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이 자꾸 늘어-60화 (60/164)

<재능이 자꾸 늘어 60화>

10. 냉정과 열정 사이 - 11

* * *

“걔가 왜 그런 말을 지껄였겠어? 다 우리 사이 갈라놓으려고 한 거 아니겠냐?”

김송헌은 뻔한 말로 차재철을 달랬다.

“조심해. 그 쥐새끼들은 혓바닥이 매섭거든. 가진 게 없으니까 단련할 게 그것뿐이란 말이야. 매섭기만 해? 그걸 함부로 휘두르기까지 하지. 왜? 책임질 게 없으니까. 갈 데까지 간 인생, 무서울 거 없다 이거지.”

거짓 전제의 사용. 일반화의 오류. 과장과 비약.

짧은 말 안에 갖은 논리 오류를 쑤셔 넣고도 김송헌은 아주 당당한 태도였다.

어떤 거리낌도 없는 건, 그가 꾸며 낸 말을 스스로 믿어 버리는 종류의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사이비 교주의 자질을 훌륭히 갖췄다.

물론 이 자아도취에는 듣는 이의 역할도 지대했다.

“아아, 그렇구나……. 걔가 한 말 그거 다 거짓말인 거야?”

“그렇다니까. 뭐, 소년원행이 집행유예보다 낫다고? 딱 들어도 헛소리잖아. 그거 지금 소년원에서 썩고 있는 애들한테 말해 보라고. 고를 수 있다면 당연히 소년원밖을 고르지 않겠느냔 말이야.”

“그치, 그렇지. 나도 그게 좀 이해가 안 갔어. 당연히 좋은 게 좋은 거 아니야?”

요컨대 개소리를 잘 들어 주니 개놈이 신 나게 왈왈대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었다.

옆에서 그걸 지켜보던 박종철은 두통을 느꼈다.

궤변의 교향곡이 울려 퍼지고 있는데 그걸 제지할 상식의 수호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본인을 포함해도 마찬가지였다. 박종철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반항은 침묵이었다.

“맞아. 그 새끼 말을 어떻게 믿어? 송헌이가 우리한테 해 준 게 얼만데. 그치?”

“……고맙다. 진짜. 너희들이 진짜 친구들이야.”

그나마 상식인이던 이요한은 본인의 상식을 아부에 써 버리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다.

양심은 아마 아침에 변기 물과 함께 내려 버렸으리라고 박종철은 확신했다. 어떻게 아느냐면, 자신도 그랬으니까.

“재철아, 그러고 보니 아버지 사업은 잘되시고?”

“으응. 덕분에 이번 계약 잘 체결되셨대. 울 아부지가 언제 한번 의원님께도 감사 말씀 드리고 싶다고…….”

“다행이네. 근데 미안해. 우리 아버지 사정상 그건 좀 힘들다는 거 알지?”

“그럼 알지. 괜히 구설수 오르면 안 된다는 거. 그냥 감사한데 마음을 전할 수가 없어서…….”

“걱정 마. 다 때가 있을 테니까. 요한이도. 이번에 특별히 너네 어머님 보너스 챙겨 드렸어. 요새 신경 못 써서 미안하다.”

“진짜아? 고마워 송헌아……. 진짜 너밖에 없다…….”

꼴깝 떨고 자빠졌네. 병신들.

그러나 박종철은 단련된 미소로 속내를 감추었다.

물론 이요한도 알기는 할 것이다. 본인을 좀 더 분명히 얽매기 위해, 김송헌이 모친의 근무처를 의원실 밑으로 옮겨 버렸다는 정도는.

알지만.

알기에 더욱 그는 김송헌에게 매달린다.

김송헌은 정말 쥐뿔도 없는 놈이지만 자신의 힘을 효율적으로 쓰는 일만큼은 능란했다.

“하여간 고아 새끼들이란……. 좀 떴다 싶으니까 바로 건방지게 구는 것 봐. 하기야, 밑바닥만 기던 놈이 윗공기 좀 마시니 뽕 맞은 기분이겠지.”

“못 배워서 그래. 우리가 이해해야지 어쩌겠냐. 애미 애비 없이 자란 새끼가 교양이 있길 바라는 게 오히려 과한 기대 아니냐?”

“개념 상실한 건 고아들 종특인가. 이것도 뭔가 과학인가 싶다.”

“크히히. 그래. 요한이 네가 정리해서 논문 내 봐라. 노벨상 받겠다.”

“그, 그럴까? 하긴 우리 학교 보육원 새끼들 많아서 자료 수집하긴 딱이네.”

“아 그거 졸라 짜증 나. 격 떨어진다니까. 아주. 학교 지침이라니 뭐랄 수도 없고. 시벌.”

사실 교육 수준으로 논하자면.

이한열까지 갈 것도 없이 박종철보다 성적 좋은 놈이 이중 단 한 명도 없었음에도, 놈들은 자신만만하게 떠들어 댔다.

상식의 하향평준화랄까. 븅신끼리 모이니 븅신스러움이 표준이고 상식이 되는, 실로 븅신스러운 상황으로서…….

“그치? 종철아?”

김송헌이 박종철을 정확히 지칭했다.

박종철은 표정 관리의 명인답게 활짝 웃으며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럼. 내가 있어 봐서 알잖아. 거기 다 병신들밖에 없어. 진짜 수준 안 맞아서 못 놀겠다니까.”

“지-인짜?”

“아 진짜로……. 저번에는 어떤 일 있었는 줄 알아? 하여간 고아 새끼들은 말이야…….”

유체이탈화법으로 셀프 디스 비슷한 말을 늘어놓는 것도 이젠 익숙하다.

김송헌은 늘 이런 식으로 박종철의 충성심을 확인했다. 제대로 굴복하고 있는가. 그새 반항심이 움트진 않았는가. 주제 파악은 오늘도 수월한가?

리스트 몇 개를 정해 두고 정기적으로 체크하듯이 박종철의 자아를 빻아 두었다.

덕분에 박종철은 매일 자신의 위치를 되새길 수 있었다.

여긴 병신과 머저리들이 접 붙고 새끼 까는 환장 월드이지만, 그중에서 가장 독보적인 머저리는 본인이라는 사실을.

똑똑-.

“……송헌아.”

“어? 선생님 오셨어요?”

“그래, 잠깐 나와 봐.”

고윤숙이 고갯짓으로 김송헌을 불러냈다.

김송헌 패거리는 학교에 남은 부실 하나를 통째로 아지트로 쓰고 있었는데, 당연히 고윤숙이 밑작업 한 것이다.

걸리면 당연히 고윤숙이 감당해야 할 일이겠지. 이렇게 보면 저 여자도 자신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다고 박종철은 생각했다. 별로 위로는 되지 않았지만.

나가서 고윤숙과 얘기를 나누던 김송헌이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두툼한 서류 봉투 하나가 들려 있었다.

“자, 준비물이 도착했다.”

김송헌이 비릿하게 웃으며 미션을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이한열 박멸 작전’이라 명명된 거창하고 치졸한 계획을.

“……그러니까 체육 시간에 한 명만 아프다고 하고 남아. 그리고 아무도 없는 교실에 몰래 들어와서 이걸 놈의 가방에 숨겨 두는 거야. 바로 다음 시간에 고윤숙 선생이 학생부를 이끌고 교실에 들이칠 거고.”

“나! 나 시켜 줘! 그놈 내가 엿 먹일 거야!!”

차재철이 손을 들고 자원했다.

바이러스도 유산균처럼 섭취할 것 같은 놈이 아프다면 퍽이나 자연스럽겠다만…….

“그래. 재철이가 해 준다면 나야 믿음직스럽고 좋지.”

그럼에도 김송헌은 그에게 기회를 맡기기로 했다.

이한열의 이간책으로 살짝 기우뚱한 둘이었다.

차재철은 본인의 마음에 거리낄 게 없음을 증명하고 싶었고, 김송헌은 그의 충성을 확인하고 잘 해낸다면 보상을 얹어 주어 흔들린 관계를 정상화시킬 계기로 삼을 심산이었다.

“근데 그럼 놈이 와서 가방을 확인할 수도 있지 않아?”

“그러니까 쉬는 시간에 누가 놈을 붙잡아 둬야지. 확인할 시간도 없게.”

“그건 누가 해?”

“그거야…….”

김송헌의 시선이 박종철에게 머물렀다. 박종철은 내키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할게, 송헌아. 나 잘할 수 있어.”

“그래 줄래? 고마워, 종철아.”

가장 부담되는 일인 데다, 무엇보다 직접적으로 몸을 드러내므로 잘못됐을 때 가장 의심을 사게 될 역할이었다.

“자아, 그럼 이제 역할 분배는 다 끝난 건가? 얘들아, 오늘 하루만 좀 고생하자. 그 망할 놈만 날려 버리면…… 모든 게 다 제자리를 되찾을 테니까.”

“그래!”

“날려 버리자!!”

“오우우!”

김송헌은 이 종교적 부흥회를 관장하는 교주가 되어 아이들의 열렬한 신앙 고백을 기껍게 맞아들였다.

박종철은 그걸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었다.

관종.

그러나 저 관종짓의 재료로 소모되는 입장에서는 웃을 수만도 없었다. 박종철은 씁쓸하게 자조를 삼켰다.

* * *

체육 시간 직후.

화장실에 들렀다가 교실로 돌아가려는데 박종철이 내 앞을 막아섰다.

우스꽝스러운 어깨 뽕과 노랗게 황량한 머리는 여전했다. 험악함을 부풀리다 펑 터져 버린 낯짝도 변함없이 어설펐다.

“……뭐냐?”

“잠깐, 얘기 좀 하자.”

“나 너랑 할 얘기 없는데.”

“……김송헌이…….”

핑곗거리가 목구멍에 걸린 표정으로 박종철은 한참 침묵했다.

그러다 결국 핑계를 내던져 버렸다.

“넌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냐? 원래 그러지 않았잖아. 숙이고, 넘기고, 순간을 모면하고. 그게 너였잖아.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갑자기 뭐라는 거야.”

“……난 네가 밉다.”

“…….”

“시발. 근데 이젠 미워할 수도 없네. 하늘 위 구름한테 주먹 뻗어 봐야 섀도복싱밖에 안 되니까. 좋냐? 이젠 나 따윈 범접도 못할 곳까지 올라가니까 좋아?”

“야.”

난 박종철의 가슴을 툭 밀었다. 놈은 쉽게도 밀려나서 휘청거렸다.

“주접떨지 마. 피해자인 척도 하지 말고. 변명은 더더욱 하지 마. 무엇보다, 날 대상으로 망상 폭발시키지 마. 죽여 버린다.”

“…….”

“헛소리할 거면 비켜.”

안 비키기에 그냥 지나쳐 가려는데 놈이 내 팔을 쥐고 늘어졌다.

“……그때, 왜 날 못 본 척했냐. 왜 날 버리고 갔어?”

“…….”

두서도 없는 말 하느라 애쓰네.

난 픽 웃으며 팔을 뿌리쳤다. 하는 짓이 귀여우면 대충 맞장구나 쳐 줄까 했는데 이건 뭐 수준 이하였다. 이젠 이 귀찮은 촌극을 더 할 의지마저 사라졌다.

“저번에 내가 김송헌 옆에 있지 말라고 했지? 다친다고.”

“……뭐?”

“난 분명히 경고했어.”

그리고 놈을 뒤에 방치하고 교실로 돌아왔다.

들어가자마자 김송헌 패거리의 악의적 시선들이 질척하게 달라붙었다. 거기엔 여유, 승리감, 우월감, 기대감 따위가 천박하게 섞여 있었다. 숨기지도 않고 노골적이다.

아마추어들 같으니.

뭘 지들이 계략을 꾸몄다고 만천하에 광고를 하고 앉았어.

“……쯧쯧.”

다 이겼다고 김칫국 샴페인을 들이켜는 게 짠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해서 남은 쉬는 시간이 가히 지루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들 소지품 책상 위에 다 올려놓고. 머리 위에 손 올려라.”

고윤숙을 위시한 학생부 교사들이 대거 들이닥쳐서 교실을 원천 봉쇄했다.

특히 학생부 이대헌 선생은 교문을 벗어난 학생부 활동이 오랜만이어서인지 좀 신 나 보이기까지 했다.

“……수학여행비가 사라졌다. 내 책상을 따고 가져간 것으로 봐서 우리 반 학생이 유력해. 지금이라도 자수하면 참작해 줄 테니까 이실직고하도록. 이제부터 다 눈 감고. 가져간 사람만 조용히 손 들어.”

물론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고, 이제 학생부 교사들은 소지품을 일일이 검사하기 시작했다.

“……한열아. 이건 뭐냐?”

내 책상까지 도달한 이대헌 교사가 두툼한 종이봉투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그 순간 김송헌은 당장이라도 팡파르를 울릴 기세로 텐션이 충만해졌다. 좀 미안하네. 너희들이 원하던 그런 전개는 아니어서.

난 짧게 답했다.

“돈요.”

“뭣?! 돈?”

“네.”

“……이거 수학여행비는…….”

“설마요. 야구부 매니저 운용비인데요. 보시면 얼마 안 돼요.”

과연 봉투 안에서는 오만 구천 원이라는 묘하게 소소한 금액이 등장했다.

만 원 지폐 하나 없이 동전과 천 원짜리로 구성되어 어딘가 빈궁함마저 풍기는 돈다발이었다. 봉투에 묻은 운동부 쩐내를 감지한 그는 신속히 납득하고 내 자리를 지나쳤다.

김송헌 패거리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리고 어리둥절함은 곧이어 경악으로 도약했다.

“……김송헌. 네 사물함에 이거 뭐냐.”

수십만 원 상당의 수학여행 환불비가 김송헌의 사물함에서 고스란히 발견됐다.

당연히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내게는 수호천사가 붙어 있었으므로.

“어…… 이, 이건……. 나는……. 이건 말도……. 어째서…… 뭐가 어떻게…….”

김송헌은 언어 회로가 고장 난 모양새로 떠듬거렸다.

이해한다. 승리를 기념해 팡파르를 주문했는데 장송곡이 흘러나오면 그야 당황스럽긴 하겠지. 뭔가 싶을 거고.

그러나 걱정 마라. 현실은 네가 외면해도 좋을 만큼 녹록하지 않다. 맛이 간 네 대갈통에도 잘 입력되도록 모두가 친절히 설명을 해 줄 것이다.

넌 이제 좆 되었다고.

“나, 나는 아니…….”

그때 방황하던 김송헌의 시선이 내 곧은 시선과 맞아떨어졌다.

음. 해 줄 말은 없고.

그냥 멋진 스마일로 그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 커진다. 보라. 우둔한 중생이 진실을 깨닫는 장면은 언제나 감동스럽다.

그뿐인가. 급격히 구겨지는 낯짝은 그 심성의 구김살을 닮아 가는 듯하여 구경하는 맛이 또 있었다.

에, 그리고-

“이-한-열-!!”

김송헌이 훌쩍 뛰어 날 덮쳤다. 우당탕! 주변의 책걸상들이 떼로 무너지며 불협화음을 토해 냈다.

“어어!”

“뭐야! 잡아! 말려!!”

“이 새끼 뭐 하는 짓이야?!”

그는 눈에 불을 키며 내 멱살을 휘어잡았다.

멋지네.

이제야 용기가 좀 생기셨어. 풋내기 정치인. 그렇지. 국회에 나가시려면 육탄전 정도는 단련하셔야지.

“……너…… 대체 뭔 개짓거리를……!”

“김송헌.”

“……뭘 한 거냐고!!”

“네 사람한테 배신당한 기분은 어떠냐?”

“이 개자식아아-!!”

김송헌은 저번과 다르게 내 얼굴에 펀치를 꽂는 데 성공했다. 찰칵. 누군가 그 타이밍에 셔터를 누른 건 과연 우연이었을까?

그러나 오래 그러지는 못했다.

교사들이 달려들어 그의 사지를 잡아 끌어냈기 때문이다.

“놔!! 놔아아아! 으아아! 저 자식 죽여 버릴 거야아아아!!”

음. 경찰서에서 있던 일이 거의 비슷하게 재연된 거 같네. 만족감도 비슷하였다.

난 먼지를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내 수호천사와 눈을 마주쳤다.

딱딱하게 석화된 얼굴. 꺼멓게 죽은 낯빛 위에 체념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내 수호천사, 아니 악마라 해야 적합하려나.

어쨌든 그자의 이름은.

고윤숙이라고 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