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 자꾸 늘어 68화>
10. 냉정과 열정 사이 - 19
아무튼.
한발 물러서 보니, 과연 이 묘하게 잘생긴 바위는 유골의 머리맡을 지키던 바로 그 녀석임이 분명했다.
아마 유골에서 카르마가 옮아 간 게 아닐까 추측되었다.
그나저나 카르마 특성 한번 일관되네.
비바람을 가려 가며 맞을 수 없는 돌덩이조차 카르마의 조력에 힘입어 잘생기게 깎여 온 것이 아닌가.
어떤 의미론 좀 무서운 능력이었다.
‘특히나 내 성장기는 지금부터란 말이지.’
신장도 지금은 170 초중반이지만, 올해 말부터 성장 판이 갑자기 각성해서 열일하기 시작, 성인이 될 즈음에는 185까지 성장한다.
이 시기에 인상도 상당히 바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엔 그 방향성이 썩 긍정적이진 못했지만, 이 특성을 얻은 지금은 가히 기대해 볼 만하겠지.
물론 신생아 때부터 축복을 받아 온 의종이란 작자에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뭐, 그건 너무 사기적인 외모였어.’
당대의 문장가들이 다 포기했듯, 내 묘사력으로도 그의 용모를 표현하기란 지난했다.
그건 그냥 ‘잘생김’이란 개념이 어쩌다 보니 인간의 모습을 갖추게 된 케이스였다.
완전 논외다.
그런 얼굴을 달고 다니면 숨만 쉬어도 사생팬들이 창궐하고 말 테지.
그런 건 이쪽에서 사양이므로 외려 다행이라 하겠다.
그리고.
모근의 신과 정수리의 풍성함에 축복 있으라.
아마존은 어째서 고통 받는가.
사하라 사막은 어째서 비극인가.
그건 다 황량하거나 실시간으로 황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십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아마존보다 내 머리통의 울창함이 적어도 내게는 더 값지다.
난 지구 온난화가 해결되어 버렸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북극곰의 기분으로 복귀했다.
윤정희가 내 들뜬 기분을 감지했는지 의아하게 물었다.
“……? 뭐 좋은 일 있었니?”
“예. 있었지요.”
“뭔데? 나도 같이 좀 기분 좋아 보자.”
그럼 기꺼이 해 드려야지.
“회장님, 혹시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가 된다는 속설을 들어 보셨어요?”
“아마? 들어는 봤지?”
“사실 이상한 말 아닙니까? 공짜와 대머리 간에 어떤 상관 관계가 있단 말이죠? 그럼 정가를 엄수하는 태도가 모근을 보호해 주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점점 안 들어도 될 것 같은 이야기가 되고 있네…….”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저 속설을 조금 창의적으로 해석했지요. 공짜 선호는 흔한 행위다. 대머리도 흔한 일이다. 그러므로 저 속설은 인과 관계가 아니라 단순 사실의 나열로 보아야 한다. 말인즉…….”
“…….”
“저 속설은 ‘너도 나도 어차피 다 대머리가 될 것이므로 마음껏 공짜를 좋아하라!’는 인본주의적 메시지로 해석됨이 더 호혜적이다. 남자는 그렇게 해석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마음껏 공짜를 좋아했지요.”
“그리고 대머리가 되었니?”
“그리고 대머리가 되었습니다…….”
윤정희는 무감각하게 박수를 쳐 주었다.
“아주 눈물 나게 뻔한 이야기였어. 그래서 기분 좋은 얘기는 언제 나오는 거니?”
“후후…….”
내가 극적인 클라이맥스 연출을 위해 잠깐 시간을 끄는 사이 윤정희는 내게서 관심을 거두어 버렸다.
난 그 남자에게 일어난 모근의 기적을 더 설명할 수 없어 유감을 느꼈지만, 여전히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다.
* * *
사찰 체험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니 태양이 기진맥진한 얼굴로 산허리에 누워 있었다.
벌써 저녁.
순삭 당한 오늘 하루에 치를 떨며 학생들을 식당에 밀어 넣고 나니 그제야 시간이 좀 남았다.
지금 아니면 또 바쁘겠다 싶어서 얼른 목표물을 찾아 이동했다.
그는 식당 뒤편 등나무 밑에 앉아 뭔가를 작성하고 있었다.
“상진아 시간 괜찮냐?”
“응? 어어. 잠깐은 괜찮아. 왜?”
전상진이 안경 너머로 서류를 살피던 시선을 내게로 돌렸다.
가끔 나도 까먹는 사실인데, 이래 봬도 얘는 학생회 부회장이었다.
바쁜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당연한 걸 당연하겠거니 하고 있으면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저는 루비콘 강을 넘지 못하고, 잡스가 스마트폰을 만들 일도 없고, 그날 밤 당신의 정자가 지나치게 일을 해 버린 바람에 코가 꿰일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은 예시가 이상한데?
어쨌든.
“야, 인마. 일만 하고 있으면 어떡해. 먼 타지일수록 사랑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거 몰라?”
“으응?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
“왜 국토 대장정 같은 데서 커플이 무수히 양산되겠냐?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몸은 축나서 힘들어 죽겠고, 그런 악조건에서 서로 챙겨 주고 챙김 받고 하다 정분나고 그러는 거거든. 심리적 의존도가 애정으로 직행한다 이 말이야.”
“오오.”
“오오는 이 자식아, 네 연애지 내 연애냐. 일만 하지 말고 윤하랑 접점을 좀 만들어 보란 말이야, 접점을! 그런 마음가짐으로 어디 사랑을 쟁취하겠어?!”
“미, 미안…….”
윽박지르니 전상진은 빠르게 시무룩해졌다.
그 얼굴을 보니 뭔가 성실한 애를 꾀어서 못된 짓을 가르치는 것 같아 기분이 좀 그랬다.
돌이켜 보니 그런 게 맞았다.
모범생을 남녀상열지사의 늪으로 끌어들여 이득을 꾀하려 하다니, 이거 거의 라스푸틴급 간신이잖아?
물론 나는 뻔뻔했으므로 흔들리지 않았다.
“나한테 미안할 건 없지. 아쉬운 건 너니까.”
“음. 근데 진짜 바빠서 뭘 어쩔 시간이 없는데…….”
“그럴 줄 알고 내가 계획을 다 짜 왔지.”
솔직히 말하자면, 계획은 수학여행 오기 전부터 대충 짜여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 서로의 업무량이 헬인지 몰랐을 때 짠 계획이라 다소 조정이 필요했다.
“일단 저녁 식사 끝나고 숙소 청소잖아? 그때 너는 총괄하면서 소각장 담당이지?”
“응.”
“내가 거기 애들 포섭해 뒀거든? 배윤하랑 바꾸도록 말을 맞춰 놓을 테니까…….”
그때였다.
마치 그림자 위에 그림자가 겹치듯, 낯선 목소리가 내 목소리의 틈을 치고 들어왔다.
“어머, 상진아. 여기 있었구나?”
“……어? 세희야. 애들 배식은 다 끝났어?”
“그럼, 그럼. 끝났으니까 왔지. 너는 뭐 하고 있었어?”
“응? 나는 그냥…….”
그녀는 산자락의 어둠을 타고 등장했다.
배를 끌고 움직이는 뱀의 그것처럼 조용하고 은밀하게. 눈치챘을 때는 이미 다리를 타고 목을 감아 둔 채로.
그녀는 어느새 당연하다는 듯 우리 사이에 끼어 담소를 건네받고 있었다.
경계 태세를 선포하는 뇌의 어느 부위가 잘게 진동했다.
“어머, 네가 한열이구나? 반가워. 난 이세희라고 해. 우리 초면이지?”
“응. 완전 초면은 아니지만 통성명은 처음이지. 스태프 모임 때 얼굴은 봤었어.”
“그래 반갑다-. 나 너랑 친해지고 싶었어. 내가 알아봤는데 말이야, 우리 학교에서 경시대회 대상은 처음이라고 하더라고. 금상은 한 번 있었는데, 대상은 처음. 대단하다 얘. 늦었지만 축하해-.”
“그래, 고마워.”
“아, 상진아, 근데 말이야…….”
이세희는 눈이 살짝 쳐지고, 입매가 부드럽게 휘어 있어 유한 인상을 주었다.
말이 보통 사람보다 한 템포씩 늦고, 말꼬리를 끄는 버릇도 있어 조금은 맹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나는 대면하자마자 간파했다.
모조리 다 위장.
마치 보호색처럼, 주변에 위화감 없이 녹아들기 위한 기술일 뿐이다.
그리고 기술이란 몸에 내장된 도구다.
도구를 꺼내 들었다는 건 작업을 하겠다는 뜻. 즉, 그녀는 우릴 상대로 소규모의 공사를 치고 있었다.
언뜻 무계획적인 모습 또한 그렇게 보이도록 짜 놓은 계획적 연출.
분명했다.
이 여자는 김송헌 따위보다 몇 수는 앞서는 정치 감각의 소유자였고
그만큼이나 위험하다.
“……너 이따 소각장 담당이구나? 와, 우연이네. 나도 거기 배정됐거든.”
집중.
관찰.
그녀의 손짓, 시선이 머무는 곳, 눈빛의 떨림, 말의 색채, 숨소리의 온도.
사람의 심장은 늑골 아래에 숨어 있지만, 또한 사지 말단으로 뿜어낸 혈류의 속도와 열기로 자신을 드러낸다.
난 그녀의 심장이 어떤 울림으로 맥동하는지 가늠하였다.
그리고.
“아, 그래?”
“응응, 잘됐다. 그거 몇 명 빠져서 인원 많이 없거든. 근데 상진이 있으면 든든하네에-. 다행이야.”
“세희 있으면 나도 편하지. 이제 아예 한국으로 들어온 거야?”
“응, 앞으로 잘 부탁해-. 나 한국 오랜만이라서. 달라진 게 너무 많아아-.”
파악했다.
“근데 한열이랑은 무슨 얘기 하고 있었던 거야-?”
“아, 그건…….”
“별거 아니었어.”
난 불쑥 끼어들었다.
“아까 언뜻 들으니까 배치 바꾼다는 얘기 같던데.”
“아냐. 그럴까 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네.”
“왜?”
“상진이 혼자만 두면 걱정됐는데 말이야. 세희 네가 있으면 안심할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래?”
그리고 나는 그녀의 말끝에 묻은 미약한 떨림을 감지했다. 난 자리에서 일어섰다.
“상진아, 나 간다. 이따가 봐.”
“어? 그럼…….”
“나중에 얘기해 나중에. 오늘만 날도 아니고.”
“……어어. 그래, 알았어.”
전상진은 여전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어버버하고 있었다.
난 그 둘을 놔두고 등나무를 떠났다.
재잘거리는 소리가 등 뒤로 간지럽게 울렸다.
상황은 명백했다.
이세희는 전상진을 노리고 있었다. 정확히 남녀 관계의 의미에서.
그리고 아마도 전상진이 배윤하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내가 그 조력자라는 건 처음엔 몰랐겠지만, 아마 방금의 대화로 눈치를 챈 것 같다.
그럼 저 하얀 독사 같은 여자가 무슨 짓을 할 것인가.
‘알 수 없지.’
모른다.
그러므로 지금은 물러나야 했다.
난 사실 계획을 그렇게 공들여 짜지는 않았다.
애당초 전상진의 감정이 명확하고, 배윤하가 받아들일 마음이 있다는 걸 확인한 이상, 내가 할 일은 두 사람에게 계기를 주는 것뿐이었다.
거기에 거창한 계획이 필요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세희의 입장은 달랐겠지.
언더독의 위치에서 도전하는 처지이므로 계획을 철저하게 짜 뒀을 것이다.
그리고 판단하기로는, 그 계획엔 아마도 배윤하의 평판을 깎거나 위신을 추락시키는 일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나라면 그렇게 했을 테니까.
그리고 이세희에게는 나와 동류의 냄새가 났다.
어설프게 그 주변을 얼쩡거렸다가는 거미줄에 걸려서 단번에 먹히고 말겠지.
그녀의 홈그라운드에 들어가 먹잇감 코스프레를 해 줄 필요는 없었다.
‘사실 정면 대결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
내겐 간편함과 냉혹 무비함을 두루 갖춘 만능 해결사가 존재했다.
무식하게 들이받으며 내 머리통의 강도를 시험할 이유 따윈 전혀 없는 것이다.
* * *
그리고 시간 끌 것 없이, 바로 해결사에게 직행해서 상황을 고해 바쳤다.
“음…… 이세희라.”
윤정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훑어보던 서류를 옆으로 치우며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
윤정희 표정 연구의 권위자로서 말하건대, 방금 저 웃음은 찐이었다.
진짜로 마뜩잖고 어이가 없어서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뱉은 것이다.
“바빠서 이런 것까지 신경 쓰진 못했는데…… 흠. 거기까지 알고 그랬다면 더 건방지네.”
그 서류에는 이세희가 순번과 보직을 바꾸고, 본인에게 우호적인 들러리들을 포진시키며, 상진이와 ‘우연히’ 마주치도록 동선을 세밀하게 짜 놓은 기록들이 쓰여 있었다.
내가 그새 준비했느냐고?
아니다.
저건 윤정희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관리 기록부다.
말하자면 이세희의 실수는 그녀가 너무 열심히 계획을 짰다는 데 있었다.
지나치게 꼼꼼했던 탓에 공식 기록만 봐도 그 의도가 훤히 읽혔다.
아마 보통은 몰랐겠지.
윤정희는 한가하지 않으니 저런 자잘한 변동 따위 봤어도 넘어갔을 것이다.
의외로 이런 점에선 관대한 그녀였다.
하지만 그 목적이 전상진을 함락하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크게 달라진다.
그녀는 내가 건넨 단 한마디의 언질만으로 기록에 숨은 모든 헛짓거리들을 다 간파해 버렸다.
“……후.”
그러게 왜 대충대충 살지 않았는가.
계획 같은 거 설렁설렁 세웠다면 윤정희라도 알아채지 못했을 텐데.
일찍 일어나는 새는 일찍 일어나는 벌레만 잡는다.
게을러서 좀 늦게 기어 나오는 벌레들은 새들의 부지런함에 무심코 감사하고야 말겠지.
지금의 나처럼.
“고마워. 얘기 안 해 줬다면 모를 뻔했네. 요즘에도 이런 도둑고양이들이 서식을 하나 싶었는데…… 뭐, 이세희라면 그럴 만도 하지.”
“아는 아이예요?”
“중학교 때 유학 갔다가 얼마 전에 귀국했어. 물론 나름 중요 인사니까 우리끼리는 알고 있었지.”
“그래요?”
“집안이 법조계 쪽에선 꽤 유명해. 끗발도 제법 세고. 우리 학교 중요 인사로 리스트를 매긴다면 탑 텐 안에는 들걸.”
의외로 배경이 휘황찬란했다.
“김송헌하고 비교하면요?”
“비슷하긴 하겠네. 배경만 따지면. 근데 김송헌은 막내인 데다가 본인이 소인배라 별 볼 일 없어. 근데 이세희는…… 암호랑이는 못 돼도 독거미쯤은 되는 인물이야.”
내가 가늠했던 수준하고도 어느 정도 일치했다.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윤정희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김송헌 하니까 생각났는데, 얘 너랑은 이미 악연이었겠다.”
“네? 저 얘랑 오늘 처음 말 텄는데.”
“그게 아니고. 김송헌이 저번 날치기 사건 때 무죄 받은 거, 그거 다 이세희가 나서서 가능했던 거거든.”
“……음. 그럼 그 집안끼리도 뭔가 주고받은 게 있었겠군요.”
“그렇겠지. 내가 알기론 꽤 긴밀한 관계라던데. 학교 밖의 사정까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러면서 날 보며 쿡쿡 웃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웃으세요?”
“아니, 네가 얠 어떻게 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돼서.”
“절 뭘로 보고 그러십니까. 제가 뭐 아무나 시비 털고 다니는 줄 아세요?”
“아니었어?”
“저번부터 자꾸만 야박하시네-.”
그녀는 표정을 가다듬고 우아한 손짓으로 펜을 움직였다.
이세희가 이리저리 가위질해 둔 것들을 다시 꿰매고 붙이는 작업을 하는 듯했다.
특히 상진이와 조우하지 못하도록 세심한 조정이 가해졌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정교하고 유격 없이 채워진 구조물은 밑단의 돌 몇 개를 빼는 것만으로 쉽게 붕괴시킬 수 있다. 윤정희의 작업은 그런 것이었다.
“감히 상진이를 건드리게 놔둘 순 없지. 이세희 주제에.”
“……그럼 어느 정도면 허락해 주실 건데요?”
“상대가 문제가 아니야. 학생이 연애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인 거지. 그 집안사람들이 날 삶아 먹으려 들걸. 애 관리를 어떻게 했느냐고.”
“설마요.”
“그나저나 이제 슬슬 힘에 부치는 거 같은데. 차라리 게이라고 소문을 내 버릴까…… 흠.”
“그럼 그 집안에서 더 난리가 나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겠지. 하지만 여기엔 명확한 이점이 있어. 그게 뭔지 알아?”
“일단 모르겠고, 더하여 몰라도 될 거 같네요.”
그러나 윤정희는 나의 몰라도 될 자유를 기어코 박탈시켰다.
“미소년 둘이 붙어 있으면 보기에 이롭다는 것이지.”
“아, 예…….”
“음? 근데 한열이 너…… 어라? 음? 음음?”
윤정희의 눈이 크게 뜨였다가, 이내 유심히 살피려는 듯 좁아졌고, 다시 동공만 크게 확대되어 날 핥듯이 관찰하기 시작했다.
“혹시 메이크업 했니? 뭔가 아까보다 좀 잘생겨진 거 같은…….”
“그럴 리가요.”
“음, 그럼 이거 상진이 옆에 붙여 놓으면 그림이 되겠는…….”
“바쁘신데 죄송했습니다. 저 얼른 가 볼게요.”
“……더 있어도 괜찮은데.”
갑자기 놀라운 집착력을 보이는 윤정희를 떼어 내고 신속하게 후퇴했다.
전상진 한정 정조의 수호자로 활동하던 그녀가, 언젠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 다른 분야(?)의 중매를 시도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상관은 없지만, 그 대상에서 나는 빼 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 * *
윤정희의 조치는 신속했고, 당장 그날 밤부터 전상진 주변에 이세희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난 그제야 안심하고 상진이에게 접근했다.
그날 일과가 모두 끝나고, 취침 소등을 앞둔 신변 정리 시간이었다.
“알겠지? 내일 오후가 관건이야.”
“내일 오후?”
난 전상진에게 강하게 주지시켰다.
“여기 숙소 뒤편에 커다란 느티나무 있는 거 알지?”
“응? 어어. 본 거 같기도 하네.”
“거기가 고백 명소거든. 고백만 하면 그냥 직빵이래. 거기서 맺어지면 오래간다는 설도 있고.”
“오오오, 진짜?”
전상진이 물 만난 민달팽이처럼 목을 길게 빼었다.
진짜였다.
나만 해도 거기서 고백하는 장면을 다섯 번은 목격한 거 같다.
다만 성공률이 절반을 밑돈다는 비공식 통계는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어차피 성공할 테니까. 지금 전상진에게 필요한 건 오로지 기세와 용기뿐이었다.
“내일이 축제 날 당일이지? 아마 저녁에 메인 공연 있을 텐데, 통제 요원들한테도 자유 시간 준다니까 그때를 노리자고. 학생들은 다 공연장에 있으니까 방해도 없을 거야.”
“……오, 괜찮은데?”
“이제 네가 할 건 뭐다?”
“우황청심환 챙기는 거?”
“잘 아네. 내가 이렇게까지 판 깔아 주는데 도망가면 알아서 해. 그럼 너 안 볼 거야.”
“걱정 마! 나 막상 닥치면 잘하는 스타일이야.”
“알아, 인마.”
우린 서로를 보며 픽 웃었다.
솔직히 사심으로 추진한 일이긴 한데, 이젠 정말 상진이는 어떻게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처럼 순백색 인간도 드물다.
순진함은 표백제로 세탁한 수준이고, 성격은 누가 다림질이라도 해 놨는지 구김살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정도면 국가 공인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서 적극 보호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물론 윤정희 빌런이 있는 이상 연애 쪽에선 난관이 극심하겠지만,
뭐, 거기서부턴 부디 알아서 잘하시길.
“그럼 그거면 돼? 다른 작전은 없어?”
“……음. 일단은. 선배 눈이 있으니까, 의도적으로 뭘 바꾸긴 힘들 거 같네.”
이세희 때문에 윤정희 감시가 더 심해져서 기존 계획은 다 파기해야 했다. 뭐, 그래도 큰 문제는 없겠지.
“그건 그렇지? 어휴, 정희 누나 과보호가 너무 심해. 내가 아직도 애인 줄 안다니까.”
“완전히 똑같은 말을 언젠가 들은 거 같은데.”
“그랬나?”
“그랬어. 어쨌든 잘돼도, 내가 너네 이어 줬다는 사실은 비밀로 해야 된다.”
“음, 저번에도 그 소리 하더니. 꼭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어?”
“자식아, 원래 중매쟁이는 존재감이 없을수록 멋진 거야.”
“그런 거야?”
“그런 거야.”
물론 윤정희 레이더로부터 안전하기 위함이었지만…….
대충 둘러댄 말을 뭐 명언인 양 곱씹는 전상진을 보고 있자니 양심이 콕콕 찔렸다.
난 녀석의 팔을 툭 치고 돌아섰다.
“나 간다.”
“그래! 좋은 밤 되고! 항상 고마워, 한열아!!”
“그래, 너도.”
물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배윤하를 만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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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윤하 : 어디 있냐? 니가 불러 놓고 왜 안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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