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 자꾸 늘어 61화>
10. 냉정과 열정 사이 - 12
* * *
날치기 사건 직후.
김송헌이 변호사와 공저로 소설을 집필하고 그걸 본인의 이야기라 열심히 믿고 있을 때, 당연히도 나는 야금야금 이 교실을 장악해 나가고 있었다.
근데 성적을 올리고 학생들을 회유하는 일은 기본일 뿐,
사실 가장 공을 들인 건 고윤숙의 포섭이었다.
물론 난 포섭이라고 점잖게 표현했지만 본인은 어떻게 느꼈을지 알 수 없다. 알 바도 아니었고.
“……이게…… 뭐지?”
“사진이죠.”
주식으로 돈이 충분히 모이자마자, 나는 솜씨 좋은 파파라치를 고용했다.
그는 내 나이에 코웃음을 치다가 내 돈을 보고 즉시 존경심을 장착했고, 더하여 ‘성공하면 따따불’이라는 계약 조건을 내밀자 나를 조상님으로 섬기려 들었다.
결과적으로 파파라치는 몸값을 훌륭히 증명하고 그 따따불을 받아 갔다.
덕분에 난 내가 바라는 사진을 필요한 순간에 쥐고 있을 수 있었고.
“망원렌즈의 기술적 발전과 줌 기능의 위대함이 돋보이는 원거리 샷이 아닐 수 없지요. 물론 단순한 인물 사진처럼 보이겠지만…….”
“이게 뭐냐고!!”
사진 안에는 푸근한 인상의 중년과 어떤 미모의 여인이 찍혀 있었다. 사이좋은 부녀 사이처럼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배경이 모텔촌이다.
고윤숙의 격렬한 반응이 마음에 들었던 나는 친절히 부연해 주었다.
“뭐겠습니까. 김필재 의원과 그의 새로운 애인 되시겠죠. 알면서 자꾸 묻지 맙시다.”
“……그럴…… 그럴 리가…….”
“왜. 당신을 두고 다른 여자를 찾을 리 없다고 생각했어요?”
“……!!”
고윤숙과 김송헌의 아비 사이가 내연 관계였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던 건 아니었다.
미래에도 그런 사실은 밝혀지지 않는다.
처음엔 몇몇 징후와 미래의 기사를 토대로 추론해 낸 가설에 불과했다. 그래서 한번 떠봤다.
-대체 그 의원이랑 무슨 사이길래 김송헌을 그렇게 싸고돕니까?
당연히 정색하면서 사실을 숨겼지만 내 [눈치]가 그걸 놓칠 리 없다. 내 계획은 그렇게 세워진 것이었다.
“아마 김송헌만 잘 졸업시키면 다시 부르겠다고 했겠죠? 근데 어쩌나. 그거 보고도 그걸 믿을 수 있겠어요? 이제 다른 가능성이 막 떠오르지 않나?”
“…….”
고윤숙은 눈을 치켜뜨고 날 노려보았지만, 끝내 부정하지는 못했다. 평소에 품던 의문과 불안의 답이 바로 거기에 있었으니까.
사실 김필재 의원의 외도는 당장 보이는 삼각관계보다 더 복잡하다.
내가 이 모든 사실을 어떻게 아느냐고?
당연히 미래에 대서특필될 일이기 때문이다.
정치인 불륜 사건이야 뭐 새삼스럽지도 않아서 그냥 묻힐 뻔했는데, 당시 미투 운동에 엮이면서 불씨가 확 붙어 버린 게 문제였다.
김필재 의원의 내연녀가 그를 성추행으로 고발했던 것이다.
재밌는 사실 하나 알려 줄까?
그 내연녀는 지금 저 사진에 있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이다.
‘발정 난 수캐 같으니.’
미래의 김필재 의원은 처음엔 사실무근이라 반박하지만 그 직후 사진 자료가 등판해서 조롱거리가 된다.
여기서 끝이면 내가 기억할 일도 없었겠지만,
이후 숨어 있던 내연녀들이 끊임없이 등장해 청문회장을 개그콘서트로 만들어 버린 게 결정적이었다.
이 스캔들은 미투의 흐름 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가, 수많은 정치인들을 사퇴시키고 몇 명의 꽃뱀을 구속시키면서 마무리된다.
이것이 바로 훗날 국민들로부터 ‘문어발 게이트’로 회자되는 사회적 신드롬의 전말이었다.
여기서 또 반전 포인트.
정작 시발점이 된 김필재 의원은 무죄 선고를 받았다. 왜냐면-
“당신들은 진짜 사랑이었다고 생각했겠죠. 그랬으니까 그렇게 그자를 믿었을 거고. 어쩌면 믿고 싶으니까 사랑이라 스스로를 세뇌시킨 것일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쌍방 합의로 인한 관계임은 분명할 테죠. 근데…….”
성추행이 진짜로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 사랑인가?
글쎄, 사랑이라기엔 지나치게 때 묻은 관계가 아닐지.
남자 쪽에선 진실 되지 못했고, 여자 쪽에선 한 번의 잠자리까지 따져 가며 정치적 손익을 계산했을 것이다.
“이 남자 옆이면 날아오를 수 있다는 꿈에 젖어 계셨어요? 끗발 있는 정치 집안 장남에 삼선 의원. 결혼은 했지만 쇼윈도 부부. 환상에 젖을 만하네. 물론 베갯머리에서 그걸 속삭이고 유도한 건 김필재였겠지만.”
분명,
본인은 당에 필요한 임무를 수행하러 교사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성의 영역에서는 그랬겠지.
그러나 속내는 내 남자의 자식을 돌봄으로써 유사 모친의 지위를 획득했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던 거다. 사실은 불안했을 테니까.
그렇게 김필재의 부추김과 본인의 내적 욕망이 만나 그녀의 선택을 이끌었다. 그것이 거리 두기의 방편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이것이 고윤숙이 교사가 된 진짜 배경.
그러나-
“이영땡, 김시땡, 고영땡.”
난 세 개의 문서를 차례대로 그녀에게 던져 주었다.
물론 주요 인적 사항은 지워진 상황이지만 핵심 내용을 알아보기에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모두 다 김필재 측근이었다가 한순간 좌천되고, 언젠가부턴 존재도 찾기 힘들게 된 사람들이죠. 그게 김필재 내연녀들이 맞이한 말로예요. 아시겠어요? 당신 미래라고.”
“틀려……. 나는……. 나만은……!”
“다들 나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다가 뒤통수 맞은 거지. 가련한 사람들 같으니.”
그러니까 김필재는 불륜 했다는 사실을 지우기 위해 여자들을 하나씩 내쳤던 것이었다.
정치적으로 재기하기 힘들게 은근히 방해까지 하면서.
그 와중에도 발정 난 개 새끼라는 사실은 그대로여서 또 다른 내연녀를 찾아내고. 그 악순환의 반복과 축적이 바로 ‘문어발 게이트’를 만든 것이었다.
실제로 저 셋은 김필재 고발에 앞장선 이들이기도 했다. 이름이 언론에 많이 노출되었던지라 찾기 어렵지 않았다.
“사실 본인도 조금씩 느끼고 있었죠? 뭔가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
정말로 믿었다면 김송헌을 뒷바라지하는 일에 한 치 허점도 두지 않았겠지.
망나니로 크게 방치하지도 않았을 거다.
오히려 두드려 패 가면서까지 철저하게 관리했겠지. 그게 진실 된 조력자의 역할이다. 그런데 지금 그녀가 그러고 있나?
아니겠지.
그래 봐야 다 소용없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요컨대 지금의 소극적 관여와 방관자적 태도는 고윤숙의 불안감의 반영이었다.
“……이걸 왜 나한테 보여 주는 건데. 그래서 뭘……. 무엇이…….”
한참 부정과 납득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그녀는 결국 납득 쪽에 발을 걸쳤다.
쉬어 빠진 목소리가 비틀비틀 새어 나오다 가끔은 자빠지기도 하였다.
“나름 고급 정보 알려 드린 건데. 별로 고맙지 않은가 봐요?”
“이런 거 안다고 뭐가 달라지는데. 그래 봤자…….”
“억울하지도 않나? 그렇게나 밤낮 없이 봉사하고, 아들 뒷바라지나 시키고. 그런 다음 쓰레기처럼 버리고……. 음. 나 같으면 칼 들고 찾아갔겠다.”
“이런 사진 몇 장으로는 뭘 어쩌지도 못해. 간통죄도 폐지돼서 감옥에 보낼 수도 없어. 쇼윈도 부부를 이혼시킬 수도 없지. 언론에 제보해도 은근슬쩍 사라질 거다. 반면에 나는 확실하게 매장되겠지.”
“뭐야, 정치 계속하기 싫어요?”
“그게 무슨 소리…….”
“그걸로 김필재를 처벌할 생각만 하니까 그런 말이 나오는 거지. 좀 진취적으로 생각해 봐요.”
“…….”
그러나 두뇌가 실의에 절여진 건지 퀭하니 날 볼 뿐이었다.
어쩔 수 없네.
고윤숙한테 서비스를 해 주는 날이 오다니. 이거 참 살고 볼 일이야.
“내가 가진 게 그 사진 한 장이 끝일까? 아뇨. 수십 장이 더 있어요. 그리고 옛 내연녀들의 인터뷰도 다 따 놓은 상태죠.”
“그걸로는 부족하다니까.”
“언론이나 법을 이용하면 그렇겠지. 근데 당신들은 정치인이잖아. 같은 정치인을 이용해야죠.”
“……!!”
“같은 당 안에서 반대 파벌을 찾아요. 그리고 공천 시즌을 노리라고. 아니 이런 패를 쥐고 줄 갈아탈 기회 하나 못 만들어요? 당신 그 정도로 무능해?”
아까부터 반쯤 반말조로 쏘아붙이고 있었는데도 고윤숙은 그걸 눈치채지도 못한 듯했다.
다만 눈빛이 살아났다.
좌절 속에서 활기가 기지개를 펴고, 온갖 격정의 감정들이 날붙이를 쥐고 봉기했다.
마지막으로 안착한 감정에선 희망과 분노가 섞인, 어떤 잡탕의 냄새가 났다.
결국 내 방법이 정치 인생을 되찾기에도, 복수하기에도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에 이른 거겠지.
“……그럼 지금 내놔.”
“그럴 수는 없죠.”
“왜!!”
“당신 나 믿어? 난 당신 못 믿는데.”
난 덜컥 일어섰다.
그녀가 움찔 몸을 떨었다.
“3개월.”
“……뭐?”
“내가 시키는 거 고분고분 잘해 주면 주고, 못하면 물 건너가는 거고.”
“……빌어먹을. 이젠 너까지 날 부려 먹을 생각이야?”
“이 자료의 가치가 별로 높아 보이지 않나 봐? 그럼 유감이네. 집에 가서 다 태워 버려야지.”
“…….”
“선택하시죠, 고윤숙 선생님.”
핵심은 옛 내연녀들이다.
불륜에 포커스를 두면 안 된다. 그 정도 때 하나 없는 정치인들 그 바닥에는 없다.
그러니까 수많은 옛 내연녀들이 이를 갈고 있다는 사실, 그걸로 겁을 줄 수 있어야 이 자료들이 힘을 갖는다.
그리고 그 정보는 회귀자인 내 머릿속에만 있고.
“……너를, 너를 어떻게 믿지?”
“뭐 어쩌시겠어. 그냥 믿으셔야지. 대안이 없는 마지막 희망인데. 그리고 걱정 마요. 김송헌 때문에라도, 김필재 의원 날리는 건 내게도 득이 될 일이니까.”
“…….”
그렇게 고윤숙은 함락됐다.
* * *
고윤숙을 함락시키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내 1학년 1학기 생활기록부를 고치는 일이었다.
대체 어떤 수준인데 그러느냐고?
그건 먼 훗날 국립국어원이 ‘개노답’을 사전에 등재한다면 동원될 법한 어휘들로 꾸며져 있었다.
- 시기심이 짙고 이해심이 부족함. 공감 능력에 심각한 장애가 의심됨.
- 태도가 거칠고 폭력적인 성향. 대인 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늘 혼자임.
- 학우들 사이에 자주 문제를 일으켜 학업 분위기를 저해함.
- 매사에 게으르고 비타협적 태도로 일관함. 몇 번의 상담을 해 보았으나 개선 가능성 희박.
- 학업 성취도가 현저히 낮음. 교사의 조언은 무시. 노력 의지가 현저히 결여됨.
혹여나 입양 심사 중에 이 1학기 생활기록부를 참고하기로 했다면?
끔찍-.
지나가던 사탄이 이거 보고 지옥으로 스카우트해 가겠네.
“……다 쓴 기록을 수정하긴 힘들어. 이미 등록까지 끝난…….”
“그딴 건 당신이 신경 쓸 일이죠. 그래서 할 수 있어요? 없어요?”
“……있어.”
“어차피 할 거면서. 진작에 그렇게 말씀하시지.”
여튼 미션 완료.
그 뒤로는 별다른 터치를 하지 않았다.
김송헌의 근황만 주기적으로 보고하도록 지시해 두었을 뿐.
그래서 사실 에멩이 엄마 연희재 씨가 전화했을 때도 어느 정도는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지금쯤 연락이 오겠거니, 할 때 받은 연락인 것이다.
[고윤숙 : 오후에 차재철 외 2명이 찾아갈 것임. 대비 요망.]
이 연락을 보내온 것도 그녀.
열성적이지는 않아도 꽤 견고한 서포트였다.
내가 없으면 내 자료도 없어질 거라는 걸 불편한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었을 테니.
그리고 김송헌이 복귀한 대망의 그날,
나는 아무래도 놔두면 귀찮아지겠다 싶어 고윤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 되겠어요. 이제 그놈 치워 버릴 겁니다. 역시 그놈하고는 같은 교실에 못 있겠어. 있을 수가 없지.”
-……꼭 그래야 되겠니? 너무 일이 크게 번지면…….
“무슨 소리야. 그걸 말이라고 해요? 걔가 오늘 아침에 뭐라고 지껄였는지 알기는 해? 아, 들었어도 별 감상이 없으신가?”
너네들 부모 직장 없애겠다고 공공연하게 떠들어 댄 모습은 잘 녹음해 두었다.
그리고 김송헌은 그걸 실제로 실행해 버릴 또라이성으로 충만한 놈이지.
진짜 그렇게 되면 곤란했다.
-…….
“잔말 말고. 저번에 말한 그거 있죠?”
-그거라면…….
“수학여행 환불비 있잖아요. 그거 학생들한테 현금으로 돌려줘야 된다며. 어떨까? 그게 전부 다 없어져 버리면?”
-……제발 그건. 내가 너무 리스크가 커. 잘못하면 교사직은 물론이고 내 정치 인생까지 걸어야 할 수 있다고.”
“이미 걸고 있지 않아요? 설마 그런 각오도 없었던 거? 그럼 좀 실망인데. 그리고 내 말대로 안 하면 그때도 정치 인생은 없지 않나?”
교사로서 관리 소홀이라는 리스크를 짊어져야 했으므로 부담스러워했지만,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출세욕과 복수심의 콜라보가 그녀의 불안감을 극복게 했다.
그리고 감히 평가하건대,
고윤숙의 밑밥 까는 실력은 매우 우수했다.
-수학여행 환불비? 그거 다 돌려줘야 돼. 잃어버리면 큰일 나. 아니 진짜라니까. 이거 누가 훔치다 걸리기라도 하면 바로 가는 거야. 최소 정학감이지.
김송헌의 욕망을 자극하고,
-하려면 확실히 해. 실행 인원은 최소화하고. 네가 믿을 수 있는 사람한테만 맡겨. 이거 예사 일 아니야.
사고를 뜻대로 유도했으며,
-너 이거 분명히 알아야 돼. 잘되든 잘못되든, 나는 어쨌든 책임져야 되는 입장이라는 거. 나 지금 희생한 거야. 알아들어? 이거 아버지한테 꼭 말씀드려야 된다?
초조함을 의도적으로 노출함으로써 용의 선상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김송헌 사물함까지 배달함으로써 깔끔히 마무리.
김송헌이 이성이 남아 있다면 조금은 의심할 수도 있겠지. 자기 사물함 비밀번호 아는 사람은 몇 없을 테니까.
그러나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이번엔 일찌감치 용의자를 제한해 두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