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이 자꾸 늘어-54화 (54/164)

<재능이 자꾸 늘어 54화>

10. 냉정과 열정 사이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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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종 이상의 탤런트를 수집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 특전으로 특성 [미다스의 손]의 숨겨진 기능이 개방됩니다. 아래 세 특전 중 하나를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특전1. [나우시카의 내조]

특전2. [율리시즈의 나침반]

특전3. [아르키메데스의 손과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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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게 다 뭐시다냐?

다행히 뭔지 설명해 주지도 않고 고르라는 일은 없었다. 지금까지 기능만 틱 던져 주고 알아서 쓰라고 했던 것에 비하면 무척이나 친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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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1. [나우시카의 내조]

: 카르마 수득률이 30퍼센트 증가합니다.

: 황색 카르마 200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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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2. [율리시즈의 나침반]

: 카르마를 본능적으로 탐색합니다. 시각 외의 감각으로도 카르마가 탐지됩니다. 이 감각에는 ‘육감’도 포함됩니다.

: 황색 카르마 500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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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3. [아르키메데스의 손과 눈]

: 카르마를 지불하여 둘 이상의 탤런트를 결합할 수 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탤런트가 창조되며, 어떤 탤런트가 창조될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기존 탤런트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 황색 카르마 400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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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을 다 읽자 절로 신음이 나왔다.

“으음…….”

다 좋다. 그럴 수만 있으면 카르마를 쏟아부어서라도 다 찍었겠지. 하지만 하나만 고를 수 있다면 답은 정해져 있었다.

‘[율리시즈의 나침반]을 고르자.’

지금의 내겐 황색 카르마 수급이 최우선의 과제였다.

그리고 지금처럼 벌어들일 창구가 적을 때에는 파이 자체를 키우는 게 옳았다. [나우시카의 내조]는 좋은 특전이지만, 그보단 자색 계열 탤런트를 빠르게 늘리는 게 나은 방향이다.

[아르키메데스의 손과 눈]은…… 뭔가 재밌어 보이지만 역시 재미에 그친다. 뭐가 나올지 모른다면 도박일 뿐이지 않은가. 일단은 논외였다.

[율리시즈의 나침반]을 고르니 특전창이 금빛으로 쪼개지면서 내 몸에 스며들었다.

뭔가 변했나?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그나저나 황색 카르마를 500이나 받아 처먹다니……. 크윽.’

900이었던 황색 카르마가 400까지 쪼그라들었다.

마음이 아프다. 한 번에 500가닥의 머리카락이 후두둑 빠지는 탈모자의 상실감이라면 이해가 갈까. 머리카락이 빠지도록 일을 해서 탈모약을 사는 시지프스의 딜레마란 과연 이런 것이었다.

좋아.

아쉬워할 시간 따윈 없다.

일 초에 머리카락 한 가닥이 소거된다는 심정으로 재빠르게 움직였다. 일단…… 아무 택시나 하나 잡아타 볼까.

“네, 손님 어디로 가실까요?”

“아무 데나 가도록 하죠, 기사님.”

“아무 데나요?”

“예.”

미친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십만 원짜리 수표를 꺼내 드렸다.

“내키는 대로 돌아다녀 주세요. 무작위로. 일단 이 금액이 다할 때까지?”

“키야. 남자시네. 그쵸. 가끔 남자에겐 영혼의 드라이브를 땡기고 싶을 때가 확 오죠. 암암. 맡겨만 주세요. 어디로 갈-까아나아-♬.”

사소한 오해는 방치해 두자.

난 창문을 열고 조수석에 몸을 파묻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시각을 죽인 대신 다른 감각들을 활짝 열어젖혔다.

지금까지 탤런트는 착색된 안개가 일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율리시즈의 나침반] 설명에 따르면 이제부턴 카르마를 듣거나 맡거나, 살에 닿는 느낌으로도 감지할 수 있을 것이었다.

카르마의 소리나 냄새가 어떨지 감도 잡히지 않지만,

처음 ‘보았을’ 때도 단번에 빨려 들어갔으니 이번에도 마찬가지겠지.

내 추측은 옳았다.

그렇게 30분 정도 지났을 때, 뭔가 강렬한 감각이 옆을 확 스치고 지나갔다. 신경 세포를 고무줄처럼 늘이고 뭉개며 날 유도하는 것만 같은, 육체의 감각으론 형언하기 힘든 느낌.

“기, 기사님. 여기서 좌회전!”

난 그 느낌에 맞춰 기사에게 지시했다.

젊은 놈이 맥락도 없이 좌회전 우회전 하고 있으니 기분 나쁠 법도 한데, 이 택시 기사는 “그쵸! 영혼의 외침은 그렇게 갑자기 터져 나오는 겁니다!”라며 내 지시를 충실히 따라 주었다. 뭔가 이상했지만 고마웠다.

“여기면 됐습니다. 잔돈은 괜찮아요.”

“예예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남자 파이팅!”

“아, 예…….”

어쨌든.

목적지에 도착해서 내린 건 아니었다. 도로 위에서는 느낌이 종잡을 수 없이 튀었기에 부득이 하차한 것이었다. 꺾어야 될 타이밍인데 도로가 계속 직선 구간이라 답이 없었다.

그래서 난 내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교통수단을 이용했다.

발로 걸었다.

그렇게 십 여분쯤 지났을까, 나는 어느 공원 위에 서 있었다.

“와…… 이게 다 뭐지.”

공원 초입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두 희망이다.] [민욱공원]

얼핏 봐도 단테 신곡의 유명한 구절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를 뒤튼 말임을 알 수 있었다. 글자에서 설립자의 유쾌함이 배어 나오는 듯했다.

그리고 내 ‘느낌’은 입구 바로 안쪽에 있는 어느 석상으로부터 전해지고 있었다.

근데 문제는 이거다.

“뭐야, 탤런트가…… 없잖아.”

분명 느낌은 있는데 카르마가 발견되진 않는 것이다. 만져 보고 문대 보고 별짓을 다 해도 석상은 무반응이었다.

그럼 뭐지? [율리시즈의 나침반] 이거 너무 오래돼서 고장 났나? 어이, 이봐요, 상태 창 씨. 이거 내비게이션 업데이트 언제 하셨어요?

아님 뭐야. 혹시 상태 창이 나 맥인 거야?

‘……그럴 리가.’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거겠지.

우선 석상을 주의 깊게 살피니, 하단에 짙은 음각으로 새겨진 작품명이 보였다.

[문명인 오디세우스]

“……아, 여기가 거기구나.”

제목을 보니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젊은 예술가 장민욱.

꽤 유명한 사람이라 나도 알고 있었다.

진지하게 장난스럽고, 유쾌하게 심각한 독특한 주제 의식. 뭔가 꼬여 있는데 따져 보면 사람 냄새 나는 묘한 분위기. 시니컬한 휴머니스트. 근데 사실 이런 예술가로서의 키워드보다는 그 개인의 사사로운 스토리가 더 많이 회자되는 사람이었다.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 LS그룹 장건철 회장의 아들, 그러니까 재벌 2세.

젊어서 신 나게 예술만 하다가 요절한, 그야말로 불꽃같던 일생.

그리고 그런 그가 생애 마지막으로 관여했던 대규모 프로젝트가 바로 이 [민욱공원]이었고, 특히 오디세이아를 패러디한 [문명인 오디세우스] 시리즈는 손수 작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여타 예술가들의 작품이 즐비하고, 매해마다 장민욱을 기리는 문화예술 행사가 열려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곳이었다. 지금도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다.

“저 ‘문명인 오디세우스’는 오디세이아를 과감하게 뒤튼 작품이야.”

“음…… 오디세이아? 그게 뭐더라?”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알지?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 장편 서사시인데, 오디세이아는 그다음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오디세우스가 귀향하는 여정 가운데서 벌어지는 모험을 다룬 건데…….”

특히나 지적 매력을 어필하고픈 남자들의 입이 바빴다. 한창 오버클로킹으로 가속되고 있을 그들의 두뇌에 심심한 안부를 전하도록 하자.

“사이클롭스? 에계, 별로 거인 같지 않은데?”

“그게 장민욱이 관점을 비튼 부분이지. 외눈박이 거인이 인간처럼 작으면, 그건 그냥 눈이 하나인 장애인일 뿐이잖아? 오디세우스는 침입자이며 그 하나의 눈마저 앗아 가는 약탈자로 표현되고 있어. 사이클롭스를 마치 아메리카 원주민처럼 묘사한 것도 재밌는 부분이지. 신화를 현실로 끌어들인 거야.”

“아하……. 그래서 부제도 ‘맹목’이구나?”

“그래. 야만인은 문화가 없어서 맹목적이고, 문명인은 문명의 이름으로 맹목적이라는 뜻이지. 재밌는 석상이지?”

사실 편의상 ‘석상’이라고 했지만, 이건 가로 길이만 50m에 달하는 거대한 구조물에 가깝다.

오디세우스의 6가지 모험이 시간 순서로 배열되어 있으며, 각 장면은 역동적인 동세와 실감나는 표정, 그리고 탁월한 구도로 꾸며져 보는 것만으로 내용이 쉽게 짐작됐다. 쭉 보면 그냥 만화를 보는 기분마저 들었다.

관점이나 해석이 과격해서 더욱 그렇겠지.

일례로 키르케의 일화.

그리스 신화에서 키르케는 사람을 짐승으로 만들기로 유명한 마녀로, 오디세이아에서도 선원들을 돼지로 만들었다가 결국 오디세우스에게 굴복당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장민욱은 그걸 괴랄하게 뒤틀었다.

오디세우스 일행이 키르케의 가축을 함부로 잡아먹었다는 설정이 추가되고, 가축을 부려 살림을 꾸리던 키르케는 그 대신 일행을 돼지로 만들어서 부려 먹는다. 이 작품의 부제는 ‘임금 노동’.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노동자의 적이 노동자가 되고, 경쟁 끝에 가축의 지위를 획득하는 사회상을 통렬하게 비판한 거지. 결국 장민욱이 하고 싶었던 말은…….”

“와! 오빠 근데 저 작품 되게 예쁘다! 저거 보러 가자!”

“……어, 그래.”

여자의 한마디에 어젯밤 골 빠지게 암기했을 남자의 노력이 장렬히 산화했다.

난 피식 웃으며, 속으로 여자에게 감사했다.

방해꾼이 사라진 덕에 아까부터 해 보고 싶던 걸 시도할 수 있게 됐으니까. 난 [문명인 오디세우스]에 천천히 다가갔다.

“……웃기지도 않는 장난질을.”

6개의 장면마다 장민욱은 숨은그림찾기를 마련해 두었다.

수수께끼라기보다 이스터 에그에 가까운 것이다. 수수께끼라면 단서가 있겠지만 저건 그냥 생뚱맞게 숨어 있기만 했다.

오디세우스의 허리춤에 꽂힌 조각칼.

키르케의 애완 사자가 물고 있는 붓.

스킬라의 이빨에 끼어 있는 조각용 끌.

아이올로스가 들고 있는 방패는, 사실 자세히 보면 팔레트다.

님프 칼립소가 비녀로 머리에 꽂은 것도 잘 보면 붓이고. 아까보단 조금 인치가 큰 붓이지만.

보통은 쓱 보고 지나칠 것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분명 위화감이 드는 오브제들.

그리고 난 그 위화감이 유독 툭 튀어 오른다고 생각했다. 묘하게 익숙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익숙함을 더듬으니 과연 수면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귀수의 손재주]를 얻었을 때. 흩어진 화투장들에게서 느껴지던 기묘함.’

그리고 그 묘한 느낌은 한데 섞이고야 비로소 카르마로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저것도 그러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사람이 있는지 조심히 확인하고, 그리스 신화 속에 표류하고 있는 미술 도구들을 하나둘 구출해 냈다.

그냥 당기면 소용없고 반시계 방향으로 돌려야 철컥하고 빠지는 장치. 좋아. 작전은 순조롭다. 이제 탤런트만 흡수하고 잽싸게 복구시키면…….

순간 눈앞이 휘청 기울었다.

세상이 잘게 떨었다. 지진인가 싶었지만 곧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요새 비둘기들 간덩이가 예사롭지 않다 해도 지진 상황에서도 걸어 다니진 않겠지.

그러니까 사실은 밟고 있던 석상들이 진동하면서 움직이고 있던 것이었다.

난 침착하게 뒤로 물러섰다.

석상 안에 기계 장치라도 숨어 있던 걸까?

이스터 에그를 건드려서 트리거가 작동했는지, 석상들이 지들끼리 자리를 바꾸고 자세를 교정해 가며 부지런하게 모습을 바꿔 나갔다. 변화는 5초 동안이나 지속됐다.

재료가 돌덩이이므로, 안에 기계 장치를 박았어도 아주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단지 자세나 인상, 위치가 조금씩 달라졌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바뀌어 있었다.

오디세우스와 사이클롭스가 악수를 나누고, 악독 사장 같던 키르케는 채찍 대신 부채를 들고 있었다. 오디세우스 일행은 스킬라를 공격하지 않고, 스킬라는 그런 오디세우스들을 안내하듯 앞장서 바다를 가로질렀다. 선원들은 오디세우스를 의심하지 않아 아이올로스의 바람을 타고 순조롭게 고향에 도착한다.

그리고 석상의 제목도 바뀌어 있었다.

[문명인]

오디세우스란 말이 빠진 단순한 일반 명사.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를 딱 한마디로 역설하는 듯이 느껴졌다. 과연 시니컬한 휴머니스트인가. 꽤 어울리는 별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오디세우스의 라틴식 표현이 ‘율리시즈’였다. 공교로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마지막에 남은 감상은 역시 이런 것들이었다.

‘미친. 대체 돈을 얼마나 쏟아부은 거야. 이래서 재벌2세들이란…….’

일단 도구들을 한데 모아 탤런트를 흡수해 냈다. 자세히 보니, 석고를 발라 눈속임을 했을 뿐 다 진짜 붓이고 조각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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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예술가 장민욱의 미학적 재능](Rank C)을 습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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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게도 자색 탤런트였다.

기뻐하기에 앞서 잽싸게 도구들을 제자리에 돌려 놓았다. 그러나 그런다고 움직인 석상들이 원위치 되는 일은 없었으므로 살짝 난감해졌다. 그럼 어떻게 한다?

뭘 어떻게 해.

“튀자.”

언제나 그랬듯 빠른 먹튀가 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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