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이 자꾸 늘어-53화 (53/164)

<재능이 자꾸 늘어 53화>

10. 냉정과 열정 사이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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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수학 신동의 수리적 통찰력] : 퀘스트 발생!

- 최석현의 유품을 가족에게 전달해 주세요.

- 보상 : 청색 카르마, 전달의 신속성과 정확성에 따라 차등 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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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빠르다.

[언어 능력]을 얻은 뒤 처음으로 느끼는 감각이었다. 말과 글이 너무 빨라서 사고가 따라붙지 못했다. 난 그저 서 있는데 배경만 움직여서 뒤쪽으로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이 폭력적인 속도감에 심장이 비명을 질렀다.

쿵.

쿵쿵.

“석현이의 마지막에 대해 아는 바가 있나?”

“……어느 정도는요. 그는…… 불가능에 가까운 문제에 도전했지요.”

“그래. 푸앵카레의 추측. 밀레니엄 문제로도 선정되었던 세기의 난제. 언젠가 석현이가 몇 페이지의 청사진을 들고 와 내게 내밀었네. 풀 수 있다고. 풀어내자고.”

“…….”

“1년이었네. 의사가 그의 삶에 카운트다운을 찍은 시간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말렸어야 했어. 수학 문제 따위는 제쳐 두고 치료에 열중하라고 말이야. 실제로 그렇게 말해 본 적이 있었네. 그때 석현이가 한 말이 뭔지 짐작이나 가는가?”

“……모르겠습니다.”

알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었다.

“약 기운에 취해서 낭비할 시간 따위는 없다……고.”

“……참으로, 최석현답지 않은 말이네요.”

“그렇지. 시간 같은 건 평생 낭비하고 살았던 놈이 말일세. 죽을 때가 돼서 아까웠던 게지. 하지만 그래서 나는…… 이왕 시간을 귀히 쓰기로 했으면…….”

“…….”

“그랬으면…….”

그의 말이 잠시 방황했다.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일부러 돌아가는 듯했다. 일직선으로 걸어가기에는 행간에 놓여 있는 감정들이 지나치게 날카로웠을 것이었다. 나는 그를 이해했다.

그사이에 그는 안경을 벗어 천천히 닦아 내었다. 그러나 안경알의 기름기는 쉽게 지워지지 않고 단지 문댄 방향으로 길을 낼 뿐이었다. 이렇게 뿌옇던 것이 저렇게 뿌옇게 되었다. 닦다 닦다 못해 결국 그는 안경을 떨구었다.

노교수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었다.

그의 손바닥 밑으로 기어코 빠져나온 물방울들이 낡은 거죽의 골짜기를 타고 굽이굽이 흘렀다.

“……이왕 쓰기로 했으면…… 자신을 위해서나 쓸 것이지…….”

맞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후우. 미안하네. 노인네가 주책맞게…….”

“아닙니다.”

그는 내가 건넨 손수건을 받아 얼굴을 훔쳤다. 눈이 붉었지만 초점은 맑았다. 그는 정돈된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석현이는 천재였지만, 세상을 뒤져 보면 그 정도의 천재는 제법 있지. 그런 천재들이 떼로 달려들어도 풀지 못한 것이 밀레니엄 문제였네. 당연히 쉽지 않았지. 하지만 필사의 각오로 임해서인지…… 놀랍게도 우리 연구는 성과를 보이는 듯했네. 그 결과는…… 자네도 알겠지.”

“……예.”

그건 최석현의 일생을 몰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실제로 푸앵카레 추측은 증명되었고 수학사에 길이 기록될 업적으로 남았다.

다만 그걸 푼 것이 최석현이 아니었을 뿐이다.

“……러시아의 기린아인 그리고리 페렐만이 서스턴의 기하학화 추측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냈지.”

“…….”

“다른 사람들은 검증에만 몇 달이 걸렸지만 나와 석현이는 단번에 알 수 있었네. 왜냐면 그 풀이 방식은…… 우리가 매달렸던 미분기하학적 접근과 대단히 닮아 있었으니까. 큰 이변이 없었다면 우리도 근시일 내에 같은 결론에 도달했겠지. 그러나…… 늦었어. 우린 늦어 버렸던 것일세.”

그때의 허탈함이 기억났는지 이용하 교수는 축 처진 몸을 소파에 파묻었다. 안 그래도 작은 몸이 더 왜소해졌다.

“……목표를 잃은 석현이의 건강은 순식간에 악화되었지. 그리고 그렇게 갔어. 영광은커녕 뻔한 반전도 없었네. 머리가 둔해진다는 이유로 몰핀도 거부해 가면서…… 그 고통을 다 쌩으로 견디면서…… 그렇게 아득바득 쌓아 올린 성과가…… 단지 좀 더 유능한 자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부정됐네. 난…… 그것이 너무…….”

그가 이를 살짝 악물었다. 다음 말은 거의 한숨처럼 새어 나왔다.

“아니, 그것은 차라리 괜찮네. 세상에 사정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좌절당한 학자들은 얼마나 무수할 것이고. 하지만……. 음, 한열 군. 내가 왜 석현이가 그토록 밀레니엄 문제에 집착했는지 그 이유를 말했던가?”

“안 하셨지만,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던…… 그런 이유였지요.”

“그래. 그럼 그가 누구에게 증명하고 싶었겠나. 세상이 있든 말든 신경도 안 쓰던 그 무던한 놈이. 누구한테 그토록 알리고 싶어 안달이 났겠느냔 말일세.”

그도 나도 말하진 않았지만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다.

가족.

최석현은 자신을 버린 가족들에게, 자신이 여기 있다고 그렇게나 소리 높여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석현이는 자신의 재산을 정리해서 내게 맡겼네. 자신의 마지막을 가족에게 알리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고. 난 유산과 유언을 같이 넘길 생각이었어. 하지만…… 말했다시피 그 마지막 바람마저 유예된 상태지.”

“혹시 연락이 닿지 않으신 것은…….”

“그럴 리가. 일부러 장례식도 한국에서 치렀네. 수소문해서 전화까지 했지. 모친이 받더군. 꼭 참석해 달라고 그렇게나 신신당부를 했는데 말일세. 결국 오지 않았어. 그때 그 떨떠름한 반응으로 알아챘어야 했는데…….”

“…….”

“어쨌든…… 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일세. 미안하군. 별로 재밌지도 않은 얘길 주저리 떠들어 댔구만. 하지만…… 누구에게든 말하고 싶었어. 아무에게나 할 순 없는 말들이니까.”

“……아닙니다. 저도 듣고 싶었던 얘기였어요.”

“그런가. 그럼 나도 헛말한 건 아니었군그래.”

그는 쓰게 웃었다.

“직접 가져다줄 생각은 안 해 보셨습니까.”

“해 봤지. 혹시나 장례식에 오지 않는다면 그렇게 할 생각이었네. 장례식 전까지는.”

“……그럼 왜.”

“장례식을 막상 치르고 나니 화가 치밀어 오르더군. 도무지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어. 적어도 맨정신으로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네. 그리고…… 지금까지 왔구먼.”

그가 탁자에 떨궈 두었던 안경을 다시 닦기 시작했다. 그러다 자포자기로 써 버린 안경알은 여전히 기름기로 탁하게 바래 있었다.

나는,

나는 말해야만 했다.

당신이 못하겠다면 내가 하겠다고. 지금껏 최석현의 제자니 뭐니 했지만 사실 나는 그와 일면식도 없는 완전한 남이므로, 아무 거리낌 없이 배달할 수 있다고. 심지어 해내면 보상까지 따르므로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그러나 혀에 덫을 채운 듯 말이 버거웠다.

왜일까.

대체 왜.

얄궂게도 다른 말은 쉽게도 목구멍을 탈출했다.

“……가끔 또 찾아봬도 괜찮겠습니까, 교수님. 혹시 싫지 않으시다면…….”

“그럼. 물론이지. 안 될 이유가 뭐 있겠나. 나야 말벗이 생기면 좋지. 석현이의 제자라……. 그럼 내가 큰스승이 되는 건가? 하하…….”

이용하 교수는 힘없이 웃었고 나는 어설프게 따라 웃었다.

그러나 어설프고 힘없는 웃음도 웃음이라서 말길을 부드럽게 다듬었다. 우리는 부드러워진 말길 위에 조심스럽게 다른 말들을 얹었다. 되도록 순하고 맑은 이야기들을 했다.

가끔 이용하 교수는 시대착오적인 농담을 했고, 나는 최석현과 달리 단호박 스탠스를 취함으로써 그를 살짝 절망시켰다. 내가 신세대 개그를 선보이면 교수는 복수하듯이 뚱해졌다. 우린 썩 손이 잘 맞는 큰 스승과 작은 제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여기에 없는 누군가를 추억하면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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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 [어느 무명 보부상의 척추기립근](Rank E)를 습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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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돌아다닌 대가로 얻은 탤런트는 또 적색 계열이었다.

“…….”

젊어서는 씨름꾼이었으나 하체 부실이라는 치명적 약점 탓에 보부상이 되었고,

우월한 기립근으로 인해 짐을 짊어지는 일에 능했으나, 역시나 하체 부실이어서 막상 혼자 일어설 수는 없었던 기구한 남자의 일생을, 쓸데없이 높은 동조율 57퍼센트의 생생함으로 관람하였다.

아마 뭘 해도 시궁창으로 회귀하는 노답 인생이었다는 점에서 동조율이 치솟았을 것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43퍼센트의 불일치는 방문하는 고을마다 그 탁월한 허리힘으로 과부들을 천국으로…….

그만하도록 하자.

현타가 조용히 문을 두드리고 찾아왔다. 소주가 당기는 날이로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오 여사께서 내 마음을 헤아려 주셨다.

“응? 왜 또 그런 얼굴이니?”

“……예? 제가 무슨 얼굴을 하고 있는데요?”

“당장이라도 등선할 거 같은 표정이다 얘.”

“그보단 불교적 열반에 가깝지만요…….”

“아무튼. 요새 무슨 일 있니? 자주 오니 나야 좋다만, 올 때마다 얼굴이 점점 썩어 가니까 보기 좀 그러네. 고민이라도 있어?”

내 고민이야 뻔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죽어라 찾아다녔는데 유독 자색 탤런트만 죽어라 안 나오고 있었다.

바라지도 않은 청적색 탤런트들은 쌓여만 가는데 말이다. 참고로 요새 얻은 능력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어느 구급 요원의 공간 지각력](Rank D) - 청

[어느 병아리 감별사의 민감성 손가락](Rank E) - 적

[어느 보부상의 척추기립근](Rank E) - 적

특히 저 [민감성 손가락]은 어디에 쓸모가 있는지 당최 모르겠다. 좀 더 섬세하게 코를 팔 수 있게 되나? 알 수 없군…….

근데 생각해 보면 사람 마음 참 간사하지.

옛날에는 번듯한 재능 하나만 있으면 바랄 게 없다 싶었는데 이제 나도 배가 불렀나 보다. 비렁뱅이 적 생각 못하고 반찬 투정하는 느낌이지만…….

근데 뭐.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지.

물론 이런 사정을 오 여사께서 이해하실 리 만무하므로 난 이렇게만 말씀드렸다.

“저도 사춘기인가 보죠.”

“무슨 사춘기가 오면 얼굴이 그렇게 반쪽이 되니? 알다가도 모르겠네.”

“하하. 그러게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전 정말 괜찮아요. 고민은 고민이지만 배부른 고민이랄까…….”

“그럼 다행이다만……. 그나저나 곧 경매인 건 알고 있지?

“경매요? 당연하죠. 완전 기대하고 있는데.”

“이제 며칠 뒤면 억대 자산가가 되실 텐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이한열 군?”

주원장의 친필 족자를 선기물산에 팔아넘기면서 이미 억대 자산가가 된 지 오래였지만, 그런 말은 사족이겠지.

그녀는 내 근심을 다독여 주기 위해 굳이 농을 건넨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가볍게 농을 받아쳐 드렸다.

“부자가 되면 말이죠, 요플레 뚜껑을 따자마자 버릴 거예요. 핥아먹지도 않은 걸 무참하게 말이죠. 후후. 벌써부터 두근거리네요.”

“사치 부리는 포인트가 좀 미묘하네.”

“갑질도 할 겁니다. 서울역에 가서 거지들한테 십만 원씩 막 뿌리는 거죠. 그리고…….”

“그리고?”

“막 고마워하라고 앞에 계속 서 있어야지.”

“역시 미묘하네…….”

어쨌든 오 여사님 덕에 기분이 좀 나아졌다. 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고 골동품점 혜선을 나왔다.

안주머니에는 [어느 보부상의 척추기립근]이 깃들어 있던 은장도를 품고서.

여담이다만 왜 하필 은장도인가 하면…….

이 보부상이 백년가약을 맺을 미래의 천생연분에게 주려고 항상 지니고 다닌 탓이었다. 근데 왜 카르마가 깃들었냐고? 당연히 그런 건 못 만났으니까…….

마지막까지 전국 팔도 과부들의 영원한 애인으로 남은 것이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본인만 알 일이었다.

“……어쨌든 힘내 볼…… 응?”

습관적으로 상태 창을 확인하다가 [미다스의 손] 옆에 반짝이는 [!] 표시를 발견했다. 당연히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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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종 이상의 탤런트를 수집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 특전으로 특성 [미다스의 손]의 숨겨진 기능이 개방됩니다. 아래 세 특전 중 하나를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특전1. [나우시카의 내조]

특전2. [율리시즈의 나침반]

특전3. [아르키메데스의 손과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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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게 다 뭐시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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