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이 자꾸 늘어-62화 (62/164)

<재능이 자꾸 늘어 62화>

10. 냉정과 열정 사이 - 13

*   *   *

“……말해 봐.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김송헌이 차재철에게 쏘아붙였다.

얼굴은 뜨겁게 달아올랐는데 정작 내뿜는 말들은 싸늘하기 짝이 없었다.

“말했잖아. 나는…… 난 정말 모르겠다고!! 나한테도 누가 가르쳐 줬으면 좋겠어……!!”

“……재철아, 우리 아버지가 늘 해 주시던 말씀이 있는데 말이야……. 들려줄까?”

“응? 어. 어어…….”

“주인이 키우던 개를 언제 삶을까? 다 크면 삶아? 그럼 사냥을 못 시키잖아. 그럼 늙어서? 육질이 떨어지겠지. 어려서는? 먹을 살덩이가 없어. 이거 참 곤란하지. 딜레마란 말이야. 그럼 기준을 어디에 잡아야 할까…….”

“그, 글쎄. 그래도 늙었을 때 삶지 않을까?”

“틀렸어. 정답은…….”

김송헌이 거리를 바싹 좁혀서 바로 턱밑에서 차재철을 쏘아보았다.

몸의 열기와 목소리의 냉기가 엉기지 않고 거기 정체했다.

“주인을 물려고 들 때. 그리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때다. 넌 지금 뭐냐. 내 눈깔에 노안이 온 게 아니라면 넌 그 둘 다에 해당하는 거 같은데 말이야…….”

“……어?! 아, 아니야!! 내, 내가 왜……!!”

“그럼 뭐냐고! 네가 들고 들어간 거잖아! 근데 그게 왜 거기서 발견돼!!”

“그러니까 난 모른다니……!!”

“모르면 삶아야겠네. 쓸모없는 개새끼 따위.”

“뭐……?”

타악-.

김송헌이 차재철의 따귀를 올려붙였다. 절묘한 강세였다. 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후려치기보단 밀어내어 손과 뺨이 가능한 밀접하고 오래 붙어 있도록, 그래서 고통보다는 맞았다는 실감이 또렷하게끔 계산된 손장난이었다.

모멸감을 목적으로 하는 폭력.

차재철은 다리가 풀려 기우뚱 흔들렸다. 살갗보다 더 깊숙한 곳에 타격을 입었기 때문일 것이다. 교복 상의가 거창하게 휘날리고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툭 떨어졌다.

“……날, 때렸어?”

“송헌아 참아……!”

“후우…….”

“둘 다 진정해, 진정.”

몇몇이 둘 사이에 끼어들어 막아섰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깨달았으리라. 여기서 더 진전되면 정말 돌이킬 수 없음을.

“…….”

“……후…….”

숨소리만이 경박하게 날뛰는 시간이 얼마간 지났다.

열기와 냉기가 차근히 살을 섞고,

침묵의 여백 속에 이성이 점차 스며들었다.

차재철은 충격이 분노로 승화하기 전에 아버지의 사업과 김송헌의 영향력을 상기할 수 있었고, 김송헌은 충직한 사냥개였던 차재철이 변심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분위기가 적당히 미지근해졌을 즈음 김송헌은 입을 열었다.

“……그래. 뭔가 잘못된 거지. 우리가 이러는 게 이한열의 농간…….”

띠링-!

그 순간, 땅에 떨어져 있던 핸드폰 액정에 불이 들어왔다.

차재철의 핸드폰은 최신형 OLED의 위용을 내뿜으며 선명한 화질의 문자를 출력해 냈다.

[이한열 : 고마웠다. 지금은 눈치 보일 테니 나중에 연락하자. 보답은 꼭 할게.]

차재철이 왠지 모를 불안감에 손을 뻗지만, 김송헌이 그걸 뺏어 내는 게 더 빨랐다.

허락도 없이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 또 타이밍 좋게 문자가 날아든다.

[이한열 : 대신이랄 건 없지만 이건 선물. 저번에 윤정희 회장님이 찍어 주신 우리 사진이다. 아, 회장님이 너 안부 전해 달라더라고.]

둘이 퍽 가까이 붙어 있는 사진과 함께.

“이거 뭐냐……?”

“어? 그거……? 그거 저번에 보육원 찾아 갔을 때……. 어…… 그…….”

그러나 차재철은 말하지 못한다.

자신만만하게 경고를 날리러 갔는데, 때마침 짝사랑인 학생회장이 난입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사진만 찍었다는, 이 머저리 같은 상황을 조금이라도 덜 머저리스럽게 묘사할 재주가 그에겐 없었다.

있더라도 문제다.

그는 그날 ‘따끔하게 경고했다’고 김송헌에게 보고했으며, 두 똘마니에게도 입단속을 시켜 둔 상태였다.

이 거짓 보고를 또 개연성 있게 풀어낼 센스가 그에겐 없었다.

결국 재주도 센스도 없던 차재철의 혀는 기능을 정지해 버리고 말았다.

“어어…….”

“그래……. 이제 이해가 되네…….”

그리고 차재철의 정지한 혀 대신에 김송헌의 분노한 두뇌가 상황을 짜맞추기 시작한다.

“아아 그래, 너 윤정희 그년 좋아했지? 대충 알겠네. 요즘 이한열이 그 쌍년이랑 붙어먹고 있다며? 그래서 뭐, 그년 같이 따먹게 해 달라고 이한열이한테 무릎이라도 꿇은 거야?”

“……말조심해. 회장님은 여기에 관계가…….”

그러나 그 대응은 잘못됐다.

바로 부정하지 않고 반발하는 태도에 김송헌의 마지막 정신줄이 끊겨 버리고 만 것이다.

핸드폰을 던진다.

이번엔 힘 조절도 없이 우악스럽게.

핸드폰은 차재철의 관자놀이를 찢고 뒤편의 창문까지 박살 낸 뒤 사라졌다.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꺼져. 난 아랫도리 자유분방한 새끼들 안 거둔다. 놀아도 품위 있게 놀아야 될 거 아니냐. 천박한 골렘 새끼 같으니.”

“…….”

“안 꺼져? 빨리 꺼져서 아빠한테 전화해야지. 이제 그 쥐 좆만 한 공장 문 닫을 텐데.”

그리고 이 대응도 잘못됐다.

김송헌은 방금 차재철이 참아야 하는 마지막 이유를 없애 버렸다.

어차피 망하게 만든다고? 그럼 저 새끼 주둥이에 죽빵을 날리지 말아야 할 이유가 뭔가?

이유를 찾을 수 없던 그는 그렇게 했다.

무표정 그대로 저벅저벅 걸어가, 막아서는 놈들을 거의 집어 던지듯이 치우고, 김송헌의 코뼈를 단숨에 주저앉힌 것이었다.

*   *   *

“우효! 멋진데!!”

그리고 난 그 장면을 관람하며 탄성을 내질렀다.

몇 가지 감탄이 복합된 탄성이었는데, 하나는 차재철의 스트레이트 펀치가 가히 찰지다는 것, 또 하나는 요새 망원경 퀄리티가 훌륭하다는 것, 마지막으로는 김송헌 패거리 부실을 직관할 수 있는 위치에 학생회실이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었다.

정말 뷰가 끝내준다.

저기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잘도 보였는데, 마치 염탐을 목적으로 처음부터 설계…….

음.

설마 아니겠지?

“이야 십 년 전에 먹은 미더덕이 이제야 소화되는 기분이네.”

“……시끄럽네. 뭐가 그렇게 좋니?”

윤정희가 바로 타박을 해 왔지만 오늘 내 텐션은 최강이다.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좋을 수밖에 없죠. 체스판 위의 말들이 저렇게나 고분고분한데. 폰은 소심하고 나이트는 발랄하고 룩은 정직하게 움직이지 않습니까. 자기 역할에 충실한 사회란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지금이 네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는 건 내 단기 기억에 잘 저장해 뒀으니 이제 좀 조용히 해 줄래? 책을 못 읽겠잖니.”

“어라. 왜 단기 기억이죠?”

“너 가면 바로 잊어버릴 거니까.”

“야박하시네-!”

내 입은 툴툴거리는 와중에도 만족스런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안 웃었는데 웃고 있는 경험을 참으로 오랜만에 해 본다. 오늘 내 안면은 내 명령을 기분 좋게 거역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내 혓바닥 역시 주인의 의지와는 별개로 계속 떠들어 댈 것이 분명했고, 윤정희는 그런 내 상태를 진압하는 게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훼방꾼 노릇을 그만두었다.

대신 내 대화 상대가 되어 주었다.

“무모했어.”

“뭐가요?”

“네 계획. 잘 풀렸다만 구멍이 너무 많지 않니? 일단 네 담임을 어떻게 그렇게 믿는 거야?”

“그건 프라이버시에 영업 비밀이라 말씀드릴 수 없지만, 뭐 그럴 이유가 있다고 해 두죠.”

“그리고 김송헌이 네 짓인지 알고 있잖아. 네 존재를 숨길 방법은 많았을 텐데.”

“그건 뭐 어쩔 수 없죠. 김송헌은 지나가다 자빠지기만 해도 제 탓이라 할 놈이니까요.”

오히려 그렇기에 이 작전이 성립될 수 있었다.

이한열이 곧 악의 근원이므로, 부하가 뭔가 이상한 것도 내 탓이라 쉽게 믿어 버리는 것이다.

난 그의 믿음을 좀 뒤틀어서 돌려줬을 뿐.

“악연 참 징하네. 대체 걔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무 일도요. 미친놈이 사람 치는 데 이유 있겠습니까. 그냥 치는 거예요. 쳤는데 내가 피하니까 열이 받아서 달려드는 거고. 그것뿐입니다.”

“아무튼 더 깔끔하고 단순하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 나는.”

“계획이 너무 복잡하다?”

“아니, 난잡해.”

“오늘따라 야박하시네-!”

그러나 무슨 의미에서 말하는지는 알았다.

차재철이라는 중간 단계를 거쳐서 일을 꾸미는 게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김송헌을 직접적으로 때릴 방법은 그 외에도 무궁무진하니까.

그러나-

“전 반드시 필요했다고 생각해요.”

“그래?”

“네, 김송헌이 당당히 무죄 받고 돌아왔을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죠.”

생각보다 김송헌의 영향력이 강력하다.

절반의 인원을 소년원행으로 날렸지만, 나머지 ‘중요한’ 절반은 확실하게 지켜 냈다. 그렇기에 이 사단에도 추종자의 수가 비약적으로 줄지는 않은 것이다.

능력을 과시하는 것만으로 세력을 결집시키는 효과가 있으니까.

따라서 어설픈 공격은 하나 마나다.

그때마다 극복해 버리면 오히려 놈들이 똘똘 뭉치도록 도와주는 꼴이 된다.

수학여행비 절도 혐의?

아마 이 정도는 쉽게 버텨 낼 거다. 정치인 집안 자제가 고작 백만 원 안팎의 돈이 탐나서 훔쳤다는 게 설득력이 적기도 하고. 그건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나 큰돈인 것이다.

“절도 장면을 직접 카메라로 찍는다고 해도 빠져나갈걸요. 대충 구실은 많잖아요. 봉투가 우연히 비슷한 거다. 그 안에 돈이 있다고 누가 장담하냐. 기타 등등. 학교에서도 그냥 덮으려고 들겠죠. 일이 커져서 좋을 거 없으니까.”

따라서 중요한 건 자중지란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전 학생들 모아서 단체로 김송헌을 고발할 겁니다. 왜냐면 우리 돈이니까요. 그럴 자격도 개연도 충분하죠. 물론 앞서 말했듯 그런다고 별 타격은 없을 겁니다. 다만, 진흙탕 싸움이 되겠죠.”

“진흙탕 싸움?”

“예. 김송헌은 이번에도 무죄를 받기 위해 차재철을 걸고 늘어질 거고, 이제 차재철은 제가 모르는 김송헌의 숨은 악행들을 알아서 토해 낼 겁니다.”

“……그러겠네. 그래서 하필 차재철이었던 거였어.”

“가장 적합하니까요. 측근에다, 행동대장에다, 비밀을 함께하는데, 정작 비호는 변변찮게 받는.”

“흠.”

달칵.

찻잔을 내려놓은 윤정희가 내 옆에 놓인 박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그 자료가 필요했던 거구나?”

“네. 그때 유용하게 쓰일 테니까요.”

앞서 몰카 사건에서 유추할 수 있듯, 윤정희는 이 학교를 관리하기 위해 불법과 합법을 오가며 온갖 정보들을 수집해 두고 있었다.

이 박스는 그 정보의 일부다.

다만 색인에 ‘김송헌’이라는 태그가 붙어 있을 뿐.

“차재철은 힘든 싸움을 할 겁니다. 그러나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근거들을 어디선가 제공받게 되겠죠.”

“익명의 키다리 아저씨한테서?”

“그건 좀……. 차재철이 저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데요…….”

그녀가 픽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유용하게 쓰도록 해.”

“감사합니다.”

“물론 그래도 내 생각은 바뀌지 않아. 좀 더 계획은 단순한 게 좋다고 생각해.”

“에에…… 오늘따라 정말 야박하시네요. 대체 얼마나 대단한 걸 하시려고.”

“후후…….”

윤정희의 웃음은 심해에서 울리는 듯이 퍼졌다. 뭔가 어두운 심연에서 크툴루가 흥얼거릴 때나 들릴 법한 음산함이 거기에 있었다.

“나라면 성폭행이나 마약 음용 혐의를 씌워서 처넣었겠지. 자고로 음모란 단순할수록 강력한 법이야.”

악마다.

여기 악마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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