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 자꾸 늘어 67화>
10. 냉정과 열정 사이 - 18
* * *
산속 늑대 굴에서 아기를 발견했을 때, 청한선사는 처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심을 품었다.
생각해 보면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반(反)과 괴(怪)라 이름 붙은 두 부부 늑대들이 가축을 습격하다 결국 사람을 잡아먹은 것이 작년 겨울의 일이었다.
부부 늑대는 토벌되었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늑대는 무리 동물이고 그 잔당이 남아 있다면 그것들도 사람 고기의 맛을 본 것이었다.
속히 토벌해야 옳았다.
조사대가 꾸려져 며칠 산을 헤집었지만 다행히 늑대는 더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조사대가 해체된 바로 다음 날 청한은 부처님의 인도인지 아니면 악령의 꾀임인지 모를 이유로 늑대 굴을 발견했다.
늑대 굴에는 온통 털과 살점의 파편들뿐이었다.
부모의 죽음으로 먹이가 끊긴 새끼들은 굴 안에서 저들끼리 싸우고 잡아먹다 스스로 절멸해 있었다.
그리고 사람의 아기가 그 사이에 홀로 누워 있었다.
꽤 오래 굶었는지 해쓱했지만 그뿐이었다.
마치 근처의 참극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태도로 아기는 잠들어 있었다.
늑대 새끼들은 서로를 잡아먹는 와중에도 어째서인지 이 아이만은 건드리지 않은 것이다.
유일한 식량 창고를 독점하기 위해 동족상잔을 하다가 식량만 살아남은 상황인가?
청한선사는 그렇게 해석하기로 했다.
그러나 아이를 안고 늑대굴을 나오면서 의식 위로 부상하는 어떤 생각이, 그 기묘한 가능성이 청한을 자꾸만 자극했다.
해쓱하다…….
어째서 해쓱한가?
그건 아직 굶어 죽지 않았다는 말이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누가 이 버려진 아이를 돌보았는가.
늑대들이?
그렇다면 사람을 잡아먹은 그 괴물들이 새끼 먹일 젖을 아껴서 사람의 아이에게 베풀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이 아이는 늑대의 젖을 먹고…….
청한은 거기서 사고를 멈추었다.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이 아이는 비상식량이었고, 납치되자마자 늑대들이 토벌되어 살아남았으며, 그 새끼들도 자멸하여 우연히 화를 면한, 정말 끝내주는 운의 소유자일 뿐이었다.
청한은 그렇게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아니라도 할 일은 달라지지 않는다.
요괴의 자식이라면 더욱이 받아들여 불제자로 키워야만 했다.
부처님의 인도하에 악성을 다스리게 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요괴의 자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불과 몇 달 만에 씻은 듯이 사라졌다.
아기는 어여뻤다.
그리고 사랑스러웠다.
덧붙이자면, 좀 너무하다 싶을 만큼 그랬다.
생후 1년 미만의 핏덩이 주제에 가히 폭력적인 매력을 뽐내는 것이었다.
그건 젖동냥을 위해 마을로 내려갔을 때 가장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다.
“어머어머, 애가 왜 이렇게 예뻐요? 세상에-.”
“나도나도. 어머나…… 와, 나 방금 애기한테 반할 뻔.”
“우리 집 애는 얘에 비하면 완전 바윗덩어리네.”
“그래도 애한테 바위가 뭐니?”
“그럼?”
“음…… 감자 정도로 하자…….”
그러고는 자발적으로 가슴을 개방시키는 것이었다.
지나치게 사랑스러워서 젖을 물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 그녀들의 설명이었다.
동냥을 위해 집집마다 들른 것도 며칠뿐이었다.
얼마 안 있어, 청한선사가 하산하는 시각에 맞춰 마을의 모유 보유자들이 알아서 집합하는 기이한 일상이 펼쳐졌다.
“예뻐. 예뻐. 아이구 잘 먹네!”
“배, 배부르니? 이 아줌마도 젖 잘 나오는데…….”
“나 어제 호두 먹어서 내 젖에선 견과류 맛이 난단다. 이리 온!”
“함석 댁은 애 난 지 꽤 돼서 이제 안 나오지 않아?”
“아냐. 얘 먹일 젖은 나오게 되어 있어. 의지로 극복 가능해.”
“아니, 이번엔 내 차례라니까!”
수유 순서를 두고 쟁투가 매일같이 일어났기에, 청한선사는 자신이 불제자인지 아니면 분쟁 조정 전문가인지 헷갈릴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갈등이 심각해지는 일은 없었다.
아이는 배가 어느 정도 차면…….
“까오옥…… 꺄륵!”
하고 트림을 하며 깜찍한 웃음을 터뜨렸고.
그 한 방이면 좌중의 모든 여인네들이 헤벌쭉하여 세상만사의 근심과 갈등을 잊고 평화를 되찾았다.
그 모습이 부러웠음인가.
가끔은 결혼도 안 한 처녀‘들’이 젖을 물리려다 발각되어 쫓겨나는 사례도 발생했다.
“결혼하고 돌아오겠습니다!” 하고 의지를 피력하는 그치들에게 청한선사는 그때 즈음이면 젖을 떼었으리라는 비정한 진실을 차마 일러 주지 못했다.
“이 정도면 협박 수준이네요.”
“응?”
반야(般若)가 툭 말했다.
시동으로 받아들인 이 여자애는 다소 염세적인 면이 있었다.
“목덜미에 칼을 들이대고 ‘날 사랑하라’고 협박을 하는 것만 같아요.”
“부정할 수만은 없구나…….”
마을 처자들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살아남은 아기에게는 의종이라는 법명이 붙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시간은 의종에게서 귀여움과 예쁨을 점차 앗아 갔다.
탄식할 만한 일은 아니다.
왜냐면 빼앗아 간 만큼 잘생김을 두 배 정도 얹어서 되돌려줬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잘생겨지는 소년 덕에 운중사는 때 아닌 호황을 누리게 됐다.
더 이상 젖동냥을 오지 않는 의종을 보기 위해 아예 처자들 쪽에서 운중사로 출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부처님께 공양을 드린다는 명목이었지만, 누가 봐도 구경 온 김에 절 한번 드린다는 느낌이었다.
속내들이야 어쨌든 운중사의 곳간은 날이 갈수록 풍족해졌다.
“……이거 좋은 건지 모르겠구먼. 다들 젯밥에만 눈이 멀었으니…….”
“주객전도네요. 젯밥 먹으려고 제사를 치르고 있으니.”
“어쨌든 이런 식으로라도 불심을 쌓는다면 좋은 일이겠지.”
“글쎄요. 과연 그럴지.”
어쨌든 곳간이 차고 있었다.
계속 찼다.
세 번째 곳간을 증축하면서 청한선사는 거의 공포를 느끼게 됐다.
“……이렇게 축재가 쉬워도 되나?”
“글쎄요. 선사님이 너무 순진하신 겁니다. 오늘날의 승려들은 문벌 귀족과 결탁하여 권력을 휘두르고 민초를 수탈해 더 쉽게 재물을 축적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다 가짜다! 어찌 불제자가 되어 재물을 탐한단 말인가!”
“머리 깎는다고 욕망까지 깎이는 건 아니란 거죠…….”
청한선사의 불안감이야 어쨌든, 시간은 지났고, 재물은 계속 불어났으며, 의종은 겁나게 잘생겨졌다.
의종의 나이 14세가 되자, 그 미모는 이미 필설로 형용할 경지를 넘어서 있었다.
그 용모를 시로 남기고자 한 시도는 모조리 실패했다.
얼굴을 보고 있자면 뭘 떠올릴 생각도 못하고 그냥 멍 때리다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 어떤 미사여구든 그에게 붙이는 건 언어 낭비다. 미사여구는 격상될 것이고, 의종은 격하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위해 새로운 언어를 창조해야 한다. 이른바 ‘의종스럽다’라든지.
그리고 문제는 그즈음 터졌다.
아니, 언젠가는 터질 거라고 모두가 예상하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해 오던 그 일이 벌어졌다.
의종이 어느 마을 처녀를 임신시킨 것이었다.
“…….”
“…….”
“의종아.”
“예, 선사님.”
“정녕…… 했느냐?”
“뭘 말씀이십니까?”
“그거 했느냔 말이다.”
“그러니까 그거가 무엇입니까?”
“…….”
“……?”
“성교! 교접! 정사! 남녀지간의 행사를 치렀느냐 이 말이야!!”
“예. 그렇습니다만.”
“아오…….”
더 경악스러운 점은 이것이었다.
그 임신한 처녀는 혼전 관계를 지탄받기는커녕 부러움의 대상으로서 회자되고 있었다.
심지어 ‘최초의 성은을 받은 자’라는 말도 떠돌았다.
말인즉.
봉인이 풀렸다.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둑이 무너졌다.
이제 욕망에 불타는 모든 여자들이 거침없이 육탄 돌격을 감행해 올 것이었다―그리고 청한이 알기로 남자 몇도 포함되었다.
스님에게.
불도를 닦는 승려에게!
청한선사는 불심으로 쌓은 평정을 총동원해 가까스로 이성을 유지하며 의종을 설득했다.
어째서 불제자가 육체적 욕망에 휘둘려서는 안 되는지, 해탈과 정신적 초극의 상관성을 절절하게 역설했다.
의종은 다 듣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선사님의 말씀엔 어폐가 있으십니다.”
“무슨 어폐?!”
“전 딱히 쾌락을 위해 관계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그 처녀가 바랐기에 그리했지요.”
“…….”
“원효대사께서도 무열왕의 딸 요석공주와 관계를 갖지 않았습니까. 요석공주의 간절한 바람을 차마 저버릴 수 없어, 자비와 인심을 베푸는 차원에서 그리하셨지요. 그럼 원효대사께서 욕망에 휘둘린 것입니까? 선사님, 세상을 그리 단편적으로만 보시면 안 됩니다.”
가만히 듣던 청한선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외쳤다.
“그게 무슨 쌉소리야!!”
청한선사는 반발했다.
반발의 내용이 대단히 길고 격앙되었으므로 짧게 요약하자면,
‘원효대사쯤이나 되니까 그 정도로 정신 수양이 가능한 것이지 네놈 같은 풋내기 하수 따위는 그 흉내도 낼 수 없을 테니 꿈 깨라’는 뜻이 되겠다.
그럼에도 의종은 순백의 얼굴로…….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정말 사심이 없었습니다.”
……라 답하니 청한으로선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 말은 앞으로도 사심 없이 살을 부비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그 눈에는 여성들의 번민 해소를 위해 자기 한 몸 바치겠다는 불제자의 의지마저 엿보였다.
청한은 아연실색하여 외쳤다.
“또 한 번 더 그러면 파계다!”
그러나 그 외침은 공허했다.
청한과 의종의 불교적 해석에는 대략 지구와 해왕성 거리의 격차가 존재했고, 구시대의 패러다임을 뛰어넘으려는 모든 선각자들이 그렇듯 의종 역시 본인만의 불도를 걷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계속 여자들과…….
……했다.
엄청 했다.
청한은 당장이라도 의종을 파계시키려 했지만, 어릴 때부터 계속 길러 온 정이란 것이 그를 붙잡았다.
파계는 불명예다.
차라리 스스로 환속을 하게끔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하루는 넌지시…….
“그럴 거면 차라리 환속을 하는 게 어떠냐…….”
……라고 물었더니.
“승려가 절을 떠나 어디를 간단 말입니까?”
……하고 되레 의아하게 묻는 것이었다.
태도가 실로 스스럼없어 청한은 이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됐다.
“……저놈 진짜로 사심이 없는가? 그게 진짜 불도라고 믿나? 아니, 이제 스물도 안 된 이가 그럴 수 있나? 반야야,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다 개뻥 아닐까요?”
“아무래도 그렇지?!”
급기야는 의종을 사이에 두고 한 부부가 싸우고 별거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남편이 질투를 했다는 사유인데, 질투의 대상이 의종이 아니라 아내라는 점이 밝혀졌을 때 이제 청한은 두뇌 활동을 대략 반쯤 정지해 두기로 결정했다.
“……난 이제 아무것도 모르겠다…… 부처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운명의 그날이 찾아왔다.
마을의 어느 유지가 아내의 외도에 분노해 무인들을 모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청한은 올 것이 왔다고만 생각했을 뿐 놀라지는 않았다.
유지는 다소 성격이 급했다.
적당히 무인이 모이자마자 칼을 빼 들고 선두에 앞장섰다.
그 와중에도 여인들의 반발을 우려해 새벽을 선택하는 냉철함까지 갖췄다.
오늘에야말로 사단이 나겠구나, 청한은 그렇게 직감했다.
때마침 달도 없이 어두웠다.
몇 개의 횃불이 으르렁거렸고 가끔씩 뿌연 연기를 뿜어 밤하늘의 어둠을 바랬다.
숲의 치맛자락을 이리저리 들추는 빛들을 보다가, 청한은 의종에게 말했다.
“떠나거라. 넌 이제 파계다. 죽느니 불명예라도 안고 살아야겠지.”
“선사님, 제가 왜 떠나야 합니까?”
“유부녀는 건들지 말았어야지! 그건 불제자를 떠나 그냥 사람으로서의 약속이다!”
“불도는 속세의 상궤 위에 존재합니다.”
“너랑 궤변 놀이 하는 것도 질렸다. 떠나거라.”
청한선사는 의종을 뒤에 두고 불당을 나왔다.
얼마 후 운중사 정문에서, 청한은 칼을 빼 들고 올라오는 유지와 마주했다.
“돌아가시지요. 의종은 파계시켜 내려 보냈습니다. 이곳에 더 이상 없습니다.”
“믿을 수 없소.”
“믿으시지요. 아님 부처님의 땅에 그 음험한 것을 들고 들어오시렵니까?”
“필요하다면 해야겠지. 애당초 부처님의 땅이 맞소? 밤꽃향이 진동하는구먼.”
“…….”
할 말이 없었다.
“비키시오. 오늘 밤에 자비는 없을 것이오.”
유지는 무사들을 앞세워 무작정 들이닥쳤다.
일찍 떠나보내서 다행이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불당이 벌컥 열렸다.
의종은 떠나지 않은 채 불당에 꼿꼿이 정좌해 있었다.
“아니! 왜 안 가고 거기 있어!”
“네놈이 상식과 더불어 간덩이까지 상실한 모양이구나! 오늘 내가 네놈 아랫도리까지 상실시켜 주마!!”
유지가 무인들과 함께 불당을 둘러쌌다.
그때 의종이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뜨며 일갈했다.
“번뇌! 아아, 이럴 수 있는가. 이토록 중생들의 번민이 깊고 깊었다니…… 통탄스럽기 그지없도다.”
“네놈이 할 말이냐?!”
“어째서…… 난 나의 불법을 펼쳤을 뿐인데. 세상에는 왜 이토록 번민이 넘실대는가. 그런가. 그랬던 것인가! 세상은 아직 나의 불법을 맞이하기에 일렀는가!! 아아…… 그랬군. 안타깝다. 안타까워…….”
“……내가 잘못 봤군. 네놈은 혓바닥을 먼저 잘라야 될 놈이로구나.”
“너무 이른 시대에 태어났구나. 인세는 아직 돈오(頓悟)하지 못하였으니, 나의 점수(漸修)가 인정받지 못할밖에…….”
“이제 끌어내!! 저 개소리 더 듣다간 고막이 터지겠다!!”
이윽고 무사들이 불당에 발을 디뎠을 때…….
“그렇다면 이 몸을 공양하여 불심을 증명할밖에…….”
땅이 우르르 떨렸다.
돌풍이 바닥을 치고 대나무 숲이 단체로 허리를 숙였다.
모두가 황망하여 겨우 몸을 가누는데, 의종만은 세상의 환란과 격리되어 홀로 고고하였다.
그의 어깨 위로 아지랑이 같은 것이 일렁였다.
빨갛고 파랗고 때론 섞여서 보랏빛이 일던 그것은 마침내 황금빛으로 수렴되었다.
그리고 불당을 감싸고 휘돌았다.
온 세상이 누런 회오리바람에 휩쓸렸다.
“으엇! 으어어엇!”
“이게 다 뭐야아아아!”
“나무아미타부우우우울……!!”
억겁 같은 시간이 지나고 정신을 차려 보니.
밤 어둠은 깨끗하게 개어 있고 어느새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유지와 무인들은 창조적으로 눕는 방법을 연구한 사람들처럼 이리저리 몸을 꼬며 널브러져 있었다.
청한선사는 자신도 마찬가지란 사실을 깨닫고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가장 먼저 의종에게 다가갔다.
“의종아……! 엇……?!”
의종은 가지런히 앉은 채로 숨이 끊어져 있었다.
이건 또 무슨 괴랄한 전개인가, 상황이 도무지 가늠되지 않는데, 대답 비슷한 것을 내놓은 것은 의외로 유지 쪽이었다.
“……열반.”
“으잉?!”
“그는 스스로 탈각하여 해탈에 이른 것이오. 놀랍군. 놀라운 일이야…….”
“당신 괜찮소? 뭔가 굉장히 이상해 보이는데…….”
“이상해? 아니오. 난 살아생전 지금만큼 머리가 맑은 적이 없었소. 후우-. 어째서 외도 따위에 그토록이나 번민했단 말인가. 그럴수록 괴로운 건 나인 것을…….”
말마따나 유지의 눈빛은 맑았고 말소리는 마디마디 청아했다.
그릇 안의 삿된 감정을 모조리 증발시킨 듯했다.
“그렇소. 그는 자신의 몸으로 날 일깨워 준 것이오. 오욕칠정 따윈 그저 찰나의 티끌일 뿐이라는 사실을…… 그래. 이 순간을 무어라 말할까…….”
유지는 떠오르는 해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이것을 현자의 시간이라 부르기로 하겠소.”
그리고 유지는 무사들과 더불어 떠났다.
청한은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다 지켜보고, 한참을 앉아 있다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리고 외쳤다.
“그게 무슨 쌉소리야!!”
그는 불당을 뒹굴면서 그동안 쌓아 온 모든 번민을 터뜨렸다.
참고로 조금 길었다.
“그게 뭔데!! 왜 알아서 납득하고 떠나는데!! 넌 왜 앉아서 죽어 자빠졌고!! 미친!! 다 미쳤어!! 뭐가 열반이냐!! 씨부랄!!”
그리고 하루 뒤에야 청한은 의종의 시신을 수습하여 화장했다.
사리 따윈 조금도, 아주 손톱만큼도 발견되지 않았다.
청한은 또 한 번 터졌다.
“즐겼네!! 이 새끼 겁나 즐겼네!! 사심이 없기는 개뿔!! 깔끔하게 사심만 있다는 점에서 순수한 새끼였네 이거!!”
그렇게 발광으로 또 하루를 보낸 뒤에야 청한은 정신을 차렸다.
어느 큼직한 바위를 묘비로 삼아 유골을 묻은 뒤에야, 그는 시종인 반야에게 말했다.
“난 환속할 것이다.”
“그래요?”
“그래. 부처의 도리 따위 경전과 수행에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곳간에 쌓인 재물을 풀어서 권력자가 될 것이다. 아주 강력한 권력자가. 세상의 모든 사치와 환락을 누리다 보면 나도 열반이란 거에 도달하겠지. 씨부럴. 보니까 해탈 뭐 없던데.”
“부러우셨나 봐요?”
“겁나 부러웠지!! 나도 하고 싶었다고!! 하고 싶었는데 참았다고!! 젠장!”
청한은 다시 진정했다.
“어쨌든, 너도 같이 가겠느냐? 반야.”
“선사님 곁이 아니면 제가 어디 가겠어요? 그 해탈이란 거 저도 같이 누려 보죠. 근데…….”
“근데?”
“환속하시면 속세의 이름으로 돌아가시겠네요. 지금부터는 뭐라 불러 드려야 되나요?”
청한은 오래전에 묻어 뒀던 이름을 파내느라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그는 말했다.
“신돈.”
그렇게 신돈과 반야는 운중사를 뒤로하고 환속하였다.
그리고 고려라는 한 나라와 반도의 역사를 통째로 뒤흔들게 되지만…… 그건 또 훗날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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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부처 핸섬](Rank C)을 습득했습니다.
: 잘생긴 게 최고야. 짜릿해. 늘 새로워.
: 본인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외형을 점차 갖추게 됩니다.
: 대머리 인자를 완전히 구축, 죽을 때까지 풍성한 머릿결을 유지합니다.
: 본 특성은 매순간 적용되지만, 특히 성장기에 가장 극적으로 활성화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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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감상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이게 무슨 원효대사 해골 물로 먹방 찍는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