이다.
물론 몸 상태와 무관하게 혓바닥만이 독립적으로 발랄한 작자들도 있긴 하지만, 이 여자는 그런 부류가 명백히 아니다.
그런데 정확히 그런 부류의 작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와와. 한열이 너 중국어 엄청 잘 하잖아? 왜 얘기 안 했어?”
강민재가 턱관절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말했다. 보기에 거북했다.
“별로 쓸 일이 없을 거 같아서요.”
“난 그것도 모르고. 저 여자 분이랑은 무슨 얘기 한 거야? 너무 발음이 빨라서 못 알아들었어.”
“그냥 몸이 안 좋으신 거 같아서 물 드린 거예요. 왜요?”
“그냥. 나 아까 엄청 혼나고 왔거든. 근데 저 여자 분도 일행하고 잘 섞이지 못하는 거 같아서 말동무나 해보려고 했지. 뭔가 동질감이랄까.”
“······.”
미친.
동질감 같은 거 느끼지 마···. 그런 건 상대방 허락도 받아야 되는 거 아니냐.
잘 섞이지 못 한다는 사실도 절반만 본 것이다.
그건 샤오메이의 무능이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로열패밀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볼 때 그녀의 진짜 정체를 아는 건 두 명밖에 없다.
다른 직원들은 모른다. 그러나 십중팔구 그 자리에 낙하산으로 꽂혔을 것이고, 직원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정확히는 모르더라도 짐작 정도는 하겠지. 그녀 주변의 위화감은 그런 거리감의 반영이었다.
그때 타이밍 좋게 이창희 대리가 돌아왔다.
심각한 표정을 보아하니, 아마 밀명을 받고 온 모양이다.
“···한열아. 잠깐만.”
“예.”
발걸음을 늦춰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서야 그가 말했다.
“아가씨가 여기 숨겨진 VIP가 있다고 하시던데. 맞아?”
“맞아요.”
“정확해?”
“뭐 5% 정도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요. 달리 말하면 그 정도의 확신은 있습니다. 덮어놓고 달려들기에 부족함은 없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합니다만.”
“지금 진위를 따질 시간은 없으니까, 일단 널 믿어볼게. 아가씨도 그러라고 하셨고. 일단 이거 법인카드.”
“···이건.”
“써야 할 일이 있으면 팍팍 써. 우린 말로만 믿는다고 하지 않는다고. 대신 네가 확실히 마크해서 VIP 마음을 사로잡아. 알겠어?”
“이거 이틀짜리 인턴직에게 부담감이 너무 큰 거 아닌가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네. 나도 말단이라 한 곳에만 머물 수 없어서 그래. 부탁한다.”
“네, 그건 상관없지만요. 하나 문제가 있는···.”
“물론 문제가 하나···.”
우리 둘의 말이 겹쳤고, 그와 동시에 고개를 데칼코마니처럼 움직여 한 곳을 응시했다.
옆에서 말을 엿듣다 턱을 바닥에 꽂아버릴 기세로 경악하고 있는 강민재가 거기 있었다.
“···앗, 아앗? 그, 그럼 저 여자애가···?”
이 대리와 나는 다시 시선을 맞췄고, 말 한 마디 없이 의견을 일치시키는데 성공했다. 합의 내용을 기술하자면 이러하다. ‘이 자식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이건 너굴맨이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결국 이 대리가 강민재의 덜미를 잡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최종보스가 퇴치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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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도 샤오메이는 좀 동떨어져 있어서 접근하기 간편했다.
“또 만나네요.”
“···아, 한 씨.
그녀가 창백한 입술을 여물며 고개를 숙였다.
난 그녀 앞에 앉았다.
“근데 왜 혼자 있어요?”
“네? 아···. 제가 인턴이라서요. 아직 선배들하고 친해지지 못한 탓에···.”
“거참. 막내를 이렇게 막 방치해도 되나?”
“아녜요. 다들 바쁘셔서 그런 거예요. 평소에는 잘해주세요.”
“그럼 다행이구요.
실상을 꿰고 있으면서도 나는 모르는 척 이런저런 잡변들을 늘어놓았다.
지나치게 파고드는 주제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마치 먼지를 털어내듯. 주변부만 툭툭 건드리면서 그녀의 성향과 관심사를 어림해나갔다.
그녀는 표정이 희미했고 말은 뿌옇게 울렸다.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아 방치된 감정들을 힘겹게 꺼내 올리는 것 같았다.
문득 밀랍인형 같은 여자구나 싶었다. 창백한 피부. 인간의 조형 같지 않은 미려함. 그리고 지나치게 오래 포장되어 있던.
그러나 당신에게도 심장이 있을 텐데,
대체 어떤 템포와 어떤 울림으로 뛰는지 아직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몸은 이제 좀 어때요?”
“아, 걱정해주셔서 좀 나아진 거 같아요. 찜질팩도 진짜 잘 쓰고 있···.”
“여기 좀 앉아도 되겠습니까?”
“네? 아, 네.”
정갈한 북경어로 인사를 건넨 두 남자가 우리 테이블에 합석했다.
신세계무역 측의 직원들로, 개중에도 빼어나게 수려하고 말재주도 좋아 여성 임원들에 달라붙어있던 걸로 기억했다.
···뭐지?
나는 이 조우에서 석연찮은 인위성을 느꼈다.
“아, 이것도 인연인데 통성명이나 하죠. 난 창재라고 하구요. 얘는··· 기억 안 하셔도 돼요. 저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야, 뒤질래? 아가씨, 이 자식 겉만 멀쩡하고 속은 완전 썩어있으니까 속지 마세요. 저는···.”
자연스럽게 나를 배제시키는 화법.
“···지금 미국이 중국을 대하는 태도는 좀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말이 좋아 동북아 정세 안정이지, 까놓고 보면 사다리 걷어차기잖아요? 턱 끝까지 쫓아왔으니 위협을 느낀다 이거지. 하지만···.”
상대에 맞춘 주제 선정.
“음악 좋아 해요?”
“···아, 네. 좋아해요.”
“진짜? 이거 우리 얘기 잘 통하겠는데. 어떤 장르 좋아해요?”
“그냥 이것저것···. 다 좋아해요.”
“다양하게 들으시는구나. 그것도 좋죠. 근데 한 가지 장르 깊게 파보는 것도 재밌어요. 전 요새 현대음악에 관심이 있는데, 존 케이지의 우연성 음악 같은···.”
공감대 형성.
지적인 매력 어필.
‘······.’
내 존재는 벽에 걸린 장식물쯤으로 취급하는 놈들을 보며 확신했다.
저놈들, 어쩌다 쉬려고 여기 앉은 게 아니다. 명확한 목적을 들고 왔다.
여기서 무리하게 대화에 끼어들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러다 저들의 의도에 말려든다.
난 헛웃음이 나왔다.
뭐 하나 쉽게 가는 법이 없네.
“전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아, 넵. 다녀오세요, 한 씨.”
화장실에서 생각을 좀 정리하고 세수도 좀 한 뒤에 나왔다.
카페 한쪽에, 이태현이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은 샤오메이와 두 딸랑이들의 테이블에 고정돼 있었다.
난 그 옆에 서서 똑같이 벽을 기대고 섰다.
“···음? 누구?”
“강민재 씨 옆에 있던 인턴이요.”
“아아, 그···. 근데 나한테 뭐 볼 일 있습니까?”
“어떻게 알았습니까?”
“······.”
그가 나를 빤히 쳐다보다, 내가 보기에도 멋들어진 미소를 지어보였다.
“민재는 다 좋은데요, 그중에도 특히 좋은 거라면 역시, 입이 싸다는 거죠.”
또 너였냐.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자존심 좀 건드리고, 유도신문 몇 마디만 거치면 훌륭한 설명충이 되죠. 경쟁사 직원으로서 많이 애용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곧이곧대로 다 말해주진 않았을 텐데요.”
“나머지는 정황으로 알아낸 거죠. 제가 눈치가 제법 좋거든요.”
“그렇습니까.”
“아 근데 이 카페는 뭐 이래. 음악이 아주 중구난방이야. 격 떨어지게.”
그리고 주인에게 가서 뭐라더니 선곡리스트를 싹 바꿔서 돌아왔다.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가 중단되고, 통통 튀는 피아노와 의뭉스러운 바이올린의 선율이 얽힌 카르멘 환상곡이 대신 흘러나왔다.
“좀 치사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래요? 아직 사회물을 덜 먹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곳은 말이죠, 생존 서바이벌이 펼쳐지는 정글이에요. 이기는 게 전부죠. 살아남는 게 정의고.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우리도 나름 절박한지라.”
“흠···.”
“어, 안 믿겨요? 뭐, 그래도 상관없죠. 어차피 알게 될 테니까.”
내 반응을 잘못 이해했군.
사회가 정글이라느니 하는 말은 너무 당연해서 귀담아들을 가치도 없었다. 내가 고개를 갸웃한 건 당신이 ‘눈치’가 좋다는 부분이었다.
정말로?
고작 이 정도로 눈치를 논한다고? 농담이지? 나는 진심으로 가소로움을 느꼈다.
[눈치]가 나와 최상의 궁합을 자랑하긴 하지만,
사실 이완용의 재능을 얻기 전에도 난 눈치가 나쁜 편이 아니었다. 아니, 좋은 편에 속했지. 물론 원래부터 좋았던 건 아니다. 단련시킨 거다.
“잘생겼네요, 저 사람들. 말도 잘 하고.”
“그쵸? 저희 회사에서 전략적으로 키우는 애들이에요. 엘리트 영업사원으로요. 아, 이런 얘기 막 하면 안 되는데. 자꾸 나도 모르게.”
“당신도 잘생겼구요. 센스도 좋으시고.”
“예? 갑자기 무슨···. 일단 감사합니다?”
당신들은 아주 쉽게도,
사람의 마음을 얻어왔을 것이다.
대면하는 것만으로 호감을 주는 외모. 수려한 말재간. 높은 교육수준에서 나오는 품격. 모든 것이 당신들의 인간관계를 축복했을 것이다.
나는 아니었다.
내게 사교란 매순간 사력을 다해 쟁취해야 하는 전투였다. 감정을 읽는 법. 요구사항 파악. 약점 간파. 시류를 읽는 눈. 줄 타는 타이밍. 다 필사적으로 눈치를 봐가며 익힌 재주들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살아남고 싶어서.
그렇기에 난 인간을 파악하고 그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것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다. 모든 면에서 무능했기에 생긴 나만의 노하우였다.
당신들은, 이 분야에서만큼은 절대로 날 따라오지 못해.
나는 폰을 꺼내 문자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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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부탁하나 하죠. ‘반드시’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
그리고 카운터에 가서 다시 음악 리스트를 바꿔 달라 요청했다.
“으응? 아까도 바꿔달라더니 또?”
“에이, 솔직히 아저씨도 이거 별로잖아요. 안 그래요?”
“그건 그래. 클래식이라니. 너무 엄숙해서 책도 무릎 꿇고 봐야 될 거 같잖아.”
“이 셋리스트로 달리죠.”
“오, 학생이 뭘 좀 아는구만?”
돌아서자 아까 중간에 끊긴 너바나의 노래가 다시 재생되기 시작했다. 쿵. 쿵. 쿵. 묵직한 드럼킥이 내 뒤통수에 꽂힌다.
나는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
“미국에서 양적완화를 하면 사정은 그렇게 나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창재인지 창조경제인지 모를 놈의 지루한 말을 중간에 끊으며 말했다.
“근데 노래 바꾸니까 훨씬 좋지 않아요?”
“네, 훨씬요오···!”
묘하게 업된 목소리. 고개도 내 쪽으로 확 틀어진다. 난 그녀의 반응에 따라 들어가듯 맞장구를 쳤다.
“그쵸?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거 아니죠? 혹시 샤오메이도 락음악 좋아해요?”
“네!!”
-합.
자기 목소리에 자기가 놀라서는 입을 틀어막는 그녀였다. 창백하던 얼굴에 비로소 핏기가 돌았다.
바로 여기다.
인형의 심장이 거하는 곳.
“의외네. 중국인들은 락음악 같은 거 안 들을 거 같았는데. 뭐랄까, 미제의 불순문화? 그렇게 보는 거 아니에요? 들으면 홍위병들이 막 때리고.”
“···너무 하네요. 무슨 원시인인 줄 아세요? 물론 안 좋게 보는 어른들도 쬐끔 있긴 하지만···.”
“농담이에요. 너바나는 만국 공통 진리죠.”
“맞아요! 저 어렸을 때 커트 코베인한테 시집가는 게 꿈이었는데. 헿.”
“메이 당신이 옹알이할 때 이미 고인이었는데요?”
“그걸 늦게 안 게 비극이었죠. 진실을 깨달은 열한 살에 저는 세상을 잃었어요오···. 왠지 신보가 안 나오더라 싶었지.”
“큭큭. 저랑 비슷하네요. 그럴 때 저는 대신 푸파이터를 들었죠.”
“데이브 그롤!”
“음악은 완전히 다르지만, 묘하게 공통되는 정서가 있기는 해요. 기름진 너바나 같은 느낌이랄까···.”
“아하하하···.”
이번엔 내가 나머지 두 명을 병풍으로 만들어버렸다.
재벌 3세니까 시사 주제를 꺼내면 말이 먹힐 줄 알았는가? 고상한 얘기를 늘어놓고 지적 수준을 뽐내면 넘어올 줄 알았다고?
얘는 17살까지 몸이 안 좋아서 대외활동도 못하던 아이다.
필시 집에만 있었겠지.
그 거대한 포장 상자에 갇혀서 소녀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무엇에 위로 받았을지, 어떤 꿈을 꾸었을지, 당신들은 관심이나 있었는가.
그랬다면 눈치 챘어야 했다.
배경음악의 장르가 이리저리 바뀌는 가운데, 유독 락음악이 흐를 때에만 흥겨워보이던 그녀를.
음악을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좋아한다고 할 때는 진실이었고, ‘이것저것 다 좋아한다.’고 할 때는 거짓이었음을.
너바나의 음악이 중단되었을 때 눈에 띄게 풀이죽던 모습을.
그러나 당신들은 샤오메이라는 인간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녀에게 어필하는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 있었지.
그래놓고서 엘리트 영업사원?
눈치가 어쩌고 저째?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는 수준이었다.
“···그럼 밴드 같은 것도 못 해봤겠네요?”
“예에. 집에만 있었으니까요. 근데 키보드는 좀 두드릴 줄 알아요. 사실 아쉽긴 하죠. 중국 밴드 문화는 좀 처참하거든요. 악기들도 맨 싸구려를 비싸게 팔고.”
“그런 점에서는 한국이 조금은 더 낫네요. 한국 메이커는 세계적인 수준이니까요. 물론 중저가 시장에서나 그런 거지만, 문화의 대중화에는 그쪽이 더 중요하죠.”
“맞아요. 저도 중국에 그런 기둥을 세우고 싶어요. 문화의 표준 말이죠.”
“하시면 되죠.”
“예에? 에이. 제가 그런 결정권이 어디 있어요. 그리고 이번 계약에 문화예술 쪽은 아예 포함도 되지 않았었는데요.”
그녀가 열없이 웃었다.
역시나 집에만 있던 애라 그런지 자신의 혈관에 흐르는 것의 힘을 아직 제대로 모른다. 그때 핸드폰이 지잉-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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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희 : 네 말대로 됐다. 우리 쪽 출혈이 제법 컸다는 것만 알아둬. 제대로 성사 못시키면 알아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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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부가 있겠습니까.
< 9. 금빛 - 6 > 끝
ⓒ 달의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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