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이 자꾸 늘어-72화 (72/164)

<재능이 자꾸 늘어 72화>

10. 냉정과 열정 사이- 23

컨설팅이라고 거창하게 말했지만 별건 없었다.

그냥 유니크한 유인책을 펼칠 뿐.

난 가방에서 조소 작업 도구와 그동안 작업해 둔 조각상들을 다 꺼냈다.

작업이 다 끝난 조각들은 총 8구.

모든 작품들이 성공작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중 몇 개는 특정 카테고리의 인물군에 특별히 매력적으로 보일 만한 것들이 있었다.

그중 몇 개를 골라 매대 위에 잘 보이게 장식해 뒀다.

“이거 다 뭐야?”

“애들과 남성 그리고 여성의 눈을 까뒤집게 만들 것들이죠.”

“그럼 아닌 사람이 없는데?”

“바로 그겁니다.”

남자애들 중에 프라모델 싫어하는 놈 몇 없다. 그리고 남자는 커서 죽을 때까지 아이이므로 할배여도 프라모델을 좋아하게 되어 있다.

여자들의 인형 선호도 마찬가지다.

간혹 성인으로서 체면이 문제가 되면, 인형이란 말 대신 ‘인테리어 소품’이란 말을 붙이고 똑같은 것을 사들일 뿐이다.

그리고 조각과 소조라고 근엄하게 말해 봐야.

근본은 다 클래식한 피규어와 프라모델과 바비 인형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예나 지금이나 다를 거 하나 없다. 선조들도 다 우리처럼 덕질하면서 ‘아테네 여신이 내 최애임’하고 놀았을 것이다.

어쨌든.

“이걸 경품으로 걸도록 하죠.”

“이거 비싼 것들 아니야? 딱 봐도…….”

“다 제가 만든 것들이에요. 원목 가격 정도는 들었겠네요. 어차피 집에 처박아 두려고 했는데 이번 기회에 다 처분하죠 뭐.”

“……헐.”

그리고 종이 카드를 즉석에서 만들어서 구매 고객에게 주도록 요청했다.

“1시간 뒤에 경품 추첨한다고 말하면서 주세요.”

“그래? 추첨 표를 바로 뽑는 게 아니야?”

“그럼 운 나쁘면 경품이 너무 빨리 소모될 수도 있어요. 그리고 1시간 뒤에 또 와야 닭꼬치 하나라도 더 사 먹죠.”

“그럼 1시간이면 너무 촉박하지 않나?”

“아뇨. 그때가 딱이에요. 그즈음에 공연이 시작되거든요. 여기 있는 사람 중 절반은 아마 아이돌 보러 왔을걸요. 공연장 가기 전에 들렀다 가야지, 이렇게 심리적인 포인트를 주는 겁니다.”

1시간 만에 완판시킬 수 있다고 장담하기도 했고 말이지.

그다음엔 관리 사무소에서 축제 포스터 몇 장을 빌려 와서 이어 붙였다.

“그건 또 뭐야?”

“쌤 노점 너무 눈에 안 띄어요. 이 정도면 분장하실 필요도 없었을 지경이라고요. 어차피 못 보고 안 올 테니까.”

“으앗. 너무해…….”

“그러니까 쌔끈하게 눈길을 잡아끌 수 있도록…….”

일종의 점포 간판이 필요했다.

물론 즉석에서 만들어 봐야 보통은 허접스러울 뿐이겠지만, 내게는 [장민욱의 미학]이라는 사기적 옵션이 달려 있었다.

그 전에.

“쌤 여기 점포 이름 있나요.”

“닭꼬치 한 점의 여유.”

“……!”

그게 뭐야.

“방금 생각하신 거죠?”

“사색적 닭꼬치도 좋아. 뭔가 먹으면서 IQ가 올라갈 거 같은 느낌.”

“……전에 걸로 하죠.”

어쨌든 점포 이름이 생기니 테마도 자연스럽게 잡혔다.

색색의 유성 펜을 늘어놓고, 머리에 떠오른 디자인들을 종이 위에 분별없이 옮겨 놓기 시작했다.

오래 고민할 시간이 없을 땐, 차라리 고민을 버리고 즉흥과 무의식에게 하도급을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은 법.

그리고 장민욱의 미학적 구상력은 그런 작업 방식에서 놀라운 위력을 발휘했다.

작업은 5분도 안 걸렸다.

“자, 어때요?”

“와…….”

시원한 봄바람. 방종한 색을 뽐내는 꽃들. 넘치는 생명력 위로 얹히는 나긋한 햇살.

이를 배경으로 두고, 어째서인지 타노스가 여유를 음미하는 태도로 닭꼬치를 들고 있었다.

왜 타노스인지는 묻지 말도록.

그냥 내 의식의 흐름이 그렇게 시켰다.

마지막으로 하단에 바로크 풍의 필체로 적힌 [닭꼬치 한 점의 여유].

“아주 어이없는 게 딱 내 스타일이야.”

“감사합니다.”

촉박하게 그려서 좀 러프하긴 해도, 구도나 시인성 면에서는 내가 보기에도 완벽했다.

어쨌든 눈에는 엄청 잘 띄었다.

조리용 랩으로 둘둘 말아 방수 처리까지 마친 간판이 마침내 점포 상단에 전시됐다.

이제야 개장한 느낌이었다.

“이제 끝?”

“아뇨. 이것만으로는 좀 약하죠. 이제부터가 진짜입니다.”

일단 간이 카페를 운영하는 옆집 점포로 가서 교섭을 시도했다.

“파라솔하고 테이블 빌려 달라고? 왜?”

“제가 이 앞에서 퍼포먼스를 좀 하려는데…… 서서 하면 없어 뵈잖아요.”

“어차피 손님도 없고 상관은 없는데…… 우리가 그래서 얻을 게 뭔데?”

“유동 인구가 늘어나겠죠.”

우리가 분발해서 매출이 오르면 옆집 역시 그 수혜를 입는다는 주장을 펼쳤다.

사실이기도 했다. 물론 커피와 닭꼬치가 경쟁 상품이 아니라 가능한 말이긴 하지만.

잘 구슬려서 파라솔과 테이블을 빌려 와, 우리 점포 앞에 떡하니 차려 놓았다.

그리고 거기서 조각을 깎기 시작했다.

자신작들 몇 개 테이블 위에 늘어놓고, [지금 닭꼬치 구매하시면, 수제 인형 경품권이 무료!]라는 안내문도 붙여 두었다.

말장난 마케팅이다.

글자 크기가 들쑥날쑥했는데, 이를테면 ‘지금’, ‘수제’, ‘무료’는 크고 나머지는 상대적으로 작았다.

자세히 보면 맥락이 파악되지만, 대충만 보면 ‘한정판 수제 인형을 무료로 준다’는 내용으로 오인되기 쉬웠다.

기만이라고?

맞다. 원래 마케팅 수법이란 게 다 눈속임과 기만으로 점철돼 있는 거다.

“엄마! 또봇! 저거 또보오옷! 나 저거 갖고 시퍼어……!!”

후후. 걸려 들었군.

이런 반응을 기대하고 요새 유소년들에게 핫하다는 장난감을 깎는 것이었다. 원래 장사를 잘하려면 가족 단위, 그중에도 애들을 노려야 된다.

“얘 아까 하나 사 줬…… 어머. 그거 공짜예요?”

“네. 닭꼬치 구매하시면 경품권 드립니다. 받아 가세요.”

“우리 닭꼬치 하나 먹을까?”

“그래, 뭐. 안 그래도 배고프긴 했어.”

“또봇! 또보옷! 아저씨 그거 변신도 해요?”

난 상냥하게 웃어 주었다.

“글쎄? 변신하지 않으면 또봇이라 할 수 없지 않을까?”

“오오옷!!”

물론 변신은 안 한다.

왜냐면 이건 또봇이 아니라 뜨오오오봇이거든. 방금 내가 만든 브랜드다. 미안, 또봇이라고 지칭하면 상표권 위반이므로 어쩔 수 없단다.

후후.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맹이에게 자본주의 마케팅의 비정함을 교육할 수 있게 되어 뿌듯했다.

앞으로 그는 공짜에 기대했다 배반당한 오늘을 떠올리며 보다 원숙해지겠지.

어른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당첨이 될 때의 이야기지만.

아무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근처의 유동 인구가 늘었다.

강렬한 시인성의 간판.

공짜라는 유혹 요인.

그리고 실시간 조각이라는 퍼포먼스.

다른 점포에는 없는 색다름이, 축제다운 축제에 목말라 있던 행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특히 마지막이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손재주]와 <조각 총론>이 결합되어 시너지를 일으킨 현재, 내 조각 실력은 장민욱의 전성기와 비교해도 월등한 수준이었다.

맘먹고 속도를 내면 거의 묘기 수준으로 깎아 낼 수 있다.

칼이 휙휙 하면 톱밥이 날리고 초 단위로 형태가 만들어지니 나름 보는 맛이 있을 것이다.

구경 온 사람들이 닭꼬치 하나씩 사 들고 돌아가니 매출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그리고.

“음……?!”

내가 기다리고 있던 자들이 나를 발견했다.

그들은 뿔테 안경과 늘 빵빵한 백팩 그리고 인자함을 대변하는 풍요의 뱃살로 설명되는 자들이었다.

줄여 말해 오타쿠라 하였다.

난 그들이 시야 안에 들어오자마자 은근슬쩍 조각상들의 배치를 바꾸었다. 효과가 있었다.

“이것은…….”

“…….”

“혹시 만져 봐도 되겠습니까?”

“죄송합니다. 경품으로 드릴 물건이라 접촉은 금지합니다.”

“……그렇군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 디테일, 섬세한 표정 묘사 그리고 이 자세는 혹시…….”

“23화.”

“에피소드 23! 역시!”

이 순간 그와 나 사이에 무언의 접점이 형성되었다.

아마도 동류를 발견했을 때의 어떤 찌릿함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물론 나는 그런 건 느끼지 못했다.

단 한 번 본 것을 그냥 어처구니없는 암기력으로 기억하고 있을 뿐.

그러나 난 내색하지 않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왜인지 모르지만 그가 마주 끄덕였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이 아스카 짱은 도색이 안 되었군요. 혹시 후처리가…….”

“다른 것들은 피니쉬를 입혔지만, 이것은 아직 맨살을 드러내고 있지요. 왜 그렇겠습니까?”

“역시…… 저희에게 도색할 기회를 주시는 거군요. 이런 영광, 놓칠 수 없지요! 아, 그럼 판매는 어떻게……?”

“경품입니다. 닭꼬치 하나당 경품권 하나를 받아 가실 수 있습니다.”

“혹시…….”

“네.”

“일인당 하나로 제한이 있습니까?”

난 싱그럽게 웃어 주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좋습니다!”

그리고 오타쿠의 무절제한 구매력이 닭꼬치 노점을 폭격했다.

‘후후, 계획대로.’

아까 돌아다니면서 축제의 일환으로 코스프레 행사도 있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장민욱도 아스카의 팬이었다…… 내가 이걸 깎아 둔 이유도 그것 때문.

어쨌든 덕분에 밖에선 좀체 볼 수 없는 오타쿠들의 지갑을 노릴 수 있었다.

행운이라면 행운이겠지.

그리고 얼마 안 돼 노점의 모든 품목이 매진되었다.

*   *   *

현지 쌤이 혀를 내둘렀다.

“대단하네…….”

경품 증정식 직후에도.

수십을 넘어 백여 명에 육박하는 숫자가 노점 근처에 남아 있었다.

경품은 단일 품목이 아니었고, 설사 당첨자라도 자신이 원하는 걸 딱 얻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래서 당첨자들끼리 서로 피규어를 교환하고, 누군가는 웃돈을 주고 사겠다며 접근하는 일이 벌어졌다.

군상들이 가쁘게 얽혔다.

한정판 아스카를 손에 얻고 포효하는 오타쿠. 그를 부러워하는 동료들. 또봇을 경쟁자에게 뺏기고 울상이 된 소년. 달래는 부모. 바로 인증 사진을 찍는 여자애들.

누군가는 우리 간판을 사겠다고 접근해 오기도 했다―본인이 소장하고 싶다는 현지 쌤의 바람으로 무산됐다.

사실 당첨자는 열 명밖에 안 됐는데도.

당첨 사실과는 무관하게 다수가 남아서 이 공간의 분위기를 즐겼다.

그래, 즐기는 것이다.

축제의 냄새였다.

안개비는 여전했지만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떠들고 웃고 마시고 먹었다.

근처의 노점들은 호황을 누렸고, 이 근처로 은근슬쩍 자리를 옮긴 상인들도 있었다.

특히 파라솔을 빌려 준 카페 주인은 내게 감사 인사까지 하고 갔다.

사람은 점차 사람을 끌어들였다.

우리 노점을 방문하지 않았던 객들도 어디선가 모여들어 축제의 분위기에 몸을 던져 왔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사람이 뭔가를 즐기는데 기후는 큰 문젯거리가 못 된다.

젖고 더러워지고 망가져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람은 즐거워질 수 있었다.

아니라면 머드 축제나 남미 토마토 축제는 그 자체로 형용 모순이 되게?

그럼 저들이 저 어정쩡한 빗줄기에 구애받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건 좀 반칙이 아닐까?”

“네? 뭐가요?”

“아니, 그렇잖아. 저렇게 맛있는 미끼로 유인하면 안 오고 배길 고기가 있을까? 닭꼬치가 아니라 그냥 꼬치만 팔아도 다 팔 수 있겠다.”

“배보다 배꼽이 큰 거 아닌가, 이 말씀이시죠?”

“내 말이. 정말 괜찮겠어? 저렇게 훌륭한 조각들이면 그냥 팔아도 돈 좀 만질 텐데.”

“그게 그렇지만도 않아요.”

난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피규어든 로봇 장난감이든, 진짜 시장으로 나간다면 훌륭한 대체재들이 즐비했다.

아마 저것들만 매대에 올려놓고 판다고 했으면 지금처럼 인기몰이를 하진 못했겠지.

한정판의 현혹.

경품이 가진 사행성.

달빛도 깎을 기세의 퍼포먼스.

축제라는 공간이 주는 어떤 마법 같은 분위기가 사람들을 느슨하고 너그럽게 만들어 준 것이다.

말하자면 감성 포켓을 열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에이, 어쨌든 1시간 만에 완판했잖아요. 쌤은 손해 볼 거 없지 않나?”

그럼에도 이현지 쌤은 아까부터 불퉁해 있었다.

“이럼 계산이 안 맞잖아.”

“예?”

“이건 컨설팅이 아니잖아. 너 혼자 마케팅하고, 영업하고, 호객까지 하고. 거의 네가 다 해 버렸네. 이럼 거래가 균형이 맞질 않는다고.”

“그런가요?”

“그렇다니깐.”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내겐 신경 쓸 거리가 필요했고 마침 그럴 만한 구실이 생겨서 달려들었다, 단지 그뿐인 일이었다.

하지만 내 사정 때문에 그녀의 마음에 부채를 지워서도 안 되겠지.

“그럼 추가 계산이라도 하실래요?”

“응. 뭐가 좋을까?”

답은 정해져 있었다.

“데이트나 한번 해 주시죠.”

그녀는 표정 없이 날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허리에 두 손을 척 올리고 다소 연극 톤의 워딩을 읊었다.

“안 돼!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

“……에. 안 되나요?”

“안 되지.”

그러면서 내 옆으로 척척 다가와 팔짱을 끼는 것이었다. 우비 너머로도 전해지는 부드러움에 정신이 날아갈 뻔했다.

“자, 가자. 데이트.”

“예? 안 된다면서요?”

“안 되지.”

“그런데요?”

내가 황당하게 바라보니, 그녀가 날 마주 보면서, 그날 새벽, 단 한 번 내게 보여 주었던 미소를 내 망막에 그려 넣었다.

“안 되지만 괜찮아.”

역시나 그녀는 불량 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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