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 자꾸 늘어 57화>
10. 냉정과 열정 사이 - 8
* * *
“……이런 젠장.”
힘든 방랑 끝에 자색 탤런트를 얻었지만 완전 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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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어느 무예가의 돌주먹](Rank D)을 습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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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재능 자체는 준수하다.
재능의 주인은 본래 불제자였는데, 날붙이로 산 것을 해함이 부처의 도리에 어긋난다 하여 맨주먹으로 두개골을 깨고 다니던 괴승이었다.
그야말로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을 신봉하는 원펀치 스님이셨다.
늑대도 한 방. 왜구도 한 방. 복수하러 온 사무라이도 한 방. 마지막으로 호랑이도 한 방.
왜 호랑이 앞에 마지막을 붙였느냐면 산군山君의 앞발 반격에 본인도 비명에 가셨기 때문이다.
침침한 눈으로 쓰러지는 산군을 확인한 스님께선 ‘뚝배기는 공평하다’는 희대의 유언을 남기며―아무도 듣진 못했다― 만족스럽게 눈을 감으셨다.
물론 이런 사실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이 괴승의 수련 방식이다.
의지로 신체를 초극한다고 진심으로 믿었던 그는 맨손으로 아름드리나무를 가격하며 철권을 단련했던 것이었다.
그게 실제로 성과가 있었다는 것이 인체의 신비랄지 우주의 허점이랄지 신의 농담이랄지 모를 부분이었다.
뭐.
그렇다.
아무튼 난 황색 카르마가 아무리 고파도 손날로 장작을 쪼개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여담으로 이 탤런트는 목조 부처상에 깃들어 있었는데, 아마도 스님이 평생 후드려 패신 그 나무를 깎아 만든 게 아닐까 추측된다. 근데 왜 하필 부처상인 건데……. 기분이 이상하잖아.
그렇게 허탕 아닌 허탕에 허탈해진 기분으로 귀가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 왔다.
[에멩이 엄마]
오랜만의 연락이었지만 이 기묘한 별칭을 잊을 리 없었다. 난 바로 전화를 받았다.
“예, 여보세요.”
-오랜만입니다, 은인님.
“……그 은인님이란 표현 좀 어떻게 안 되나요. 들을 때마다 귀가 간지러운데.”
-은인님이므로 은인님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사리에 맞고 합당합니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굳이 그렇게 부르겠다는 심리가 난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 주제로 더 말해 보았자 내 쪽만 이상해지므로 그러려니 넘기는 게 현명했다.
참고로 그녀에게 태클을 걸어 토론을 한 결과물이 내 핸드폰에 저장된 [에멩이 엄마]라는 별칭이었다.
어떤 논리를 거쳐 저렇게 된 건지 기억도 잘 안 나지만 어쨌든 그렇게 된다는 게 이 여자의 무서운 점이었다. 이른바 본인의 이상함을 전염시키는 괴짜 바이러스 보균자라 하겠다.
그러므로 용무는 최대한 간략히.
“근데 어쩐 일이세요? 최근엔 연락 없으시더니.”
-보고를 드릴 일이 있어서. 시간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아요. 근데 보고라니…… 뭔가 제가 상사 같잖아요. 굳이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아닙니다. 사건을 공유하는 운명공동체로서 정보 역시 공유함이 사리에 맞습니다. 보고는 대등한 관계에서도 충분히…….
“예예, 알겠습니다. 다 들을 테니 말씀해 주세요.”
-일단 2차 공판은 끝났습니다. 몇 명의 학생들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졌고, 그중 악질적인 몇 명은 소년원까지 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은인님이 중히 생각하시는 ‘김송헌’이라는 학생은 끝내 처벌하지 못했습니다. 교묘하게 빠져나가더군요. 법조계의 비호를 받는 분위기였습니다. 김송헌의 가문이 검사 측과 공모 내지 거래를 한 게 아닐까 생각되는데, 아직까진 심증일 뿐입니다.
“그렇군요. 김송헌이……. 벌금형? 아님 집행 유예? 설마, 아예 무죄인 겁니까?”
-완전히 무죄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검찰측도 항소에 소극적이고, 더 결정적인 뭔가가 없다면 뒤집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
그렇다. ‘에멩이 엄마’의 본명은 변호사 연희재 씨로, 날치기 사건 이후 핸드백을 되찾아 주고 범인들을 토스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었다.
어쨌든 도움이 되는 정보였다.
“일단 감사합니다.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겠네요.”
-예. 또 보고할 내용이 있다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은인님도 부디 몸조심하시길.
뚝-.
결국 이렇게 됐군.
그걸로 김송헌을 완전히 날려 버릴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아예 무죄 판결이라니. 과연 끗발 있는 집안이라 이건가.
최근 몇 달간은 김송헌이 없어서 학창 생활이 참 평온했지.
파란이 예고되긴 했지만 걱정되지는 않았다.
나도 그동안 놀고만 있던 건 아니라서 말이지.
“올 테면 와 보라지.”
오늘 가시적 성과는 없지만 교훈은 좋은 걸 하나 얻지 않았는가.
뚝배기는 공평하다.
정치인 자식 대가리라고 뭐 티타늄으로 만들진 않았을 테니 맞으면 똑같이 아프겠지.
아마 모를 것이다. 지금껏 별로 맞아 보질 못했을 테니. 그리고 난 김송헌에게 못해 본 경험을 선사하는 친절을 베풀어 볼까 한다.
휙- 펑!!
가볍게 휘두른 돌주먹이 공기층을 박살 냈다.
* * *
행동이 빠르네.
내 평가가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내일 등교한 뒤에야 시비를 걸어올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보다 열두 시간 정도는 앞당겨 내 앞에 등장한 것이었다.
별로 반갑지 않은 누군가가 보육원 앞에서 나를 맞이했다.
“어서 와, 난쟁이 새끼.”
김송헌 본인은 없었다.
거기 있는 건 김송헌의 오른팔을 자처하는 차재철이란 놈이었다.
키 190에, 우수한 덩어리감을 자랑하는 낯짝, 그리고 찰흙으로 덕지덕지 덧붙인 모양새의 근육들까지, 이른바 1학년 3반의 골렘이라 불리는 남자였다.
그리고 나를 꼭 난쟁이라고 불렀다.
“너 아직 감방 안 갔냐? 용하네.”
“씨발. 이게 뒈질라고. 너 안 본 사이에 간이 많이 컸구나?”
“응. 넌 근손실이 좀 온 거 같고.”
“……썅! 다 너 때문이잖아! 개자식이……!!”
참고로 저놈도 김송헌 오토바이 서클의 일원으로, 날치기 활동에 불철주야 임한 덕에 김송헌과 더불어 최근 몇 달 동안 내 앞에서 사라졌던 인물이었다.
그간 법원에 경찰서에 정신없이 오갔을 그는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물론 그 반쪽도 면적상 내 두 배는 될 것이다.
“……성질 건드리지 마라. 오늘은 경고만 하고 돌아가려는데, 자꾸 그러면 내 마음이 바뀔 수도 있어.”
“바뀌면 뭐 어쩌려고?”
“널 반으로 접어 버릴 거다.”
“그러시든지 말든지. 상관 안 하니까 거기 비켜라, 덩어리.”
“……굳이 벌주를 청한다 이거지? 저 새끼 잡아.”
그 뒤에 있던 똘마니 둘이―놀랍게도 완벽히 가려서 있는지도 몰랐다― 기세등등하게 등장해서 내게 다가왔다.
난 한숨을 푹 쉬었다.
이런 쓸데없는 일에 심력을 쏟기 싫은데 말이지.
“얌전히…… 아아악!!”
난 먼저 다가온 놈의 손을 피하고, 카운터를 치듯 손가락을 쇄골 깊숙한 곳에 꽂았다. 그리고 갈고리처럼 구부려 누르니 자지러지며 주저앉는다.
요새 침술에 관심이 생겨서 인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사람의 몸엔 의외로 급소가 많고 무력화시킬 방법은 그 이상으로 무궁무진했다.
그리고 내겐 급소를 정확히 짚어 낼 [동체 시력]과 [손재주]가 있었다. [침술]도 아마 간접적이나마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아악!! 그, 그마아아안……!!”
적당히 괴롭히고 옆으로 쓱 밀치니 그 뒤에 오던 놈과 부딪치며 우당탕 바닥을 뒹군다.
난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차재철 너는 집행 유예라며? 나랑 치고받고 같이 경찰서 갈까? 그래도 되겠어?”
“이런 씨…….”
“생각 잘해. 덩치 키우면서 두개골은 작아진 거냐? 무슨 공룡이야?”
“……개자식이!!”
씩씩대며 다가온다.
이거 한 대 칠 기세인데? 이대로 한 방 맞아 주고 차재철의 근육과 뇌 용적이 반비례한다는 가설을 진실의 영역으로 끌어 올려도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럴 기회는 없을 것이다.
곱고 청명한 목소리가 차재철의 발을 잡아챘다.
“……응? 거기 한열이니?”
“선배? 여긴 어쩐 일이세요?”
하늘색 롱 원피스에 핑크빛 카디건을 두른 윤정희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여긴 어쩐 일이 아니라, 난 그냥 산책 중이었는데? 나 주말에도 학교 오니까.”
“아아.”
“여기가 주현보육원이구나. 헤에. 진짜 가까운 데 있네. 근데 뭐 하고 있었어? 그쪽은 누구야? 친구?”
“예. 아-주 친한 친구죠.”
난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차재철의 어깨에 친근하게 손을 둘렀다. 녀석은 그럼에도 꼼짝하지 못했다.
“차재철? 여긴 학생회장님이신데, 알고는 있지?”
“……어? 어어……. 어…….”
“얘 긴장했나 보네. 재철이가 좀 자주 멍청해지지만 속은 착한 아이니까 이상하게 보진 마세요, 선배.”
“무슨 소리니? 내가 왜 이상하게 본다고. 반가워, 한열이 친구라고?”
“……아…… 예. 예. 그러, 그렇습니다. 예. 그렇지요.”
지금의 차재철을 묘사하자면, 인공지능이 망가진 로봇이나 스턴 걸린 골렘과 비슷했다.
눈동자는 잠자코 있질 못하고, 반대로 혀와 입술은 지나치게 얌전하고, 근육은 빳빳이 긴장해 있다.
난 이놈이 왜 이러는지 안다.
‘멀리서 짝사랑만 하던 대상을 갑자기 대면하면 과연 이렇게 되겠지.’
좋아. 내친김에 선물도 해 줘야 수지가 맞겠지.
난 윤정희에게 핸드폰을 내밀며 말했다.
“오신 김에 사진 좀 찍어 주세요.”
“응? 사진?”
“제가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서 말이죠. 기념으로 한 장 찍어야겠어요. 어서어서. 아 빨리요.”
“얘 봐라. 엄청 뜬금없네.”
윤정희는 어이없이 웃으면서도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난 차재철의 삼각근을 꾹 누르면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웃어. 회장님 앞에서 추한 꼴 보일 거야?”
“…….”
그리고 곧 내 핸드폰에는 나와 차재철이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는―살짝 비위 상하는― 사진이 저장되었다.
그렇게 차재철은 골렘에서 석상으로 퇴화했고, 난 석상이 거리를 장식하도록 놔두고는 윤정희와 함께 훌훌 떠났다.
“……나한테 이런 일 좀 시키지 마.”
“왜요? 별로였어요?”
“이런 싸구려 연극은 취향이 아니라고.”
“쳇. 알았다고요. 내가 해 드린 게 얼만데 이거도 못해 주나.”
“그래서 해 줬잖아. 아님 내가 여기까지 왔을 거 같니?”
윤정희가 볼멘소리로 타박했다.
그도 맞는 말이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한마디에 학생회장이 이유 불문하고 나와 줄 거라고 과거의 내게 얘기해 준다면, 그 과거의 나는 그길로 불교에 입적해 버릴지도 모른다. 미래의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정신수양에 돌입하겠지.
“근데 그 사진은 왜? 그런 걸 진심으로 찍고 싶었던 건 아닐 테고.”
“음…… 뭐, 무기는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요.”
“그래. 보기만 해도 시신경이 손상되는 게 가히 무기라 할 만하겠네.”
“큭큭. 그도 그러네요.”
난 윤정희를 다시 학교에 바래다주며 일별했다. 주말에도 학교에 나온다는 그녀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조심해. 김송헌이 자체는 잔챙이지만, 그 녀석 뒤에 있는 자들은 결코 만만하지 않아.”
“알고 있어요. 어, 지금 나 걱정하는 거예요?”
“그래. 유능한 일꾼이 고장 나면 꽤 가슴 아플 테니까.”
“천하의 윤정희 걱정도 다 들어 보고, 이거 살아 볼 일이네. 영광이에요.”
“내 걱정은 꽤 저렴하거든? 너무 의기양양하지 말도록.”
“예이예이.”
그녀를 배웅하고 돌아오자 차재철 일행은 싹 사라지고 없었다.
윤정희의 걱정은 이해하지만, 내 승리는 이미 결정 사항이었다. 놈들은 모를 테지만, 그리고 김송헌은 특히나 상상도 못할 테지만, 내게는 쓸 만한 수호천사가 붙어 있었으니까.
[……에 차재철 외 2명이 찾아갈 것임. 대비 요망.]
난 문자를 깔끔히 지운 뒤 핸드폰을 다시 품에 넣었다.
* * *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막 등교해서 교실 문을 열려는데 심상찮은 목소리들에 잠시 걸음을 유보했다. 가장 두드러지게 들린 건 김선기의 목소리였다.
“……그만둬.”
“뭐야?”
“한열이 책상에 낙서하지 말라고. 비품 담당은 나거든? 이거 교체해야 되면 네가 다 들어 줄 거야?”
“뭐야 시발. 왜 안 하던 짓을……. 너 미쳤냐?”
“내가 뭐 못할 말 했냐? 하지 말라는 건 좀 하지 말자. 애냐?”
“……이런 개 같은……. 같이 즐길 때는 언제고…….”
김선기의 목소리가 은하미의 목소리로 옮아 갔다.
“뭐래. 즐기긴 누가 즐겼냐? 그냥 참견하기 귀찮아서 놔둔 거지. 예전에도 좋게는 안 보였거든?”
“하. 이제 와서 성인군자인 척은. 예전에는 신경도 안 쓰던 것들이 왜 이제 와서…….”
“한열이가 몰카범 잡아 준 건 몰라? 알아보니까 걔들이 내 사진도 찍었다더라. 그래서 은혜 갚는 건데? 이제 와서 그러면 안 돼?”
“…….”
“하미가 맞는 말 했네. 그것 좀 그만할 때 되지 않았니? 유치하게.”
이 목소리에서 저 목소리로, 저 목소리에서 그 목소리로, 붙고 옮고 뭉치는 소리들은 분명 교실의 다수를 차지했다.
그동안 약 쳐 놓은 게 헛일은 아니었네.
이요한(a.k.a 김송헌 꼬붕3)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필시 뒤에 방관하고 있을 김송헌에게 구원의 시선을 보낼 그 타이밍에,
나는 교실 문을 드르륵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와. 김송헌 오랜만이네. 이게 얼마 만이냐?”
그리고 해맑게 웃으며 김송헌에게 안부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